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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문턱 높고 배려 없는 관공서… 고아·입양인 죄인된 느낌

문턱 높고 배려 없는 관공서… 고아·입양인 죄인된 느낌
[사람들]
판결문은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판결문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자료가 제출됐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증명할 근거 문서는 사라졌다. 아동기록카드도 없었고, 기아발견 조서도 없었다. 고아호적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했을 마포구청장의 의견서조차 찾을 수 없었다. 한 사람의 이름과 생년월일, 성과 본이 만들어진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사라진 것이다. ‘유승철’이 왜 ‘류유승철’로 바뀌었는지, 생년월일은 왜 실제보다 1년이나 늦어졌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유승철의 뿌리 찾기는 그렇게 잘못된 기록을 찾아 헤매는 일에서 시작됐다. 그는 2025년 12월 3일자 「시설에서 당한 폭력으로 두개골 갈라진 고아의 외침」이란 제목으로 시민언론 민들레에 소개되기도 했다. 유승철은 구세군이 운영하던 후생원이라는 시설 출신이다.  유승철은 아버지의 사망 사실을 알게된 뒤 제적등본을 발급받기 위해 영등포구청을 찾았다. 그러나 구청은 그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의 가족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였지만 행정기관의 문턱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고아원시설 피해자 관련 단체 대표와 함께 구청을 찾아가 강하게 항의했다. 오랜 실랑이 끝에 결국 아버지의 제적등본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생모의 소재지까지 파악할 수 있었고, 법원의 결정을 거쳐 마침내 생모를 찾게 됐다. 오랫동안 끊어졌던 가족의 연결고리가 다시 이어진 순간이었다. 하지만 생모를 만났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때부터 또 다른 질문들이 시작됐다. 그는 자신의 성과 본이 어떤 경위로 만들어졌는지, 생년월일은 어떤 근거로 정해졌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자신의 출생과 가족관계에 관한 기록을 바로잡기 위해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이름과 가족관계를 갖게 됐는지 확인하려는 당연한 권리였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허망했다.   장애인 당사자 활동가로서, 초등학교에서 강의 중인 유승철씨. 법원은 30년 이상 지났다는 이유로 판사의 판결문만 공개했다. 정작 판결의 근거가 됐을 아동기록카드와 기아발견 조서, 마포구청장의 의견서 등 관련 자료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판결은 존재하지만 판결을 뒷받침하는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결과뿐이었다. 왜 그런 결정이 내려졌는지, 당시 누가 어떤 자료를 근거로 그의 출생과 신분을 판단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한 아이의 성과 본, 생년월일, 가족관계를 결정했던 법원의 판결문은 남아 있는데, 그 판결이 만들어진 과정을 증명할 자료는 사라졌다. 행정과 사법의 기록은 한 사람의 삶을 규정했지만, 정작 그 사람이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는 순간에는 아무런 설명도 내놓지 못했다. 고아들의 뿌리 찾기는 이토록 험난하다. 누군가에게 가족관계증명서와 제적등본은 일상적인 행정서류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설에서 성장한 아이들에게 그 서류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가는 출발점이다. 출생 당시의 기록 하나, 시설에 입소한 경위 하나, 법원의 결정에 사용된 자료 하나가 가족의 역사를 복원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기록들이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사라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록을 보관하고 관리할 책임은 어디에 있었으며, 기록이 사라진 데 따른 피해는 누가 책임져야 할까. 유승철은 생모를 찾았다. 그러나 고아호적이 만들어지면서 자신의 출생과 신분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완전한 답을 얻지 못했다. 가족을 찾는 일과 자신의 삶을 증명하는 일은 별개의 과제가 되어버렸다.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한 사람의 질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30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한 사람의 출생에 관한 진실까지 소멸하는 것도 아니다. 판결문은 남아 있다. 그렇다면 그 판결을 가능하게 했던 기록은 어디로 갔는가. 유승철이 찾고 있는 것은 단순한 서류 몇 장이 아니다. 자신의 이름이 만들어진 이유와 생년월일이 정해진 과정, 그리고 한 아이가 가족과 분리되어 시설에 들어가게 된 진실이다. 한 사람의 뿌리를 찾는 일조차 이토록 어렵다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아이의 삶이 기록의 부재 속에 묻혀버린 것일까. 30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자료가 없다는 답변이 과연 피해 당사자에게 감수하도록 할 문제인가. 해외입양인에게는 한없이 복잡한 국적회복절차 해외입양인의 국적회복절차도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해외입양인이 한국 국적을 회복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한국으로 돌아와 살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먼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서류부터 준비해야 한다. 