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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왜 인공지능 시대에도 ‘주체적 읽기’가 중요할까

왜 인공지능 시대에도 ‘주체적 읽기’가 중요할까
[칼럼]
오늘날 한국의 문화 생태계는 기이한 모순을 마주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수십 년째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이라는 말이 출판계의 고질적인 수식어로 떠돈다. 1년에 책을 단 한 권이라도 읽는 인구가 전체의 절반 미만(2025년 국가데이터처 「사회조사」 기준 48.7%)이라는 통계가 뒷받침하는 엄혹한 현실이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서울국제도서전의 입장권이 조기 매진되어 도저히 책 구경을 하기 힘들 정도의 오픈런 이 벌어진다. 책을 들고 다니고 필사하는 행위를 멋으로 여기는 이른바 텍스트힙(Text-hip) 트렌드가 소셜 미디어를 뜨겁게 달군다. 책방과 도서전에는 세련된 감각을 소비하려는 젊은이들로 넘쳐나는데, 정작 문해력 저하와 독서의 실질적 종말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대학과 사회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 이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28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은 시민들. 2026.6.28 연합뉴스 ‘읽기’와 ‘쓰기’를 밀어낸 ‘듣기’와 ‘보기’ 독일의 저명한 미디어문화학자 크리스토프 엥게만(Christoph Engemann)이 집필한 『읽기의 위기』(원제: 읽기의 미래, 헤이북스, 김인건 옮김, 2026년 5월)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해 미디어 기술사적이고 사회학적으로 가장 정교한 답을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는 책이라는 종이 매체의 단순한 물리적 쇠퇴나 대중의 독서 습관 부족을 한탄하는 고루한 문화 비관론에 머물지 않는다. 대신,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대중의 문해율이 높고 정보가 폭발하는 이 풍요의 시대에, 인간의 읽는 행위 와 쓰는 행위 가 어떻게 기술적으로 재편되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그리고 독자가 사라진 빈자리에 무엇이 들어섰는지를 파헤침으로써, 인공지능(AI) 시대에 인간이 끝내 스스로 텍스트를 마주해야 하는 실존적 이유를 설파한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현대인이 책을 멀리한다고 해서 읽기와 쓰기 자체를 멈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인류가 매일 엄청난 양의 글을 공급하고 소비하는 시대는 역사상 없었다.” 현대인은 인스턴트 메신저, 소셜 미디어, 이메일, 쇼핑몰 후기 등을 통해 일상적으로 막대한 텍스트를 생산하고 소비한다.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는 본질적으로 텍스트 중심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진짜 위기는 텍스트의 총량이 아니라, 지식의 전달 메커니즘이 문자 언어에서 ‘구술 언어(입말)’로 급격하게 재편되는 현상에서 발생한다. 스마트폰과 헤드폰, 스마트 스피커, 자동차 오디오, 팟캐스트, 유튜브, 쇼츠와 릴스 같은 ‘말하기 도구’들의 비약적인 성장은 음성과 영상 중심의 지식 소비문화를 탄생시켰다. 이로 인해 오랜 시간 동안 인류 지적 담론의 정점이자 특권적 지위를 차지했던 ‘문자 텍스트’는 미디어 기술의 배경으로 조용히 밀려나고, 그 자리를 ‘듣기’와 ‘보기’가 점령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말을 인간보다 더 정밀하게 듣는 인공지능 기계 저자는 이러한 기술적 현상을 플랫폼 구술성(Platform Orality) 이라 명명하며, 플랫폼 구술성에서 읽기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듣기”라고 선언한다. 