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왜 아이들을 극우전사로 키우는가 [칼럼] 앞선 글에서는 일부 보수 개신교와 사학재단이 제도권 사학의 운영권을 지키기 위해 사립학교법 개정에 맞선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그러나 교육권력을 둘러싼 싸움은 기존 사학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부 교회는 공교육 밖에 별도의 교육공간을 만들고 교사와 교재, 교육과정과 생활규칙을 직접 결정했습니다.
모든 기독교 대안학교를 문제 삼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글의 대상은 특정한 정치적 적대와 음모론을 신앙의 언어로 정당화하고 이를 교육과 집회동원으로 이어간 일부 극우 개신교계 교육시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극우전사’도 단순히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청소년이 아닙니다. 특정한 정치세력을 신앙과 국가의 적으로 받아들이고, 검증되지 않은 음모론을 진실로 믿으며, 이를 집회와 정치행동으로 실천하도록 교육받은 청소년을 뜻합니다.
26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청년들이 달리기를 하고 있다. 2026.07.27. 김시몬 기자
2026년 6월,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주변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이었습니다. 주축은 20·30대 청년이었습니다. 집회 주도부와 일부 참가자들은 정당과 기성 정치인의 개입을 거부하고 ‘부정선거’나 ‘멸공’ 대신 ‘재선거’만 외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현장 취재에서는 부정선거론과 거리를 두기 위한 원칙보다 외연을 넓히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참가자의 증언도 나왔습니다(MBC, 2026.6.7; MBC라디오, 2026.6.23).
시간이 흐르면서 극우 목사와 전도사, 전광훈이 이끄는 자유마을 회원들과 광화문 집회 참가자들이 합류했습니다. 태극기 옆에 성조기와 이스라엘기가 등장했고 재선거 구호 사이로 ‘멸공’과 부정선거 주장이 울려 퍼졌습니다. 예배와 찬양, 방언과 통성기도도 이어졌습니다. 일부 교회는 신도들을 보내고 집회 참가자들에게 간식을 제공했습니다(뉴스앤조이, 2026.6.12; 로고시안, 2026.6.16; 중앙일보, 2026.6.20).
파주의 한 교회는 간식을 나눠준 뒤 신도들과 올림픽공원 일대를 돌며 부정선거 구호를 외쳤습니다. 전광훈의 지시를 받은 광화문 집회 참가자들이 현장으로 이동한 정황도 보도됐습니다. 청년들이 시작한 집회에 기존 극우 개신교 조직이 결합하면서 현장의 구호와 의례도 달라진 것입니다.
아이들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일부 극우교회는 자신들이 운영하거나 관계한 교육시설의 학생들을 정치집회에 데려왔습니다. 학생들은 거리에서 기도하고 구호를 외쳤습니다. 목사들은 그 모습을 촬영해 교회 홈페이지와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리고 신앙교육의 성과로 내세웠습니다.
평화나무 기독교회복센터 김디모데 소장은 현장을 직접 모니터링하고 학생들을 데려온 교회와 목사들을 추적했습니다. 그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파주와 시흥 등 여러 지역의 교회와 교육시설을 구체적으로 지목했습니다. 교회가 공개한 영상과 게시물에는 홈스쿨링과 미등록 집단교육시설의 학생들이 목사의 인솔 아래 집회에 참가한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김디모데 평화나무 기독교회복센터 소장, 필자 인터뷰, 2026년 6월; 뉴스타파, 「신앙의 이름으로―기독교 대안학교의 이념 전쟁」, 2026.6.5; 뉴스타파, 「감시가 없으면 반드시 썩는다: 극우 교육과 선관위」, 2026.6.25).
이것은 단순한 외출이 아니었습니다. 예배와 수업에서 배운 세계관을 거리에서 실천하는 정치교육이었습니다. 일부 교회는 공교육을 좌파와 세속주의가 장악한 공간으로 규정하고 아이들을 그곳에서 분리했습니다. 교회가 교사와 교재, 교육과정과 생활규칙을 결정했고 목회자의 정치적 판단은 학생이 따라야 할 신앙적 정답이 됐습니다. 대안교육은 어떻게 일부 목회자의 정치적 신념을 전달하는 통로로 변질됐을까요. 국가는 왜 그 안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 알지 못했을까요.
