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보석·전한길의 고소...흔들리는 법치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법이 무너지는 방식은 결코 요란하지 않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방심과 ‘이번 한 번만’이라는 타협이 쌓여 기단부터 서서히 침식될 뿐이다.
법의 ‘관용’이 ‘정치적 도구’로 변질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보석으로 풀려난 전광훈의 행보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 그는 유튜브와 광화문 집회를 누비며 정치적 메시지를 쏟아내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내란수괴 윤석열 면회까지 감행하며 세 과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당초 법원이 보석을 허가한 이유는 비뇨기과 치료의 필요성과 낮은 도주 우려를 바탕으로 엄격한 준수 사항을 전제한 ‘일시적 자유’였다. 결코 정치적 활동을 용인하는 면죄부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그는 치료를 빌미로 얻어낸 자유를 발판 삼아 정치적 확성기를 키워나가고 있다. 이는 보석 제도의 취지를 명백히 왜곡하는 것이자, 사법 질서를 정면으로 조롱하는 행태다.
또 다른 균열은 법의 ‘절차’를 책임 회피의 방패로 삼는 극우 유튜버 전한길의 태도에서 비롯한다.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논란의 중심에 선 전한길은 자신의 의혹 제기를 단순한 ‘재인용’이라 강변하며, 수사 과정의 절차적 문제를 들어 고소하는 등 역공을 펼치고 있다. 물론 수사기관의 과잉 대응이나 인권 침해 요소는 엄중히 경계해야 마땅한 일이다. 공권력 집행은 어떤 경우에도 헌법적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요구가 정작 본인이 짊어져야 할 실체적 책임을 가리는 수단으로 전락된다면, 법의 정의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범죄학의 ‘깨진 유리창 이론’은 본래 도시범죄이론에서 비롯되었으나, 지금의 사법 현실에 적용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보석 조건 위반이 방치되고 허위 정보 유포가 ‘표현의 자유’라는 허울 뒤에 숨어 희석될 때, 사회는 이 정도 법은 어겨도 무방하다”는 위험한 신호를 학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균열을 방치하면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저 사람은 되는데 왜 나는 안 되는가”라는 냉소가 확산되는 순간,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규범이 아닌 힘 있는 자들의 ‘선택적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깨진 유리창을 수리하지 않은 대가는 법치주의의 붕괴라는 참혹한 결과로 돌아올 뿐이다.
법이 무너지는 방식은 결코 요란하지 않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방심과 ‘이번 한 번만’이라는 타협이 쌓여 기단부터 서서히 침식될 뿐이다. 법이 흔들리면 정치가 과잉되고, 정치가 과잉되면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분열의 늪으로 빠져든다. 법치라는 거대한 둑에 생긴 균열이 아무리 작아 보여도, 결국 둑을 무너뜨리는 것은 언제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틈새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