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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쿠란 짓밟고 개처럼 짖어라 강요···의사에게 더 가혹

쿠란 짓밟고 개처럼 짖어라 강요···의사에게 더 가혹
[사회혁신]
2024년 12월 27일 이스라엘군 탱크 쪽으로 걸어가는 후삼 아부 사피야(카말 아드완 병원장)의 뒷모습. 그로부터 600일 넘게 감옥에 갇혀 있다. Ⓒ작가 미상(SNS) 지난주 글에서 2023년 10월 전쟁이 터진 뒤 지금껏 팔레스타인 의료인 1600~1700명이 숨졌고, 지금도 80명 넘는 의료인이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살펴봤다. ‘국경 없는 의사회(MSF)’를 비롯한 여러 인권단체들이 석방을 요구하는 수감자들 가운데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이가 후삼 아부 사피야(Husam Abu Safiya, 카말 아드완 병원장, 52세)다.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 라히야에 있는 카말 아드완 병원은 가자 북부에서 핵심 의료시설로 기능하고 있었다. 하지만 2024년 이스라엘군의 거듭된 공격을 받아 기능이 마비되는 위기를 맞았다. 2024년은 사피야 원장 개인에게도 큰 아픔을 안긴 해였다. 그해 10월 26일 어린 아들(15세)이 병원 입구에 서 있다가 이스라엘군 드론 공격으로 숨졌다. 아들을 잃은 지 거의 한 달 뒤(2024년 11월 23일), 사피야는 병원 사무실에 있다가 창문 바깥을 선회하던 이스라엘의 쿼드콥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 허벅지와 등에 파편이 박혀 심한 출혈을 일으켰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그런 일을 겪고도 사피야는 소아과 전문의로서 어린이 환자들을 돌보며 이스라엘군의 퇴거 명령에 맞서 가자지구 북부에 마지막으로 남은 병원을 지키려 애썼다. 쿼드콥터 피습 딱 한 달 뒤, 체포되기 나흘 전(2024년 12월 23일)엔 지금 상황이 매우 끔찍하다. 더 늦기 전에 도와달라”는 호소의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전하기도 했다. 사피야는 병원을 떠나라는 이스라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산소와 인큐베이터가 필요한 아기들을 포함해 약 400명의 민간인이 여전히 병원 시설 안에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2024년 12월 27일 병원을 급습한 이스라엘군에게 붙잡혀 가는 순간을 담은 한 장의 인상적인 사진이 있다. 흰 가운을 입은 사피야가 파괴된 병원 건물의 잔해를 밟으며 맞은 편 이스라엘군 탱크 쪽으로 걸어가는 사진이다. 그 무렵 사회관계망(SNS)에 올라가 퍼지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사진 속엔 나타나 있지 않지만, 그의 뒤에는 중무장한 한 무리의 이스라엘 병사들이 있었다. 사진 이미지상으론 마치 자유의지로 걸어가는 듯한 착각을 준다. 국제사회로부터 잊힌 전임 병원장 사피야 원장은 600일 넘게 이스라엘의 여러 수감시설을 옮겨 다녔다. 스데 테이만에서 오페르, 크치오트, 아얄론(라케펫) 교도소를 거쳐 2026년 8월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교도소에 갇혔다. 옮겨갈 때마다 받은 학대와 고문 탓에 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못하다. 옥사할 가능성조차 없지 않다. 이스라엘 인권의사협회는 지난 5월 이스라엘 참모총장과 법원에 사피야 원장을 비롯해 붙잡혀 들어간 지 1년 6개월을 넘긴 가자지구 출신 의사 14명의 석방을 요구하는 청원을 낸 바 있다. 사피야 원장의 건강 악화와 석방 여부가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잊힌 수감자들도 여러 명이다. 사피야에 바로 앞서 카말 아드완 병원장을 맡고 있던 아흐메드 알칼루트(Ahmed al-Kahlout, 이비인후과 전문의, 58세)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후임 병원장인 사피야보다 6살 연장자인 알칼루트는 2023년 12월 12일 이스라엘군이 병원을 1차 급습했을 때 현장에서 끌려간 뒤 지금껏 수감 중이다(사피야는 2024년 2월부터 병원장 직무를 맡았다). 이스라엘은 알칼루트를 그저 평범한 의사가 아니라, 하마스(Hamas)의 고위 인사 및 협력자 로 못 박고 있다. 체포 1주일 뒤(2023년 12월 19일), 이스라엘 국내 첩보기관 신베트(ISA, 샤바크)는 알칼루트 원장이 심문을 받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중도적 성향의 언론사로 분류되는 ‘더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The Times of Israel)’의 기사를 1인칭 화법으로 재정리하면, 알칼루트는 이런 요지의 자백을 했다. [내가 근무하는 가자지구 북부 병원이 하마스의 통제 아래 군사시설로 바뀌었으며, 한때 납치된 이스라엘 군인이 수용되었던 적이 있다. 