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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이마에 신성모독 낙인 B …실패 통한 반면교사 J 네일러

이마에 신성모독 낙인 B …실패 통한 반면교사 J 네일러
[뉴스]
전쟁터에서 양심의 길로 역사는 가끔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고, 가끔은 바보로 만든다. 더 흥미로운 일은 같은 사람에게 두 일이 함께 일어난다는 점이다. 제임스 네일러(James Nayler, 1618~1660)는 누군가에게 신성모독자로 불렸고, 어떤 이에게는 양심의 자유를 위해 몸을 던진 선구자로 기억된다. 세월은 참 공평하다. 당시 재판관들의 이름은 대부분 잊혔지만, 낙인이 이마에 새겨진 사람의 이름은 지금도 남아 있다. 네일러는 영국 요크셔에서 태어나 잉글랜드 내전(1642~1651) 때 의회군에서 복무했다. 전쟁은 그에게 승리보다 인간의 허망함을 가르쳤다. 농사를 짓던 어느 날 깊은 종교적 체험을 한 뒤 삶을 바꾸었고, 조지 폭스(George Fox, 1624~1691)를 만나 퀘이커 운동에 뛰어들었다. 당시 퀘이커는 성직자보다 양심을, 화려한 예배보다 내면의 빛을, 권위보다 평등을 강조했다. 지금이야 모두가 평등하다 는 말이 교과서 첫 장에 적혀 있지만, 그때 권력자의 귀에는 거의 혁명 선언처럼 들렸다.   이마에 B (Blasphemer, 신성모독자)라는 낙인이 찍힌 제임스 네일러(위키피디아) 추종은 믿음을 넘어 우상숭배가 되었다 네일러는 뛰어난 설교자였다. 말솜씨가 좋아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세상은 늘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그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때문에 더 시끄러워진다. 일부 추종자들은 그를 예수와 같은 존재로 떠받들기 시작했다. 결정적 사건은 1656년 영국 브리스틀에서 벌어졌다. 네일러는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한 장면을 본뜬 행렬을 이끌었다. 그는 스스로를 예수라고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추종자들은 호산나 를 외치며 그를 맞았다. 오늘날로 치면 사회관계망에서 과열된 팬덤이 현실정치와 종교를 뒤섞어 버린 셈이었다. 그 시대에는 악성 댓글 대신 뜨거운 쇠막대기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의회는 그를 신성모독죄로 재판했다. 형벌은 참으로 잔혹했다. 채찍질을 당하고, 달군 쇠로 혀를 뚫렸으며, 이마에는 신성모독자(Blasphemer)를 뜻하는 B 글자가 낙인으로 찍혔다. 이어 장기간 투옥되었다. 국가가 사상의 오류를 고친다며 사람의 몸을 고친다는 발상은 늘 비슷하다. 생각을 바꾸지 못하면 피부라도 바꾸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의외로 끈질기다. 피부는 상처를 남겨도 사상은 살아남는다.   채찍질을 당하고, 달군 쇠로 혀를 뚫린 제임스 네일러(위키피디아) 실패가 공동체를 더 성숙하게 만들다 흥미로운 점은 퀘이커 내부의 반응이었다. 폭스는 네일러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개인 숭배가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끝내 네일러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감옥에서 나온 네일러는 자신의 지나침을 인정했고, 퀘이커 공동체와 화해했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수한 사람을 다시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에서 자라난다는 사실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네일러는 1660년 가족에게 돌아가던 길에 강도를 만나 크게 다쳤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 그는 미움보다 사랑을, 복수보다 평화를 말하는 글을 남겼다. 아이러니하게도 생애 마지막의 침묵이 젊은 시절의 격렬한 외침보다 더 오래 울렸다. 그가 역사에 남긴 영향은 의외로 크다. 퀘이커는 그 뒤 개인숭배를 경계하면서도 양심의 자유는 더욱 분명히 지켰다. 훗날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노예제 폐지, 여성참정권과 여성의 사회참여 같은 여러 흐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네일러는 성공한 지도자라기보다 실패를 통해 공동체를 성숙하게 만든 인물이었다. 성공은 교과서를 만들지만 실패는 매뉴얼을 만든다.   제임스 네일러 평전(김성수 시민기자 소장) 오늘의 한국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한국에서 네일러 이야기가 던지는 시사점은 적지 않다. 오늘의 한국사회 역시 특정인물에 대한 과도한 충성과 맹목적 적대가 반복된다. 정책보다 사람을 숭배하고, 토론보다 진영을 선택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어느 편이든 우리 편은 무조건 옳다 는 순간, 이미 네일러 사건의 절반은 시작된 셈이다. 또 하나의 교훈은 국가권력의 절제다. 당시 영국은 사상의 문제를 형벌로 해결하려 했다. 오늘날 한국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표현의 자유와 허위정보 규제, 종교와 정치의 경계, 양심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국가가 진실을 독점하려는 유혹을 경계하는 일이다. 진실은 법으로 선포하는 순간보다 자유롭게 토론할 때 더 가까워진다. 한편 시민사회에도 숙제가 있다. 자유는 책임과 함께 간다. 네일러 사건은 권력이 과잉 대응한 비극인 동시에, 추종자들의 무비판적 열광이 빚어낸 비극이기도 했다. 민주주의는 영웅을 만드는 제도가 아니라 영웅을 견제하는 제도다. 박수도 적당히 쳐야 박자가 맞는다. 너무 오래 치면 집단최면이 된다. 오늘의 한국이 배워야 할 점은 분명하다. 첫째, 양심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되 우상화를 경계할 것. 둘째, 국가권력은 신념보다 행동을 다스릴 것. 셋째, 시민은 지도자를 사랑하기보다 감시할 것. 넷째, 실수한 사람을 영원히 매장하기보다 공동체 안에서 다시 책임질 기회를 줄 것.   제임스 네일러.(James Nayler - Bristol Radical History Group) 낙인은 지워져도 질문은 남는다 제임스 네일러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인간적이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지금도 살아 있다. 역사는 성인(聖人)보다 실수하는 인간을 통해 더 많은 것을 가르친다. 네일러의 이마에 새겨진 B 는 신성모독자의 낙인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다른 뜻으로도 읽힌다. 생각하라. 권력이든 군중이든 맹신하지 말고, 먼저 스스로 생각하라는 오래된 경고 말이다. 그 경고는 17세기 영국만이 아니라 21세기 한국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제임스 네일러.(NPG D29205; James Nayler - Portrait - National Portrait Gallery)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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