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 지식인 이미륵의 망향가 를 오늘 다시 듣다 [사람들] 이미륵 작가
유려한 번역으로 67년 만에 재출간
《압록강은 흐른다》는 재독 과학자로 문필활동을 해온 이미륵(본명 李儀景, 1899~1950) 작가가 1946년 독일에서 출간한 독일어로 쓴 장편소설이다. 이미륵 작가는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일본 관헌의 체포를 피해 독일로 망명한 지식인으로서 주전공인 자연과학 방면의 연구를 하면서도 한국을 배경으로 한 단편과 산문을 독일어로 발표하였다. 1947년부터 1949년까지는 뮌헨대학교 동양학부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학 강의도 하였다.
패전 후 독일에서 일찍 주목받았던 이미륵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는 1959년 수필가이자 독일문학 번역가였던 전혜린 선생(1934~1965)에 의해 번역되면서 국내에도 알려졌다. 이 소설이 올해(2026) 6월에 민음사 세계문학 500권으로 선정되어, 원로 독문학자로 만년에 소설도 창작하시는 안삼환 선생님의 유려한 번역으로 새롭게 출간된 것은 첫 번역서가 나온 지 67년 만의 일이다.
30대 초반에 일찍 세상을 떠난 전혜린 선생과 선생이 번역한 《압록강은 흐른다》에 대해서는 풍문으로 들은 적이 있었지만, 국문학과 한문학을 공부하는 필자에게는 우선적인 독서 대상이 아니어서 특별한 동기부여나 계기는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 윤석열 퇴진 투쟁 국면에서 안삼환 선생님께서 괴테의 《파우스트》를 번역하는 바쁜 일정 중에 벌어진 내란수괴 윤석열의 저열한 행태에 대한 비판의식과 분노의 감정을 《역관 일지》에 피력한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그 후에 나는 원로 독문학자이신 안삼환 선생님을 존경하며 가까이 모시게 되었고, 선생님으로부터 세계문학의 걸작 괴테의 ‘파우스트’를 공부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안 선생님께서 《파우스트》 번역 원고를 다시 집중적으로 검토하는 시기에 이 《압록강은 흐른다》를 번역한 것에는 필시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난 주 프랑스에서 돌아와 이 책을 읽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는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다음해인 1946년에 출간되었다. 조국을 잃어버린 망명 청년의 아름다웠던 유년시절을 담담하게 서술한 이 소설이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상처받은 독일인들에게 지난날의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문학의 위안’ 역할을 하여, 그해 독일어로 쓰여진 뛰어난 작품으로 선정되고 독일 중고등학교의 교과사에 수록되었다.
이것은 《압록강은 흐른다》 작품 자체가 국경을 뛰어넘어 보편적 감동을 주는 주제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을 지니고 있어 문학적 완성도 면에서도 뛰어난 작품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민음사 기획의 세계문학전집 500권 발행 기념 작품으로 선정되어, 평생 독일문학을 연찬한 학문적 축적 위에 소설가로서의 뛰어난 문필력을 지닌 안삼환 선생님께서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번역하셔서, 마치 이 작품이 독일어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국어로 창작된 작품이라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이 작품 여러 곳에서 유년시절 아름다운 추억이 물흐르듯이 펼쳐지고, 이 작품 배면에 은근한 민족의식이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었을까.
필자는 《압록강은 흐른다》를 읽으면서 자꾸만 이 작품을 쓴 작가 이미륵과 필자가 대학시절 철학과에 개설된 ‘인식론’을 수강할 때 꼬장꼬장하시던 정석해 선생의 모습이 연상되어, 관련 자료를 찾아봤더니 두 분의 출생년도가 1899년으로 같았다. 두 분의 인생행로도 경성의전과 연희전문을 각각 다니던 때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헌병의 사찰과 수색에 쫓기어 상해에서 배를 타고 프랑스 남부 마르세이유 항에 도착해 독일과 프랑스에서 공부한 점도 같았고, 직접 만나기까지 하셨다.
