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드립 선 넘은 스벅 가야지 …해석과 연대의 힘 중요 [뉴스] 1일 서울 강동구 배재고 앞에 근조화환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변호했던 이하상 변호사가 보낸 응원화환이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을 학생들이 바라보고 있다. 서울 강동구청에 따르면, 도로법 제74조에 따라 2일 오후 수거됐다. 2026.7.1 연합뉴스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 중에 ‘패드립’이 있다.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패륜(悖倫)의 ‘어그러질 패(悖)’와 즉흥적 발언을 뜻하는 영어 단어 애드리브(Ad-lib)에서 파생된 말 드립 을 붙였다. 인륜을 저버린 말장난이라는 뜻이다. 거친 미디어 환경에도 아이들은 패드립 을 넘지 말아야 할 인성의 바닥으로 여긴다. 우리 부모가 소중하듯 남의 부모도 소중하다는 공경심과 역지사지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즉, 가족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금기다.
하지만 최근 고교야구 전국대회에서 발생한 배재고 야구부의 스타벅스 조롱 을 보면, 우리 사회의 역사문제 인식이 패드립의 바닥마저 뚫고 추락한 듯해 참담하다. 배재고 선수들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역사를 지닌 광주제일고를 향해 더그아웃에서 단체 율동을 하며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라는 구호를 연호했다. 이는 한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의 엇나간 마케팅을 혐오의 무기로 삼아 상대 팀을 조롱한 것이다.
공동체의 역사적 비극을 이토록 저열하게 비하하는 행위는 가족이나 친척, 친구의 죽음을 겪은 이에게 잘됐다 고 놀려대는 짓과 본질적으로 같다. 5·18이라는 역사적 비극 역시 결국 누군가의 소중한 부모이자 자식이었던 평범한 이들이 흘린 피와 눈물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학생들이 공동체의 거대한 상실 앞에 잔인할 정도로 무감각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했다. 서글프고 위험한 우리 시대의 민낯이다.
일벌백계는 당연하다. 하지만 처벌만으로 개선되지는 않는다. 이 사태는 기성세대가 철저한 역사 인식을 가르치지 못하고 단죄하지 못한 필연적 죄과다. 민중의 깊고 처절한 죽음의 역사를 왜곡하고 숨기고 비하했던 시간과 무게만큼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자가 붙은 청구서가 우리에게 배달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선배 세대의 청춘은 전혀 다른 결의 공감을 품고 있었다. 군부 독재의 서슬 퍼런 감시 속에서, 대학 동아리방의 불을 끄고 커튼을 친 채 숨죽이며 5·18 광주의 진실이 담긴 비디오 영상을 마주했다. 화질조차 흐릿한 화면 속에는 계엄군의 무자비한 대검에 찢겨 나간 여고생의 시신이 있었고, 총칼에 맞아 머리가 깨진 채 피를 흘리며 널부러진 청년들이 있었다. 자식을 잃고 길바닥에서 오열하는 어머니의 처절한 통곡이 동아리방을 가득 채울 때, 그들은 우리 부모, 내 형제가 찢겨 나간 듯 함께 숨죽여 울었다. 국가 권력의 야만성에 치를 떨며 분노했던 그 처절한 공감은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다.
하지만 불과 한 세대가 지난 지금, 그 뜨거웠던 기억의 자리에는 차가운 조롱과 혐오가 가득 차 있다. 오늘날 많은 아이들의 공감대는 내 가족, 내 지인 이라는 사적 울타리에만 뻗어 있다. 심지어 갈수록 나 자신만 이라는 뒤주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그러니 교실과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눈앞의 타인 에게조차 역지사지하는 법을 잊어간다. 나만 소중할 뿐 울타리 밖의 타인은 무감각한 배경이거나 조롱의 대상이다. 일상의 작은 공감마저 고갈되었으니, 역사 속 타인의 커다란 고통에 무덤덤한 것은 필연적 결과다.
