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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한동훈이 만든 덫 오빠

한동훈이 만든 덫 오빠
[사회혁신]
정치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의혹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의혹을 사실처럼 느끼게 만드는 장치까지 동원해서는 안 된다. 우리말의 ‘형’과 ‘언니’, ‘오빠’와 ‘누나’는 모두 손윗사람을 부르는 호칭이지만, 그 말에 담긴 뉘앙스와 관계의 온도는 많이 다르다. 정치권과 언론은 이 미묘한 언어의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필요하면 그 차이를 여론을 움직이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언론에 ‘오빠’와 ‘누나’가 등장하면 관계가 먼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관계 위에 의혹이 올라간다. 호칭이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호칭이 사실을 대신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최근 한동훈 의원이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관련한 녹취를 연이어 공개하면서 ‘오빠’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공개된 녹취에는 김 후보자와 브로커 양아무개 씨가 서로를 ‘동생’과 ‘오빠’라고 부르는 대목이 등장한다. 한 의원은 이를 바탕으로 ‘민주당 오빠들 게이트’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의혹의 전선을 넓히고 있다. 물론 녹취에 담긴 청탁 의혹과 김 후보자의 역할, 공적 권한의 사적 이용 여부는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과 ‘오빠’라는 호칭은 별개의 문제다. 누군가를 오빠라고 부르는 것은 청탁의 증거가 아니다. 누군가를 누나라고 부르는 것 역시 인사 개입의 증거가 아니다. 그런데 정치적 공방에서는 이 둘이 슬그머니 뒤섞인다. ‘오빠’라는 단어 하나가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처럼 제시되고, 그 관계가 다시 청탁의 배경처럼 해석된다. 행위에 대한 검증보다 관계에 대한 상상이 앞선다. 한동훈 의원이 과연 그 녹취록이 불러올 정치적 파장을 모르고, 해맑게 공개했을까. 지난해 대통령실의 이른바 ‘현지 누나’ 논란도 그랬다. 김남국 당시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이 인사 청탁성 메시지에 답하면서 ‘훈식이 형이랑 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한 사실이 알려졌다. 여기서 문제의 본질은 ‘누나’라는 호칭이 아니라, 인사 청탁성 메시지가 오가고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사적 친분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거론됐다는 데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현지 누나’라는 호칭 자체가 권력의 사적 네트워크를 상징하는 말처럼 소비됐다. 이쯤 되면 ‘호칭’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왜 우리는 ‘오빠’와 ‘누나’라는 말에 이렇게 쉽게 관계의 색깔을 입히는가. 정치의 언어에서는 유독 ‘오빠’와 ‘누나’만 사생활의 냄새를 풍기는 단어가 된다. 왜일까. 아마도 너무 편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복잡한 행정 과정과 수많은 통화 내용을 설명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부탁을 했고, 실제로 어떤 행정적 조치가 있었는지를 따져야 한다. 법률적 판단도 필요하다. 하지만 ‘오빠’라는 두 글자를 던지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독자는 사건을 분석하기 전에 관계를 상상한다. ‘둘이 상당히 가까웠던 모양이네.’ 그 순간 사실은 한 걸음 뒤로 밀려난다. 이것이 바로 정치적 프레이밍의 힘이다. 오늘날 뉴스는 긴 설명보다 짧은 단어가 강하다. 녹취 전체보다 한 문장이 강하고, 한 문장보다 한 단어가 강하다. ‘청탁’이라는 단어보다 ‘오빠’라는 단어가 더 오래 기억될 수도 있다. 그래서 호칭은 정치의 훌륭한 무기가 된다. 정치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의혹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의혹을 사실처럼 느끼게 만드는 장치까지 동원해서는 안 된다. 호칭으로 사람을 심판하는 순간, 정치는 어느새 사실의 영역을 떠나 ‘오빠 정치, 누나 정치’라는 이미지의 정치로 미끄러져 버린다.홍순구 시민기자 dran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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