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국정 가속 주문과 주권자의 온도 [뉴스] 정치의 온도는 주권자만 올릴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 때마다 국정의 속도를 높이라고 각료들에게 주문한다. 국정의 속도란 결정할 일을 제때 결정하고, 결정한 일을 미루지 않고 집행하며, 바꿔야 할 제도를 필요한 시점에 바꿔 내는 능력이다. 관료주의적 타성과 제도적 교착에 막혀 결정이 늦어질수록 그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이 치른다. 속도를 높이라는 요구는 정당하고, 나는 그 주문에 동의한다.
다만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 대리인이 낼 수 있는 속도는 이미 짜인 판 위를 달리는 속도다. 판을 새로 짜는 일, 곧 규칙을 쓰는 자에게서 규칙 제정권을 되찾아 오는 일은 다른 힘을 요구한다. 로베르토 웅거는 그 힘을 온도 라고 불렀다. 제도적 교착을 푸는 능력이 속도라면, 주권자의 열의와 참여를 끌어올려 판 자체를 바꾸는 에너지가 온도다.
그런데 온도는 위에서 내려 보낼 수 없다. 대통령이 각료에게 속도를 지시할 수는 있어도 온도를 지시할 수는 없다. 온도는 주권자만 올릴 수 있고, 주권자가 온도를 올리려면 그 열기를 담을 제도가 있어야 한다. 국민발안과 국민소환, 그리고 추첨으로 구성되는 시민의회가 그 제도다.
지난 제헌절, 국회의장은 개헌을 말했고 대통령은 국민주권의 날 지정을 말했다. 대통령의 개헌 구상에도, 그가 말하는 실용주의의 반경 안에도, 온도를 담을 그릇은 보이지 않는다. 이 빈자리가 아쉽고 걱정스럽다.
대통령의 주문은 어디까지 미치는가
국정은 행정보다 넓은 말이다. 행정이 국가 의지의 집행이라면, 국정은 그 의지를 세우고 관철하고 정당화하는 통치 전체를 가리킨다. 그 안에는 의제 설정과 입법 관철, 당정 조율과 국회 설득, 이해관계 조정과 여론 형성이 모두 들어 있다. 이것들은 정치다. 따라서 대통령이 국정의 속도를 높이라고 할 때 그 속도는 행정과 정치 두 축 모두에 걸린다. 장관들에게 관할 사항의 행정적 차원만이 아니라 정치적 차원까지 속도를 높이라는 주문인 것이다.
그런데 장관들은 이 주문을 행정 속도로만 번역하기 쉽다. 그 습관 뒤에는 오래된 착시가 있다. 정치와 행정의 이분법이다. 정치는 가치를 정하고 행정은 그것을 중립적으로 집행할 뿐이라는 관념이 관료 사회에 깊이 박혔다. 그러나 현대 행정학은 이를 신화로 본다. 정책은 집행 과정에서 끊임없이 다시 만들어지고,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미룰지, 누구의 저항을 어떻게 넘을지를 정하는 일은 그 자체로 정치다. 게다가 장관은 정무직, 곧 부처의 정치적 수반이다. 장관의 자리 자체가 행정과 정치가 겹치는 자리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7.14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문제는 지금 장관들이 이 겹치는 자리를 잘 감당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관료로 잔뼈가 굵었거나 한 분야의 전문가로 발탁된 이들일수록 자기 부처 의제를 공론장에 들고 나가 여론을 만들고 국회를 설득하고 반대 세력을 관리하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그래서 속도를 올리라는 주문을 받으면 회의를 늘리고 보고를 앞당기고 규정을 손보는 쪽으로 답한다. 국정의 절반인 정치를 대통령실과 여당의 몫으로 미뤄 둔 채 자신은 집행에 머무는 것이다. 대통령의 주문이 현장에서 절반만 도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니 속도를 높이라는 말은 우선 이 단절을 멈추라는 말로 읽혀야 한다.
행정의 속도와 온도
장관이 행정의 속도를 올린다는 것은 구조적 민첩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실패보다 부작위를 더 무겁게 묻도록 관료 조직의 유인 구조를 바꾸고, 부처 칸막이를 허물어 프로젝트 중심으로 결정 과정을 단순화하며, 입법 병목 앞에서 직접 국회 설득의 전면에 서는 것이다. 이 세 번째 과제에서 행정의 속도는 이미 정치에 발을 걸친다.
