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을 지킨 사람, 비밀을 썼다가 자격을 잃다 [사람들] 수학선생, 판잣집으로 불려 가다
고든 웰치먼(Gordon Welchman, 1906~1985)은 영국 브리스틀 근교에서 태어난 수학자다. 케임브리지에서 가르치던 평범한 교수였는데, 1939년 2차세계대전 직전에 영국정부 암호학교 책임자 앨러스테어 데니스턴(Alastair Denniston, 1881~1961)의 부름을 받았다. 일터는 런던 북서쪽 블레츨리 파크(Bletchley Park)였다. 나라에서 머리 좋기로 손꼽히는 이들을 모아 놓고 사무실은 판잣집으로 내주었으니, 인재는 귀하게 쓰되 예산은 아끼는 관청의 오랜 솜씨는 그때도 건재했던 셈이다.
고든 웰치먼(위키피디어)
깨지지 않는다던 기계
당시 독일군은 에니그마(Enigma)라는 암호기계로 통신했다. 자판을 치면 글자가 뒤죽박죽 튀어나오고 설정이 날마다 바뀌어, 경우의 수가 하늘의 별만큼 많았다. 독일은 절대 못 깬다고 믿었는데, 믿음이 깊을수록 경계가 느슨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사실 길을 처음 낸 쪽은 폴란드였다. 마리안 레예프스키(Marian Rejewski, 1905~1980) 같은 폴란드 수학자들이 1930년대 초에 이 기계를 뚫었고, 1939년 7월 그 성과를 영국과 프랑스에 통째로 건넸다. 독일의 침공을 한 달여 앞둔 때였다. 제 나라가 짓밟히기 직전에 곳간을 열어 이웃을 도운 셈이니, 승전의 공을 따질 때 폴란드부터 앞세우는 것이 도리다.
마리안 레예프스키 1932년경(위키피디아)
대각선 판과 통신의 겉모습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은 폴란드 기계를 손봐 봄브(Bombe) 라는 해독기를 설계했다. 웰치먼은 여기에 대각선 판 이라는 장치를 더하자고 냈다. 에니그마는 글자 B가 G로 이어지면 G도 B로 이어지는 성질이 있는데, 이를 배선에 옮겨 담자 가정 하나만 세워도 반대쪽 연결이 저절로 따라 나와 틀린 설정이 훨씬 빨리 걸러졌다. 미로를 헤매는 쥐에게 지름길 표지판을 달아 준 격이다.
그의 재주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통신문의 내용을 읽지 않고도 겉모습만으로 정보를 캐내는 법을 다듬었다. 누가 누구에게 언제 얼마나 자주 보내는지만 세도 독일군 부대의 배치와 움직임이 드러난다. 연애편지를 뜯지 않아도, 매일 밤 열통씩 오가는 봉투만 세면 두 사람 사이를 아는 이치다.
앨런 튜링 1951년(위키피디아)
6동의 살림꾼
1940년 1월 무렵 독일 육군과 공군의 에니그마를 읽기 시작하자, 이 일을 맡을 6동(Hut Six)이 꾸려지고 웰치먼이 수장이 되었다. 스무 명 남짓이던 식구는 1943년 9월 450명을 넘겼다. 해독실과 등록실은 주로 여성들이 맡았다. 웰치먼의 회고로는 건물이 가로 18미터, 세로 9미터쯤에 화장실도 없었다. 세계사의 향방을 바꾸는 일이 대개 불편한 자리에서 이루어진다는 증거로 삼기에 충분하다.
1941년 10월 21일에는 앨런 튜링, 휴 알렉산더(Hugh Alexander, 1909~1974), 스튜어트 밀너배리(Stuart Milner-Barry, 1906~1995)와 함께 총리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일손이 모자라 일이 막힌다고 호소했다. 윗선을 건너뛴 이 무모함에 처칠은 오늘 당장 처리하라 는 딱지를 붙여 답했다. 관료사회에서 지름길로 가면 대개 좌천이지만, 이번에는 일이 풀렸다.
