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민중당 의 유쾌한 반란과 역사적 승리 [뉴스] ‘바퀴벌레 민중당’ 운동으로 나타난 인도 청년들의 거대한 저항이 결국 모디 정권을 무릎 꿇게 만들었다. 모디의 후계자이자 집권당의 차기 주자로 거론되던 교육부 장관이 전격 사퇴했고, 청년들이 요구했던 시험 부정 재조사 및 채용 제도 개선 등 핵심적인 요구들이 받아들여졌다. 권위주의 정권의 철옹성 같던 오만을 깨부수고 거둔 역사적 승리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극우 인종주의적 인도 국민당(BJP)은 힌두 민족주의를 이념적 무기로 삼아 12년 동안 철권통치를 이어왔다. 과거 농민 반란이나 노동자 총파업 앞에서도 쉽게 물러서지 않고 공포 정치를 고수하던 모디 정권이었으나, 이번에는 청년들의 폭발적인 저항과 갈수록 커지는 사회적 연대 앞에서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인도 청년들의 저항은 단순히 일시적인 불만의 표출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디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교육·고용 정책이 지난 수년간 누적해 온 구조적 모순에 맞선 반격이었다. 공교육을 해체하고, 청년들의 미래를 극심한 실업과 불안정 노동의 늪으로 몰아넣은 권력에 맞서 인도 청년들은 거리로 나섰다.
인도 Z세대 시위대, 교육부 장관 퇴진에 승리 자축지난 25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교육부 장관의 퇴진 소식에 시위대가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교육의 민영화와 고용시장의 붕괴로 극심한 실업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삶 속에서 인도 청년들이 택할 수 있는 마지막 사다리는 의대 입학시험(NEET)이나 공무원 채용시험과 같은 국가시험뿐이었다. 그러나 수백만 명의 청년이 골방에서 인생을 걸고 준비해 온 이 시험들마저 철저히 불공정하게 치러졌다.
시험 문제의 사전 유출과 광범위한 부정부패 의혹이 드러났고, 노력의 대가가 부정과 비리로 짓밟힌 현실 앞에 깊은 절망에 빠진 청년 1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처럼 청년들의 삶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음에도 권력의 중심에 선 자들은 공감과 반성은커녕 차가운 멸시와 낙인으로 응답했다.
분노한 청년들이 불만을 표출하고 정당한 대책을 요구하자, 대법원장조차 이들을 향해 취업하지 못한 바퀴벌레 같은 , 기생충 이라는 폭언을 퍼부었다. 청년들의 정당한 권리 주장을 박멸해야 할 벌레나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치부하며 권력의 오만을 드러낸 이런 언어폭력은 저항의 불씨를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청년들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서 기발한 해학과 풍자로 맞섰다. 스스로를 게으르고, 인터넷에 중독된, 불평불만 전문가 라면서 가상의 정당인 바퀴벌레민중당 을 창당했다. 어떠한 짓밟힘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아 번성하는 바퀴벌레의 생명력을 민중의 저항 의지와 결합시킨 셈이다. 이 위트 넘치는 풍자적 운동은 폭발적인 대중적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가상 정당이 만들어진 지 단 사흘 만에 35만 명이 넘는 청년들이 가입 신청을 마쳤고,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은 출범 2주만에 팔로워 2200만 명을 돌파했다. 정형화된 투쟁 방식이나 엄숙주의를 넘어선 풍자와 농담 이 권력의 위선을 폭로하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정치적 무기로 작동한 순간이었다. 유쾌하고도 치열한 저항의 출발점이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자가트 프라카시 나다 인도 보건가족복지부 장관(왼쪽 끝)과 아슈토시 란카 바퀴벌레국민당 (CJP) 대변인이 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모디 정권은 투쟁이 확산되자 전형적인 이념 공작과 분열 책동을 시도했다. 정권은 투쟁을 주도한 핵심 활동가들을 향해 외세의 조종을 받는 반국가 세력 , 반(反)힌두교 , 테러리스트 라는 낙인을 찍으며 폭력적 탄압을 가했다. 주요 활동가들에게 반국가 테러 혐의를 씌워 무차별 연행과 구속을 시도했다.
인스타그램 등 SNS 계정을 강제 동결·삭제하고, 시위대 집결을 막기 위해 대학가 일대의 모바일 인터넷을 기습 차단했다. 나아가 경찰이 대학 도서관과 기숙사까지 진입해 무차별 폭력을 가했으며, 단식 농성 중이던 활동가를 강제로 병원으로 이송해 감금했고, 경찰의 곤봉 및 최루탄 진압으로 수백 명이 부상했다.
