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시대의 관문 용산을 비워둬야 [뉴스] 서울 용산 어린이정원 일대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0일 필자는 민들레 지면에 「사법기관 지방으로 분산하고 용산공원은 지켜야」를 썼다. 서울 주택난의 응급처치는 빈집 매입임대에 있고 근본 처방은 대법원·헌법재판소와 신설 중수청·공소청을 거점 대도시로 보내는 데 있다는 이야기였다. 용산공원을 헐어 아파트를 짓는 일은 병의 원인을 키우며 마지막 공유자산을 부동산게임의 판돈으로 던지는 갈택이어(竭澤而漁)라고 썼다.
그렇다면 용산공원은 언제까지나 비워두어야 할 존재인가? 그게 그렇지 않다. 서울시가 도시계획의 백년대계를 가장 왕성하게 짤 무렵인, 1990년대의 서울연구원에는 서울21세기연구센터가 있었고, 당시 장기구상에서는 통일 후 가장 각광받을 지역으로 용산 미군기지가 주목되었다. 왜냐하면 남북평화시대가 언젠가 도래하고 미군기지가 옮겨가면 용산의 빈 땅은 유라시아시대의 관문이 될 것이라는 비전이 있었다. 미군기지가 옮겨가게 되는 지금 그 비전은 더욱 살아 있다.
철도 노선구조가 말해주는 것
지도를 펴놓고 철도를 따라가 보자. 서울역은 경부선의 기점이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대동맥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대륙으로 향하는 두 간선은 다르다. 신의주로 가는 경의선과 원산으로 가는 경원선은 애초에 용산을 기점으로 부설됐다. 지금도 용산역은 호남선과 전라선 고속열차의 기종점 노릇을 하니, 이미 두 방향의 간선을 거느린 역이다. 게다가 지금 용산은 동해선과 중앙선의 기종점 역할까지 분담하고 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유라시아로 나가는 육상 회랑은 크게 둘이다. 하나는 신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중국을 가로질러 카자흐스탄으로 빠지는 중국횡단철도(TCR) 경로이고, 다른 하나는 원산과 나진을 거쳐 러시아로 넘어가 시베리아횡단철도(TSR)에 올라타는 경로다. 그 두 경로로 이어지는 국내 간선의 출발점이 모두 용산이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자의로 정해진 것이 아니다. 한강을 건너온 철도가 도성으로 들어서는 길목이 용산이었고, 바로 그 지점에서 북행 간선이 갈라졌다. 게다가 용산은 예부터 한강 수운이 닿는 곳이어서 물길과 철길이 만나는 결절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곳에 조차장과 공작창이 들어섰고, 그 시설의 후신이 지금의 철도정비창 부지다. 지형과 물류가 정한 배치이며, 선로와 시설은 지금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대륙철도가 열리면 이 구조는 그대로 되살아난다. 부산역이 또 하나의 기종점이 되겠지만 노선이 갈라지고 모이는 결절점, 곧 사람과 화물이 방향을 바꾸는 지점으로서 용산역의 비중은 서울역을 넘어선다.
상상만이 아니다
통일이 언제 될 줄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는 반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통일을 전제한 이야기가 아니다.
2007년에는 경의선 문산과 개성 봉동 사이에 화물열차가 실제로 오갔다. 2018년에는 남북이 경의선과 동해선의 북측 구간을 함께 조사했고, 같은 해 한국은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에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대륙철도 운영에 필요한 국제적 자격을 이미 갖춰 둔 것이다. 길은 아직 열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한 번 열렸다가 닫혀 있는 것이다.
그 길이 다시 열리는 날 필요해지는 것은 선로만이 아니다. 유라시아의 여객과 물류를 담아낼 넓은 부지와 창고, 세관, 검역 시설이 있어야 한다. 국제 여객이 오가면 출입국 시설이 필요하고 그 둘레에 숙박과 업무 공간이 붙는다. 국제기구 사무소, 물류회사 지역본부, 다국적 인력의 주거와 학교가 뒤따른다. 관문이란 문 하나가 아니라 문 주변에 형성되는 하나의 도시적 기능군이다.