호적등본과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가 기본적으로 필요하고, 여기에 입양확인서도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그 첫 단계부터 시작된다. 기본 서류를 발급받으려면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하다. 그러나 상당수 해외입양인은 입양 당시 별도의 고아호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누락되거나 생략된다. 자신의 출생과 신분을 증명해야 하는데, 정작 서류 발급에 필요한 주민등록번호가 완전하지 않은 것이다. 국적을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지만, 그 존재를 증명할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다시 자신의 신분을 입증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인다. 이 과정에서 해외입양인들은 첫 번째 좌절을 경험한다. 물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여권과 입양확인서를 제시하면 호적등본 등 기본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다. 해외입양인의 관련 업무를 비교적 많이 처리해 온 종로구청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모든 행정기관의 사정이 같은 것은 아니다. 다른 구청에서는 해외입양인의 사례를 접해본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업무 처리가 원활하지 않다. 법원의 조력이 필요하다며 기다리라는 답변을 받기도 한다. 그렇게 서류 하나를 발급받기 위해 짧게는 3일, 길게는 10일가량을 기다려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며칠의 기다림이 별일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행정체계와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해외입양인에게는 낯선 기관을 찾아다니고, 자신의 신분을 설명하고, 같은 질문을 반복해야 하는 일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 서류를 준비했다고 모든 과정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국적회복 신청은 통상 거주국가의 대한민국 공관을 통해 진행한다. 그런데 신청서 작성부터 또 다른 장벽이 기다리고 있다. 국적회복 신청서와 관련 안내문에는 복잡한 행정용어와 법률적 표현이 가득하다.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조차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적지 않다. 더 큰 문제는 한국어를 읽고 쓰지 못하는 해외입양인에게 한글 친필 작성을 요구한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해외로 보내진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어를 배우거나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 그들에게 한글로 된 신청서를 직접 작성하라는 것은 단순히 서류 한 장을 작성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적회복을 원하는 사람이 한국어에 능숙하지 않다는 사실은 행정기관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외국어 안내와 번역 지원, 작성 보조 절차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신청자 스스로 도움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공관을 방문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미국처럼 국토가 넓은 국가에서는 영사관까지 이동하는 일 자체가 큰 부담이 된다. 예를 들어 미네소타에 거주하는 해외입양인이 시카고에 있는 영사관을 방문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비행기로도 약 1시간, 자동차로는 6시간가량 걸리는 거리다. 신청서 한 번 접수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국적회복 신청서를 제출한 뒤에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신청 이후 결과를 받기까지 1년가량을 대기해야 한다.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한국 국적을 되찾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실제로 그 권리를 인정받기까지 또다시 긴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고아 및 입양인들의 권리회복과 진화위의 신속한 조사를 촉구하는 집회에서 벨기에 입양인 구상필씨가 참석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 국적을 회복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국적 취득과 한국에서 살아가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한국에서 거주하려면 직업을 구하고 생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어가 서투른 해외입양인이 국내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고 해서 곧바로 한국 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적회복은 이들에게 경제적 혜택이나 특별한 특권을 얻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잃어버렸던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자신이 태어난 나라와 다시 연결되고자 하는 정체성 회복의 과정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살아보고 싶어 한다. 어떤 이들은 한국 국적을 되찾아 부모와 형제자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한다. 