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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조세이탄광 유골, 84년 만에 다시 우리 앞에

조세이탄광 유골, 84년 만에 다시 우리 앞에
[사회혁신]
유골 수습 잠수조사가 재개된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 탄광에서 일본인 잠수사를 태운 보트가 피야 라고 불리는 배기구로 이동하고 있다. 조세이 탄광에서는 1942년 2월 3일 수몰 사고로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 등 183명이 사망했다. 2026.2.3 연합뉴스 자료사진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 해저에서 석탄을 캐던 조세이(長生, 장생) 탄광에 바닷물이 들어왔다. 갱도가 침수되면서 18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 가운데 136명이 조선인이었다. 그로부터 84년이 흘렀다. 그런데 아직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당시 사고로 숨진 노동자들의 유골 일부가 지금도 장생탄광 바닷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2025년 8월, 조세이탄광 유골 발굴을 이어온 한일 시민사회와 관계자들이 해저 갱도에서 사람의 뼈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견했다. 이후 사람의 뼈라는 사실이 확인됐고, 2026년 2월에는 추가 유골도 발견됐다. 지난 5월에는 한일 양국 정부가 발견된 유골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DNA형 감정에 협력하기로 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84년 만이다. 이 소식을 접하고 한동안 생각이 많았다. ‘왜 우리는 지금도 1942년의 유골을 찾고 있는가.’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아직 찾아야 할 사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먼저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조금 더 생각해보니, 이 질문은 장생탄광에만 머물지 않았다. 우리는 과거의 희생자를 언제까지 기억해야 하는가. 국가는 그들의 죽음을 어디까지 확인하고 책임져야 하는가. 그리고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한 유골을 국가와 사회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장생탄광의 유골은 이런 질문을 다시 우리 앞에 꺼내놓고 있다. 조세이탄광 사고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만나는 숫자는 183명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조선인 노동자가 136명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숫자를 몇 번 읽는 것만으로는 그날의 일을 제대로 상상하기 어렵다. 183명에게는 각자의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가족이 있었고, 고향이 있었으며, 사고가 없었다면 이어졌을 일상이 있었다. 누군가는 아버지였고, 누군가는 아들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집을 떠나면서 가족에게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죽음의 확인조차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부 희생자는 유골을 찾지 못한 채 긴 시간이 흘렀다. 가족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마지막 모습을 온전히 확인하지 못한 셈이다. 그래서 조세이탄광 유골 발굴을 이야기할 때 ‘유해를 수습한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찾으려는 것은 한 사람이다. 그 사람의 이름과 삶을 다시 확인하고, 그가 어디에서 어떻게 생을 마쳤는지 기록하고, 가능하다면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돌아갈 길을 마련하는 일이다. 과거사를 다루다 보면 흔히 ‘너무 오래된 일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시간은 그렇게 간단하게 흐르지 않는다. 특히 어디에서,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충분히 확인하지 못한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국제인권법에서도 중대한 인권침해의 피해자와 유족이 사건의 진실을 알 권리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발전해 왔다. 이른바 ‘진실에 대한 권리(right to truth)’다. 어려운 말처럼 들리지만 뜻은 의외로 단순하다.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달라.” 어디에서 죽었는지 알고 싶다.” 유골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달라.”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달라.” 이런 요구에 국가와 사회가 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을 알고 싶다는 것은 과거를 붙잡고 살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알고 기억해야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에 가깝다.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의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희생자 추도비 앞에 2일 음료수와 꽃이 놓여 있다. 2026.2.2 연합뉴스 자료사진 조세이탄광의 유골 발굴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유골이 발견된 순간, 새로운 조사가 시작됐다. 유골을 발견하는 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다. DNA 분석과 법의학적 감정을 통해 발견된 유골과 희생자 유족 사이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한일 양국 정부가 DNA형 감정에 협력하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과학적 분석만으로 모든 사실을 밝혀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골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과 그 사람이 어떤 경위로 조세이탄광에 오게 되었는지, 어떤 환경에서 일했는지, 사고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밝히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따라서 유골 발굴과 함께 관련 자료도 다시 찾아야 한다. 당시의 희생자 명단과 탄광 자료, 일본 정부와 지방정부의 행정기록, 기업자료, 신문기사, 유족의 증언 등이 서로 연결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역사학자와 법학자, 법의학자, 기록 전문가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유골 하나를 찾는 일은 결국 한 시대의 기록을 다시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록을 남겨야 한다.  이번 기회에 장생탄광 희생자와 관련된 자료를 체계적으로 모으는 공적 기록체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가칭 ‘장생탄광 피해자 기록 아카이브’를 생각해볼 수 있다. 희생자 명단과 가족관계, 출신지, 동원 과정에 관한 자료뿐 아니라 당시 탄광 관련 문서와 사진, 유족 증언, 발굴 현장의 기록, 유골의 법의학적 분석자료와 DNA 감정 결과까지 가능한 범위에서 함께 보존하는 방식이다. 왜 이런 작업이 필요할까? 사람의 기억은 세월을 이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유족이 알고 있는 사실도 다음 세대에는 사라질 수 있다. 당시를 직접 기억하는 사람도 계속 줄어든다. 그래서 기록이 필요하다. 