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조롱, 자유 라는 이병태, 엄중 경고로 끝낼 일인가 [뉴스] 이병태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이 15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규제합리화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4.15. 연합뉴스
이른바 스타벅스 응원가 로 배재고 야구부가 징계 받은 것을 두고 5·18이 성역이 됐다 며 북한의 모습 이라고 주장한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이병태 부위원장(부총리급)에 대해 청와대가 엄중 경고했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4일 이 부원장이 개인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한 글에 대해 혐오와 조롱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거부 기조와 달리 오해의 소지가 있으며, 특히 정부 소속 기관의 책임있는 위치의 사람으로서 부적절한 처신 이라면서 이에 엄중히 경고하고, 향후 재발 방지를 강력히 요청했다 고 알렸다.
앞서 이 부위원장은 지난 2일 페이스북에서 고등학교 야구 라이벌전에서 스타벅스 논란을 경쟁팀 조롱에 활용했다는 학생들의 일탈을 처리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무엇인가 라며 이 땅에 5·18이 성역이 된 것 이라고 했다. 또 이들(배재고 야구부)의 행위가 5·18 자체 가 아니라 스벅 논란 에 대한 풍자로 이해될 수도 있는 사안 이라며 역사의 성역화로 어린 학생들의 장난 에 가까운 일탈도 수용이 안 되고 어른들의 정치 가 됐다. 그들에게 잘못을 성찰할 수 있게 하는 교육적 해결 방안으로 이게 최선인가 라고 했다. 사안을 단순 풍자 와 어린 학생들 장난 일탈 로 축소하며, 그 정도도 이해하지 못하느냐는 인식을 보인 것이다. 그러면서 이 모습은 대한민국보다 김일성 사진이 나온 신문이 비에 젖는 것을 보고 울부짖는 북한의 모습이다. 이처럼 여유 없는 세상이 그리 좋아 보이나 라며 성역은 신성 모독의 처형을 정당화한다 고 덧붙였다.
이 같은 글이 언론에 보도되고 논란이 되자, 이 부위원장은 이날 새벽 4시 10분 장문의 글을 다시 올리고 이번 응원 구호가 적절했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것이 부적절했다면 비판하면 된다. 그 비판도 표현의 자유 라고 주장했다. 그는 발언을 근거로 한 처벌 은 기본권의 부인이다. 그래서 성역의 위험성을 거론했다 며 이 발언이 처벌받아야 한다는 기본권의 부정은 광주 민주화 운동이 추구했던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고 자신의 주장을 재차 합리화했다.
배재고와 광주일고의 경기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이 부위원장은 5·18 민주화운동까지 끌어들여 표현의 자유 를 근거로 처벌 불가론을 주장했지만, 5·18을 모욕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라고 보기는 힘들다. 광주시민이나 희생자, 유가족들은 물론 우리 사회에서 인정한 바 없으며, 그것이 5·18이 추구했던 민주주의 가치라는 는 데 대한 동의도 이뤄진 적이 없다.
또한 새벽에 올린 글에서 이 부위원장은 천부인권이란 말이 무엇인가, 우리가 태어나면서 하늘(신)이 준 것이라 인간이 부인하면 안된다는 뜻 아닌가 라며 표현의 자유 개념 그 자체를 하늘에서 내린 것으로 성역화함으로써 그 자신이 자유 라는 성역에 빠진 북한의 모습 과 다를 바 없는 오류를 범한 셈이 됐다. 그럼으로써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 라고 규정한 정신, 즉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다른 사람의 자유와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제한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이가 고위공직자 자리에 있는 모습까지 보여주게 됐다.
아울러 이 부위원장은 새벽에 올린 같은 글에서 어떤 정치인이 말한 것처럼 서울 한복판에서 김일성 만세 를 외쳐도 허용되어야 한다. 그게 기본권이다. 김일성 만세가 옳고 우리가 동의해서 발언의 기본권을 옹호하는 게 아니다. 소수의 미친 소리는 다수의 진리에 의해 정화된다 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지금의 배재고 스타벅스 응원가가 왜 문제가 됐는지 그 연원조차 제대로 짚지 못한다는 걸 스스로 보여준 꼴이었다.