또 어떤 이들은 평생 외국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에 한국인이라는 또 하나의 정체성을 더하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 국적회복은 행정적인 절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하다. 한국은 수많은 아이를 해외로 보냈다. 그 아이들은 낯선 나라에서 새로운 이름과 가족을 얻고 살아왔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이들이 자신의 출생국인 한국으로 돌아와 국적을 회복하려 한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하는 것은 따뜻한 환대보다 복잡한 서류와 익숙하지 않은 행정절차, 긴 기다림이다. 국적회복이라는 제도는 존재한다. 하지만 제도가 있다는 것과 그 제도를 실제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해외입양인에게 한국 국적을 회복할 권리가 있다면 그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 역시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주민등록번호가 불완전한 사람을 위한 서류 발급 절차를 통일하고, 모든 구청에서 동일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한글을 모르는 신청자를 위한 다국어 안내와 작성 지원도 필요하다. 해외 공관 방문의 어려움을 줄일 수 있는 접수 방식과 심사기간 단축 역시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적회복 이후 한국에서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이들을 위한 언어교육과 취업, 주거 등 정착 지원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국가가 한때 이들을 해외로 보냈다면, 이제 돌아오려는 이들에게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돌아오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복잡한 행정절차를 견뎌낼 인내심이 아니다. 자신의 나라에 돌아올 권리를 실제로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 국가의 책임이다. 국적은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국적을 회복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이렇게 많다면, 과연 국가는 이들을 진정으로 돌아오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뿌리찾기 절차, 사람과 행정, 무엇이 우선인가. 그렇다면, 해외입양인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자신이 태어난 곳이자 부모와 형제자매가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나라다. 수십 년 동안 낯선 땅에서 살아온 이들이 어렵게 한국을 찾아오는 이유도 결국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러나 막상 뿌리를 찾는 과정에 들어서면 이들은 또 다른 현실과 마주한다. 가족을 찾는 일보다 행정기관의 절차를 통과하는 일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 순간이 반복된다. 해외입양인이 자신의 과거를 확인하기 위해 가장 먼저 찾는 기관이 아동권리보장원이다. 이곳에 입양확인서를 신청하면 방문 열람이나 이메일을 통해 관련 자료를 받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행정제도와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해외입양인에게 이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일부 해외입양인들은 담당 공무원의 고압적이고 불친절한 태도에 당혹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자신의 출생과 입양에 관한 기록을 확인하러 온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친절한 설명과 안내다. 그러나 언어와 제도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오히려 위축되고,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일조차 부담스러워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기록의 내용이다. 이메일로 입양확인서를 받는 경우 생모에 관한 정보가 삭제된 상태로 전달되는 일이 있다. 해외입양인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정보가 생모의 이름과 출생 당시의 상황, 가족관계에 관한 내용일 수 있는데, 정작 그 핵심 정보가 가려진 채 자료가 제공되는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원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출생과 입양에 관한 정보를 확인하려는 당사자의 권리 역시 중요하다. 어떤 정보가 왜 삭제됐는지, 열람을 위해서는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기록을 신청했지만 정작 알고 싶은 정보는 확인할 수 없는 상황. 해외입양인에게는 자신의 과거를 다시 한번 빼앗기는 경험으로 다가올 수 있다. 생부모를 만나기 위한 절차도 순탄하지 않다. 해외입양인이 생부모와의 만남을 희망하는 신청서를 제출하면 관련 기관은 생부모에게 세 차례에 걸쳐 내용증명을 보내는 절차를 진행한다. 부모의 의사를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현실과 제도 사이의 간극이 존재한다. 해외입양인이 찾는 생부모는 이미 상당히 고령인 경우가 많다. 오랜 세월이 흐른 만큼 건강이 좋지 않거나 거동이 불편할 수도 있고, 복잡한 행정문서를 이해하거나 직접 의사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제도는 내용증명을 보내고 답변을 기다리는 방식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부모가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용증명에 답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만남을 거부한다는 뜻일까. 