기록은 과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중에 새로운 사실이 발견됐을 때 다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조세이탄광에서 새로운 유골이 발견되었을 때 그 유골의 신원을 찾는 데에도 기존 자료가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기억을 오래 이어가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결국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시민이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국가가 나설 차례다. 오랜 시간 현장을 기억하고 관련 자료를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고, 한일 양국에서 조사와 발굴을 이어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 노력이 있었기에 이번 유골 발견도 가능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시민들의 헌신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조세이탄광은 해저 탄광이다. 조사 자체가 전문적인 기술과 안전관리를 필요로 한다. 실제로 2026년 2월 잠수조사 과정에 자원봉사로 참여한 대만 국적의 다이버 웨이 수(58)가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이 사실은 매우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의 희생자를 찾기 위해 또 다른 사람이 희생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의 발굴과 조사는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책임질 필요가 있다. 조사에 필요한 예산과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안전한 발굴 환경을 마련하고, 법의학적 분석과 DNA 감정을 지원해야 한다. 일본에 남아 있는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양국의 연구기관과 행정기관이 협력할 수 있도록 외교적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 시민사회가 오랫동안 이 문제를 잊지 않았다면, 이제 국가가 그 기억을 공적인 책임으로 이어갈 때다. 조세이탄광 문제를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한일 관계와 과거사 문제를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앞으로 해결해야 할 법적 쟁점도 많다. 국가 간 합의와 개인의 권리 문제, 강제동원에 대한 책임, 일본의 국내법과 한국 법원의 판단 사이의 차이 등은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다. 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다만 한 가지는 먼저 짚고 싶다. 유골의 발굴과 신원 확인은 정치적 입장과 법적 견해가 다른 한일 양국이 인도주의라는 공통분모에서 협력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와 법의학자, 정부 관계자, 시민사회, 그리고 유족이 함께 자료를 확인하고 조사할 수 있다. 발굴 과정에서 확보한 정보를 공유하고, DNA 감정에 협력하고, 신원이 확인된 유골은 유족의 뜻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 봉환과 추모 절차를 진행할 수도 있다.   유골 수습 잠수 조사가 재개된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 탄광에서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이 배포한 자료에 작년 8월 유골 발견 지점이 표시돼 있다.  2026.2.3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런 작지만 유의미한 협력이 쌓인다면 조세이탄광은 과거의 갈등을 확인하는 장소에 머물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과거의 희생자를 함께 기억하는 한일 협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과거에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국가적 목적 아래 사람들이 희생됐다면, 이제는 그 희생을 기억하고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양국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을 공부하고 정책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조세이탄광 문제를 바라보면서 법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법은 잘못한 사람을 처벌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데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누구를 보호할 것인지, 국가가 무엇을 책임질 것인지, 과거의 사건을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할 것인지 정하는 역할도 한다. 조세이탄광에서 우리가 마주한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80년이 넘었다는 이유로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질문을 끝낼 수 있는가. 유골이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족의 기다림도 끝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유골이 발견된 지금부터라도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을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 신원을 확인하고, 관련 기록을 확보하고, 유족에게 알리고, 유골을 존엄하게 모시고, 그 과정을 역사에 남겨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그 의미를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 한다. 조세이탄광의 유골 발굴은 과거를 들춰내기 위한 일이 아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을 마무리하기 위한 일이다. 조세이탄광의 바닷속에서 발견된 유골은 80년이 넘는 시간을 건너 우리 앞에 왔다. 그 유골이 누구인지 아직 모두 밝혀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 그 사람에게 이름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그를 기다려온 가족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유골 발굴을 단순한 과거사 사건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는 일에서 시작해 그 사람의 삶과 죽음을 기록하고, 가족에게 그 사실을 돌려드리고, 사회가 그 기억을 이어가는 과정까지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일 양국이 협력할 수 있다면, 조세이탄광은 과거의 상처만을 보여주는 장소가 아니라 새로운 평화를 만들어가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 80년 전의 유골이 오늘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이 사람을 다시 잊을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는 끝까지 이름을 찾아줄 것인가. 필자는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때로는 한 사람의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장생탄광 유골 발굴의 출발점도, 어쩌면 바로 거기에 있다. 한 사람의 이름을 되찾는 일. 그것이 한 가족의 기억을 되찾는 일이고,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를 바로잡는 첫걸음이며, 궁극적으로는 과거의 아픔을 미래의 평화로 이어가는 시작이 될 것이다. 법은 기억을 닫는 문이 아니라, 기억을 이어가는 약속이어야 한다.  이수영 시민기자 tndudfl1566@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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