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방식의 혁명, 선호순위투표제 를 허하라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조란 맘다니 시장의 강력한 지원자인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왼쪽)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연방 하원 의원 (오른쪽)의 지난해 지원 유세 장면. 1일 신임 시장 취임식에서 샌더스 상원과 오카시오-코르테즈 연방 하원 의원은 맘다니 시장과 더불어 뉴욕은 물론 미국을 바꾸자고 호소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방선거를 불과 두 달 앞둔 시점에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여전히 안개속이다. 예비후보들이 현장을 누비는 상황에서 게임의 규칙조차 확정하지 못한 채 비례대표 의석을 몇 퍼센트 늘릴지, 기초의원 선거구를 2,3인 중선거구에서 3,4인 중선거구로 몇 개나 바꿀지를 두고 벌이는 수 싸움은 지켜보는 주권자를 허탈하게 한다. 거대 양당의 기득권 계산기와 군소 정당의 생존 본능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도출될 합의안은 결국 생색내기용 미세 조정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맘다니는 선호순위투표제 덕분에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가 됐다
현재 논의되는 광역의원 비례대표 확대나 기초의원 중선거구 증설은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 지방의회 비례대표를 현행 10%에서 30%까지 대폭 늘리겠다는 구상은 현실성이 전혀 없고 기초의원 선거구를 몇 개 조정하는 방식으로는 거대 양당의 공천 카르텔을 깨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잡한 선거구 획정 협상이 아니라 단순하면서도 바람직한 선호순위 투표제(Ranked Choice Voting, RCV)의 과감한 도입이다.
순위투표제는 유권자가 1인1표를 행사할 때 후보자 한 명만을 선택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선호하는 후보들의 순위를 1순위부터 차례로 기입하는 투표방식이다. 내가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던 RCV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시점은 조란 맘다니가 민주당의 뉴욕시장 경선(프라이머리)에서 본선진출 후보로 확정될 수 있었던 비결이 RCV 제도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다. 조란 맘다니는 두 명의 최종 탈락후보 지지자들의 2순위, 3순위 표를 얻어서 3차 계표에서 비로소 누적 56%를 득표하며 승리할 수 있었다.
RCV 제도의 장점
RCV 제도를 접하고 나면 투표방식 하나를 바꿀 뿐인데 이토록 바람직한 효과가 줄줄이 따르는지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첫째, 사표심리를 제거하고 소신투표를 가능하게 한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소중한 표가 사표가 되는 것을 피한다. RCV에서는 이런 걱정 없이 제3당 후보에게 소신껏 1순위 표를 던질 수 있다. 만약 1순위 후보가 탈락하더라도 내 표는 2순위, 3순위 후보에게 이양되어 사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소수 정당 후보가 당선가능성이라는 높은 벽에 막혀 고사하는 현상을 막아준다. 다시 말해서 RCV는 제3당이나 정치신인들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제공한다.
둘째, 당선자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한다. RCV 방식에서는 1순위 표만으로 과반을 얻지 못하더라도 차순위 지지까지 종합하여 과반수 당선자를 가려낸다. 이는 30%대 득표율로 100%의 행정 권력이나 입법 권력을 독점하는 현재의 승자독식 폐단을 극복하고 당선자에게 강력한 민주적 정당성과 국민통합 유인을 부여한다. 특히 대통령이나 지자체장 등 1인 행정부 수장에게 더 바람직하다.
셋째, 선거문화를 바꾼다. 모든 후보는 1순위 표뿐 아니라 2순위, 3순위 표도 받아야 당선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상대후보에 대한 네가티브 공세를 삼가게 되고 자연스레 정책선거에 치중하게 선거문화가 바뀐다.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상세하게 알아본다.
민주개혁진보 5당 원내대표가 2일 국회 본청 앞 정치개혁 천막 농성장에서 정치개혁 완수와 헌정 질서 회복을 위한 6ㆍ3 지방선거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왼쪽 세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 조국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 한 원내대표,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 기본소득당 신지혜 최고위원. 2026.4.2 연합뉴스
중선거구 RCV 또는 STV, 제3세력의 원내 진입을 위한 마법의 열쇠
순위투표제의 효능은 법정선거구에서 1인을 뽑는 지자체장이나 광역의원 선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인을 뽑아도 RCV로 뽑으면 제3당 후보가 2순위, 3순위 표를 얻어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RCV는 제3당 후보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며 당선가능성을 높이는 순기능을 갖는다. 1인을 뽑는 지자체장 선거나 교육감 선거, 소선거구 광역의원 선거에서도 이런 가능성이 열리지만 다인을 뽑는 기초의원 선거에서 이런 효과는 더 증폭된다.
