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장 맘다니 당선, 기적 아닌 필연인 이유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간 『조란 맘다니』의 표지.
2025년 6월 25일 자정이 막 지났을 때, 뉴욕시장 예비선거 승리가 확정된 33세의 사내가 퀸스의 한 맥줏집 무대 위에 올라섰다. 우간다 출신 무슬림 이민자이자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조란 맘다니. 불과 6개월 전, 예측 사이트가 그의 당선 가능성을 8%로 잡았을 때 그 숫자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시어도어 함의 『조란 맘다니』는 그 8%가 어떻게 111만 표의 압승으로 뒤집혔는가를 추적한 정치 다큐멘터리다. 저자는 뉴욕 진보정치 현장을 오랫동안 밀착 취재해온 이로서, 선거운동의 전략과 전술을 흥미진진하게 복기하면서 맘다니의 승리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오히려 필연이었음을 논증한다.
조란 맘다니는 미국 사회의 비주류이자 소수자이자 이단아였다. 미국의 경제수도이자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뉴욕의 시장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맘다니가 표방하는 주장들은 하나같이 미국 주류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내용들이었다. 맘다니가 뉴욕시장 출사표를 던지자 미국의 뿌리 깊은 기득권 세력들이 총궐기라도 하듯 막아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맘다니를 100% 미치광이 공산주의자”라고 비방했고, 공화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은 지하디스트 시장 후보”라고 공격했다. 맘다니의 소속정당인 민주당의 주류조차 지지를 꺼렸다. 민주당 지도부는 2025년 6월, 맘다니가 민주당 공식 후보로 선출된 이후에도 한동안 지지 입장을 내지 않았다.
CNN이나 월스트리트 저널, 폭스 뉴스, 뉴욕 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은 대부분 맘다니의 약점을 들추는 보도를 연일 쏟아 냈다. 심지어 중도진보 성향의 언론으로 알려진 뉴욕 타임스까지 맘다니를 깎아내리는 대열에 합류했다.
이같은 몇 겹의 포위를 뚫은 맘다니의 전략은 단순했다. 단 하나의 질문으로 선거를 만들었다. 맘다니는 어떤 질문을 받거나 논쟁을 하더라도 결국 민생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뉴욕은 너무 비싸다.” 그는 유권자들에게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 뉴욕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맘다니는 시민들의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밖에서 관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과 함께 살아온 뉴요커였다. 선거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인 한 방은 거창한 이념이나 요란한 네거티브가 아니라 민생이었다.
결국 시민들과 함께하고 그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맘다니 시장을 탄생시킨 최고의 선거 전략이었다.
맘다니는 슈퍼부자가 아닌 99% 사람들의 분노와 욕구를 읽고 있었다. 그는 소외되었던 뉴욕시민들을 정치 주체로 복원시켰다. 뉴욕시장 선거가 기득권 정치인과 억만장자, 선거 브로커, 언론들만의 리그여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맘다니는 99%를 향해 뉴욕은 여러분의 도시이며, 민주주의 또한 여러분의 것”이라고 환기시켰다.
완전히 새로운 뉴욕시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맘다니 당선자는 발 빠르게 새 정부 구성에 착수했다. 11월 4일 승리가 확정된 후 그의 상징이 된 오른손을 가슴에 얹는 제스처를 하면서 승리 연설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맘다니는 미국 사회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무슬림이자 아프리카 출생이자 남아시아계 혈통이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이를 당당하게 드러냈다.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뉴욕에서 시장 출마를 하면서 사회주의자임을 밝혔고, 유대인이 돈줄을 쥐고 있는 정·재계에서 친팔레스타인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감추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신뢰를 만들었다.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 맘다니의 태도는 시민들의 감동과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뉴욕의 무슬림과 남아시아 공동체와 진보적 시민운동 세력들이 그를 새로운 정치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소외되었던 공동체들은 그에게서 처음으로 자신들의 대표 를 보았고, 열광했다.
저자가 주목하는 또 다른 축은 미디어 전략이다. 맘다니는 신문이나 방송의 보도를 대체로 무심하게 대했다. 미국의 기득권 언론들은 진보와 보수 구분 없이 맘다니를 ‘급진적 사회주의자’, ‘반유대주의자’, ‘행정경험 없는 풋내기’, ‘비현실적인 포퓰리스트’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맘다니는 악의적인 보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거나 반박하는 일도 자제했다. 다만 기발한 패러디 혹은 가벼운 조롱으로 대응할 뿐이었다.
대신 인스타그램, 틱톡, 엑스로 전달된 신선한 메시지들, 불과 20명에서 시작해 10만 명으로 불어난 자원봉사자 군단, 이미지의 힘이 활자의 힘을 압도하는 시대에 맞춘 시각적 호소력이 위력을 발휘했다.
흥미로운 반전도 있다. 트럼프가 TV 인터뷰에서 나쁜 민주당원과 공산주의자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쁜 민주당원을 택하겠다 며 쿠오모를 지지하자, 이 발언을 적극적으로 홍보에 활용한 것은 맘다니 캠프였다. 쿠오모는 황급히 선을 그었고, 맘다니는 지지자들 앞에서 트럼프에 맞서 싸우겠다는 다짐을 재차 천명했다. 지지자들은 수치스럽다! 를 외치며 환호했다.
이 책은 100년 만의 최연소 뉴욕시장이자 최초의 무슬림 시장 당선이라는 선거 기적 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 기적은 또한 결코 기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공허한 이념의 언어가 아니라 생활의 언어로 기득권 정당의 외면을 딛고, 유권자와 직접 접속함으로써 언론의 포위를 뚫을 수 있었던 준비된 승리 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정치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현실적인 대답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 책이 미국 뉴욕과의 지리적 거리만큼 멀지 않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