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을 받아 온 누리에 퍼지는 빛, 날빛 [사회혁신] 반갑습니다. 우리말의 결을 살려 마음을 보듬는 ‘토박이말 결지기’입니다.
어제는 잘 익은 감의 빛깔을 담은 ‘감빛’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빛’이 들어간 또 다른 토박이말, ‘날빛’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의 토박이말]날빛
‘날빛’이라는 말을 처음 보는 분들은 ‘날다’나 ‘날개’와 이어지는 말인가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날’은 날아다니는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한자를 새길 때 ‘날 일(日), 달 월(月)’이라고 하는데, 바로 그 ‘날’과 이어지는 말입니다. 해가 떠 있는 낮과 햇빛을 떠올리면 말뜻에 한결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온 누리에 퍼지는 빛, ‘날빛’
표준국어대사전은 ‘날빛’을 ‘햇빛을 받아서 나는 온 세상의 빛’으로 풀이합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햇빛을 받아서 온 지상에 가득히 퍼진 투명한 빛깔’이라고 풀이합니다.
두 풀이를 살펴보면 ‘날빛’은 해에서 나오는 빛 그 자체만을 가리키기보다, 햇빛을 받아 온 세상에 퍼지는 빛과 그 빛깔을 나타내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햇살이 비치는 들판과 나무, 지붕과 길 위에 두루 번지는 밝은 기운을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햇빛’이 해에서 나오는 빛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날빛’은 그 햇빛을 받아 세상에 드러나는 빛의 모습까지 떠올리게 합니다. 두 말이 서로 맞닿아 있지만, 사전의 풀이를 살펴보면 ‘날빛’만의 쓰임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책 속에서 만나는 ‘날빛’
‘날빛’은 말꽃지음몬(문학작품) 속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염상섭의 《삼팔선》에는 어른들의 마음도 어스레해 가는 날빛과 함께 까부라져 갔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날이 저물면서 빛이 어스레해지는 모습과 사람들의 마음이 함께 가라앉는 모습을 한 문장에 담았습니다. 여기서 ‘날빛’은 단순히 밝고 어두운 정도를 넘어, 시간이 흐르며 달라지는 바깥 풍경을 보여 줍니다. 날빛이 흐려지는 장면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까지 함께 그려 낸 것이지요.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이튿날 밝은 날빛 속에서 오랫동안 내 눈을 이끈 것은 필연코 무슨 사연이 깃들어 있을 듯한 그곳 녹음이었다”라는 보기월도 실려 있습니다. 이 문장에서는 날이 밝아 온 세상에 퍼진 빛 속에서 짙은 나무 그늘이 눈길을 끄는 모습을 그립니다.
이처럼 ‘날빛’은 빛이 비치는 모습을 나타내면서, 그 빛 속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분위기까지 함께 담아낼 수 있는 말입니다.
‘햇빛’과 ‘날빛’, 함께 쓰면 어떨까요?
우리는 나날살이에서 ‘햇빛’이라는 말을 더 흔하게 씁니다. 햇빛이 따뜻하다, 햇빛이 눈부시다, 햇빛이 창문으로 들어온다고 말하지요. 그에 비해 ‘날빛’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낯설다는 까닭만으로 우리말의 쓰임을 좁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날빛’은 이미 말집(사전)에 올라 있는 말이며, 햇빛을 받아 온 세상에 퍼지는 빛을 나타내는 뜻이 있습니다. 다만 ‘햇빛’과 완전히 같은 뜻으로 쓰이는 말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사전에 풀이된 뜻과 실제 쓰임을 살피면서 알맞게 사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는 ‘햇빛’과 함께 ‘날빛’도 더 많은 사람이 알고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말하는 사람의 느낌이나 글의 흐름에 따라 ‘햇빛’과 ‘날빛’을 골라 쓸 수 있다면 우리말로 나타내는 길이 한결 넓어질 테니 말입니다. 새로운 말을 억지로 만들기 전에 이미 우리 곁에 있는 말을 찾아 쓰는 일도 우리말을 넉넉하게 하는 좋은 수입니다.
오늘 창밖의 날빛을 살펴보세요
아침에 창문을 열었을 때 방 안으로 들어오는 빛, 구름 사이로 들판에 내려앉는 빛, 해 질 무렵 차츰 어스레해지는 빛을 가만히 살펴보면 어떨까요? 그 빛을 보며 ‘햇빛’이라는 말과 함께 ‘날빛’이라는 말도 떠올려 볼 수 있겠습니다.
말 하나를 새로 알면 늘 보던 바람빛(풍경)에서도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은 해가 비치는 누리(세상)의 모습을 바라보며 ‘날빛’이라는 이름을 한번 불러 보면 좋겠습니다.
[마음 나누기]
여러분은 햇빛이 온 누리에 퍼져 바람빛(풍경)을 밝히는 모습을 보면 어떤 말이 떠오르시나요? 오늘 만난 빛을 ‘날빛’이라는 말로 표현한다면 어떤 장면을 담아 보고 싶으신가요?
[한 줄 생각]
늘 보던 빛에도 이름이 하나 더해지면, 누리를 바라보고 나타내는 우리말의 길도 넓어집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 날빛
뜻: 햇빛을 받아서 나는 온 세상의 빛. 햇빛을 받아 온 땅에 가득히 퍼진 투명한 빛깔.
보기: 아침 날빛이 마당 가득 퍼지자 나무와 꽃들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오늘 한마디: 오늘은 날빛이 참 맑고 곱네요.”
[토박이말 길잡이] 결지기 이창수
이창수 시민기자 maljig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