이러한 초유의 국가 폭력은 오히려 정권의 야만성을 만천하에 폭로하는 결과를 낳았고, 농민과 노동자들까지 청년들의 투쟁에 동참하는 더 폭넓은 연대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투쟁의 중심에는 인도 카스트제도에서 가장 최하위에 위치하며 극심한 멸시와 차별을 받아온 달리트(불가촉천민) 출신의 청년 활동가 아비지트 딥케(Abhijit Dipke)가 있었다.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인도의 카스트 차별과 극우 힌두 민족주의가 강요하는 신분적·종교적·사회적 편견을 청년들 스스로가 투쟁의 현장에서 깨뜨려 버린 것이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모든 중요한 투쟁은 이처럼 기득권이 씌운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뛰어넘어 피압박 민중이 스스로 주체로 서는 과정임을 아비지트 딥케와 인도 청년들이 다시 입증했다.
정권은 힌두교도와 무슬림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려 했지만 청년들은 우리의 적은 무슬림 이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미래를 파괴하는 권력 이라며 종교와 신분을 초월한 연대 전선을 구축해 냈다. 이런 식으로 청년과 학생들의 투쟁은 농민들의 투쟁과 결합되었고, 민영화에 반대하는 공공부문 노동자, 도시 외곽의 불안정 이주 노동자들과도 연결됐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20일 뉴델리에서 열린 국회 우기 회기 첫날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인도 청년들의 저항은 단독으로 등장한 사건이 아니었다. 이는 지난 1년간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나아가 글로벌 남반구 전체를 휩쓸고 있는 Z세대 항쟁 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파도의 일부이다. 방글라데시에서 청년 학생들이 독재자 셰이크 하시나 정권을 퇴진시킨 사건, 스리랑카를 뒤흔든 청년 저항, 그리고 케냐 등에서 펼쳐진 Z세대 시위의 맥락 속에 이어서 등장했다.
방글라데시나 스리랑카, 그리고 인도의 사례에서 보듯, Z세대 운동은 기존 정당정치에 얽매이지 않는 수평적 네트워크, SNS를 통한 대중 조직화, 권위주의에 대한 거침없는 거부라는 공통점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놀라운 기세와 힘으로 부패한 정권을 무너뜨리거나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분노의 폭발만으로는 부족하다.
정권의 몰락을 넘어서 그 이후의 대안 사회 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직화된 민중의 대안 세력이 뿌리내리지 못한다면, 거리가 만들어낸 권력의 공백은 또다시 기득권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나 신자유주의적인 보수 야당, 혹은 군부 세력에 의해 채워질 위험이 있다. 인도 청년들 역시 지금의 승리를 어떻게 지속 가능한 변화로 이어갈 것인지 과제 앞에 서 있다.
한국의 청년들 역시 인도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극심한 고용 불안, 승자독식의 입시·경쟁 체제, 주거 불안 속에서 고통과 절망을 겪어 왔다. 그러나 한국의 기득권 정치 세력은 청년들의 분노와 불만을 젠더와 세대 갈라치기에 이용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청년 남성들이 윤어게인 극우 세력의 담론과 혐오 정치에 이끌리고 말았다.
인도의 청년들이 바퀴벌레 라는 멸칭 속에서도 젠더와 신분의 벽을 허물고 농민·노동자와 연대하여 극우 정권을 무릎 꿇린 역사는 한국 사회에도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 한국의 청년들 역시 기득권 세력이 기획한 혐오와 분열의 프레임을 깨부수고, 각자도생이 아니라 서로의 손을 잡으며 피압박 민중과의 광범위한 연대를 복원해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이재명 정부가 빛의 혁명 이 제시했던 민주주의 회복과 사회적 불평등 해소라는 시대적 요구를 흔들림 없이 수행하도록 강력히 압박하는 견인차 구실을 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기득권의 압박에 타협하지 않고 더욱 철저한 사회·경제적 개혁을 지속해 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은 거기서만 나올 수 있다.
인도 청년들이 거리에 찍어놓은 발자국은 뚜렷하다. 권력이 아무리 무자비한 폭력으로 탄압해도 저항의 표출을 막을 수는 없다. 바퀴벌레 라 불리면서도 죽지 않고 일어나 거리를 뒤덮은 인도 청년들의 투쟁과 승리는 불평등과 권위주의에 맞서는 전 세계 모든 민중에게 강력한 희망의 증거이다.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