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보다 홀밥 , 혼술 대신 홀술 써보면 어떨까 [뉴스] 반갑습니다. 우리말의 결을 살려 마음을 보듬는 ‘토박이말 결지기’입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홀밥 홀술
요즘 먹는 것과 아랑곳한 토박이말을 잇달아 살펴보고 있습니다. 여럿이 돈을 나누어 음식을 마련해 먹는 ‘도리기’, 사람마다 다른 먹는 양이나 먹는 모습을 나타내는 ‘먹새’, 여러 가지 음식을 조금씩 바꾸어 가며 먹는 ‘맛맛으로’까지 만나 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먹는 것과 아랑곳해 우리가 아주 흔하게 쓰는 말 하나를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습니다. 바로 ‘혼밥’과 ‘혼술’입니다.
여러분도 이 말들을 많이 쓰시지요? 혼자 밥을 먹으면 ‘혼밥’, 혼자 술을 마시면 ‘혼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라는 뜻을 나타내려면 꼭 ‘혼-’이어야 할까요? 저는 우리말의 짜임을 생각한다면 ‘홀밥’, ‘홀술’이라고 해 보는 것이 더 알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혼-’은 정말 ‘홀로’라는 뜻일까요?
우리가 ‘혼밥’, ‘혼술’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까닭은 ‘혼자’의 ‘혼’을 떼어 내어 ‘홀로’라는 뜻으로 쉽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일 ‘혼-’을 붙여 ‘홀로’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을 찾아보면 혼자 말고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혼자’라는 말에서 ‘혼’이 ‘홀로’가 이어지는 말이라고 단순하게 볼 수도 없습니다. ‘혼자’의 말밑을 따라가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혼-’과는 다른 모습이 드러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혼자 의 말이 바뀌어 온 길을 다음과 같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 혼자 의 바뀜길(변천과정)]
그러니 ‘혼밥’이라는 말을 보고, 혼 + 밥 = 혼자 먹는 밥 이라고 우리말의 짜임으로 자연스럽게 풀어 내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우리말에서 ‘홀로’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말에는 ‘홀로’와 이어지는 말이 많습니다
바로 ‘홀’입니다. 우리는 이미 ‘홀’이 들어간 여러 말을 쓰고 있습니다. 가장 익숙한 말이 홀아비 와 홀어미 일 것입니다. 짝이 없이 혼자 된 남자와 여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 ‘홀몸’, ‘홀로서기’, ‘홀로되다’ 같은 말에서도 ‘홀’과 ‘홀로’가 이어지는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홀- 을 ‘짝이 없이 혼자뿐인’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말에는 옛날부터 혼자, 하나, 짝이 없이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홀’과 아랑곳한 말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새로운 말을 만들 때는 ‘혼-’을 가져다 붙이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혼밥, 혼술, 혼행, 혼영….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여행하고, 혼자 영화를 보는 일을 이렇게 나타냅니다. 말이 만들어지고 널리 쓰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한번쯤 우리말의 짜임으로도 이런 말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볼 만합니다.
그렇다면 ‘홀밥’과 ‘홀술’은 어떨까요?
혼자 밥을 먹는다면 홀밥, 혼자 술을 마신다면 홀술.
어떻습니까? 처음에는 ‘혼밥’, ‘혼술’보다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뜻을 어림하기는 오히려 쉽습니다.
홀 + 밥
홀 + 술
‘홀-’이 ‘홀로’와 이어지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처음 보는 사람도 뜻을 어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점심은 홀밥했어.”, 일 마치고 집에서 홀술했어.”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홀밥’이라는 말을 처음 듣는 사람도 ‘홀로 먹는 밥인가?’ 하고 뜻을 어림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말은 누구나 쉽게 뜻을 어림할 수 있을 때 더욱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먹는다고 외로운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홀밥’이나 ‘홀술’이라고 하면 외롭다, 쓸쓸하다는 느낌까지 따라붙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즘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는 모습은 꼭 외로움 때문만은 아닙니다. 일이 바쁜 사람들은 혼자 밥을 먹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일정에 맞추지 않고 제 시간을 즐기려고 혼자 밥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나들이를 갔다가 마음에 드는 밥집에 혼자 들어갈 수도 있고, 하루를 마친 뒤 조용히 혼자 술 한잔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홀밥’이나 ‘홀술’이라는 말을 쓸 때도 혼자라는 사실과 외롭다는 느낌을 굳이 한데 묶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홀로 하는 밥, 홀로 마시는 술이라고 담담하게 나타내면 좋겠습니다. 말이 사람의 모습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말글을 다듬는 한 가지 방법이 아닐까요?