■ 대안교육은 어디에서 갈라졌는가
● 대안교육은 왜 시작됐는가
대안교육은 아이를 하나의 정답에 가두기 위해 시작된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시험과 경쟁,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아이의 개성과 자율성, 창의성과 전인적 성장을 존중하려는 시도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입시경쟁과 체벌, 학교폭력과 학생 중도탈락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확산됐습니다. 대학입시를 위해 학생을 줄 세우는 학교가 온전한 인간을 길러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됐습니다.
1995년 대안교육 실천가들이 대전 유성에 모였고, 1997년 3월에는 국내 최초의 전일제 비인가 대안학교로 평가되는 간디청소년학교가 문을 열었습니다. 1998년에는 6개의 대안교육 특성화고등학교가 개교했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의 연구도 극심한 입시경쟁과 학생 자살, 중도탈락의 증가를 한국 대안교육의 배경으로 꼽았습니다(경향신문, 2005.11.28; 국가기록원, 「대안학교」; 이종태 외, 「2006년 미인가 대안교육기관 운영 실태 조사 및 지원 방안 연구」, 경기도교육청, 2007).
대안교육의 출발은 공교육에 대한 막연한 불신이 아니라 더 나은 교육에 대한 열망이었습니다. 아이를 학교에서 빼내는 데 목적이 있지 않았습니다. 학교가 놓친 아이의 삶을 되찾으려는 운동이었습니다.
● 같은 이름, 다른 교육
오늘날 대안교육의 현실은 다양합니다. 입시경쟁을 비판하고 생태와 공동체, 평화와 인권, 자율과 민주적인 학교 운영을 중시하는 곳이 있습니다. 학교폭력이나 공교육 부적응으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 장애학생, 다문화가정과 탈북청소년, 선교사 자녀를 돌보는 학교도 있습니다. 신앙교육과 인성교육, 공동체적 돌봄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도 존재합니다. 부모와 종교공동체가 자신의 신앙과 가치에 따라 아이를 교육할 자유 역시 존중돼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보수·극우 개신교계는 공교육을 성경적 가치와 대립하는 공간으로 규정했습니다. 아이들을 공교육에서 분리한 뒤 목회자와 교회가 정한 신앙관과 역사관, 국가관을 가르치려 했습니다. 예배와 성경공부는 모든 교과와 사회현상을 해석하는 기준이 됐습니다. 초기 대안교육은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는 학교에서 아이를 해방하려 했지만, 일부 극우 개신교 교육시설은 아이를 목회자가 정한 하나의 신앙과 정치적 세계관 안에 가뒀습니다. 같은 대안교육의 언어를 사용했지만 방향은 정반대였습니다.
이 지점에서 앞선 글의 사학법 문제와 연결됩니다. 사학법 반대투쟁에서 일부 교계와 사학재단은 제도권 기독교 사학의 운영권을 지키려 했습니다. 같은 시기 보수 개신교 일각에서는 국가의 감독이 미치지 않는 별도의 교육공간도 늘어났습니다. 사학법 반대투쟁이 기독교 대안학교의 증가를 직접 불러왔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국가감독을 종교교육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은 두 흐름을 관통했습니다. 제도권 안에서는 사학재단의 운영권을 지키고, 제도권 밖에서는 교회가 교육내용과 아이들의 세계관을 직접 결정하려 했습니다.
● 43곳에서 313곳으로
기독교 대안학교는 2000년대 들어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가 5년마다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6년 43곳, 2011년 121곳, 2016년 265곳이었고 2021년에는 313곳이 확인됐습니다(기독일보, 2021.10.8; 아이굿뉴스, 2021.10.12).
2021년 조사에서 교회가 직접 설립한 학교는 전체의 56.9%로 가장 많았습니다. 비영리법인 설립은 12.5%, 개인 설립은 8.3%였습니다. 특히 2016년 이후 설립된 학교 가운데 69.5%는 교회가 설립했거나 교회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한국기독공보, 2021.10.6; 아이굿뉴스, 2021.10.12).