스튜어트 밀너배리(위키피디아)
공은 컸고 뒤끝은 길었다
1943년 웰치먼은 기계화 담당 부국장으로 옮겨 미국과의 암호 협력을 맡았고, 6동은 스튜어트 밀너배리가 이어받았다. 밀너배리는 훗날 웰치먼이 없었다면 해독정보 울트라 가 전쟁을 줄이는 데 그만한 몫을 했을지 의문 이라고 평했다. 역사가마다 셈이 다르지만 짧게는 몇 달, 길게는 2년쯤 2차세계대전이 단축됐다고 본다. 웰치먼은 2차세계대전 후인 1948년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컴퓨터 첫 강의를 맡았고, 군 통신체계를 설계하는 일에 몸담았다. 1962년 미국 시민이 되었고, 1971년 은퇴한 뒤에도 자문을 이어 갔다.
전쟁 중의 비밀은 오래 지켜졌다. 1974년 프레더릭 윌리엄 윈터보텀(Frederick William Winterbotham, 1897~1990)이 『울트라 비밀』을 내면서 뚜껑이 열렸다. 그 뒤 웰치먼이 1982년 『6동 이야기(The Hut Six Story)』를 출판하면서 이 책에서 2차대전 중 자신이 한일의 조직운영과 기술을 자세히 풀자, 미국 국가안보국이 못마땅해 했다. 책이 금서가 되지는 않았으나 그는 비밀취급 인가를 잃고 자문 일이 끊겼으며, 언론에 옛일을 말하는 것도 금지 당했다. 조국을 구한 노인이 30년도 더 지난 일을 적었다고 밥줄을 잃은 것이다. 그는 1985년 10월 8일 미국 뉴버리포트에서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 폴란드의 해독기에서 영국의 해독기로 이어진 내력을 다룬 유고논문이 실렸다.
프레더릭 윌리엄 윈터보텀(위키피디아)
한국에서 되새길 것
첫째는 사람 쓰는 법이다. 영국은 급해지자 수학자, 어학자, 체스 명인, 그리고 수많은 여성까지 가리지 않고 불러 모았다. 물음은 하나, 문제를 풀 수 있느냐 였다. 한국의 공직인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학교와 고향과 친분으로 자리를 나누는 소동이 되풀이된다. 윤석열이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에도 군과 정보기관의 요직이 특정인맥으로 채워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나라의 가장 예민한 일을 능력보다 연줄이 맡을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 우리는 이미 겪었다.
둘째는 통신 내용이 아닌 통신 기록이다. 웰치먼은 편지를 뜯지 않고도 봉투만으로 사람과 조직의 움직임을 읽는 법을 보였다. 한국에서는 수사기관이 통신사에서 가입자 정보를 넘겨받는 일이 잦고, 당사자가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 논란이 이어져 왔다. 내용은 보지 않았으니 괜찮다는 말은 웰치먼의 성과 앞에서 힘을 잃는다. 통신 기록만으로도 한 사람의 삶이 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법원의 통제를 어떻게 두텁게 하고 당사자에게 어떻게 알릴지 따져 볼 일이다.
셋째는 비밀의 유통기한과 말하는 사람의 몫이다. 비밀은 필요하다. 그러나 비밀이 권력의 가림 막이 되는 순간이 문제다. 12·3 계엄 전후의 문서와 통신기록이 빠짐없이 보존되어 때가 되면 공개되도록 하는 일, 그리고 안에서 진실을 말한 사람이 웰치먼처럼 밥줄을 잃지 않도록 공익신고자를 지키는 일이 함께 가야 한다. 비밀을 지키는 일과 진실을 덮는 일은 다르다.
웰치먼은 전쟁 통에는 나라를 구했고 평화로운 때에는 벌을 받았다. 한국은 그 순서가 뒤바뀌기를 바란다. 잘못을 저지른 쪽이 벌을 받고, 진실을 말한 쪽이 보호받는 나라 말이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비밀은 결국 열리고, 그때 누가 무엇을 했는지 만 남는다.
2차대전 중 웰치먼이 일하던 판잣집 블레츨리 파크(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