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 여행한 마르코 폴로, 유럽인 세계관 바꿔 [사람들] 상인 집안의 아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만나다
베네치아의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는 어릴 때 아버지 얼굴을 모르고 자랐다. 아버지 니콜로와 삼촌 마페오가 동방으로 장사를 떠나 있었기 때문이다. 형제는 몽골제국의 대칸 쿠빌라이(Kublai Khan, 1215~1294)의 궁정까지 갔다가 돌아왔는데, 쿠빌라이는 칭기즈칸(Genghis Khan, 1162~1227)의 손자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을 다스리던 인물이었다. 아버지와 삼촌이 베네치아에 돌아왔을 때 마르코는 열다섯 살이었다. 낯선 아버지를 처음 만난 소년은 두 해 뒤인 열일곱 살에 아버지와 삼촌을 따라 동방으로 떠난다. 이 결정 하나가 훗날 유럽인의 세계관을 통째로 뒤흔들게 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마르코 폴로 초상화, 1477년(위키피디아)
쿠빌라이의 궁정에서 벼슬살이를 하다
세 사람은 비단길을 따라 3년을 걸어 몽골제국에 도착했다. 마르코는 여러 언어를 익히는 재주가 있었고, 이 재주 덕에 쿠빌라이의 눈에 들어 궁정 관리로 등용된다. 그는 17년 동안 몽골 제국 곳곳을 다니며 사신 노릇을 했고, 한때는 양저우라는 도시를 다스리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 시기에 그가 보고 들은 것들, 곧 종이돈을 쓰는 나라, 석탄을 때는 사람들, 화려한 궁궐과 넓은 도로는 훗날 유럽인들에게 거의 동화처럼 들리게 된다.
여행 중인 마르코 폴로. 생전에 처음 출간되었으나 이후 수없이 재발간 및 번역된 저서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일 밀리오네’)에 수록된 세밀화(위키피디아)
감옥에서 완성된 책, 진실과 거짓 사이
24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마르코는 곧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전쟁에 휘말려 포로로 붙잡힌다. 감옥에서 그는 소설가 루스티첼로를 만나 자신이 겪은 일들을 구술했고, 이것이 책으로 묶여 나온 것이 그 유명한 『동방견문록』이다. 문제는 이 책이 처음부터 의심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가 죽기 직전까지도 주변 사람들은 이제 그만 거짓말이었다고 인정하라 고 채근했다. 마르코는 끝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는 내가 본 것의 절반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며 그의 기록 중 상당수가 사실로 확인되었지만, 여전히 그가 실제로 중국까지 갔는지는 학자들의 논란으로 남아 있다.
베네치아의 코르테 세콘다 델 밀리온(Corte Seconda del Milion) 은 폴로의 집 옆에 위치해 있으며, 폴로의 별명인 일 밀리오네(Il Milione) 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위키피디아)
허풍이 세상을 넓혔다
과장과 허풍이 섞였을지언정 이 책이 남긴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두 세기 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는 이 책을 옆구리에 끼고 대서양을 건넜다. 동방의 부와 향신료를 찾겠다는 꿈이 항해를 이끈 셈이다. 알려지지 않았던 땅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그 호기심을 부추긴 한 여행자의 기록이 결국 세계지도를 다시 그리게 만든 것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옮기지 못했다는 흠은 있을지언정, 낯선 세계를 향한 문을 열어젖혔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탈리아 제노바의 도리아 투르시 궁전에 전시된 마르코 폴로의 모자이크(위키피디아)
한국에서 곱씹어 볼 대목
마르코 폴로 이야기를 오늘의 한국에 대입해 보면 여러 질문이 떠오른다. 먼저 정보의 신뢰성 문제다. 그의 기록은 과장과 오류로 얼룩졌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새 길을 찾아 나섰다. 요즘 한국사회는 반대로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무엇 하나도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짜 뉴스와 음모론이 판치는 세상에서, 완벽하지 않아도 세상을 넓히는 데 쓰인 낡은 여행기 한 권이 오히려 부럽게 느껴질 정도다.
또 하나는 낯선 것을 대하는 태도다. 마르코는 몽골이라는, 당시 유럽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던 이민족의 궁정에서 관직을 얻고 신뢰를 쌓았다. 적이라고 배운 존재를 직접 만나 다르게 보는 눈을 얻은 셈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웃 나라나 특정 집단을 통째로 적대시하는 담론이 힘을 얻는 모습을 보면, 낯선 것을 두려움 없이 마주했던 열일곱 살 청년의 여정이 오히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지막으로 한 개인의 기록이 역사를 바꾼다는 사실 자체가 무겁게 다가온다. 지금 한국에서도 2024년 12·3 비상계엄 사태를 둘러싼 수많은 증언과 기록이 쏟아지고 있다. 누군가의 개인적 경험담이 훗날 어떻게 평가받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기록하지 않으면 아예 역사에 남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르코 폴로가 감옥에서 구술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는 13세기 몽골제국의 풍경을 이렇게까지 생생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지금은 사소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지극히 단순한 일조차 꼼꼼하게 기록해 두는 것이 언젠가 그 역사의 법정에서 소중한 증거로 채택될 날이 온다.
팍스 몽골리카 시대에 마르코 폴로가 동방으로 여행하는 모습을 묘사한 카탈란 아틀라스의 근접 사진(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