아이들의 인성 결함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기는커녕 혐오와 조롱을 조장해 온 기성세대와 정치 권력이 보여준 거울이다. 실제로 일부 정치인들은 자성은커녕 논란이 된 스타벅스 매장을 찾아 단체 인증샷을 찍고 조롱 발언을 두둔했다. 역사 왜곡을 앞장서서 엄호하는 짓을 어른들이 부끄러움 없이 자행한다. 권력이 대놓고 역사를 모독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어디에서 역사적 공감 능력을 배우겠는가.
스타벅스 코리아가 지난달 탱크 데이 이벤트 때문에 사회적 지탄이 쏟아진 가운데 본사 임직원과 매장 직원들을 대상으로 역사 교육에 나선다며 배포한 자료사진
왜 우리의 역사 교육은 타인의 고통 앞에 이토록 무력한가. 지금의 역사 교육은 역사적 비극을 오래 전 여러 사건 중 하나로 다룰 뿐이다. 인류와 민족의 처절한 비극적 사건들조차 인간의 역사 속에서 그저 필연적으로 스쳐 지나간 여러 사건 중 하나로 건조하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삶, 시험지에 인쇄된 메마른 텍스트로만 역사를 전하는 객관식 단답형의 암기식 교육이 낳은 참담한 폐해다. 자국의 역사 속 비극마저 박제된 지식으로만 소비하는 아이들에게, 지금 이 순간 지구 반대편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학살에 대한 인류애와 공감을 기대하기란 애초에 힘든 일이다. 가슴이 텅 빈 자리에 미디어의 극우화된 흐름과 폭력성이 독초처럼 자라났고, 수많은 아이들은 이를 걸러낼 최소한의 방어기제조차 갖추지 못했다.
이처럼 가슴이 마비된 지식은 시민으로서의 존재 기반을 흔든다. 그동안 국어, 영어, 수학에만 매몰되어 역사를 단순 암기과목으로 방치하는 사이, 아이들의 사회적 문해력과 공감 능력은 완전히 파산해 버린 것이다. 수학이 이공계의 기초이고 문해력이 인문계의 근간이듯, 타인의 고통을 해석하고 연대하는 ‘역사 해석 능력’은 사회과학의 근간이자 성숙한 시민을 키워내는 뿌리다. 아이들의 메마른 가슴을 다시 뛰게 하고 무너진 인성의 방어기제를 세우기 위해서는, 이제 역사 교육의 판을 완전히 바꾸는 구체적이고 과감한 대안이 필요하다.
김대중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감이 취임 첫날인 1일 오후 광주제일고등학교를 방문해 최근 전국대회 경기에서 상대 팀인 배재고 선수단의 지역 비하성 응원으로 상처를 입은 야구부를 위로하고 있다. 2026.7.1 연합뉴스
첫째, 객관식 단답형 역사 시험평가만으로는 부족하다
연도와 사건을 단편적으로 외우는 죽은 시험 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팀별로 역사적 사건을 치열하게 논쟁하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프로젝트형 서술 시험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나아가 역사 과목의 배점 또한 국영수와 대등한 수준으로 파격적으로 확대하여, 지식 암기가 아닌 시민 인성 중심의 교육 체질로 개선하는 방안도 고려했으면 한다.
둘째, 역사 교육을 교과의 울타리에 가두지 말고 확장하라
넓은 의미에서 과학의 위대한 발견도, 정치·사회·문학 등 인류의 모든 학문도 결국 역사의 발자취가 축적되어 온 결과물이다. 오늘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재 역시 과거와 긴밀히 연결되는 미래의 역사 다. 이를 대학 전공 심화 과정에서나 다룰 것이 아니라, 중고등학교 공교육의 모든 과목에 문학사, 과학사, 수학사, 철학사라는 이름으로 전면 융합해야 한다. 이때 교육은 학년별 수준에 맞춰 교과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고 역사적 맥락을 짚어낼 수 있는 유연한 수준으로 접근해야 한다.
