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어게인 또 감싼 장동혁… 윤석열 내란 판결 불복?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20일 국회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무기징역 선고 관련, 입장을 밝히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2026.2.20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다음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충분한 근거와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며 사실상 판결 불복의 메시지를 던졌다. 더 나아가 이른바 ‘윤어게인’ 세력을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제도권 밖에서 싸우는 애국 시민들”이라고 치켜세웠다. 이 발언은 단순한 당 대표의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사법부 판단을 정면으로 흔들고, 헌정 질서의 토대를 의심하게 만드는 위험한 언어다.
장 대표는 아직 1심인 만큼 무죄 추정의 원칙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죄 추정은 수사와 재판의 과정에서 피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적 원칙이지, 이미 법원이 선고한 판결의 권위를 부정하는 정치적 방패가 아니다. 1심 판결은 엄연히 법적 판단이다. 항소 절차가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 판결은 법정에서 제출된 증거와 법리에 따라 내려진 국가의 공식 결정이다.
무죄 추정을 들먹이며 판결 자체를 확신 없는 판결”로 규정하는 태도는 법치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낸다. 장 대표는 판사 출신인데도 이런 태도를 취하니 놀랍기만 하다. 법치주의는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정치적 언어로 깎아내리는 데서 무너진다. 사법부의 판단은 항소심에서 다투면 될 일이다. 정당 대표가 판사의 ‘양심의 흔적’ 운운하며 판결의 정당성을 흔드는 것은, 제도권 정치가 스스로 제도에 대한 신뢰를 허무는 행위다.
장 대표는 계엄이 곧 내란은 아니다”라는 당의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물론 법리적으로 계엄 선포가 자동으로 내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형식적 선언이 아니라 실질적 행위와 의도다. 권력을 유지하거나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군사적 수단을 동원하고 헌정 질서를 파괴하려 했다면, 그것은 단순한 정치적 판단 착오가 아니라 중대한 범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대표는 판결을 충분한 근거와 설명이 없다”고 단정했다. 이는 구체적 법리 반박이 아니라,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정치적 선동에 가깝다. 판결문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대신, ‘논리적 허점’이라는 추상적 표현으로 불신을 확산시키는 것은 책임 있는 공당의 태도가 아니다.
장동혁 대표 페이스북
확신이 없는 판결에는 양심의 떨림이 느껴진다.” 이 표현은 언뜻 문학적 수사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판사의 판단을 심리적 불안으로 환원시키는 위험한 공격이다. 사법 판단은 감정의 산물이 아니다. 증거와 법리, 그리고 합의된 절차의 결과다. 판사의 ‘마지막 양심의 흔적’이라는 표현은 판결을 마치 정치적 타협이나 내적 갈등의 산물처럼 묘사한다.
정치 지도자가 이런 식의 언어를 사용할 때, 시민들은 판결을 법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 음모’로 오해하기 쉽다. 이는 사법 불신을 구조화하는 길이다. 정당 대표라면 사법부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제도의 권위를 존중하는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윤어게인’ 세력을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제도권 밖에서 싸우는 애국 시민들”이라고 치켜세운 부분이다. 제도권 밖에서 싸운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절차를 넘어서는 행동을 정당화하겠다는 것인가. 민주주의는 제도 안에서의 경쟁과 견제를 통해 유지된다. 제도 밖의 투쟁을 ‘애국’으로 포장하는 순간, 우리는 법보다 열정이 앞서는 정치의 위험을 마주하게 된다.
애국은 특정 정치인을 지키는 일이 아니다. 애국은 헌법 질서를 지키는 일이다. 특정 인물의 유무죄와 상관없이, 사법 절차를 존중하고 판결을 제도적으로 다투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자의 태도다.
그런데도 장 대표는 지지층의 분노를 ‘애국’으로 미화하며 당의 깃발 아래 결집하자고 외친다. 이는 정치적 동원 전략일 뿐, 국가 공동체를 위한 책임 있는 발언이 아니다.
당 안팎의 ‘절윤’ 요구를 향해 장 대표는 분열은 최악의 무능”이라며 반박했다. 그러나 진정한 분열은 과오에 대한 성찰을 거부할 때 시작된다. 지도부가 책임을 명확히 하고 선을 긋지 못할 때, 당은 과거에 묶여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 절연 요구를 ‘갈라치기’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 제기를 봉쇄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정당은 개인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공당은 공적 가치와 원칙을 위해 존재한다. 만약 전직 대통령이 중대한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면, 당은 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이 혁신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장 대표의 발언은 책임의 언어가 아니라, 방어와 결집의 언어로 가득하다.
모든 답은 선거 승리에 있다.” 장 대표의 이 말은 정치의 본질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선거에서 이기면 지킬 수 있고, 지면 잃는다는 사고는 민주주의를 단순한 권력 쟁탈전으로 축소한다. 선거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법치와 헌정 질서를 지키는 일은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지켜야 할 가치다.
선거 승리를 위해 사법 판단을 의심하고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제도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는다. 정치가 사법을 공격하는 언어를 반복할수록, 시민들은 판결을 정치적 산물로 인식하게 된다. 그 피해는 특정 정당이 아니라 민주주의 전체에 돌아간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격앙된 언어가 아니라 절제된 책임이다. 항소심에서 다투겠다면, 법정에서 다투면 된다. 판결의 오류를 지적하려면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면 된다. 그러나 판사의 ‘양심’과 ‘확신’을 문제 삼고, 제도 밖의 투쟁을 애국으로 칭송하는 방식은 갈등을 증폭시킬 뿐이다.
정치는 법 위에 설 수 없다. 어느 정당도, 어느 지도자도 헌법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장 대표의 발언은 당장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헌정 질서에 대한 존중이라는 더 큰 가치를 훼손한다. 지도자의 언어는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한다. 지금 그의 언어는 통합이 아니라 대결을, 성찰이 아니라 부정을 향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패배를 인정하는 용기에서 자란다.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절차를 존중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태도가 민주적 성숙이다. 사법부의 판단을 음모나 허점으로 몰아가고, 지지층의 분노를 애국으로 포장하는 정치가 반복된다면 우리는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윤어게인’이 아니라 ‘헌법 어게인’이다. 특정 인물을 중심에 두는 정치가 아니라, 헌정 질서를 중심에 두는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 공당의 대표라면 그 선두에 서야 한다. 그러나 장동혁의 이번 발언은 그와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사법부의 판결을 비판할 자유는 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제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행사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 지도자의 언어는 무게를 가져야 한다. 지금 장 대표의 언어는 무겁지 않다. 오히려 가볍게 분노를 자극하고, 쉽게 의심을 확산시키며, 빠르게 지지층을 동원하려는 계산이 읽힌다.
그 계산이 성공할지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인가. 헌정 질서를 흔드는 언어로 자유를 말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인가. 정치가 법을 흔드는 순간, 민주주의는 서서히 균열된다. 그 균열의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지금 장동혁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결집의 구호가 아니라, 침묵과 성찰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