이 부위원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울 한복판에서 외치는 김일성 만세 는 소수의 미친 소리 이기 때문에 다수에 의해 정화 될 수 있다. 그러나 5·18 운동에 대한 비하 폄훼 는 다르다. 이명박 정권에서 태동한 일베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소수가 자행한 각종 5·18 조롱·모욕·비하는 이 부위원장이 그토록 중시하는 표현의 자유 라는 벽에 막혀 아무런 통제가 되지 않았고, 결국 소수만 떠들던 미친 소리 는 십수년 온라인과 정치권에서 재생산돼 다수의 미친 소리 가 됐음에도 정화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결과 스타벅스 코리아라는 대기업 마케팅에 버젓이 5·18 혐오 표현이 등장해 사회적인 파문을 일으키고 있으며, 교실에서 호남과 5·18에 대한 혐오는 일종의 장난 유행 이 돼 일상적으로 학생들이 조롱하고 모욕하고 있다. 온라인에선 말할 것도 없다. 배재고 응원가 문제는 단순히 천부인권적인 표현의 자유를 처벌하는 게 맞느냐 아니냐 하는 논쟁이 아니다. 십수 년에 걸친 5·18 혐오는 이제 가해 행위에도 무감각해진 세태에 이르게 됐다. 이에 대한 이해도 없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과 세계인권선언을 들먹이며 배재고 사태를 논하는 건 명백한 논점 일탈이다.
이 부위원장이 새벽에 올린 글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의 참여자나 희생자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고 했는데, 정작 그 자신이 성역화한 표현의 자유 로 인해 지금 어린 학생들의 입에서 5·18을 비하하는 응원가가 나오는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 부위원장의 글은 아이들 기죽이지 말라며 배재고 앞에 보낸 철없는 어른들의 또다른 화환 중 하나에 불과해 보인다.
1일 서울 강동구 배재고 앞에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배재고 야구부 일부 학생 선수들은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광주제일고와 경기 중 스타벅스 가야지 , 탱크 데이 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 구호는 지난 달 스타벅스 코리아가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맞춰 텀블러 할인 이벤트를 하며 5·18 탱크데이 라고 홍보했던 사건을 연상케 해 공분을 샀다. 2026.7.1. 연합뉴스
뭐가 그리 당당한가?
이 부위원장이 대통령 직속 기구의 부총리급 공직자라는 점, 그가 글을 올린 페이스북이 3만 6000여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그 말의 무게감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일반 학자였다면 논쟁에서 그쳤겠지만, 공직자인 만큼 그의 글로 인한 논란이 엄중 경고 정도로 끝나야 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있다. 이 부위원장이 과거 친일은 당연한 것 이라거나 세월호를 천박함의 상징 이라고 막말성 발언을 했던 만큼 이러한 논란은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태도다.
전날 페이스북 글이 언론에 알려져 논란이 됐음에도 그는 이날 새벽 또다시 자신을 합리화하는 글을 올린 데 이어, 청와대의 엄중 경고 직후에도 보수매체인 TV조선과 인터뷰를 갖고 주장하려고 했던 본질은 표현의 자유 문제였다 며 주장을 전혀 굽히지 않았다. 공직자로서 논란을 일으킨 데 대한 최소한의 반성이나 유감 표명도 없었다. 그는 민주당에서 주장하는 해임이나 사퇴 등 거취와 관련된 언급이 나온 데 대해서도 임명권자는 대통령인 만큼, 수용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판단하면 언제든 해임할 수 있다 며 당당했다.