‘혼-’보다 ‘홀-’이 더 잘 보이는 까닭
제가 ‘홀밥’과 ‘홀술’을 생각하게 된 까닭은 단순히 ‘혼밥’과 ‘혼술’을 다른 말로 바꾸자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말을 만들 때 우리말다운 짜임을 살펴보자는 데 뜻이 있습니다. ‘혼-’을 붙이면 ‘혼자’의 ‘혼’에서 따온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많이 쓰는 말 가운데 혼- 이 들어간 말은 혼돈 , 혼란 , 혼선, 혼식 과 같이 혼자 와는 거리가 먼 말입니다.
하지만 ‘홀’은 ‘홀로’와 이어지는 말이라는 것을 여러 낱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새로운 말을 만들 때 ‘홀-’을 쓰면 뜻도 더 쉽게 어림할 수 있고, 우리말의 짜임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미 널리 쓰이는 ‘혼밥’과 ‘혼술’을 당장 버리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앞으로 새로운 말을 만들거나 우리말로 바꾸어 말할 때는 ‘혼자’라는 뜻을 나타내는 우리말이 무엇인지 한번 더 살펴보자. 이렇게 제안하고 싶은 것입니다.
‘혼자’라는 말 하나에 기대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토박이말을 알아가는 일이 단순히 오래된 낱말을 찾아 외우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말을 만들 때에도 우리말의 결을 살펴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에는 다른 나라말에서 들어온 것도 있고, 다른 말과 섞여 새롭게 만들어진 것도 있습니다. 그것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말로도 넉넉히 나타낼 수 있는 뜻이라면 우리말의 뿌리와 짜임을 살려 새로운 말을 만들어 보는 시도도 해 볼 만하지 않을까요?
‘혼밥’과 ‘혼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면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재미있는 말들이 더 떠오릅니다.
혼자 걷는다면 홀걷기,
혼자 나들이를 간다면 홀나들이,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홀살이.
말할 것도 없이 이런 말들이 모두 이미 쓰이는 말은 아닙니다. 새롭게 만들어 볼 수 있는 말의 보기일 뿐입니다. 무엇보다 ‘홀밥’과 ‘홀술’은 이미 널리 쓰이는 ‘혼밥’, ‘혼술’과 짜임이 같아 바꾸어 생각해 보기 쉬운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말의 뿌리를 살펴 새로운 말을 만들어 보는 것은 우리말을 더 가멸지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은 쓰는 사람이 있어야 살아납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사람들이 쓰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도리기’도 그렇고 ‘먹새’나 ‘맛맛으로’도 그렇습니다. 말집(사전)에 올라 있다는 것만으로 말이 살아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나날살이에서 한 번 더 꺼내 쓰고, 다른 사람이 듣고 뜻을 알아듣고, 또 그 사람이 다시 쓰면서 말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홀밥’, ‘홀술’도 한번 써 보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둘레 사람들이 오늘 혼밥했어.” 라고 한다면,
나도 오늘 홀밥했어.” 하고 한번 말해 보는 것입니다.
누군가 주말에 혼술이나 할까?” 라고 한다면,
나는 오늘 홀술 한잔하려고.” 하고 말해 보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낯설겠지만, 낯선 말은 한번 쓰면 두 번째부터 조금 덜 낯섭니다. 우리말의 짜임에 어울리는 말을 하나씩 찾아 쓰다 보면 우리말로 나타낼 수 있는 자리도 조금씩 넓어질 것입니다.
[마음 나누기]
여러분은 ‘혼밥’, ‘혼술’이라는 말을 자주 쓰시나요? 앞으로 혼자 밥을 먹거나 혼자 술을 마실 일이 있다면 ‘홀밥’, ‘홀술’이라고 한번 말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처음 들어 본 사람에게는 이렇게 설명해 주어도 좋겠습니다. ‘혼자’라는 뜻의 ‘혼-’ 대신 ‘홀로’와 이어지는 ‘홀-’을 써 본 말이야.” 여러분은 ‘홀-’을 넣어 어떤 말을 만들어 보고 싶으신가요?
[한 줄 생각]
새로운 말을 만들 때에도 우리말의 뿌리를 살펴보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말의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 홀밥/홀술
뜻: 혼밥 을 우리말 짜임에 맞춰 다듬어 본 말
관련된 말: 홀로, 홀아비, 홀어미, 홀몸, 홀로서기
보기: 오늘은 다들 밖에서 먹고 들어온다고 해서 집에서 홀밥으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오늘 한마디: 오늘은 집에서 조용히 홀술이나 하려고 합니다.”
[토박이말 길잡이] 결지기 이창수
이창수 시민기자 maljig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