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도 1위 신문 에 맡길 수 없는 긴급한 판단 [뉴스] 법원이 12·3 비상계엄에 가담한 군 최고사령관들에게 1심에서 중형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가 21일 열린 재판에서 모두 9~18년의 중형을 선고한 것에 대해 22일 아침 대다수의 신문들은 부당한 명령에 대한 거부 의무 를 확인한 판결이라고 평했다. 이른바 보수 계열로 불리는 동아일보도 라는 사설에서 군인에게 명령 복종은 목숨 같은 규율이지만 국민의 대의기관을 폭력적 수단으로 무력화하는 내란에 가담한 행위를 어쩔 수 없는 상명하복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이 판결을 비판하면서 많은 걱정을 쏟아낸 신문이 있다. 바로 조선일보다. 이 신문은 라는 사설에서 군 사령관들이 ‘6시간 남짓한 정치적 소용돌이에 뜻하지 않게 휘말린’ 것이라면서 그 대가가 가혹하며 군 내부의 후유증과 사기 저하를 염려하고 있다. 또한, 긴급하게 들이닥친 상황은 머릿속 원칙대로 움직이지 않는 법 이라며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군인의 특수한 현실을 참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당시 군 지휘부에 대한 예외 없는 엄벌은 군에 깊은 후유증을 남길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얼핏 군의 특수성과 긴급한 상황, 순간의 판단 착오에 대한 댓가치고는 과도하다는 것에 수긍할 법한 주장이다.
조선일보의 22일자 사설.
그러나 조선일보가 ‘정상참작’의 사유로 제시한 군의 특수한 사정이나 긴급한 상황에서의 판단이야말로 중형 단죄가 필요했던 이유다. 조선일보가 놓치고 있는 것, 혹은 일부러 외면하는 것에 군의 민주주의와 헌법 체제 수호 책무에 대한 몰이해가 드러나 있다.
이 사설은 비상계엄이라는 급박한 상황을 마치 예측 불가능한 천재지변처럼 전제한다. 그러니 그런 상황에서는 머릿속 원칙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는 변호의 논리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국가의 안보와 수십만 장병의 지휘를 맡은 고위 장성들에게 그 짧은 순간은 단지 한순간일 수 없었다. 평소에 축적된 국가관과 법치주의에 대한 신념에 입각한 지휘관다운 판단이 시험받는 순간이었다.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 의문을 품고 멈춰서야 한다는 판단은 비상사태가 닥쳤을 때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평소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내면화가 되어 있지 않으면 비상시에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뜻하지 않게 휘말렸다 는 표현은 면죄부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평소 그들이 지녀야 할 기본적 책무의 방기를 드러낼 뿐이다.
이는 내란의 실체를 밝히는 데 기여했던 곽종근 전 사령관에게도 9년의 중형을 선고한 것이 시사하는 것과도 통한다. 곽 전 사령관은 내란 진압 뒤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국회 의결 정족수가 아직 다 안 채워진 것 같으니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 는 명령을 받았다”고 증언해 내란 진상 규명과 수사에 결정적 도움을 줬지만 법원은 그가 특전사 병력을 국회에 침투시키는 등 주도적 역할을 한 것에 대해 처벌이 불기피하다고 판단했다. 그에게 중형을 내린 것에 대한 찬반 입장을 떠나 그만큼 부당한 명령에 대한 최고 지휘관의 거부 책임을 확인한 것이었다.
이번 판결이 분명히 해 주는 점은 직위의 권한과 책임에 비례해 헌법과 민주주의에 입각한 순간의 판단 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계엄군을 국회로 진입시키고 헌법 기관의 기능을 마비시키려 한 이들은 말단 사병이 아니라 군의 최고 지휘관들이었다. 병사라면 제한된 정보 속에서 상관의 명령에 기계적으로 복종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군 최고위 사령관들은 위법한 명령의 부당성을 그 순간에 식별하고 거부할 수 있는 권한과 책무를 동시에 지닌 위치에 있다. 군 통수권자의 명령이라도 그것이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위헌적 명령이라는 것이 명백할 때, 이를 거부하는 것은 군인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라는 것을 조선일보의 사설은 무시하고 있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왼쪽부터), 이진우 전 국군수도방위사령관, 문상호 전 국군정보사령관,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헌법재판소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사설은 군 사령관들에 대한 엄벌이 군의 위상과 전투력을 무너뜨린다고 걱정한다. 국토방위를 책임지던 한국군의 핵심 장성들 이 무더기로 중형에 처해진 것은 참담한 일이라고도 개탄했다. 조선일보는 군의 사기와 위상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하지만, 진정으로 군의 사기를 지키는 길은 불법적인 명령에 맹종한 이들을 감싸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순간이든 헌법과 법률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는 지극히 상식적인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다. 군의 사기를 꺾고 조직의 신뢰를 바닥으로 떨어뜨린 것은 법원의 엄정한 판결이 아니라, 스스로 헌법적 가치를 내팽개치고 정권의 도구로 전락했던 사령관들이었다. 군의 위상과 전투력을 해친 것이야말로 이들 지휘관이었으며, 그래서 ‘반군(反軍)’적인 행위로 규탄받아야 할 것은 오히려 군 최고지휘관 자신들이었다고 해야 마땅하다.
고위 지휘관들을 애써 변호하는 조선일보의 사설은 결국 이 신문 자신에게 돌아가야 할 질문을 스스로 제기한다. 주간지 시사인이 최근 실시한 ‘2026 대한민국 신뢰도 조사’ 신문 부문에서 10.8%의 지지를 얻어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신문, 조선일보 그 자신에게 던지게 되는 질문이다. 한국 사회의 여론을 이끌어 온 신문으로 자처하는 만큼 급박한 순간에서의 판단이 지니는 파급력을 제대로 행사하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과 높은 신뢰도를 누려 온 언론으로서, 위기의 순간에 사회가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나침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이 신문에 대해 던지게 되는 것이다.
군 고위 사령관들이 비상사태라는 급박한 순간에 내린 섣부른 판단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듯, 신뢰도 최상위의 거대 언론이 위기의 순간에 내려온 판단 역시 한국 사회를 위태로운 상황으로 이끌고 있는 게 아닌지 스스로 자문해 봐야 마땅하다. 긴박한 순간에 맞는 긴박한 판단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스스로 되물어봐야 할 일이다. 긴급한 상황에선 원칙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며 군 사령관들을 변호하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결국 한국의 신뢰도 1위 신문의 실상을 마치 거울처럼 되비춘다.이명재 에디터 promes6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