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대화 추진 위한 핵심 안보역량 희생 안된다 [뉴스] 미국과 이란이 60일 기한으로 체결했던 ‘미국·이란 종전 양해각서(MOU)’가 8월 17일 자정(미국 현지시각) 공식 종료되면서 이란 전쟁은 장기 교착상태에 접어들었다. 그 7시간 전인 16일 오후 5시(한국시각 17일 오전 6시) 트럼프 대통령은 헤그세스 전쟁장관(국방장관)에게 한미군사연습(UFS)의 대폭 축소(11일→5일)를 지시했다고 밝히고, 다음날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이 대화 제안에 응답했다며 현재 북미 대화 상황이 매우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20일 2026년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 의 하나로 울릉도 사동 여객선터미널에서 실시된 대테러 종합훈련에서 해군 118전대 장병들과 독도경비대원들로 구성된 통합기동타격대가 사주 경계를 실시하고 있다. 2026.8.20. [해군 1함대 제공]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허언(虛言)이 아니라면, 장기간 교착국면에 있는 한반도 정세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미정상회담 재개 노력을 크게 환영한다. 한반도 냉전 구조를 해체하고 평화공존의 시대로 나아가는 대화의 문은 언제든 열려 있어야 한다. 과거처럼 남북대화가 반드시 북미대화의 입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식의 경직된 서울 경유론 을 폐기하고 북미 직거래를 통해 긴장 완화의 계기를 마련하는 유연한 접근을 지지한다.
자국 내 정치위기의 출구전략 불과한 북미 대화 띄우기
우리가 맨 먼저 짚어야 할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북한의 긍정적 호응이 사실인지 여부이다. 트럼프는 이란이 먼저 종전협상을 제안했다고 했으나 이란이 이를 부인한 바 있기 때문이다. 8월 19일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장은 「주요국제문제들에 대한 립장 발표」를 통해 북미 접촉설에 대해 그런 제안이나 호응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다”며 일축했다. 아울러 수뇌들 사이의 개인적 관계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조미 사이의 대결 구도를 바꿀 수 없다”고 못 박으며, 트럼프의 조기 접촉론을 전면 부인했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북한의 부인과 거부하는 듯한 기류에도 불구하고 ‘대화 국면’을 서둘러 띄우려 하는가. 핵심은 중동 전선의 실패를 가리기 위한 외교적 피벗(Pivot)에 있다. 미·이란 종전 합의의 연장 협상이 무산되며 전쟁이 수렁에 빠진 상황에서, 한국 정부마저 비군사적 지원 원칙을 고수하며 미국의 파병 및 군사지원 요구에 선을 긋자 막대한 전비 부담은 물론이고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중국 신화통신의 평가에 따르면, 미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지지부진한 이란전의 부담을 희석하고 물타기하기 위한 가장 극적인 국면 전환 카드로 ‘북미 정상 담판’을 끌어들인 것이다. 대북 및 대이란 정책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미국의 정책적 좌절감과 조급증이 표출된 결과이며, 북한에 일방적 우호 신호를 보내서라도 선거용 외교 치적을 급조하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트럼프의 조기 북미 대화 띄우기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전략적 고뇌의 산물이라기보다 자국 내의 정치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출구전략에 불과하다. 북한의 실질적인 태도 변화가 결여된 상태에서 미국 내 정치적 동기로 급조된 대화 제스처는 한반도 평화에 일시적 착시만을 줄 뿐 이뤄지기 어렵다. 설사 성사되더라도 한반도의 구조적 긴장을 해소하는 진정한 돌파구가 되기 어렵다.
과연 북한이 대화에 응할 것인가
현재 국면에서는 이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군불때기에 북한이 순순히 응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조건 없는 대화’나 ‘정상 간 친분 과시에 기반한 접근’을 철저히 불신하고 있으며, 실질적인 대미 양보나 적대시 정책의 근본적 철회 없이는 협상 테이블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여정이 8월 19일 ‘립장 발표’에 이어 20일 담화까지 연이틀 거친 어조로 나온 것 자체가 미국의 섣부른 조기 대화설에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다.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연합연습 축소 수준의 양보로는 협상에 응할 생각이 없으며, 미국의 조급증을 역이용해 판돈을 한껏 올리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김여정 북한 로동당 총무부장이 야외 사격장에서 북한이 새로 개발한 저격수소총을 겨누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6. 2. 28 연합뉴스
북한은 이미 러시아와의 군사밀착과 중·러와의 연대를 통해 외교적·경제적 숨통을 틔운 상태여서 급할 게 없다. 이란과 협상하는 와중에 참수작전을 감행했던 트럼프의 신뢰할 수 없는 ‘중간선거용 이벤트’에 들러리를 서기보다는,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받고 대북 제재가 완전히 무력화되는 수준의 거대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한 시간끌기 전략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한미동맹의 핵심 군사적 기반을 해체하는 수준의 ‘백기 투항식 양보’를 하지 않는 이상 본격적인 대화에 나설 이유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식 쇼맨십만으로는 북한의 문을 열 수 없으며, 오히려 북한의 몸값과 협상 문턱만 높여주는 역효과를 낳을 위험성이 높다.
