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은 물러나고 흉측한 돌기둥들도 가져가야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기념비는 우리 사회가 누구를 예우하고 누구를 존중하는지를 말해주는, 오래가는 공개 선언이다. 기념비는 어떤 경우에는 직접, 더 많은 경우에는 누락을 통해 누가 치욕당하고 무시당해야 하는지, 누가 안 보여야 하는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주디스 루이스 허먼, )
오세훈 서울시장은 얼마 전 재판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시장직을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 많은 시민이 이미 지난 지방선거 과정에서 오세훈 시장의 낙선을 기대했다. 그는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으로서 윤석열 정권이 저지른 폭정과 내란에 막중한 공동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지방정부의 기본 책무를 팽개친 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향한 공격과 배제의 행정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오세훈 시장 스스로도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위태롭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지난해 연말부터 한강버스 사업, 종묘 일대 개발, 부동산 재개발 등 논란이 많은 정책들을 졸속으로 강행하며 알박기 를 시작했다. 자신이 물러나더라도, 토건 자본과 소수 특권층만을 위한 서울시의 기득권 체제가 유지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세훈 없는 서울 을 꿈꾸었던 많은 이들의 기대와 어긋나게도 오세훈 시장은 5선에 성공하고 말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감사의 정원에서 열린 강뉴합창단-서울시예술단 문화교류 공연 참석 전 정치자금법 위반 1심 선고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6.7.22. 연합뉴스
선거 결과에 깊이 실망하고 좌절했던 시민들은, 최근 진행된 그의 사법 리스크와 재판 경과를 지켜보며 다시금 서울시 정상화에 대한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은 여전히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채, 알박기 행정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추진한 무수한 행정적 알박기 중에서도 가장 우려스럽고 해악적인 결과물이 바로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6.25m 높이의 흉측한 돌기둥 23개다.
서울시는 여기에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한국전쟁을 기억하며, 당시에 참전한 미국과 유엔(UN) 참전국에 고마움을 전한다는 명목으로 감사의 정원 이라 이름 붙였다. 길 건너편에 위치한 주한미국대사관을 향해 받들어 총 (집총경례)을 하는 형상을 의도적으로 연출했다는 이 조형물은,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을 기억하는 가장 최악의 태도를 보여준다.
기념비는 단순한 돌이나 금속 덩어리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의 가치관과 집단적 기억의 지향점을 드러내는 매개체이다. 누군가를 기리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누구를 제외할 것인가 의 문제와 직결된다. 그렇기에 특정 기억만을 영구히 박제하려는 시도는 역사의 다층적 진실을 가리고, 삭제된 이들의 목소리를 침묵시키는 것일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는 세계 각지에서 달려와 참혹한 전쟁 속에서 희생당한 참전군인들의 넋을 기억하고 추모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추모와 기억의 방식이 특정한 이념적 목적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역사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외면하거나 왜곡하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수많은 희생자들을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삭제하는 방식이어서는 결코 안 된다.
13일 아침, 서울 광화문광장 감사의 정원 에 들어선 감사의 빛 23 이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건너편 미국대사관 건물 중앙에 펼침막이 눈에 들어온다. 임병선 에디터
한국전쟁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단선적 사건이 아니었다. 1945년 해방 이후 미·소 강대국에 의한 인위적 분단, 미군정 체제의 모순, 그리고 1948년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 등을 거치며 5년간 내부적으로 축적되고 스며들었던 사회적·이념적 모순이 폭발한 비극적 결과였다. 해방 직후 휴전선 일대에서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을 격화시키며 전쟁으로 가는 길을 닦은 것에도 남북한 정권 모두에게 책임이 있었다.
즉, 한국전쟁은 냉전 체제의 시작과 함께 전개된 강대국들의 대리전이자, 한반도 내부의 민족적 갈등과 사회적 대립이 충돌하여 수백만 민중의 삶을 짓밟은 복합적 비극이었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들은 한반도의 분단과 뒤이은 전쟁에 커다란 역사적 책임이 있다. 나아가 전쟁 수행 과정에서 자행된 국민보도연맹 학살, 미군에 의한 노근리 양민 학살 등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도 결코 외면할 수 없다.
소련의 승인을 얻은 북한 정권의 기습 공격이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이처럼 다층적으로 얽혀 있는 역사의 복합성을 온전히 돌아봐야만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기억과 감사, 그리고 온전한 애도가 가능해진다. 참전 군인들뿐만 아니라,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민간인들, 각종 학살 피해자들을 망라하여 모든 비극의 당사자들을 기억할 때 이 땅에서 다시는 그러한 잔혹한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을 평화의 길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이 조성한 감사의 정원 에는 이러한 역사적 성찰과 복합적 관점이 완전히 빠져 있다.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미국과 자유 진영이 공산 진영의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주었다 라는 조악하고 뒤틀린 이분법적 관점뿐이다. 이는 오랫동안 이 사회를 지배했던 전형적이고 낡은 냉전주의적 시각의 재탕에 불과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6·25 전쟁 유엔 참전국 후손 교류캠프 참가자들에게 인사말을 하며 6·25 전쟁 22개 참전국과 국내외 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될 감사의 정원을 소개하고 있다. 2025.6.8 연합뉴스
결국 감사의 정원 은 전쟁의 참혹함과 민중의 고통을 망각한 채 한국전쟁을 낭만화된 영웅 서사로만 소비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반공=애국 , 국가 권력에 대한 비판=이적 행위 라는 고리타분한 이념적 구도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며, 시민들이 자유롭게 거닐고 소통해야 할 광화문을 군사적·이념적 선전 공간으로 변질시키는 상징 조작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편향성은 감사의 정원 지하에 조성된 전시 공간인 프리덤 홀 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곳은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었다 라는 메시지를 앞세운 채, 참전용사와 영웅 들의 인터뷰와 기록을 전시해 놓았다. 공산 진영에 맞선 자유 진영의 승리와 굳건한 한미동맹 을 일방적으로 찬미하며, 자유 와 경제 성장 이라는 가치만을 요란하게 포장하고 있다.