현재 기초의원 선거에서 시행되는 2,3,4인 중선거구제에 RCV를 결합하면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것처럼 민심을 비례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 흔히 1인을 뽑을 때의 RCV를 즉석 결선투표(Instant Run-0ff Voting) 라 부르고, 2인 이상을 뽑을 때 적용되는 RCV 방식을 단기이양투표제(Single Transferable Voting, STV) 라고 구분하지만 유권자 입장에서는 동일한 방식의 투표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권에 들지 못하거나, 혹은 너무 압도적으로 당선되어 내 표가 남을 때, 그 표를 사장시키지 않고 내가 지정한 차순위 후보에게 넘겨주는(이양)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2~3인 중선거구제는 거대 양당이 후보를 가, 나 번으로 쪼개어 내보내면 유권자들이 관성적으로 투표하여 양당이 의석을 나눠 먹는 구조다. 여기에 RCV(STV 방식)가 도입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제3당 후보는 거대 양당 후보 중 한 명을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양당 지지자들의 차순위 선택 을 공략함으로써 당선권을 확보할 수 있다. 즉, 1등은 못 해도 좋으니, 지역에서 가장 거부감 없는 2~3등이 되겠다 는 전략이 가능해지며, 이는 제3지대 정당들이 의회에 비집고 들어갈 가장 넓은 틈새를 만들어준다.
RCV 집계방식: 내 표가 끝까지 살아남아 후순위 후보에게 이양된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RCV 기반의 다인 선출 방식(STV)이 당선자를 결정하는 원리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유권자가 던진 소중한 한 표가 끝까지 주인을 찾아가게 만드는 정직한 구조다.
먼저 당선 정족수(Quota)를 설정한다. 무조건 다수표가 아니라 선거구 크기에 맞춰 당선에 필요한 최소한의 표수를 정한다. 공식은 n명을 뽑을 때 유효표를 (n+1)으로 나눈 후 한 표를 더하면 당선 쿼터가 산출된다. 2명을 뽑는다면 전체의 33.3%+1표, 3명이면 25%+1표, 4명이면 20%+1표가 되는 식이다. 당선 쿼터를 넘는 잉여 표는 2순위에게 이양된다. 만약 어떤 인기 후보가 정족수를 훌쩍 넘겨 1순위 표를 받았어도, 그 후보를 찍은 잉여 표들이 버려지지 않고 해당 투표지에 적힌 2순위 후보들에게 비율대로 배달된다. 내 표가 1순위 당선에 기여하고도 남아서 다른 후보까지 돕는 셈이다.
끝으로 다인을 뽑는 STV방식에서 누구도 잉여표가 없거나 1인을 뽑는 RCV방식에서는 최저 득표 후보 순으로 하나씩 탈락하며 그를 지지했던 표들이 투표지에 적힌 다음 순위 후보에게 고스란히 옮겨간다. 이렇게 과반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된다. 참고로 STV방식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가 소집한 2004년의 세계 최초 선거제 개혁 시민의회에서 160명 중 147명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채택된 선거방식이었다. 그만큼 유권자의 후보선택 효능감을 보장하는 중선거구에 적합한 비례대표제 실시방안이다.
네거티브 전쟁터를 정책 경쟁의 장으로
RCV 도입은 선거문화의 질적 변화를 강제한다. 기존의 단순다수제 하에서는 상대 후보를 악마화하여 투표 의욕을 꺾는 네거티브 전략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RCV 체제에서는 타 후보의 지지자들로부터도 2순위, 3순위 지지를 얻어야 승리할 수 있다. 후보들은 극단적인 진영 대결보다는 정책의 확장성과 소구력 강화에 집중하게 되며 타 후보와의 건설적인 연대와 협치를 고민하게 된다.
정책선거 촉진효과는 여러 정당 후보들이 겨루는 본선에선 물론이고 동일정당 후보들이 경합하는 경선에서도 예외 없이 관철된다. 특히 영호남처럼 특정 정당의 일당 독점이 심각한 지역의 본선에 RCV가 도입되면 유권자들은 상대 당 후보 중에서도 합리적이고 유능한 인물에게 차순위 표를 주는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는 지역주의 장벽에 균열을 내는 실질적인 단초가 될 것이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
지방선거법 개정의 핵심은 선거과정과 선거결과를 통해 주권자의 의사를 얼마나 정밀하게 반영할지에 있다. 아직까지도 국회정개특위가 지방선거법 개정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이상 선거구 크기나 비례의석 비율을 조정하는 지루한 협상에 매몰되기보다 그보다 단순하고 확실하게 투표민심을 받들 수 있는 RCV 방식을 오는 지방선거부터 전격 도입하는 일대 결단이 필요하다. RCV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별도의 결선투표제 없이 동일한 결선투표 효과를 낼 뿐 아니라 유권자에게는 사표걱정 없이 소신투표를 촉진하고 후보들에게는 정책경쟁을 강화하며 제3당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는 다양한 장점을 갖는다.
RCV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생 정치와 영호남의 일당 독점 지역정치를 끝낼 유력한 처방전이면서도 복잡하지 않고 단순해서 유권자를 설득하기 쉽다는 점에서 가성비가 아주 높은 선거제 개혁이다. 국회 정개특위는 더 이상 무의미한 숫자 놀음으로 한시가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주권자의 투표민의를 더 정밀하게 반영하는 RCV 도입 논의에 즉각 나서야 한다. 그것이 두 달 뒤 치러질 지방선거를 ‘그들만의 잔치’가 아닌 시민의 축제로 만드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