이 수치가 기독교 대안학교 전체의 극우화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교회가 공교육 밖의 교육영역에서 얼마나 큰 운영주체가 됐는지는 보여줍니다. 어느 시설에서 극우적 정치교육이 이루어지는지, 몇 명의 학생이 무엇을 배우는지는 공개된 통계만으로 알기 어렵습니다.
● 인가학교와 등록기관, 미등록 시설
2021년 조사 당시 기독교 대안학교의 92%는 미인가 상태였습니다.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인가받은 정규학교가 아니어서 학력이 인정되지 않았고 학생들은 별도로 검정고시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러나 2022년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에 따른 등록제가 시행된 뒤에는 ‘미인가’와 ‘미등록’을 구분해야 합니다(아이굿뉴스, 2021.10.12; 크리스천투데이, 2021.10.7).
출처: 초·중등교육법,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
가장 깊은 사각지대는 학교로 인가받지도, 대안교육기관으로 등록하지도 않은 시설입니다. 교회 교육관이나 기도원, 수련원, 일반 건물에서 여러 학생을 모아 가르치면서 홈스쿨링이나 공동교육으로 부르는 곳들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를 직접 가르치는 통상적인 홈스쿨링과는 구분해야 합니다.
문제가 되는 대상은 여러 가정의 아이들을 한곳에 모아 목회자나 교회 관계자가 사실상 학교처럼 운영하면서도 교육기관으로 등록하지 않은 집단교육시설입니다. ‘홈스쿨링’이라는 명칭만으로 운영의 실질까지 가정교육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미등록 시설도 의무교육과 아동보호, 시설안전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기관으로 등록되지 않아 교육청의 정기적인 실태 파악과 감독망에서 벗어나기 쉽습니다. 누가 운영하는지, 몇 명이 다니는지, 어떤 교재로 무엇을 가르치는지도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등록제 시행 뒤 2년 동안 전국에서 234개 기관이 등록했고, 이 가운데 기독교 대안학교는 114곳이었습니다. 당시 등록기관의 약 48.7%가 기독교계였던 셈입니다(이종철·김지혜, 「‘대안학교 등록제’ 도입에 따른 변화와 기독교대안학교의 나아갈 방향」, 『신앙과 학문』 제29권 제1호, 2024).
그러나 114곳은 등록을 마친 기독교 대안학교의 수이지 전체 규모가 아닙니다. 일부는 인가학교로 전환하거나 폐교했고 일부는 여전히 미등록 상태일 수 있습니다. 현재 운영 중인 기독교 대안학교와 미등록 집단교육시설의 전체 규모는 공개 자료만으로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2021년 조사에서 확인된 313곳과 등록제 시행 뒤 확인된 114곳은 조사 시점과 법적 범주가 다르므로 단순 비교할 수 없습니다. 교육부가 공개하는 등록기관 명단에도 종교별 분류가 없습니다. 통계의 공백은 곧 관리의 공백입니다. 전체 규모와 변화조차 정확히 알기 어려우면 문제가 발생한 시설을 조기에 발견하기도 어렵습니다.
등록은 기관의 존재와 운영자, 학생 규모를 행정기관에 알리는 절차입니다. 그 안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학생의 인권과 학습권을 어떻게 보장하는지까지 자동으로 확인해 주지는 않습니다. 결국 물어야 할 것은 학교의 간판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가입니다.
■ 학교 안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 성경은 어떻게 정치적 정답이 되는가
성경을 가르치고 예배를 드리며 신앙에 기초한 생활교육을 하는 것은 종교계 학교가 가질 수 있는 특성입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정치적 판단이 성경의 권위를 빌려 학생이 따라야 할 절대적 진리로 바뀌면 역사에 대한 질문과 정치적 토론도 신앙의 문제가 됩니다. 특정 인물은 신앙과 국가의 영웅이 되고 정치적 반대자는 대한민국과 교회를 위협하는 적이 됩니다.
