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 거장 오윤의 목판화 한자리에 모였다 [사람들]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마흔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던 고(故) 오윤(1946~1986)의 40주기 판화전이 개막돼 12일까지 열리고 있다.
서울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지난 2일 시작된 이 전시는 오윤이 새긴 판화 전작 187종을 한자리에 모은 전작전이다. 생전에 찍은 판화와 유족이 원판으로 찍은 사후 판화를 아울러 오윤의 판화 전부가 한 전시장에 걸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전작전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한다. 오윤의 유족이 원판으로 찍어 온 후쇄 판화는 유족의 뜻에 따라 40주기인 올해를 끝으로 판매가 중단될 예정이다.
개막에 맞춰 열린 기념행사 「열린 굿판」에는 200여 명이 전시장을 꽉 채운 가운데 인사동 길놀이를 펼쳤다. 동덕아트갤러리 측에 따르면 이 갤러리가 문을 연 이래 열린 전시 개막 행사 가운데 가장 많은 관객이 모였다고 한다.
행사는 거리에서 먼저 시작해 마당극 「강쟁이 다리쟁이」를 공연하는 팀이 인사동 중심 거리에서 길놀이를 벌인 뒤 관객과 함께 갤러리로 들어오는 식으로 펼쳐졌다. 미술관 문턱을 낮추고 작품을 거리의 사람들과 나누려 했던 오윤의 생각이 기념행사의 형식이 된 셈이다. 생전의 오윤에게 굿판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 1986년 5월 서울 그림마당 민에서 열린 오윤의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 에서도 굿판이 벌어졌다.
오윤의 40주기 판화전 전시장에서 개막행사가 열리고 있다.
길놀이를 연출한 채희완 부산대 명예교수는 오윤의 몸에는 춤이 흐르고 있었다. 1984년 간경화 요양차 전라남도 진도에 머물며 씻김굿을 만나고 북춤을 배운 뒤, 그의 판화에는 춤추는 몸이 쏟아져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공연된 마당극 「강쟁이 다리쟁이」는 1984년 놀이패 한두레가 만든 극으로 연출 채희완, 안무 김매자, 판소리 김명곤, 반주 김덕수 사물놀이가 함께한 이 무대에서 오윤은 미술과 탈 제작을 맡았고 포스터도 목판화로 새겼다.
서울 구의동 오윤의 테라코타 부조 보존 운동에 대해 추진위원회 김민웅 상임위원장은 우리가 지키려는 작품은 판화를 책표지와 거리의 인쇄물로 나누려 했던 오윤의 생각이 일상의 벽에 흙으로 새긴 이 부조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은 전시장 안에 갇힌 것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 놓여야 한다고 했던 오윤의 생각에 대해 여러 사람들의 발언이 있었다.
동일방직 노동자 출신 장명자 시인은 이름이 지워졌던 노동자가 쓴 글이 오윤의 판화를 표지로 얻어 세상에 나왔다”고 소개했다.
오윤은 생전에 45종의 책에 표지화와 삽화를 남겼다. 1978년 이오덕이 엮은 『일하는 아이들』, 1984년 박노해의 첫 시집 『노동의 새벽』 초판 표지가 대표적이다. 노동 현장에서 글을 쓴 사람들의 책은 오윤의 칼 끝에서 얼굴을 얻었다. 오윤은 판화에 에디션 번호도 매기지 않았습니다. 번호를 매겨 희소성을 높이기보다 더 많이 찍어 더 많이 나눠주려 했기 때문이다.
이날 기념행사는 오윤이 한 사람의 판화가에 머물지 않고 여러 사람의 삶과 이어져 있었음을 보여 줬다. 탈을 부탁한 연출가, 표지를 받은 노동자 시인, 벽에 새긴 부조를 지키는 사람들이 한 전시장에 모였다.
오윤은 1969년 김지하 등과 현실 동인을 만들어 리얼리즘 미술운동을 선언했으나 전시를 열지 못했고, 졸업 뒤에는 공장에서 흙을 만지며 10년 동안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으로 돌아온 그가 선택한 것이 판화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표제작 〈칼노래〉(1985)를 비롯해 〈무호도〉, 〈노동의 새벽〉(1984) 등을 원본으로 볼 수 있다.
이명재 에디터 promes6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