규제합리화 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대통령 직속 기구 공직자로서 핵심 국정과제를 제대로 뒷받침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 부위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속도전 까지 언급하며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3대 메가 프로젝트 에 대해서도 지난달 30일 페이스북 글을 올리고 대통령 앞에서 발표하는 천문학적 투자 약속은 그 이행 여부가 검증되거나 검증하려는 시도도 없었다. 그래서 수백 조~천 조가 일시에 일사천리로 될 리도 없다 며 이 거대한 투자가 이번 대통령 임기 내에 끝나거나 대규모로 이루어 지지 않을 것 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속도전에 보조를 맞춰야 할 규제합리화위 부위원장이 3대 메가 프로젝트 발표 직후 공개적으로 속도전이 어러울 것이란 취지로 직격한 셈이다.
또한 그는 같은 글에서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 대해 2022년 상반기 착공 이후 현재까지 약 4년이 넘는 기간동안 인프라 조성과 건물 완공, 장비 반입 및 셋업 단계가 이어지고 있다 면서 20조짜리 투자가 이럴진대 이것의 20배가 넘는 전력, 용수, 공단 인프라 정비를 고려하면 이번 대통령 임기 내에 큰 진척을 이루기 어려울 것 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정치적인 무리수라면 정권 말기에 진실의 순간이 올 것 이라며 정치적 일정을 고려하면 그렇게 무리한 진행은 이뤄지지 않을 것 이라고 못박았다. 무리한 정책이기 때문에 정권 말기 에 실패할 수 있다고 예상하는 것처럼 읽히는 대목이다. 모종의 의도를 담은 정치 메시지처럼 읽히기도 한다.
아울러 진영논리를 최악의 타락으로 경계한다 고 주장한 이 부위원장은 위 글에서 사실은 나는 이 (3대 메가 프로젝트) 투자 계획이 그간 진보 진영의 이념적 이슈 두 가지를 무너뜨리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나는 원자력에 대한 부정적 선동이다. 대규모 반도체 공장, AI 센터 건설 등의 수요가 탈원전의 망령을 완전히 퇴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다. 두 번째는 사대강 치수를 부정하고 보를 부수는 환경근본주의다 라며 자신이 친원전·4대강 옹호론자처럼 읽히도록 했다. 이는 탈원전이나 사대강 재자연화 등 폭넓은 지지를 받는 사안을 이른바 진보 진영 논리 로 규정하고는 그 자신을 우익 진영론자 로 자처하는 듯한 태도다. 진영 을 떠난 합리적인 규제 심사가 가능한지 의문까지 들게 하는 대목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 대통령, 최태원 SK그룹 회장,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2026.6.29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그럼에도 이 부위원장은 전날 진보 진영에서 반도체 호남 투자에 대한 내 페이스북 글을 정부의 호남의 반도체 투자 의지에 찬물을 들어부은 내부 반란 이라고 해석한 비난의 논평을 내게 전해주셨다. 그 기사들을 보고 어어가 없어 이 글을 쓴다 며 나는 메가 특구 정책을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다 라면서, 이전 글에 없었던 근거들을 덧붙여 자신의 주장 취지를 길게 설명했다. 애초 근거도 빈약하고 정치적 의도성이 있는 것처럼 읽힐 만한 부실한 글로 논란을 일으킨 데 대한 유감 표명은 없었고, 무엇이 찬물이냐 며 되레 당당했다. 공직자로서 말과 글에 신중했어야 한다는 반성은 없이 그대들의 문해력을 돌이켜 보라 고 직격한 태도는 공직자로서의 자질까지 의심케 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보면, 이 부위원장이 청와대의 엄중 경고에 조금이라도 유의할지는 의문이 든다. 오히려 엄중 경고한 청와대 관계자들의 낮은 문해력 을 탓할는지도 모를 상황이다. 그는 배재고 응원가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문제에서 자신의 주장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고위공직자로서 통상 한국 사회가 기대하는 최소한의 양식도 보이지 않았다. 청와대가 엄중 경고한 사실을 언론에까지 공개한 것은 공직사회 전체의 책임성을 확보하라는 일종의 신호 지만, 그 신호가 먹힐지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신호가 먹히지 않는다면 공직 기강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그가 경고에도 끝내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특단의 조치 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규제 정책을 심의·조정할 전문가는 그리 희귀하지 않다.
김성진 기자 mindle1987@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