작가 이미륵과 철학자 정석해는 같은 해에 출생해 3.1만세운동에 함께 참여하고 유럽으로 건너가 독일에서 만나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동병상련의 동지 관계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 필자는 가슴뭉클한 감동을 받으면서 선구적인 두 분의 애국청년의 용기와 결단에 경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민경혜 작가를 비롯한 여러분들이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을 읽고 일제 시대 3.1운동을 하다가 일제 관헌에 쫓기어 압록강을 건너 독일에 정착한 주인공/작가가 그의 유년 시절부터 고향을 떠나 독일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담아낸 이 작품이 한 폭의 부드럽고 따뜻한 수채화같다고 했다.
실제로 이 작품에는 개구쟁이 사촌형 수암과 말썽을 부리며 놀던 어린 날들의 풍경, 부족한 공부를 기꺼이 도와주던 친구들, 엄하면서도 어린 아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바둑을 두던 아버지, 아들을 염려하면서도 끝까지 믿어주고 용기를 준 어머니, 그리고 고향 산천에 핀 꽃과 나무들, 거북이가 기어다니던 뒷마당, 처음 절에 가서 본 탑돌이 장면, 낚시를 하며 바라본 끝없는 바다, 기차 창밖의 풍경, 배의 갑판 위에서 벌어지는 유학생들의 어울림 장면, 낯선 이국땅에서의 풍경들이 수채화처럼 펼쳐지고 있다.
민경혜 작가는 이 책의 가장 감동적인 대목을 국경선을 넘어 어머니와 헤어지는 다음의 장면으로 보았다.
안개와 어둠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시내를 훨씬 벗어나는 길까지 배웅해주셨다. 너는 용기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어머니는, 우리 둘이 줄곧 침묵을 지키며 걸어온 뒤에, 말씀하셨다. ”자주 겁을 먹기도 했지. 하지만, 넌 네 갈 길을 한 번도 벗나가지 않았어. 나는 너를 깊이 신뢰한다. 부디 용기를 내렴. 너는 어렵잖게 국경을 넘어갈 게다. 그리고, 마침내 너는 유럽으로도 가게 될 것이다. 이 어미 걱정은 하지 말아라. 난 네가 다시 여기 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것이다. 세월은 정말 아주 빨리 지나간단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넌 내 인생에서 내게 많은, 대단히 많은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 자, 내 아들, 이제 혼자 계속 가거라!”
(《압록강은 흐른다》 184~185면, 이하 서명과 면수만 표시)
그런데 독자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바와 같이 번역을 하신 안삼환 선생님도 역시 이 《압록강은 흐른다》 작품을 옮기고 나서 자주 생각나는 인물이 바로 미륵의 어머니라고 하셨다. 자식을 가없이 사랑하되, 결정적인 순간이 오자 자식을 붙들고 늘어지지 않고 자식을 과감히 놓아준 결단을 내린 어머니는 결국 다시는 자식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미륵은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결국 이 세계에 상호 이해와 평화의 씨를 뿌린 분이고, 이따금 볼 수 있던 위대한 어머니 모습이라는 것이다.
안삼환 선생님은 《압록강은 흐른다》 작품집 뒤에 실린 ‘옮긴이의 말’에서 이미륵의 이 작품은 작가의 분신인 이미륵의 ‘유년시절의 추억’이라는 소박한 형식 안에다,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지 않은 ‘어느 망국의 역사와 문화’라는 심원한 내용을 정교하게 교직해 넣은, 서술 미학적으로도 대단히 품위있고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하셨다.(《압록강은 흐른다》 231면)
그러면서 안삼환 선생님은 이 소설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주인공 이미륵이 이국 독일의 꽈리 나무와 그곳에서 내리는 눈을 보고 고향을 생각하는 장면, 그리고 연이어 어머니의 부음을 듣는 장면이라고 하였다
한번은 내가 우체국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을 때, 나는 어느 낮선 집 앞에 멈춰 섰다. 거기 정원에 꽈리 관목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그 장과(漿果)의 새빨간 씨주머니들이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우리 집 뒤뜰에서 그렇게도 자주 보았고 그것으로 우리가 어린아이 적에 그다지도 즐겁게 놀았던 그 식물이 나를 얼마나 기쁘게 했던가!