누군가 대신 의사를 전달했다면 그것이 실제 부모의 뜻인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했던 구세군 후생원의 예전 모습. 구세군 측은 이 건물과 부지를 매각하고 충정로에 있는 23층짜리 건물로 입주했다. 특히 해외입양인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대목은 생부모가 만남을 거부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다. 실제로 부모가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나 증빙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가볍게 넘길 수 없다. 부모가 만남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 의사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의사가 실제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사인지 확인하는 절차 역시 중요하다. 부모가 고령이거나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 주변 가족이나 제삼자의 판단이 부모의 의사처럼 전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가 오히려 당사자의 목소리를 가리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 된다. 기다림도 길다. 일반적으로 3개월 이내에 의사 확인이 가능하다고 안내받지만, 실제로는 6개월 이상 기다린 뒤에야 결과를 전달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 해외입양인들의 이야기다. 수십 년을 기다려 자신의 부모를 찾은 사람에게 다시 6개월의 기다림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부모가 생존해 있을지, 건강은 괜찮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간은 무엇보다 절박한 문제다. 행정기관의 공간과 환경 역시 이들을 배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아동권리보장원이나 일산의 서울기록원 등을 방문해 기록을 확인하려는 해외입양인들 가운데는 약속시간까지 마땅한 대기 공간이 없어 복도에서 기다려야 했다는 경험을 전하는 이들도 있다. 자신의 출생과 가족의 역사를 확인하기 위해 먼 나라에서 찾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시설이 아니다. 최소한 편안하게 기다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차분히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복도에서 약속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어떤 해외입양인은 마치 죄를 짓고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 같은 심정이 들었다고 한다. 가족을 찾으러 왔을 뿐인데 왜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위축되어야 하는가. 해외입양인의 뿌리 찾기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열람하는 행정업무가 아니다. 자신의 출생과 가족관계를 확인하고,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는 수십 년의 그리움과 상실감, 부모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 담겨 있다. 그러나 현재의 행정은 이러한 사람들의 감정과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해외입양인뿐만이 아니다. 집단수용시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피해자들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다. 자신의 입소 기록을 찾고, 가족관계를 확인하고, 과거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국가기관을 찾아가지만 돌아오는 것은 서류의 부재와 복잡한 절차, 담당자의 소극적인 대응인 경우가 있다. 한쪽에서는 기록이 없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절차가 복잡하다고 한다. 기록을 열람하려면 기다려야 하고, 가족을 찾으려면 또 다른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그렇게 피해 당사자들은 자신의 삶을 증명하기 위해 행정기관의 문턱을 수없이 넘나든다. 이쯤 되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행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사람을 억누르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절차가 권리 행사를 어렵게 만든다면 그것은 제도의 목적이 뒤바뀐 것이다. 해외입양인에게 필요한 것은 특별한 대우가 아니다. 자신의 기록을 확인할 권리, 부모의 의사를 정확하게 확인할 권리, 자신의 이야기를 존중받으며 행정서비스를 이용할 권리다. 집단수용시설 피해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국가와 시설이 만들어낸 과거를 확인하려는 사람들에게 국가가 다시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 사람을 위한 행정이 아니라 제도를 위한 행정. 당사자의 절박함보다 기관의 업무 절차가 앞서고, 한 사람의 삶보다 서류의 형식이 우선하는 행정. 해외입양인과 시설 피해자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행정이 여전히 누구를 중심에 두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 수십 년 만에 고국을 찾아온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절차가 아니다. 자신을 기다려주는 사람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공간, 그리고 자신의 삶을 존중하는 행정이다. 부모를 찾으러 온 사람에게 국가가 또 다른 문턱이 되어서는 안 된다.이득신 시민기자 dsshine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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