철도망의 구조상 유라시아시대는 용산이 결절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 관문의 기능이 필요한 만큼 그 때를 위해 비워두어야 한다. 그래픽 연합뉴스
부산에서 유럽까지 배로 한 달 반 걸리는 길이 철도로는 그 절반 안팎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화물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사람이 기차를 타고 평양과 신의주를 지나 베이징과 모스크바로 가는 시대의 관문이 어디가 될 것인가. 그런 공간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땅이 남아 있어야 만들어진다.
마침 북방경제와 유라시아 구상에 관한 여러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 구상들이 현실이 되려면 결국 어딘가에 물리적 자리가 필요하다. 국토공간의 관점에서 그 자리를 지목한다면 용산이다. 담론은 무성한데 정작 그 담론이 앉을 땅은 지금 아파트로 팔려나가는 상황에 처해 있다.
장소가 지녀온 보이지 않는 맥락
흥미로운 것은 용산이 언제나 그런 자리였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용산은 전국의 세곡이 모이던 조운의 종착 포구였다. 삼남에서 올라온 배가 한강을 거슬러 닿는 곳이었으니 나라 전체의 물류가 집결하는 결절이었다. 1882년 임오군란 때는 청군이 주둔했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며 일본군 사령부가 들어서면서 일대의 광대한 땅이 군용지로 수용됐다. 해방 뒤에는 미군과 유엔군사령부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지금도 용산은 한남동 공관촌과 이태원을 낀, 서울에서 가장 국제적인 동네다.
이 땅은 언제나 바깥 세계와 만나는 접촉면이었다. 장소가 지닌 보이지 않는 맥락이 백 년이 넘도록 이어져 온 것이다.
다만 짚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지금까지 용산의 국제성은 남이 와서 점유한 타율적 국제성이었다. 청군이, 일본군이, 미군이 차례로 들어와 자리 잡은 결과였을 뿐이다. 120년 만의 반환이 뜻하는 바가 여기에 있다. 그 국제성을 우리가 주인으로서 세계를 맞이하는 자율적 국제성으로 바꿔놓을 기회라는 것이다. 유라시아 관문론은 이 땅의 이력에서 벗어난 발상이 아니라, 그 이력을 처음으로 우리 손으로 다시 쓰자는 제안이다.
국제기능 담을 땅마저 아파트로
역설은 여기에 있다. 국제기능을 담으라고 비워둔 땅조차 지금 주거로 잠식되는 중이다.
옛 철도정비창 45만 6천㎡에는 이미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조성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공식을 했고 2030년대 초 입주를 목표로 국제업무존과 컨벤션 시설을 넣기로 한 자리다. 그런데 지금 그 안의 주택을 1만 가구까지 늘리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고, 서울시조차 주거 비중이 커지면 국제업무지구 본연의 기능이 훼손된다 며 8천 가구가 한계라고 맞서는 형국이다. 여기에 캠프킴 부지 고밀개발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갔고, 공원 부지마저 주택공급 대상으로 검토되고 있다.
셋을 따로 보면 개별 사안이지만 겹쳐 놓으면 하나의 국면이 보인다. 유라시아 관문이 될 자리를 앞뒤로 스스로 소진하는 일이다. 눈앞의 몇천 가구를 얻으려고 다음 백 년의 국가적 자산을 미리 써버리는 셈이다.
베를린 시민은 왜 4700호를 포기했나
이 대목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사례가 있다. 베를린의 템펠호프다.
템펠호프는 원래 공항이었다. 1948년 소련의 베를린 봉쇄 때 서방 수송기가 3분에 한 대씩 내리던, 냉전의 상징 같은 곳이다. 2008년 공항이 문을 닫자 도심 한복판에 356만㎡의 빈 땅이 생겼다. 여의도공원의 열여섯 배, 뉴욕 센트럴파크와 맞먹는 넓이다.