이 플랫폼 구술성은 과거의 단순한 구술 문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거의 말은 내뱉는 순간 허공으로 휘발되는 아날로그적 한계를 지녔지만, 플랫폼 환경에서의 말은 컴퓨터 내부에서 자동음성인식 기술을 거치며 문자 언어(텍스트)로 신속히 치환된다. ​입 밖으로 나온 인간의 모든 말에 고유한 ‘온라인 주소’가 주어지면서, 구술 언어는 책이 가졌던 최고의 장점인 ‘검색 가능성’과 ‘반복 가독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유튜브와 틱톡이 텍스트 중심의 구글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검색 엔진으로 기능하는 원동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 혁명의 가장 차가운 역설은 인간이 듣고 말하는 모든 구술적 행위가 결국에는 ‘기계가 읽는 텍스트’로 전환되어, 플랫폼 사업자들의 인공지능 학습을 위한 거대 말뭉치(corpus) 자산으로 축적된다는 점이다. 챗GPT를 비롯한 대규모 언어 모델(LLM)들은 소셜 미디어와 메신저 속의 가벼운 대화와 구술적 관찰을 토대로 몸집을 키웠다. 결국 인간은 더 이상 직접 읽지 않고 말과 소리로 소비하는 청중이 되었으며, 그 뒤편에서 인공지능 기계는 인간이 남긴 모든 말을 가장 정밀하게 읽어 들이는 기묘한 구도가 정착되었다. ​스마트폰 속 ‘가상대학’에서 발휘되는 ‘플랫폼 카리스마’ 지식 전달이 활발한 영상 콘텐츠로 넘어가면서, 현대의 정보 지형에는 독특한 공간이 열린다. 저자는 이를 전통적 아카데미의 특권적 권위 밖에서 강연과 배움이 폭발적으로 부활한 가상 대학 이라고 말한다. 스마트폰 하나만 켜면 우주의 신비부터 복잡한 철학 사상, 역사적 사건들이 5분에서 1시간 안팎의 수려한 강의로 가공되어 쏟아진다. ​과거의 대학 강의와 가상 대학 의 결정적인 차이는, 수강자들의 독서 여부 에 있다. 과거의 강의가 학생들에게 텍스트를 심도 있게 읽어올 것을 요구했다면, 오늘의 가상 대학 청중들은 철저히 읽지 않는 독자 , 즉 가상의 독자 를 자처한다. 텍스트가 기하급수적으로 쏟아지고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함량 미달의 책까지 손쉽게 출판되어 길을 잃기 쉬운 환경 속에서, 대중은 직접 책을 집어 정독하기보다는 지식을 먼저 습득하고 압축하여 ‘가르쳐 줄 전문가’를 찾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지식을 중개하는 전달자는 플랫폼 카리스마(Platform Charisma) 를 행사한다. 이들은 제도권 학계의 검증을 거친 인물이 아닐지라도, 동영상 카메라 앞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통해 높은 신뢰와 권위를 획득한다. 그들의 진정성은 정교한 시청각 효과, 좋아요 와 댓글 , 그리고 공유의 알고리즘망에 의해 증폭되며 대중의 검증을 통과한다. 독일의 26세 유튜버 레조(Rezo)가 2019년 유럽의회 선거 직전 참고문헌을 촘촘히 인용한 단 1시간짜리 저격 영상을 올려 집권당을 송두리째 흔들고 1000만 조회수를 기록했던 사례는, 오늘날 대중이 지식을 수용하고 정치적 의견을 형성하는 경로가 완전히 구어적 플랫폼 카리스마에 의존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 유튜버 레조 텍스트를 가치와 맥락으로 해독할 줄 아는 현대판 성직자 이로써 현대인은 책 한 권을 직접 독파하는 대신, 북튜버 나 5분 요약 서비스 같은 읽기 전문가들에게 자신의 독서 행위를 완전히 위임 한다.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문자 해독력은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스스로는 읽지 않고 남이 대신 읽어주며 씹어 넘겨주는 지식을 구어적으로 흘려듣는 수동적 수용자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읽기를 둘러싼 21세기형 정보 민주화의 그늘이자, 깊이 있는 서사(narrative) 에 대한 극단적 무관심을 낳는 원인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제기하는 가장 충격적인 전망은 바로 새로운 라틴어(New Latin) 시대의 도래다. 중세 유럽에서 라틴어는 대다수 평민은 해독할 수 없었던, 오직 극소수의 성직자와 지배층만이 공유하던 권력의 언어였다. 성서의 텍스트가 라틴어라는 장벽에 갇혀 있었기에 성직자 계급은 해석의 권력을 독점하고 신도들을 지배할 수 있었다.   1534년 출간된 루터의 독일어 번역 성서.​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만개한 작금의 시대는 중세와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글을 깨우쳤고 정보는 무료에 가깝게 널려 있다. 그러나 이 투명함 과 개방성 속에서 전혀 다른 양상의 거대한 장벽이 세워진다. 