행정에는 온도도 필요하다. 고전적인 관료제의 이상은 증오도 애정도 없이 규칙대로 집행하는 차가운 기계였다. 그 냉정함은 관료적 폭력이나 영혼 없는 신청주의로 기울기 쉽다. 행정의 온도는 시민을 대상에서 주체로 옮기는 데서 나온다. 시민을 민원인에서 정책의 공동 생산자로 인정하고, 최전선 공무원에게 시민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재량을 실질적으로 주며, 서류를 갖춰 오라는 대신 먼저 찾아가고, 적발 위주의 감사를 문제 해결형으로 바꾸는 것이 그 길이다.
이것이 행정이 홀로 할 수 있는 일의 최대치다. 면책도 재량도 찾아가는 서비스도 그것을 떠받치는 법률과 예산과 권력 구조 위에서만 지속된다. 물길의 온도는 하류에서 얼마간 손볼 수 있어도 수원은 언제나 정치다.
정무의 속도와 온도, 그리고 그 한계
그래서 다음 단계는 정무적 정치다. 개혁 의제를 공론장 최전선으로 가지고 나와 시민과 소통하고, 여당과 호흡을 맞추고, 야당을 설득하고, 이해관계자의 반발을 미리 관리하는 일이다. 규제 하나를 풀 때에도 조용한 규정 개정으로 끝내는 것과, 그 개혁이 누구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공론장에 붙이고 시민지지를 확보해서 저항을 넘어서는 것은 전혀 다른 국정이다. 대통령의 속도 주문이 실제로 요구하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장관들이 아직 채우지 못한 몫도 여기다.
다만 정무적 정치의 온도는 이미 짜인 판 안에서 올라가는 온도다. 그 열기는 법안 하나를 통과시키고 정책 하나를 관철할 수는 있어도, 그 법안을 만드는 규칙 자체는 건드리지 못한다. 그리고 한국 정치의 진짜 병목은 바로 그 규칙에 있다.
판 자체를 바꾸는 문제, 셀프입법특권
웅거는 사회의 근본 개혁이 왜 늘 좌절되는가를 물으며 고에너지 정치를 제창했다. 그의 진단은 급진적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제도들은 자연법칙이 아니라 역사의 우연이 굳어진 인공물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바꿀 수 없는 필연으로 착각한다. 웅거는 이 착각을 제도물신주의라 부른다. 구조와 정치를 손댈 수 없는 주어진 것으로 격리해 두고 오직 행정만 만질 수 있다고 여기는 태도가 그 전형이다.
한국에서 이 제도물신주의가 가장 단단하게 굳은 자리가 국회의원의 정치 분야 셀프입법특권이다. 선거법과 정당법, 국회법과 정치자금법, 의원의 특권과 징계에 관한 규칙을 국회가 스스로 만든다. 경기에 뛰는 선수가 규칙을 쓰고 반칙을 심판한다. 이 점은 여야합의가 있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영역에서 대리인이, 특히 여야합의로, 자기에게 불리한 규칙을 스스로 도입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제도 설계의 기본에 어긋난다.
지난 40년간 개헌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와 정치개혁이 시늉에 그쳤던 이유는 거대양당의 셀프입법특권과 여야합의주의 외에 설명할 길이 없다. 헌법을 위시한 정치관계법에서는 여야합의, 즉 거대양당간 담합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어떤 법안도 장기교착상태를 면치 못한다. 심지어 4당 연합으로 압도적 다수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을 통과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거대양당 중 하나가 반대했다는 이유로 그 법이 무력화됐을 정도다.
이런 장기 교착은 행정의 속도로도 정무적 정치로도 풀리지 않는다. 이해당사자가 심판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다른 힘이 필요하다.
민주개혁진보 5당 원내대표가 2일 국회 본청 앞 정치개혁 천막 농성장에서 정치개혁 완수와 헌정 질서 회복을 위한 6ㆍ3 지방선거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왼쪽 세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 조국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 한 원내대표,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 기본소득당 신지혜 최고위원. 2026.4.2 연합뉴스
제헌절의 두 장면
앞서 말한 제헌절의 두 장면을 자세히 볼 차례다. 지난 7월 17일 제78주년 제헌절에 조정식 국회의장은 경축사에서 2027년에 국민주권 개헌안을 마련하고 22대 국회 안에 10차 개헌을 매듭짓자고 제안했다. 의장 직속 헌법개정자문위원회를 발족해 로드맵과 의제를 정리하고, 국민이 직접 제안하고 토론하는 참여 플랫폼도 만들겠다고 했다. 내년은 전국 단위 선거가 없어 차분히 논의할 적기라는 말도 덧붙였다. 제시한 의제는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대통령 계엄선포권 제한, 권력구조 개편, 선거관리 개혁이었다. 같은 날 대통령은 2024년 12월 3일을 국민주권의 날로 지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개헌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를 분업으로 볼 여지는 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가 좌절된 경험이 있고, 올해 5월 국회가 발의한 개헌안도 제1야당의 불참으로 투표가 성립되지 않은 채 지방선거 동시 국민투표가 무산됐다. 대통령이 앞장서면 개헌이 곧바로 정쟁이 된다는 계산은 근거가 없지 않다. 대통령 자신도 전면 개헌은 부담이 크니 합의되는 만큼 순차적으로 하자는 실용적 태도를 말해 왔다.