일부 시설에서는 성교육과 성평등정책, 페미니즘과 성소수자의 권리를 기독교 신앙과 전통적 가족을 파괴하려는 하나의 정치적 위협으로 가르쳤습니다. 서로 다른 사회적 쟁점이 진보세력의 국가 장악이라는 적대의 서사로 묶였습니다. 특정 교리에 따른 성과 가족의 윤리를 가르치는 것과 다른 견해의 시민을 신앙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이러한 교육에서는 학생이 스스로 자료를 찾고 서로 다른 해석을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목회자가 제시한 역사관과 국가관이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믿고 따라야 할 정답이 되기 때문입니다.
● 학교 이름이 ‘우남’이었다
부산 세계로교회가 설립한 세계로우남기독아카데미의 교육이념은 이름에서부터 드러났습니다. ‘우남’은 이승만의 호입니다. 세계로교회는 2025년 3월 정식 학교로 인가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 시설을 열었습니다. 초등과정 110명과 중등과정 78명, 모두 188명이 입학했습니다(국민일보, 2025.3.5; 한국일보, 2025.3.9).
개교식에서 손현보 세계로교회 담임목사는 이승만 대통령은 이순신보다 10배, 50배 위대하다”고 말했습니다. 누가 가장 위대한 인물이냐는 물음에 학생들은 이승만 대통령”이라고 함께 답했습니다(한국일보, 2025.3.9; 시사IN, 2025.3.27; 부산일보, 2025.7.9).
역사교육에는 질문과 검증이 필요합니다. 한 인물의 공적과 과오를 함께 살피고 서로 다른 자료와 해석을 비교해야 합니다. 핵심은 이승만에 대한 평가 자체가 아닙니다. 목회자의 역사적 판단이 학생들이 따라야 할 신앙적 정답으로 제시됐다는 데 있습니다.
세계로교회는 이후 이 시설을 정식 대안학교로 전환하기 위해 설립계획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부산시교육청 대안학교설립운영위원회는 2025년 7월 이를 ‘부적합’으로 판단했습니다. 설립 취지와 교육과정이 대안학교의 목적에 맞지 않고, 정치적 편향성과 종교교육에서 학생의 선택권 문제가 있다는 이유였습니다(부산일보, 2025.7.9).
교육청은 정식 학교의 인가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전에 이미 188명의 학생이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시설에서 수업받고 있었습니다. 교육시설이 학교 밖에서 먼저 운영되면 교육당국이 설립계획을 심사할 때는 이미 학생과 교사, 교육과정이 자리를 잡은 뒤일 수 있습니다.
● ‘좌익에 맞설 아이들’을 키우는 교육
2025년 2월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단상에 14세 중학생이 올라갔습니다. 학생은 자신이 파주의 한 교회가 운영하는 기독교 교육시설에서 목사에게 교육받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이어 비상계엄은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고 부정선거를 밝히기 위한 조치였다는 취지로 주장했습니다. 13세 학생도 연단에 올라 비상계엄을 옹호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무대 뒤편에는 더 어린 초등학생들도 있었습니다(JTBC, 2025.2.5).
2025년 2월 JTBC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 연단에 선 10대 청소년들이 경기도 파주의 한 교회가 운영하는 미인가 기숙형 교육시설의 학생들이라고 보도했다. 이 시설의 목사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가르치고 ‘좌익에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는 취지로 교육목표를 설명했다. 학생들은 목사의 인솔 아래 대통령 관저와 서울구치소 앞 집회에도 참가했다. 예배와 수업에서 배운 정치적 세계관이 거리의 구호와 연단 발언으로 이어진 사례다. (화면=JTBC 뉴스룸.)
학생들이 다니던 곳은 정식 학교로 인가받지 않은 기숙형 교육시설이었습니다. 해당 교회의 담임목사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가르치고 ‘좌익에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는 취지로 교육목표를 설명했습니다(JTBC, 2025.2.5; 주간조선, 2025.2.6).
학생들의 집회 참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담임목사는 2025년 1월 1일 학생들을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데려갔고 같은 달 18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수감된 서울구치소 앞에도 데려갔습니다. 예배 중에도 탄핵과 부정선거에 관한 정치적 발언을 반복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JTBC, 2025.2.5).