이제 텍스트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지만, 분석적 독해와 비판적 사유, 그리고 자기 의견을 능동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고도의 노력을 자발적으로 투여하는 이들은 점점 극소수로 쪼그라든다. ​즉, 읽는 행위 자체가 기피 대상이 되면서, 텍스트를 해독하고 가치와 맥락을 독립적으로 판단할 줄 아는 소수만이 전문화된 텍스트 노동 계급”이자 현대판 ‘성직자’로 등극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수의 대중은 구술 플랫폼이 가공해 주는 파편화되고 자극적인 지식에 귀를 내맡긴 채 스스로 사고하는 법을 잃고, 소수의 읽는 자들은 그 텍스트를 장악하여 세상을 해석하고 정교한 지식 평판을 독점한다. 텍스트 문해력의 수준차가 자본주의적 계급 구분점보다 더 견고한 인간의 ‘지적 분화’를 야기하게 된다는 이 진단은, 텍스트힙 이라는 감각적 소비의 껍질 뒤에 숨겨진 서늘한 권력의 양태를 폭로한다. ​인간을 뛰어넘는 글쓰기, 인간을 압도하는 재미와 편의성 독서와 텍스트는 현재 역사상 전례 없는 이중의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한쪽에서는 대규모 언어 모델에 의한 초고속 텍스트 생성과 분석의 자동화가 일어나며 인간 고유의 글쓰기를 무색하게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압도적인 감각적 흥미와 편의성을 자랑하는 유튜브, 동영상, 팟캐스트가 인간의 주의력을 단 몇 초 단위로 조각내며 독서의 고독한 사유를 무너뜨린다. ​저자는 이 어두운 지형 속에서 묵직한 마지막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만약 AI가 인간보다 더 빠르게 잘 읽는다면, 만약 새로운 동영상 강의처럼 다른 누군가가 독서를 대신해 플랫폼 구술성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의 지식을 우리에게 제공한다면, 왜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스스로 읽어야 할까?” (183쪽) ​저자는 이 물음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공하기보다, 책을 완전히 덮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그러나 우리는 저자가 나열한 현상의 한가운데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스스로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기계적이고 빠른 정보의 흡수 를 뜻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1초 만에 수만 페이지를 요약하고 기막힌 정보를 도출해 낼 수 있으나, 그 요약본을 받아 드는 인간의 머릿속에서는 아무런 사유적 자극도, 철학적 의문도, 가치관의 충돌도 일어나지 않는다. 읽기란 멈추어 서는 행위이며, 저자의 말과 나의 경험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스스로의 세계를 재조직하는 격렬한 인지적 노동이다.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읽기 멈춘다면 ‘새 라틴어 시대의 지배 대상 전락할 뿐 동영상 속 플랫폼 카리스마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지식은 매끄럽고 편안하지만, 그것은 강연자가 설계한 경로와 시각적 자극에 시선을 온전히 빼앗기는 ‘가상의 동의’에 불과하다. 텍스트가 가진 진정한 힘은, 독자가 원할 때 언제든 눈길을 멈추고 고뇌할 수 있으며, 스스로 행간의 빈 공간을 상상력과 논리적 추론으로 채워 넣을 수 있다는 고유한 명성과 성취에 있다. ​새로운 인공지능 시대에 스스로 읽기를 멈춘다면 우리는 기계가 제안하는 자동화된 정보의 피수용자이자, 플랫폼 카리스마를 쥔 현대판 성직자들이 해석해 주는 새로운 라틴어 의 한낱 지배 대상으로 전락할 뿐이다. 텍스트를 손에 쥐고 직접 사유하기를 고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기술 독점 플랫폼의 지배 전략에 저항하는 가장 강력하고 인간다운 권리 수호이자, 비판적 지성을 지키는 마지막 요새일 것이다. ​그러므로 텍스트힙 이 유행하는 이 기묘한 풍경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책을 들어 올리는 트렌디한 포즈를 취하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 책을 펴서 깊은 침묵 속에서 문장을 끝까지 직접 좇으며, 내면의 주체적 서사를 스스로 구축해 나가야 한다. 바로 그것이, 읽기를 위임당하는 위기의 복판에서 우리가 다시 종이책을 펼치고 눈을 부릅뜬 채 스스로 읽어야만 하는 이유다. 10월은 독서의 계절이다.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ohtak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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