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녹화공작 피해자들, 진화위에 직권조사 촉구 [사회혁신] 1980년 10월 서울 고려대 정문을 통해 진입하는 군트럭. (격동 한국사 새 지평)
요즘 청소년이나 대학생들은 무슨 그런 일이 있었어? 할지 모르겠지만,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은 녹화사업(綠化事業)이란 것을 했다.
멀쩡히 학교에 잘 다니던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곤 했다. 안 보이다 몇 개월 뒤 군복 차림으로 나타나곤 했다. 그런 친구가 교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 동료 학생들이 처음에는 반가워하다 나중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곤 했다. 다 이유가 있었다. 의문사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원래는 민둥산에 나무를 심어 푸른 산을 만드는 사업을 뜻했으나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이들은 다른 의미를 갖다 붙였다. 대학생들 머리에 든 빨간 물을 파란 물로 바꾼다는 의미로 쓴 것이다. 빨간 물 이란 단순히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군사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을 친북·좌경·용공으로 싸잡아 몰던 시대였다. 쉽게 말해 전두환 대통령과 정권을 비판하는 행위까지 의미했다. 당시 국군보안사령관 박준병 육군 중장의 주도 아래 실행했던 공작으로 대한민국 정치사의 대표적인 불법 사찰행위이다.
보안사 등은 문제 대학생을 강제징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상 전향과 동료 학생에 대한 감시 또는 학교와 종교단체 동향 보고 등 프락치 활동을 강요하는 선도 공작 을 곁들였다.
녹화사업 의문사 6인 1. 한양대학교 기계과 81학번 한영현 2. 고려대학교 정경계열 80학번 김두황 3. 연세대학교 영독불계열 81학번 정성희 4.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81학번 이윤성 5. 서울대 기계설계과 한희철 6. 동국대학교 사대 수학교육과 81학번 최온순 ⓒ 민청련동지회
군사정권 당시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강제징집돼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했던 공작 피해자 110명이 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직권조사를 요구하며 진실규명 신청에 나섰다.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상규명위원회(위원회)는 2일 오전 서울 중구 충무로 진실화해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녹화·선도공작 피해자에 대한 전수조사와 가해자에 대한 청문 조사 등을 촉구했다. 위원회에 따르면 보안사에서 밝히고 진실화해위가 확인한 강제징집 피해자는 2921명에 이른다.
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강제징집 과정에 수사기관의 불법 체포와 구금, 입대 후 특별관리와 동향 감시 등 위법과 인권 침해가 있었다 며 특히 전두환 정권 보안사와 보안부대는 학생들을 연행해 구금한 상태에서 심사 라는 명목으로 구타와 고문, 협박을 통해 진술서와 반성문을 제출받았다 고 밝혔다.
강제징집 피해자인 양창욱 위원회 상임위원장은 1983년 강제 징집됐다. 6월 17일 제 친구 김두황이 의문사 당했고 9월에는 과천 대공분실에서 12일 동안 보안사 심사 장교에게 조사를 받고 프락치 공작을 당했다 며 43년이 지난 지금도 깊은 트라우마 속에 멍이 들어 있다 고 털어놓았다. 양 위원장은 보안사는 소격동 165번지에서 수많은 강제 징집 동료들을 고문, 구타하고 심지어 의문사로 내모는 등 국가 폭력을 가차 없이 자행했다 며 국가가 보안사 고문 기술자들과 보안사 심사관들의 예우를 국가가 박탈하고 역사의 이름으로 단죄해야 한다 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또 진실화해위에 3기 들어 강화된 조사 권한을 제대로 행사할 것을 촉구했다. 3기 진실화해위는 압수·수색영장 청구 의뢰 권한과 고발 및 수사 요청 권한 등을 갖는다.
양 위원장은 지난 보안사는 대통령이 와도, 보안사가 거꾸러져도 서류 한 장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며 기록에 의존했던 과거 조사 관행을 탈피해 조사관 강화와 압수수색 권고, 수사 의뢰 등 협력을 적극적으로 해줘야 한다 고 강조했다. 이어 진실화해위에 현장 조사와 청문회의 조속한 실시를 요구했다.
앞서 2기 진실화해위 때도 녹화·선도 공작 피해자 700여 명이 진실규명 신청을 했으나 조사 범위의 제한으로 피해자의 진실규명 신청이 각하된 사례가 있었다. 3기 진실화해위의 조사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각하됐던 사건들에 대한 진실규명이 가능해졌다. 2기 진실화해위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며 신체의 자유, 자기 결정권, 사상과 양심의 자유 등 인권을 총체적으로 유린한 사건 이라고 규정한 적이 있다.
또 2기 진실화해위 조사로 청명, 청미, 921, 철벽, 마파람 공작 등과 관련된 증거자료가 발견됐음에도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며 해당 공작은 대학생뿐 아니라 노동자와 종교인, 노동·종교단체를 대상으로도 진행돼 왔음도 밝혀졌다 고 주장했다.
이들은 피해자 상당수가 가해에 협조하도록 강요받은 경험 때문에 진실규명 신청 자체를 어려워하고 있으며, 이미 고인이 된 피해자와 해체된 피해 단체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5월 2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김형철 부장판사)는 미성년자였는데도 강제징집돼 녹화사업에 동원된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인정했다. 원고 A씨 등 11명에게 3000만~6500만 원 사이에서 달리 책정됐다.
가장 많은 배상액이 인정된 A씨는 1982년 대학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학내 시위 홍보물을 붙인 일로 무기 정학 처분을 받았다가 강제징집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 18세 미성년자였다. A씨는 군에서 특수학적변동자로 분류돼 복무 중 지속적인 동향 감시를 받았다.
특수학적변동자는 학생운동을 이유로 강제징집된 대학생들을 말한다. 국군보안사령부는 이들을 A∼D 등급으로 나눠 일반 사병들과 달리 관리하면서 사상전향 등을 강요했다. 실제로 보안사령부는 A씨에 대한 기본카드, 동향 관찰· 선도 결과 보고 등 신상자료를 작성했으며, 중대장에 대한 언행 등 군 복무 중 동향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함께 소를 제기한 이들 중에는 1971년 10월 박정희 정권 당시 교련 철폐 운동을 주도하다 강제 징집된 이들도 있었다. 교련 철폐 운동은 1971년 대학 내 군사교육 과목인 교련이 강화되자 대학생들이 저항하며 벌인 전국 규모의 운동이다.
재판부는 공권력을 남용한 직무상 불법 행위로서 법질서 전체의 관점에서 위법하다고 평가함이 타당하다 며 관여한 공무원들의 불법 행위로 인해 원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다 고 했다.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