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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로 일하는 즐거움…47세에 꿈을 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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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 리포액트 시민기자 내 직업은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공부방 선생님’이다. 무역학이 전공인 나는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IMF’라는 직격탄을 맞아 일반회사에 취업하는 대신 그 당시 비교적 취업이 잘 됐던 입시학원 강사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다행히도 적성에 잘 맞았던 나는 결혼을 하고 잔병치레가 잦았던 아들을 초등학교에 적응시킨 뒤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 된 해부터 집에서 ‘공부방’을 시작했다. 창업 비용도 들지 않고 집에서 아이도 돌보며 동시에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직업이었다. 아들이 지금 23살이니 올해로 14년째 일을 하고 있다. 47세에 이룬 어릴 적 꿈 그런데 나는 어릴 적부터 기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학보사에 들어가 청소부터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활동을 했다. 그러나 선배의 은근한 괴롭힘에 결국 학보사를 나오게 되었다. 작년에 여고 동창이 카카오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내가 학보사 시절 친구에게 보낸 신문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은 것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리고 친구와 주고받았던 편지에 내가 학보사 그만둔 것을 진심으로 후회한다는 내용이 구구절절 적혀 있다고도 전해 주었다. 지금 나는 ‘리포액트’ 시민기자이다. ‘리포액트’ 대표인 허재현 기자의 유튜브 방송을 듣다가 운이 좋게도 시민기자가 되었다. 2022년 검찰개혁 촛불 집회에 주말마다 혼자 나가게 되었고 페이스북에 사진과 글을 올렸다. 허재현 기자가 내 페이스북을 보고 기사를 써보지 않겠냐고 제의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2022년 9월 1일 시민언론 더탐사가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질문하던 모습. 유튜브 현장 중계 영상 캡처 신문지국집 딸 숙이 아빠는 강원도 정선군 예미리에서 조선일보‧한국일보 신문지국 지국장으로 일했다. 조선일보와 한국일보를 지역에 파는 대리점을 한 셈이다. 어릴 적부터 우리 집에는 산처럼 신문이 쌓여 있었고 신동아 같은 두꺼운 월간지들이 아빠의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동화책이나 소설책보다는 신문과 월간지를 더 많이 읽으며 지냈다. 아빠는 서울 본사로 한 달에 한 번씩 출장을 다녀왔고 집에 올 때는 꼭 바나나 두 다발을 사왔다. 한 다발은 내 것, 또 한 다발은 남동생 것. 당시에는 바나나가 귀했기 때문에 아빠가 서울 출장을 가는 날엔 아빠보다도 바나나를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아빠는 신문지국장이면서 한국일보 지역 기자로도 일했다. 신문 한 귀퉁이에 실렸던 아빠의 기사를 보며 “와~ 우리 아빠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자랑스러운 마음도 생겼다. 작년에 엄마는 내게 말했다. 아빠가 광산 비리를 캐고 다녀서 동네에서 미움을 많이 받았는데 지금 나를 보면 꼭 아빠를 보는 것 같다고. 내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나는 돌아가신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다. 아빠와 함께 신문을 읽고 토론을 하고 TV 뉴스를 보면서 얘기도 많이 나누었다. 늘 친절하게 설명해 주던 아빠의 표정이 생각나 주책스럽게 눈물이 자주 난다. 내가 여전히 사회와 정치에 관심이 많고 시민기자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건 그 시절 자연스럽게 접했던 신문과 잡지,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와의 즐거웠던 토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미식당 딸 숙이 내가 철이 들고 난 뒤 엄마는 나를 붙잡고 자주 얘기했다. "돈도 안 되는 신문지국은 왜 저렇게 계속하는지 모르겠다." 당시는 어릴 때라 열심히 일하는 아빠, 신문에 기사도 나오는 자랑스러운 아빠를 엄마는 왜 저렇게 못마땅하게 생각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야 엄마를 이해하게 됐다. 힘들게 식당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살았던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말이다. 아빠가 엄마를 전혀 도와주지 않은 건 아니다. 손님들이 와서 한 잔씩 술을 주면 영업을 위해 다 받아 마시곤 했다. 술이 약한 아빠는 곯아떨어지고 남은 일은 다 엄마 몫이니 엄마 입장에서는 돈도 안 되는데 쌓여만 가는 신문 뭉치가 원수 같았을 것이다. 내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엄마는 식당을 그만뒀다. 식당을 해서 모은 돈으로 조금 더 편한 당구장으로 사업을 변경했다.   2022년 4월 9일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의원을 상대로 인터뷰하는 모습. 조정식 의원실 제공 이젠 리포액트 정숙 기자 아버지는 9년 전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외동딸인 나는 엄마를 돌보느라 내 자신은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엄마는 조금씩 안정을 찾았지만 나는 오히려 우울감이 점점 커져 극에 달했다. 그러다 ‘시민기자’라는 이름으로 현장 취재를 다니고 인터뷰도 하면서 정말 바쁘게 지냈다. 수업을 주 4일만 했기 때문에 수업을 안 하는 오전이나 주말에는 취재와 인터뷰를 하러 다녔다. 일주일을 바쁘게 지내다 보니 우울함도 점차 사라지고 보람과 긍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에게 가장 용기가 됐던 건 “시민기자라고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활동하세요. 시민기자는 시민들의 대표입니다!”라고 한 허재현 기자의 말이다. 시민기자로서 받은 활동비는 시민단체에 후원을 하거나 기부를 하기도 한다. 어릴 적 꿈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드니 자존감이 높아졌고 우울증도 거의 사라졌다. 단순히 정해진 길을 따라가면 편하게 살 수는 있다. 하지만 돈을 벌고 못 벌고를 떠나 반복되는 일상에서 나만의 탈출구를 찾고 내 안에 숨어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모르고 평생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실패가 두렵다고 포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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