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1년이나 지나서, 위헌도 아닌 ‘위헌적’이라고?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송요훈 편집위원(전 MBC 기자)
지난 5일 전국법원장회의 다음날, 전두환 군부정권의 언론 통폐합으로 강제 해직됐던 어느 선배는 언론시국회의 단체대화방에 올린 ‘오늘의 한마디’에서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처럼 윤석열의 12.3 계엄이 성공했다면, 전국법원장회의는 ‘위헌적’이 아니라 ‘합헌적’이라 하지 않았을까? 물었다. 속을 들켜버린 것 같아 괜히 내가 찔끔했다.
일찌감치 취임 첫해 4.19 기념사에서 엿보인 쿠데타 의도
설마 그랬을까요? 하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역시 굴곡의 역사를 몸으로 겪었고 저항했던 선배 언론인들은 다르다 싶었다. 언론시국회의는, 민주주의 퇴행을 막으려면 언론이 정상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꾸준히 경고음을 내야 한다는 소명의식에서 출발한 퇴직 언론인들의 자발적 모임이다. 박정희 유신 치하에서 해직된 동아투위·조선투위 선배들과 전두환 군부정권에 의해 해직된 선배들의 제안으로 시작되어 ‘윤석열 폭주열차’가 마각을 드러내던 2023년 3월에 출범했다.
윤석열은 대통령이 되고 처음 맞은 2023년의 4·19혁명 기념식에서 거짓 선동, 날조, 이런 것들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은 독재와 전체주의 편을 들면서도 겉으로는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행세를 하는 경우를 세계 곳곳에서 많이 봐 왔다”며 거짓과 위장에 절대 속아서는 안 되고, 4·19혁명 열사가 피로써 지켜낸 자유와 민주주의가 사기꾼에 농락당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평생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워온 수많은 이들이 졸지에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행세를 하며 거짓과 위선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농락하는 사기꾼이 되었다.
윤석열이 19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23.4.19. 연합뉴스
12.3 계엄 당시에 발표한 담화문 내용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달라진 게 있다면 표현의 수위와 강도뿐이다. 윤석열은 이미 그때부터 민주 진영의 씨를 말리고 수구 집단의 영구 집권의 토대를 구축하겠다는 망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극우 성향인 고교 선배 김용현을 국방장관에 앉히고, 군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고교 후배인 여인형을 방첩사령관에 앉혔다. 그 뿐인가, 고교 후배이고 서울법대 후배인 이상민을 행안부 장관에 앉혀 경찰까지 통제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그 모두가 ‘친위 쿠데타’라는 원대한 포부가 있어 그랬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검찰은 물론 법원에도 보이지 않게 마수를 뻗쳤을 것이다.
법원이라고 그 마수가 뻗치지 않았을까
2017년 9월에 취임한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의 민주화를 위해 법원장 임명 방식을 ‘아래로부터의 추천’으로 바꿨다. 전국 법원의 판사와 일반직 공무원 등 사법부 구성원들로부터 법원장으로 적합하다고 평가하는 판사들을 추천받아 법관인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적임자를 임명하는 방식이다. 이전의 대법원장들은 법관 인사에 대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여 ‘제왕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후임으로 2023년 9월에 임기를 시작한 조희대 대법원장은 ‘법원장 추천제’를 사실상 폐지했다. 그러니까 지금 전국의 법원장들은 ‘제왕적’ 조희대 대법원장이 임명한 법원장들이다. 그래서일까? 12.3 계엄이 있고 1년이 지났는데도 법원장들은 윤석열의 12.3 계엄은 ‘위헌’이라고 딱 잘라 말하지 못하고 ‘위헌적’이라고 어물거린다. 위헌적이라니, 위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건가? 반면에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법 왜곡죄 신설에는 큰 목소리로 심각한 우려를 표시한다. 재판의 중립성과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하여 위헌성이 크단다.
그 말을 뒤집어보자. 지금 내란 재판은 윤석열과 김용현의 변호인들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어 ‘침대 축구’ ‘봉숭아 학당’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용현의 변호인들은 법정 안팎에서 판사와 법원을 모욕하고 조롱하고 있다. 그게 중립적인 건가? 그래서 사법부 신뢰는 우상향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한다니, 모든 국민의 권리가 보편적으로 침해된다는 건가? 아니면 내란죄를 저지른 피고들도 국민인데 그들의 권리가 침해된다는 건가?
‘희대의 파기환송’이 ‘사법부 독립’ 방패 뒤에 숨길 수 있는 일인가
법 왜곡죄 처벌법은 법관, 검사, 사법경찰관 등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이 단순한 실수나 오판이 아니라 특정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할 목적으로 법을 잘못 적용하거나 사실관계를 조작하여 부당한 결정을 내리면 처벌하는 법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의도적으로 수사를 조작하거나 편향적으로 재판을 하고 판결이 내리면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는 거다. 그렇다면 그 법은 돈 없고 배경 없는 국민을 보호하는 법이고, 권력기관의 권한 오남용을 예방하는 법이고, 수사를 정적 제거나 마녀사냥의 도구로 악용하는 걸 막는 법이고, 민주주의와 인권과 정의를 지키는 법 아닌가? 내가 ‘법알못’이라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걸까? 법원장들이 말을 어렵게 비틀어 헷갈리게 만드는 걸까?