내가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있을 때, 어떤 부인이 집에서 걸어나와 내가 왜 거기 그렇게 서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 유년시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가지 하나를 잘랐다. 그리고는 그것을 내게 선물했다. 아, 내가 그 부인에게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었던지!
(《압록강은 흐른다》 225면)
이 장면들은 담담하고 소박한 묘사인데도 독자에게 아쉬움과 슬픔, 애틋함을 남기는, 미학적으로 절제된 최상으로 아름다운 대목”이라고 했다.
이면에 담긴 민족자존의식과 저항정신
안삼환 선생님이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500권을 기념해 이번에 새로 번역해 출간한 《압록강은 흐른다》의 작가 소개에 의하면, 이미륵(본명 李儀景, 독일식 이름 Mirok Li)은 189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유교적 가정환경에서 성장하여 한학을 익힌 뒤 신교육을 받았다. 1917년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해 의학을 공부했으나 1919년 3.1운동에 가담한 뒤 일제의 탄압을 피해 상하이를 거쳐 1920년 독일로 망명했다.
이미륵은 뮌헨대학교에서 동물학, 철학, 생물학을 공부했고 1928년 동물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미륵의 전공은 자연과학이었지만 1931년 32살 때 독일 잡지 에 작품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을 배경으로 한 단편과 산문을 꾸준히 독일어로 썼다. 이미륵을 독일문단에 알린 것은 1946년 피퍼출판사에서 간행된 독일어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였다.
이 소설은 위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작가 이미륵의 유년 시절, 식민지 조선의 현실, 망명에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초판이 매진될 정도로 독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1946년의 가장 뛰어난 독일어 작품으로 선정되고 독일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하였다.
이미륵(1899~1950)은 1950년 뮌헨 근교 그래펠핑에서 위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51세로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필자는 안삼환 선생님이 정리한 작가 연보를 검토한 뒤 다시 작품을 읽어 보니 《압록강은 흐른다》는 단지 2차세계대전에 패망해 허탈해 있던 독일인들에게 과거의 아름다운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독일어로 쓰여진 수채화 같은 작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고, 작품 이면에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한국문화에 대한 일정한 긍지가 깔려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우리 조국과 임금님을 위해 만세를 불렀다. 마지막으로 우리 각자는 새로운 문화를 이룩해야 하겠다는 우리의 인식에 대한 보상으로 한 묶음의 연필과 노트를 받았다.
우리는 만족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날 저녁을 아름다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작은 민족이고 다만 나라가 작은 것은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지혜로운 민족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현명했기 때문에, 크고 장대한 중국은 우리나라를 소중화(小中華)라고 칭했다.
새로운 문화를 수입하는 데에는 우리가 일본보다 약간 늦었다. 그러나 그건 우리한테 대수로운 일이 못 된다. 우리는 정말 현명한 민족이다. 이런 사실이 내게는 매우 고무적으로 느껴졌다. 그날 저녁은 내게 정말 아름다웠다.”
(《압록강은 흐른다》 102~103면)
이러한 민족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민족의식은 1919년 3.1운동 때 기까운 친구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하게 된 내재적 준비단계라 할 것이고, 기미년 3월 1일 거사 당일 파고다 공원으로 가서 우렁차게 만세를 외치면서 일본에 의한 조선의 합방이 잘못된 일이며, 조선인들은 자유민으로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의 독립선언문 전단을 사방으로 뿌리면서 시위 행렬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된다.(《압록강은 흐른다》 178~179면)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문득 대학 재학시절 철학과에서 ‘인식론’을 강의하신 정석해 선생님이 떠올랐다. 어쩌면 1899년 같은 해에 태어난 훌륭한 작가와 뛰어난 철학자의 험난한 인생행로와 의기가 이렇게 비슷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석해 교수님의 유저인 《진리와 그 주변》(일조각, 1981)과 철학과 제자인 박상규 교수의 《철학자 정석해, 그의 시대 그의 사상》(사월의책, 2016)을 서가에서 꺼내 《압록강은 흐른다》와 대조해 보았다..