한반도 안보구도 뒤흔드는 북한의 대화 조건
문을 굳게 닫아건 북한과의 대화 시도 자체는 긍정적이다. 다만 대화 재개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협상 테이블이 열릴 경우를 대비해 그 동안 북한이 내건 조건들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북한이 내건 대화 조건에는 한반도 안보구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위험한 독소조항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김여정은 7월 27일 담화에서 핵보유국의 위치와 존재의의는 최종적이며 불가역”이라며 비핵화 협상을 전면 거부하고 있다. 8월 19일 트럼프는 북한의 57개 핵무기 보유”를 직접 공표하고 비핵화 목표에 대해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회피한 것은, 아무리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것이라 해도 비핵화를 거부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려는 북한의 프레임에 말려든 것으로 비치고 있다.
미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에서 벗어나 한국방위의 한국화를 위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원잠) 사업에 대해서도 북한은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이미 대남라인을 총괄하는 장금철 북한 외무성 제1부상 겸 10국 국장은 8월 12일 담화를 통해 한국의 원잠 계획을 국가의 안전과 해상주권에 대한 엄중한 도전”이라며 보복공격 능력을 갖추겠다고 위협했다. 8월 19일 김여정 담화에서도 우리의 원잠 확보를 ‘비확산체제 교란이자 군비경쟁 도발’로 규정하며 미국의 협조 중단을 거듭 압박했다.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다수 발사한 20일 서울역 대합실 TV 화면에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2026. 8. 20 연합뉴스
북한은 트럼프의 한미연합연습(UFS) 대폭 축소지시를 폄하하면서도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부재를 즐기고 있다. 김여정은 8월 20일 담화를 통해 지휘권을 상전에게 맡긴 허수아비 군대의 숙명”이라며 우리의 지휘 구조와 전략적 자율성을 정면으로 조롱했다. 실제로 한미연합연습이 중단될 경우 한국군 주도의 연합방위능력 검증(FOC/FMC)을 마비시켜 전작권 회복을 무기한 표류시킴으로써 계속 주한미군이 한국군의 전작권을 행사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대화만을 위한 핵심 안보 희생은 옳지 않아
북한이 우리의 자강평화 역량의 무력화를 대화의 전제로 내거는 상황에서, 국내 일각에서는 바늘구멍을 뚫는 심정으로, 우리 안보를 희생해서라도 대화 재개를 지지하고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협상 결과도 아닌 대화 자체만을 위해 전작권 연기, 원잠 중단을 받아들이는 것은 한국의 자주국방 역량을 무력화하고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을 영구화하는 고도의 전략적 덫에 걸려드는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를 단번에 달성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할 때, 핵동결과 긴장완화를 출발점으로 삼는 ‘단계적 접근법’은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남북 간의 우발적 군사충돌을 막아줄 「9.19군사합의」의 수정·복원 노력을 외면한 채 미 본토 위협(ICBM)만 제거하고 자기들의 안전만 챙기는 거래주의적 타협에 동조하는 것은 한국을 북한의 전술핵 인질로 방치하는 자해적 결과만을 낳는다.
설사 북미협상이 이뤄지고 남북대화가 성사되더라도 협상은 수년 이상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단계적 협상 국면에서 우리의 생존을 담보할 핵심 억제 자산을 대화의 입장권으로 지불할 수는 없다. 전작권 환수에 필수적인 군사연습마저 중단하는 것은 군사주권의 회복을 영구히 포기하는 일이며, 원잠 사업의 중단은 북한 잠수함발사미사일(SLBM) 위협을 감시·타격할 비대칭 억제력을 스스로 걷어차는 처사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평화공존과 공동성장’은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할 대북 정책의 목표다. 하지만 이러한 국정목표를 추진할 때 경계해야 할 것은 ‘대화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우리 안보주권과 자체 억제 역량을 허무는 우(愚)’를 범하는 일이다. 핵심 안보이익을 희생하는 방식의 대화 추진은 평화의 환상만을 낳고 국가 생존의 안전판을 걷어낼 뿐이다.
전작권 회수, 원잠 조기 확보 노력 흔들림 없어야
우리는 북미 직거래를 통한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의 프로세스를 적극 지지하되, 이를 추진하는 발판은 철저히 흔들리지 않는 자주국방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자강평화’는 대화 상대에 대한 굴종이나 일방적 양보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확고한 억제력 위에서만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맹과의 사전 조율 없는 트럼프의 갑작스러운 일방적 한미연습 축소 지시, 그리고 8월 20일 북한의 미사일 다수 발사에 대해 미국과 동맹에 즉각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축소 발표하며 트럼프의 유화 제스처에 보조를 맞추는 미 태평양사령부의 태도는, 역설적으로 왜 우리가 미국의 변덕에 흔들리지 않는 ‘자강평화’를 구축해야 하는지를 웅변해 준다.
조성렬 경남대학교 초빙교수
8월 18일 이재명 대통령이 을지연습 첫날 국무회의에서 천명했듯, 전작권의 임기 내 차질 없는 환수와 원자력 추진 잠수함 사업의 속도전은 어떠한 정세 변화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관철되어야 한다. 군사주권을 온전히 회복하여 우리 군 주도의 연합방위체제를 조기 확립하고 원잠을 확보해 독자적 억제력을 갖출 때 비로소 우리는 북한의 조롱 섞인 통미봉남식 접근을 베제하고 트럼프식 외교 불확실성을 넘어서는 진정한 한반도 평화공존의 주도자가 될 수 있다.조성렬 전략노트 insscs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