김디모데 소장은 교회가 학생들의 정치집회 참여를 숨기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공개된 영상과 게시물에는 학생들이 목사의 인솔 아래 집회에 참여한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예배와 교육, 정치행동은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집회 참여는 예배와 수업에서 배운 세계관을 행동으로 옮기는 교육의 연장이었습니다.
미성년자도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의견을 표현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교사이자 시설 운영자이며 기숙생활의 지도자까지 맡은 공간에서는 학생이 그의 정치적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습니다. 교육과 신앙, 생활 전반을 통제하는 성인의 인솔 아래 이루어진 집회 참여를 학생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 등록했지만 교육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서울의 한 교회가 운영하는 등록 대안교육기관에는 약 100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 기관은 2023년 교육청에 등록했으며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도 받았습니다(한국일보, 2025.9.1; 2025.10.13).
한국일보는 학생과 학부모의 증언을 토대로 새벽예배 참석과 이승만 관련 수행평가, 군사식 훈련과 학생인권 침해 의혹을 보도했습니다. 2022년에는 이승만의 업적과 과오를 쓰는 수행평가가 실시됐고, 제공된 자료에는 개인 블로그의 ‘이승만의 업적 30가지’가 포함됐습니다. 학생들은 제식훈련과 포복 등 군사식 훈련도 받았다고 증언했습니다(한국일보, 2025.9.1).
해당 기관은 역사교육이 편향되지 않았고 새벽예배는 강제가 아니라 권장사항이었다고 반박했습니다. 제식훈련으로 보도된 장면도 군사교육이 아니라 학예회 공연을 위한 연습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한국일보, 2025.9.1; 한국일보 반론보도, 2026.1.16). 보도된 의혹을 모두 확정된 사실로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논란은 등록된 기관의 실제 교육내용과 생활지도를 교육당국이 얼마나 파악하고 있었는가라는 문제를 남겼습니다.
행정기관은 시설의 존재와 운영자, 학생 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자료로 역사를 가르치고 예배와 생활지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까지 등록만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등록은 행정적 존재를 확인하는 최소 절차이지 교육내용의 공공성을 보증하는 인증이 아닙니다. 미등록 시설만 찾아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또 다른 기독교 교육시설은 2025년 1월 개학예배를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 참가로 대신했습니다. 시설 측은 집회 참가를 공식적으로 안내하고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의 글을 외부에 공개했습니다. 학생은 비상계엄이 국가 지도력의 위기에서 나온 조치라는 취지로 주장하고 대통령 탄핵은 기각될 것이라는 믿음을 밝혔습니다(한국일보, 2025.10.13).
학생의 글이 부모나 교회의 견해와 같다는 이유만으로 강요의 결과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육시설이 특정 정치집회를 개학예배와 공식 교육활동으로 편성하고 학생의 정치적 글을 기관의 성과처럼 공개했다면 의미는 달라집니다. 정치집회 참가가 개인의 선택을 넘어 교육기관의 공식 활동으로 편입된 것입니다.
● 교육은 어디에서 정치동원이 되는가
확인된 사례들은 법적 지위와 교육과정, 생활방식이 서로 달랐습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정치적 판단이 역사교육과 예배, 생활교육에 들어오고, 특정 인물이 국가와 신앙의 영웅이 되며 정치적 반대자가 대한민국의 적으로 규정된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일부 시설에서는 이러한 교육이 학생들의 집회 참여와 연단 발언으로 이어졌습니다.
교육과 정치동원의 경계는 학생이 정치적 의견을 갖는 데서 결정되지 않습니다. 교육기관이 하나의 정치적 견해를 신앙적 정답으로 제시했는가, 목회자와 교사의 권위로 집회 참가를 요구했는가, 학생이 다른 의견을 말하거나 참가를 거부할 수 있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그 선택권이 없다면 정치참여는 교육이 아닙니다. 성인의 신념을 아이의 목소리로 되풀이하게 하는 동원입니다.