철학자 정석해 교수
3.1운동에 참여한 경성의전생 이미륵과 연희전문생 정석해의 인생 행로
《압록강은 흐른다》의 이미륵 작가와 딸깍발이 철학자 정석해 선생은 한말의 국권상실시기인 1899년 같은 해에 태어나셨다. 이미륵 작가의 고향은 황해도 해주, 정석해 선생은 평안북도 철산으로 다 북녘 지방 출신으로 어린 시절 전통학문인 유학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뒤 신식교육을 받았다. 두 분 모두 1917년 같은 해에 경성(서울)으로 유학을 와, 이미륵 작가는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해 의학을 공부하고, 정석해 선생은 연희전문학교 수물과에 입학했으나 곧 문과로 옮겨 나중에 한글학자가 된 김윤경 등과 교우하면서 논리학/철학에 흥미를 갖고 공부를 하였다.
두 분의 전공은 의학과 철학으로 달랐으나 국권이 상실된 암울한 조국의 현실을 가슴아파 했다. 그러다가 1919년 3.1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압록강은 흐른다》의 표현을 보면 이미륵 작가는 의학도라 좀 신중한 태도를 보인 듯하고, 정석해 선생은 문과 2학년생이고 연전 기독학생회장으로 3월 1일 파고다공원에도 나가고 3월 5일 남대문 역두에서의 시위 때에는 독립선언서를 하숙집에서 인쇄해 각급 학교학생들에게 나눠주고 고향 철산에도 보낼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그런 뒤 두 분은 일제의 탄압을 받게 되자 압록강을 건너 상해로 피신해서 도산 선생을 비롯한 선배들의 권유와 서양 선진문물에 대한 관심으로 상해에서 프랑스 남부 마르세이유 항구로 가는 화물선을 타고 1920년에 유럽에 도착한다. 이미륵 작가는 바로 독일로 가서 뮌헨대학교에서 동물학 생물학 철학을 공부하여 1928년에 이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정석해 선생은 프랑스 보배의 국립고등학교(Lycee)에 입학하여 프랑스어와 영어를 공부한다. 정석해 선생은 경제 사정이 어려워 학업을 계속하기가 어려워 파리에서 노동을 하다가 1922년 봄 독일 뷔르츠부르크로 가서 김나지움 교수로부터 독일어를 배웠다.
1922년 그해에는 먼저 독일에 정착한 이미륵 작가를 직접 만나고, 그의 도움을 받아 뷔르츠부르그 대학 정치경제학부에 입학해 마르베의 ‘심리학 개론’을 수강한다. 그러다가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 다시 파리로 돌아가 1924년 11월 파리대학 철학과에 입학해 1930년 10월 파리대학 철학과를 졸업한다.
가난한 경제사정을 딛고 파리대학을 졸업한 정석해 선생은 파리에 머물면서 김성수 장덕수 같은 인물에게 관광 안내도 하고, 1939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를 환영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39년 귀국을 한다. 그러나 한 때 동지였던 자의 밀고로 체포되어 일본으로 압송되는 등의 고생을 하다가 해방되던 1945년 모교인 연희전문학교 교수가 된다. 그러나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정석해 선생은 4.19 때 또 이승만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일어난 학생들 편에서서 교수단 데모에 앞장 서다가 고생을 하였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때에는 예비검속으로 연행되었다가 석방 보증형식으로 풀려나는 등 한 평생 민족 민주운동에 앞장 선 의로운 삶을 사셨다.
정석해 선생은 교수직 정년이 60세로 하향 조정되면서 1961년에 정년 퇴임을 하셔서 더 이상 해직될 일은 없었다. 그래서 1962년부터는 연세대 철학과에서 시간 강사를 계속하셨는데, 그 덕분에 철없는 필자같은 학생도 1975년 군에서 제대한 후 그 유명한 ‘정석해 교수의 인식론‘을 들을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글을 마치며 험난한 시대를 치열하고 멋있게 사신 선구적 애국지식인 두 분께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느끼며, 삼가 평화로운 안식을 빈다.
김영 인하대 명예교수 kimyoung5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