그러나 국민주권을 기념일로 만드는 일과 제도로 만드는 일은 다르다. 이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첫 번째 과제는 헌법 개정이었고, 거기에는 4년 연임제와 결선투표제, 감사원 이관, 거부권 제한, 계엄 통제,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검찰 영장청구권 독점 폐지 같은 항목이 촘촘히 담겼다. 모두 필요한 개혁이다. 그런데 이 목록은 권력을 대리인들 사이에서 재배치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주권자에게 새 권한을 넘기는 항목, 곧 국민발안과 국민소환과 시민의회는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장이 제시한 의제 역시 국민주권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플랫폼과 공론화는 의견을 듣는 장치이지 권한을 넘기는 장치가 아니다.
참담하기 그지없는 위성정당 사태를 두 차례나 경험한 대통령의 입에서 그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 표명이 없는 것, 으뜸 개혁인 선거제 개혁 등 정치개혁을 의제화하지 않는 것, 주권자들의 국민발안과 시민의회 요구에 침묵을 지키는 것, 그럼에도 국민주권의 날을 지정하는 것. 이것이 지금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왜 정치의 온도를 말하지 않는가
짐작 가는 이유가 셋 있다. 첫째, 열기는 통제되지 않는다. 광장의 에너지가 언제나 정부에 우호적으로 흐르지는 않는다. 시민 참여를 부추겼다가 그 화살이 정부를 향할 수도 있다. 통치자의 자리에서 이런 계산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온도의 본질이고 힘이다. 그리고 통제와 방치 사이에 제도가 있다. 열기를 담을 그릇을 만들어 두면 그 열기는 거리가 아니라 제도로 흐른다. 그릇을 만들지 않으면 열기는 언젠가 거리로 간다. 우리는 그 광경을 이미 여러 번 보았다.
둘째, 지금은 여건이 유리하다. 압도적 여대야소에 높은 지지가 있으니 행정과 입법만으로 웬만한 일은 된다. 굳이 정치개혁이나 주권자 권리 강화 개헌을 꺼내 전선을 넓힐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유리한 조건은 임기와 함께 끝난다. 조건이 좋을 때 만들지 않은 제도는 조건이 나빠지면 영영 만들지 못한다. 게다가 정책은 정권이 바뀌면 되돌려지지만 주권자에게 넘어간 권한은 되돌리기 어렵다. 지금 이 조건은 그 권한을 넘길 수 있는 드문 기회이지, 넘겨주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못 된다.
셋째, 앞에서 말한 실용주의의 반경이다. 대통령의 실용주의는 성과로 증명하는 노선이고, 합의되는 만큼 순차적으로 하자는 개헌 태도도 그 연장이다. 그러나 실용주의는 수단에 관한 태도여야지 목표에 관한 태도일 수 없다. 목표 목록에서 주권자 권한 확대가 빠지는 순간 실용주의는 현상유지의 다른 이름이 된다. 더구나 정말로 실용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온도를 담을 그릇으로 앞서 이름만 불러 둔 그 제도들이 실은 가장 실용적이다.
혼합민주정과 시민의회가 속도와 온도를 함께 올린다
이제 그 그릇을 구체적으로 볼 차례다. 내가 오래 주장해 온 3종 혼합민주정은 선출된 대의기구와 추첨으로 구성된 시민의회, 그리고 주권자의 직접 결정을 공화적 안전장치 안에서 결합하는 설계다. 이것은 대의제를 대체하자는 제안이 아니라, 대의제가 구조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영역을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자는 제안이다. 그리고 이 설계의 미덕은 정치의 온도와 속도를 동시에 올린다는 데 있다.
먼저 온도다. 저에너지 민주주의의 본질은 시민에게 열의가 없다는 데 있지 않고 열의를 담을 그릇이 없다는 데 있다. 촛불은 몇 달이면 식고, 선거의 열기는 개표와 함께 끝난다. 웅거가 갈망한 고에너지 정치는 이 간헐적 분출을 상시적 참여로 바꾸는 일이다. 추첨으로 구성되어 몇 달간 학습하고 숙의하고 권고안을 내는 시민의회는 참여를 사건에서 제도로 바꾼다. 참여수당과 함께 평범한 시민에게 시간과 정보와 권한을 주는 순간, 주권자는 관객석에서 무대로 내려온다.