베를린시의 판단은 지금 우리 정부와 똑같았다. 주택난이 심각하니 이 땅에 집을 짓자는 것이었다. 전체를 개발하자는 것도 아니었다. 75%는 공원으로 남기고 25%에 주택 4700호와 중앙도서관을 짓겠다는, 상당히 온건한 안이었다. 국제 현상공모를 열고 시민 아이디어를 받고 설문조사와 토론회도 거쳤다.
그런데 시민들이 반대했다. 100% 템펠호퍼 펠트 라는 단체가 넉 달 만에 18만 5천여 명의 서명을 모아 주민투표를 성사시켰고, 2014년 5월 25일 투표에서 부지 전체를 공원으로 두자는 안이 64.3%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73만 9천여 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시장은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전면 공원화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다음이다. 베를린은 아예 템펠호퍼펠트법을 만들었다. 그 제6조 1항은 이 땅이 베를린 시민과 방문자에게 전면적으로, 영구적으로, 제한 없이, 그리고 무료로 여가와 휴식의 공간으로 제공된다고 규정한다. 개발 압력이 다시 올 것을 알았기에 법으로 못을 박은 것이다. 실제로 10년이 지난 2024년 시 당국이 다시 주택 건설 아이디어 공모를 열자, 시민단체는 이번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청원으로 맞서고 있다.
베를린 템펠호퍼펠트(Tempelhofer Feld)
우리와 놀랍도록 닮은 이야기다. 군용지였다가 반환된 도심의 거대한 빈 땅, 주택난이라는 명분, 일부만 개발하자는 절충안, 그리고 그것을 거부한 시민. 베를린 시민이 어리석어서 4700호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도심의 거대한 여백이 한 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비가역성- 한쪽만 되돌릴 수 없다
무엇보다 비가역성을 생각해야 한다. 공원은 되돌릴 수 있지만 아파트는 되돌릴 수 없다. 이것은 수사가 아니라 소유권의 문제다. 그 땅에 아파트가 서고 수만 개의 구분소유권이 생기는 순간, 그 땅은 백 년 동안 어떤 공적 용도로도 전환할 수 없게 된다. 국가가 다시 쓰려면 수만 명과 협상해야 하고 그 비용은 사실상 무한대다. 재개발이 왜 그토록 지난한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반대로 비워두면 선택권이 남는다. 미래 세대가 그 땅을 국제 관문으로 쓸 수도 있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면 계속 공원으로 둘 수도 있다. 비워두는 쪽은 언제든 되돌릴 수 있고 채우는 쪽은 되돌릴 수 없다. 한쪽만 비가역적일 때 신중한 선택은 자명하다.
뉴욕이 센트럴파크를 만들 때도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황무지에 왜 그런 사치를 부리느냐는 비판이 있었다. 지금 그 땅의 가치를 계산하려는 사람은 없다. 계산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정부가 끝내 이 땅 일부에라도 주택을 짓겠다면 최소한의 조건이 있다. 토지소유권만은 공공이 쥐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면에서도 토지임대부 분양이 서울 주택공급의 돌파구라는 제안이 나온 바 있다. 토지를 공공이 보유한 채 건물만 분양하면 훗날 용도 전환의 여지가 남는다. 그런데 지금 논의되는 것은 그런 차선책조차 아니다. 그냥 아파트다.
연못이 강으로 이어지는 물길이라면
앞 글에서 나는 용산공원을 서울에 남은 마지막 연못에 빗대었다. 연못의 물을 다 퍼내어 고기를 잡으면 그해에는 고기가 손에 쥐어지지만 이듬해 그 연못에는 고기가 없다고 썼다.
이제 한 가지를 덧붙이고자 한다. 그 연못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고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연못이 장차 큰 강으로 이어질 물길의 어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비어 있는 땅을 놀고 있는 땅이라 부른다. 그러나 도시의 여백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쓰이지 않은 것이다. 베를린 시민들이 지켜낸 것도 잔디밭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선택권이었다.
유라시아로 열리는 시대가 언제 올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시대가 왔을 때, 관문이 될 자리를 이미 아파트로 채워버린 나라와 비워둔 채 기다린 나라의 처지는 전혀 다를 것이다. 용산의 빈 땅은 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음 시대를 기다리고 있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leewys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