이처럼 오세훈의 서울시는 한국전쟁을 다루면서 냉전 이데올로기를 유포하고 보수우파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정치적 계산을 숨기지 않는다. 이미 참전 군인들을 기리고 추모하는 국가적 공간은 용산 전쟁기념관이나 국립서울현충원, 부산 유엔기념공원 등에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시민적 동의나 민주적 공론화도 없이 막대한 예산을 집어넣어 광화문 한복판에 이 사업을 밀어붙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윤석열의 12·3 쿠데타와 실패로 보수우파 정치 세력과 그 지지층이 심각한 분열과 위기에 처하자, 오세훈 시장은 이러한 상징물 조성을 더욱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주말마다 광화문 일대에서 전광훈 목사 등이 주도하는 집회에 참석해 이재명 구속 과 빨갱이 척결 을 외치는 극우 세력들과 각종 보수단체 회원들이 조직적으로 감사의 정원 을 방문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풍경이 일상화되었다.
이로써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 네거리에는 조선일보 사옥, 동아일보 사옥, 주한미국대사관, 그리고 감사의 정원 이 네 모서리를 둘러싸며 일종의 보수우파의 4대 기둥 처럼 진을 치게 되었다. 더욱이 감사의 정원 에 서 있는 돌기둥들은 매일 밤 하늘을 향해 레이저 빛을 쏘아 올리도록 설계되었다. 이는 마치 미국을 향해 받들어 총 을 외치는 냉전적 충성심을 서울의 밤하늘에 영원히 박제하겠다는 기괴한 집착처럼 보인다.
더욱 분노스러운 것은 감사의 정원 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오세훈 서울시가, 그동안 광화문 광장에 위치해 있던 세월호 참사 기억공간 을 광장 재구조화 공사 를 핑계로 사실상 강제로 철거했다는 점이다. 나아가 서울광장에 있었던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 에 대해서도 거액의 변상금을 물리는 등 온갖 행정적 압박을 가해 결국 철거 및 이전을 강요했다.
감사의 빛 23 이 시민이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없애 광장으로부터 시민을 밀어내지 않을까 걱정된다. 2026.5.12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그뿐만이 아니다. 성소수자들이 매년 서울광장에서 자유롭게 개최해 오던 퀴어문화축제 에 대해 광장 사용 승인을 불허하는 등 온갖 방해 공작을 펼쳐왔으며, 이동권과 권리 예산 확보를 요구하며 지하철에서 평화로운 침묵 시위를 이어가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을 향해 경찰력을 동원한 가혹한 물리적 탄압을 가했던 것 역시 오세훈의 서울시였다.
서울시가 약자들의 목소리를 억누르면서 강조하던 명분은 광장과 공공시설은 특정 단체의 독점적 공간이 아니라 모든 시민을 위한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한 모든 시민 에서 사회적 참사의 유가족, 성소수자, 장애인, 약자들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결국 오세훈 서울시의 진정한 목적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요구하는 약자들의 공간을 박살 내고, 자신들의 낡은 이념과 조형물로 광장을 독점하는 것이었음이 증명되었다.
따라서 광화문 광장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감사의 정원 은 지금이라도 말끔히 철거되거나, 그 취지에 맞게 용산 전쟁기념관이나 국립서울현충원 등 전문 추모 공간으로 이전되는 것이 마땅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법적 단죄를 통해 시장직에서 물러나기 전에, 자신이 광화문 한복판에 퍼질러 놓은 이 이념적 오물과 불통의 상징물을 청소하고 떠나야 한다.
물론 오세훈 시장에게 그러한 양심이나 책임감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서울시의회의 민주당과 야당들이 나서서 감사의 정원 을 유지·운영하기 위해 편성된 서울시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 또한 관련 조례의 제정과 개정을 통해 해당 시설물의 철거 및 이전을 압박해야 한다. 철거·이전 요구 결의안을 채택할 수도 있다. 그것이 서울시장의 독주를 막을 수 있도록 3분의 2 이상의 서울시의회 의석을 쥐여준 서울시민들의 뜻에도 부합한다.
광화문광장은 어느 특정 정치인의 전유물도, 낡은 냉전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관제 선전장도 아니다. 불의한 권력에 맞서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를 스스로 지키고 완성해 온 위대한 시민들의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세월호와 이태원의 아픔을 안고 평화와 인권, 생명의 가치를 함께 나누는 공간, 그리고 지친 시민들이 아무런 이념적 압박 없이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는 생태와 문화의 공간으로 반드시 되돌려놓아야 한다.전지윤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