다음이 속도다. 숙의를 더하면 느려진다는 통념은 세 가지 점에서 사실과 다르다. 첫째, 시민숙의는 이해충돌로 막힌 교착을 우회한다. 선수가 심판인 영역에서 대의기구는 원리상 결론을 내지 못한다. 아일랜드는 30년 넘게 손대지 못한 낙태 문제를 시민의회에 넘겨 몇 달 만에 권고안을 얻었고 국민투표로 매듭지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는 의원들이 결코 스스로 고칠 수 없는 선거제도를 아예 추첨 시민의회에 맡겼다. 영원히 안 될 일이 몇 달 만에 되는 것, 이것이 속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둘째, 시민숙의는 정당성을 확보한다. 결정에 주권자의 숙의가 얹히면 집행 저항이 줄고 집행이 빨라진다. 우리에게도 선례가 있다.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에서 시민참여단 471명이 석 달 만에 결론을 냈고, 그대로 두었다면 수년을 끌었을 갈등이 정리됐다. 절차의 정당성이 결정이 살아있게 만든다.
셋, 시민숙의는 저항을 앞당긴다. 앞에서 본 잠복 저항의 문제, 곧 속도에 밀려 숨죽였던 기득권이 집행 단계에서 되살아나 개혁을 무력화하는 문제는 가장 비싼 지연이다. 숙의는 그 갈등을 설계 단계로 끌어와 미리 치른다. 그러므로 속도는 결정의 순간만이 아니라 집행의 전 과정을 봐야한다. 이 척도로 재면 숙의가 가장 빠르다.
국민발안도 마찬가지다. 발안이라는 우회로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대리인의 셈법이 달라진다. 주권자가 직접 나설 수 있다면 국회는 먼저 움직이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게 된다. 실효성 있는 국민발안제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선출의회를 견제하고 재촉한다. 시민의 힘으로 여야담합과 장기교착을 뚫으며 정치의 속도와 온도를 회복하는 수단으로 시민의회와 국민발안만한 것이 없다.
이런 제도는 실험 단계의 공상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개헌과 기후, 정치개혁과 지역 현안에 걸쳐 수백 차례의 시민의회가 실시됐다. 프랑스는 기후시민회의를 열었고, 벨기에 동부지역은 상설 시민의회를 제도화했다. 국내에서도 이미 아래로부터 움직임이 있다. 시민의회전국포럼이 결성되어 관악에서 기후시민의회가 열렸고, 광명에서는 조례 제정이 추진되며, 군포에서는 상설 시민의회가 모색되고 있다. 최근에는 300명 규모의 추첨 시민의원으로 개헌시민의회를 구성해 국민개헌안을 만들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아래에서는 이미 실험이 진행 중인데 위에서는 말이 없다.
내년은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해다. 국회의장도 그래서 적기라고 했다. 개헌 논의의 적기라는 말은 곧 개헌시민의회를 실제로 운영할 적기라는 뜻이기도 하다. 국회가 스스로 고칠 수 없는 개헌안과 정치개혁방안을 추첨 시민의회의 손에 맡기는 것, 이것이야말로 국정의 속도와 정치의 온도를 한꺼번에 올리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맺으며
대통령의 속도 주문은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장관들이 행정을 넘어 그 주문의 나머지 절반인 정무를 제대로 감당해 낸다면 이 정부는 유능한 정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유능한 정부와 성공한 정부는 다르다. 성공은 되돌릴 수 없는 구조 변화를 남기는 일이고,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확실한 방법은 주권자에게 권한을 실제로 넘기는 것이다.
다시 강조한다. 속도는 대리인이 낼 수 있지만 온도는 주권자만 올릴 수 있다. 대통령이 대리인의 속도만 주문하고 주권자의 온도를 주문하지 않는다면, 그 속도는 임기와 함께 멈춘다. 열기를 담을 그릇을 끝내 만들지 못한 채 국민주권의 날에 기념식만 남는 사태를 나는 걱정한다. 주권자를 주권자답게, 대리인을 대리인답게,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답게! 나는 대통령의 입에서 위성정당 문제 해결, 국회의원의 셀프입법특권 해소, 주권자 권리 강화 개헌, 국민발안과 시민의회 도입이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때 비로소 국정의 속도가 정치의 온도로 뒷받침되고 국정의 가속이 제7공화국이라는 목적지에 닿을 것이다.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kwaknh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