2025년 1월 19일 새벽 윤석열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한 일부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 청사에 난입해 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아다니고 시설과 집기를 파손하고 있다. 이 화면은 난입자들 사이에 들어간 JTBC 취재진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영상의 일부다. 현장 영상은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으며 이후 수사와 재판의 주요 자료가 됐다. 플랫폼을 통해 축적된 사법부 불신과 적대의 언어가 실제 법원 공격으로 옮겨간 순간을 보여준다. jtbc 화면 갈무리
■ 교실에서 거리로, 국가는 무엇을 놓쳤는가
● 아이들은 어떻게 거리로 나왔는가
학생들이 한 발언과 행동의 책임을 모두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미성년자의 책임을 판단할 때는 어떤 정보와 교육을 받았는지, 누가 집회에 데려가 연단에 세웠는지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교육환경과 성인의 조직적인 인솔을 빼놓고 아이들의 행동만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일부 교육시설의 학생들이 목사의 인솔 아래 탄핵 반대 집회와 대통령 관저, 구치소 앞에 간 사실은 확인됐습니다. 그러나 이를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력 사태나 리박스쿨 댓글공작, 극우 유튜브 활동과 연결하려면 개별 학생의 교육경로와 활동이 추가로 확인돼야 합니다. 현재 자료만으로 이 사건들을 하나의 인과관계로 묶어서는 안 됩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일부 시설에서 목회자의 역사관과 국가관이 교육내용이 됐고, 학생들이 그의 인솔 아래 정치집회로 나갔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국가가 그 교육과 동원의 과정을 얼마나 알고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 등록 뒤에도 남은 사각지대
등록제를 통해 교육당국은 운영자와 소재지, 학생 규모를 파악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등록심사만으로 실제 교육내용과 생활지도, 학생인권까지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학교 대신 아카데미나 홈스쿨링, 공동교육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미등록 집단교육시설은 교육청의 정기적인 관리대상에서 벗어나기 쉽습니다.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 아동보호기관과 수사기관으로 책임이 나뉜 구조도 신속한 대응을 어렵게 합니다.
「사립학교법」은 인가받은 사립학교의 법인과 이사회, 재산과 회계를 다룹니다. 「초·중등교육법」은 학교 설립과 의무교육, 교육과정과 교원의 기준을 정합니다.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은 정규학교가 아닌 교육시설을 등록해 최소한의 공적 관리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법입니다. 학교로 인가받지도, 대안교육기관으로 등록하지도 않은 집단교육시설은 이 법률들의 경계에 놓이기 쉽습니다. 등록을 마쳤더라도 실제 교육내용과 학생인권을 충분히 점검하지 못하는 영역은 남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2026년 등록 대안교육기관 74곳 가운데 학교 밖 청소년이 실제로 다니는 58곳을 처음으로 전수 점검하기로 했습니다. 나머지 위탁교육기관 16곳은 별도의 운영평가를 받습니다. 교육과정 운영과 학생 안전, 예산·회계 등이 점검대상에 포함됐습니다. 등록요건을 확인하는 데서 실제 교육과 운영을 살피는 쪽으로 범위가 확대된 것입니다(서울시교육청, 2026.5.6).
국회에서도 제도 보완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정을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6년 2월 정치적·파당적 편견과 역사왜곡 교육을 등록취소 사유로 명시하고 등록요건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도록 하는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정치적 중립성 의무를 위반한 기관에 대한 재정지원 중단과 미등록 시설의 유사 학교 명칭 사용 제한도 포함됐습니다. 법안은 아직 국회 교육위원회 심사 단계에 있습니다(국회 의안번호 제2216897호, 2026.2.20).
그러나 ‘정치적 중립성’과 ‘역사왜곡’의 기준이 모호하면 종교교육과 대안교육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습니다. 국가가 특정한 종교나 역사해석을 정답으로 정해서는 안 됩니다. 명백한 허위사실과 혐오, 강요와 학생인권 침해, 교육기관에 의한 정치동원을 판단할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합니다.