12.3 계엄이 선포된 직후에 대법원은 ‘심야 회의’를 소집했다.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에 협조하기 위해 열린 회의라는 의심이 무성해도 대법원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윤석열 구속에 흥분한 극렬 지지자들이 서부법원에 난입하는 폭동을 저질러도 대법원은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지귀연 판사가 해괴한 구속일수 계산 방식으로 윤석열 구속 취소 결정을 내린 건 독자적인 결정이 아니라는 의심이 난무해도 대법원은 그저 무심하다. 이른바 ‘희대의 파기환송’은 대통령 당선이 명약관화하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선 출마를 원천 봉쇄하기 위한 술수였다는 게 정설로 통하는데 대법원은 고장 난 녹음기처럼 아니라는 답변만 되풀이한다. 의심이 쌓여 사실로 굳어가는데도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대신 ‘사법부 독립’이라는 방패 뒤로 숨기에 바쁘다. 국민의 원성이 대법원 담장을 넘어 쩌렁쩌렁 울려도 무감하다. 사법부 독립은 국민으로부터의 독립인가.
지난 5일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인사말을 하기 위해 연단으로 향하고 있다. 2005.12 5 연합뉴스
법원이 심각한 마당에 왜 배우 조진웅 뉴스가 튀어 나왔을까?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문제로 난상 토론이 벌어지는 찰나에 아닌 밤에 홍두깨처럼 배우 조진웅 씨가 어릴 적에 소년원에 다녀왔다는 과거의 이력이 뉴스를 도배하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그런 뉴스가 튀어나온 걸까? 기자들에겐 교과서로 불리는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의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는 ‘투명성의 원칙’이 나온다. 온갖 정보가 난무하고 거짓이 참을 밀어내는 ‘탈진실’이 압도하는 현실에서 언론의 보도가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정보를 알게 된 경위와 보도하기로 결정한 이유 등을 투명하게 설명하라고 충고한다. 그게 ‘투명성의 원칙’이다.
배우 조진웅 씨의 과거를 보도한 라는 매체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어떤 경위로 알게 됐는지, 제보가 있었다면 제보를 한 사람은 신뢰할 만한 인물인지, 왜 제보를 했는지, 제보의 내용이 사실인지, 어떤 과정으로 확인했고 왜 보도하기로 결정했는지 등등을 투명하게 밝힐 수 있을까?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서는 그렇게 하라고 권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젊은 판사 시절에 이런 일이 있었단다. 공안사건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검찰은 TK 출신 인 조희대 판사가 영장 당직인 날에 구속영장을 청구해 날치기로 받아냈단다. 그 당시에 보도된 기사를 보면 그렇다. 의 표현을 빌리자면, 입맛에 맞는 ‘판사 쇼핑’을 한 거다. 정치 검찰에 의해 공안사범으로 몰리고 젊은 조희대 판사가 발부한 영장으로 구속된 ‘인노회 사건’ 피해자 5명은 억울한 옥살이를 했고, 2018년에 재심을 청구하여 35년이 지난 올해 3월에야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장 과거는 눈 감고 배우에게만 ‘살인의 흉기’가 되는 언론
탈선 소년 조진웅은 과거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성숙한 어른이 되었고, 배우로서 공동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였고, 사회적 신망을 얻었다. 폭로 매체가 과거를 보도하자 잘못을 부정하지 않았고, 거듭 사죄했고, 배우의 길을 접었다. ‘영장 발부기’였던 판사 조희대는 승승장구하여 대법원장이 되었다. 그로 인하여 법원의 신뢰에 금이 가고 사법부를 정치로 오염시켰다는 비난이 쏟아져도 오불관언 말이 없다. 잘못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는다. 배우 조진웅처럼 툴툴 털고 물러날 생각도 없는 것 같다.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특사단이 14일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홍범도 장군 묘역에서 열린 추모식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 두번째 부터 영화배우 조진웅, 여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 민주당 우원식 의원.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봉오동·청산리 대첩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기 위해 카자흐스탄 현지로 특별사절단을 보냈다. 2021.8.14. 연합뉴스
‘잊힐 권리’라는 게 있다. 자신과 관련된 원치 않는 정보의 삭제나 확산을 막아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과거와 다른 삶을 사는 배우 조진웅에게 아픈 과거의 이력은 ‘잊힐 권리’에 속한다. 언론이라고 아무거나 다 보도해도 되는 게 아니다.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개인의 신상 정보는 보도하지 않는 게 옳다. 그런 걸 함부로 보도하는 언론은 ‘사회의 공기’가 아니라 폭로 대상의 삶을 짓밟는 ‘살인의 흉기’일 뿐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과거에 어떤 판결,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는 ‘잊힐 권리’에 속하지 않는다. 과거의 판결을 보면 내일의 판결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측 가능해야 신뢰가 생긴다. 판결이 오락가락하면 신뢰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판사 조희대는 ‘영장 발부기’ 판사였던 시절에서 대법원장이 된 지금까지 개인의 정치적 신념을 판결에 강하게 투영하는 일관성이 있는 것 같다. 그런 판사가 대법원장이 되어 판사들의 인사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데,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이 지켜질까? 법원의 신뢰도 곡선이 우상향으로 움직일까? 12.3 계엄 이후 사법부에서 있었던 일련의 의심스런 일들은 우연이 아니라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확신마저 든다. 판결문 공개가 시급히 이뤄져야 하는 이유를 판사 조희대에게서 확인한다.
배우 조진웅과 대법원장 조희대, 돌을 던져야 한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돌을 던져야 할까? 하던 일에서 손을 떼게 해야 한다면, 배우 조진웅일까? 대법원장 조희대일까? 수능 시험에서 변별력 높이려는 ‘킬러 문항’처럼 어려운 질문은 아니다. 배우 조진웅은 이미 대답을 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장 조희대의 대답을 국민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