실제로 수학 수업에 역사적 인물의 일화나 공식의 탄생 배경, 그리고 당대의 정치·사회적 맥락을 결합해 설명할 때 아이들의 몰입도는 전혀 달라진다. 예컨대 중학교 3학년 수학 시간에 배우는 무리수 를 단순히 계산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피타고라스 학파의 신념에 도전하다가 지중해에 던져진 히파소스의 비극을 연결해 가르치는 식이다. 세상이 정수로만 이루어졌다고 믿던 권력자들의 폐쇄적인 집단지성이 새로운 진실을 어떻게 탄압했는지 그 역사적 맥락을 접한 아이들은 대체 수학을 왜 배워야 하느냐 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스스로 의미 있는 해답에 도달하게 된다. 어떤 학문이든 그 사상적 배경과 역사적 흐름을 알아야 이해의 지평이 비로소 넓고 깊어지기 때문이다. 역사란 따로 떼어놓고 배울 수 있는 암기과목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본질 그 자체임을 아이들에게 깊이 인지시켜야 한다.
셋째, 평가의 기준에 실천 을 도입해야 한다
단순 교실 수업을 넘어 역사 관련 활동과 역사관 답사 등에 사회봉사활동에 준하는 수행평가 점수를 부여해야 한다. 나아가 위안부 할머니 문제나 강제징용 등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는 역사적 과제에 아이들이 직접 연대하고 목소리를 내는 사회참여형 프로그램을 정규 교육과정의 핵심 축으로 연계해야 한다. 역사적 아픔이 오늘 나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음을 뼈저린 고증과 체험으로 깨닫게 해야 한다.
넷째, 교육 무대를 학교 너머 지역사회 전체로 넓혀야 한다
구청의 주민 교육 프로그램과 대학 평생교육원, 그리고 방과 후 학교 수업에도 역사 관련 강좌를 전면에 배치하고 과감한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 나아가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연계하여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역사 상황극 체험 을 활성화하고, 각 지역의 근대역사기념관 을 학교 교실과 연동된 상시 참여형 교육 공간으로 리모델링해야 한다. 역사 알기, 역사 연극, 역사 영화 제작 처럼 아이들이 주도하는 역사 동아리 활동을 행정적·재정적으로 전폭 지원하고 장려하는 풍토가 절실하다. 그리고 문화해설사, 지역해설사 뿐만 아니라, 역사의 이면과 공동체의 가치를 깊이 있게 풀어낼 전문 역사해설사 의 활동을 전방위로 지원해야 한다. 이처럼 박제된 활자가 아닌 생동하는 문화적 체험을 통해 역사를 접할 때, 지식은 비로소 살아 숨쉬는 공감으로 되살아나게 된다.
지난해 2월15일 광주 금남로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에서 배포돼 논란이 됐던 스카이데일리 특별판 신문과 홍보물. (5·18기념재단 제공)
다섯째, 역사 왜곡에 대한 사법적 단죄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학교 현장에서 역사 왜곡을 가르치거나, 출판업계가 상업적·정치적 목적으로 가짜 역사를 유포할 경우 이를 결코 가볍게 넘기지 않는 강력한 입법이 선행되어야 한다. 물론 표현과 학문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반인륜적 혐오 표현과 명백한 사실 왜곡에 한정하여 처벌하는 정교한 법제화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부정을 징역형으로 엄벌하는 독일 수준으로 처벌 수위를 끌어올려, 역사 모독이 파멸로 이어짐을 명확히 경고해야 한다.
결국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나를 지키고 타인을 보듬는 인간성의 방어기제 를 세우는 일이다. 타인의 고통을 내 아픔으로 느끼는 연대의 감각이 살아날 때, 아이들은 비로소 미디어의 폭력성과 권력의 야만적인 혐오 선동을 스스로 걸러낼 힘을 갖게 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아이들은 우리 공동체의 미래다. 만약 그 아이들이 역사를 잊거나 혐오로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마주할 내일이 통째로 흔들리거나 암울해지는 것은 자명하다.
그 미래를 지키기 위해 기성세대는 부끄러움과 미안함만 간직해서는 안 된다. 청구서의 이자는 복리로 불어난다. 시간이 늦으면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에게 마비된 단편 지식이 아닌, 타인의 아픔에 기꺼이 응답하는 단단한 해석의 무기 를 손에 쥐여주어야 한다. 그 단단한 공감의 연대만이, 우리 앞에 날아든 역사적 퇴행이라는 청구서를 갚아 나갈 수 있다.고영진 시민기자 sunofdarknes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