감독은 실태를 아는 데서 시작합니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인가학교와 등록기관뿐 아니라 여러 학생을 정기적으로 모아 사실상 학교처럼 운영하는 미등록 집단교육시설도 파악해야 합니다.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 아동보호기관이 정보를 공유하고 정기적인 전국 실태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목적은 대안교육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위한 대안교육과 외부의 감시를 피한 폐쇄적 교육을 구분하는 데 있습니다.
● 종교교육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대안교육의 자율성과 부모가 자신의 신앙에 따라 자녀를 교육할 권리는 존중돼야 합니다. 그러나 그 권리가 아이의 사상과 양심, 학습권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아이에게도 다양한 지식과 관점을 접하고 질문할 권리, 부모나 목회자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국가는 특정한 역사해석이나 정치적 견해를 교육의 정답으로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어떤 교육과정과 교재가 사용되는지, 학생의 기본권이 침해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 기준은 특정한 정치성향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명백한 허위사실이나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가르치는지, 폭력과 체벌을 정당화하는지, 학생에게 정치행동을 강요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무엇을 믿는가보다 학생이 질문하고 거부할 자유를 실제로 보장받는가가 판단의 중심이어야 합니다.
첫째는 운영의 투명성입니다. 운영자와 교사의 학력·경력, 교육과정과 교재, 학생 수와 회계는 공개돼야 합니다. 정규학교와 같은 교원자격을 일률적으로 요구하기 어렵더라도 성범죄와 아동학대 전력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공적 지원을 받는 기관에는 더 엄격한 공개와 점검이 따라야 합니다.
둘째는 정치적 동원으로부터의 보호입니다. 학생 개인의 자발적인 정치참여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교육기관이 특정 정치집회를 예배나 공식 학사활동으로 편성하고, 목회자나 교사의 권위로 참가를 요구하거나 불참한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에는 분명한 제한이 필요합니다.
셋째는 학생이 빠져나올 권리입니다. 부모와 교회가 같은 신념을 공유하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아이가 반대의사를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학생이 교육기관이나 부모를 거치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외부 신고·상담창구가 필요합니다. 교육시설을 떠난 학생이 공교육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기관으로 옮길 수 있도록 상담과 학습지원, 전학과 검정고시 준비도 연결해야 합니다.
대안교육이 공교육과 다른 교육을 시도할 자유는 보장돼야 합니다. 그러나 외부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공간에서 목회자 한 사람의 정치적 신념이 교육과정 전체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종교교육의 자유는 아이를 지배할 자유가 아닙니다.
■ 맺음말
문제는 종교나 대안교육 자체가 아닙니다. 종교와 교육의 자유를 이용해 특정한 정치적 세계관을 신앙적 정답으로 가르치고, 목회자의 권위 아래 아이들을 정치집회에 참여시킨 일부 교육시설입니다. 일부 보수 개신교계는 제도권 사학에서는 재단의 운영권을 지키려 했고 공교육 밖에서는 교회가 교육내용과 학생의 세계관을 직접 결정할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중 일부에서는 목회자의 역사관과 국가관이 교육의 정답이 되고 예배와 수업이 정치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극우가 아니었습니다. 어른들이 그들에게 적을 가르쳤고 정치적 충성을 신앙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거리로 데려가 마이크를 쥐여준 것도 어른들이었습니다. 모든 아이들의 문제는 결국 어른들의 문제입니다.
교육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아이들이 누구에게 무엇을 배우는지, 인권과 학습권이 보호되는지, 정치집회 참가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지를 밝힐 책임입니다. 공적 지원을 받는 기관이라면 그 책임은 더욱 무겁습니다.
그렇다고 어른과 조직의 구조적 책임이 학생 개인의 선택과 행위에 대한 책임까지 없애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을 모욕하거나 폭력을 행사하고 민주적 질서를 훼손한 행동에는 그에 맞는 책임이 따릅니다. 다만 처벌과 낙인만으로 아이들을 극우공동체에서 돌아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책임을 묻는 일과 다시 돌아올 길을 여는 일은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극우공동체에 들어간 청년이 어떻게 그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청년에게 다른 정보와 관계를 제공할 학교와 지역사회, 그리고 그 출구를 열어야 할 교사와 국가의 책임을 묻겠습니다.
이병권 인문연구가 lbkwon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