하마스가 병원 안에 사무실을 두고 작전기지로 사용했다. 나는 2010년부터 하마스 중령으로 복무해 왔다. 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 포함해 병원 직원 16명 역시 하마스의 군사조직인 알카삼여단 소속 대원이다.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 대원 몇 명도 그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https://www.timesofisrael.com/liveblog_entry/gaza-hospital-chief-tells-shin-bet-that-his-medical-center-was-taken-over-by-hamas-housed-a-hostage/?utm_source=chatgpt.com)   2023년 12월 19일 공개된 영상에서 카말 아드완 병원장 아흐메드 칼롯이 신베트 심문을 받는 모습. 하마스 간부라는 자백은 고문에 다른 허위자백 논란을 불렀다.Ⓒ신베트 강압으로 쥐어 짜낸 허위자백” 곧이어 자백의 진실을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영상 공개 다음날 (하마스의 영향력 아래 있는) 가자지구 보건부는 알칼루트의 자백이 물리력·강압·고문·협박(force, coercion, torture and intimidation)으로 얻어졌다”라고 주장했다. 가혹한 고문과 협박, 구타가 저질러진 상태에서 ‘강제로 쥐어 짜낸 허위자백’이란 지적이었다. 실제로 신베트가 공개한 영상 자체만으로는 알칼루트가 어떤 환경에서 자백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신베트의 심문 과정 전체 또는 일부라도 공개된 것이 아니고, 따라서 알칼루트가 어떤 상태로 구금돼 있는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인권단체들과 알자지라를 비롯한 아랍계 언론들은 알칼루트가 신베트 요원들의 심문 과정에서 모진 고문과 강압 상태에서 이스라엘 쪽에서 불러주는 문장 그대로를 따라 진술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의심쩍은 눈길을 보낸다. 이런 논란에 대해 이스라엘은 펄쩍 뛴다. 알칼루트의 ‘자백’ 영상이야말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과 특히 병원 공격의 정당성을 받쳐주는 핵심 증거 라고 반박한다. 2023년 10월 전쟁이 터진 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의 대형병원들을 공격하면서, 이런 이유를 댔다. 하마스가 병원 시설들을 지휘통제 기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공격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참고할만한 기사 하나가 있다. AP통신 소속 기자 2명이 문제의 카말 아드완 병원을 포함해 2023년 12월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았던 가자지구 북부 대형병원 세 곳(알-아우다 병원, 인도네시아 병원 포함)을 심층 취재한 기사다. AP 기자들은 30명이 넘는 환자, 목격자, 의료 및 인도주의 활동가, 그리고 이스라엘 관리들을 인터뷰한 끝에 ( 하마스가 병원을 기지로 활용했다”는) 이스라엘의 주장과는 크게 어긋나는 결론을 내렸다. 이스라엘군 당국은 하마스가 카말 아드완 병원을 지휘본부로 사용했다고 주장했지만, 그에 대한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해당 세 병원에 하마스 대원들이 많이 있다는 증거를 거의 또는 전혀 내놓지 못했다.” (https://apnews.com/article/gaza-hospitals-israel-civilians-d066117ec80bce83657447add762b2e7) 두 병원장의 차이 2023년 10월 전쟁이 터진 뒤 이스라엘의 마구잡이 체포망에 걸려들어 많은 의료진들이 붙잡혀 갔다. 하지만 심문 과정에서 이렇다 할 혐의가 없다는 게 드러나 대부분이 몇 개월 안에 풀려났다(체포 440명, 지금은 83명 수감 중). 문제는 대형 병원장급 의사이자 관리자인 알칼루트처럼 이스라엘이 하마스 관련자 로 공식 발표한 경우, 조기 석방을 바라기 어렵다. 그를 풀어줄 경우 기존의 자백 발표가 고문으로 조작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자지구의 대형병원들을 집중 공격한 명분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이스라엘은 두 병원장의 거취를 놓고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전임자인 알칼루트 원장이 이스라엘의 주장대로 하마스 간부였다는 사실이 확실하다면, 그를 정식으로 기소해 재판에 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아직껏 감감 무소식이다. 고문으로 억지 자백을 받았기 때문에 기소 자체가 무리라고 여길 것이다. 후임자인 사피야 원장도 마찬가지다. 둘 다 ‘불법 전투원’으로 분류돼 6개월마다 구금 기간을 늘려가고 있을 뿐이다. 다만 하나 미묘한 차이라면, 국제사회의 대응이다. 전임자 알칼루트의 경우 (고문에 따른 것이란 의혹 속에서도) 하마스 간부라는 ‘자백’ 영상이 국제사회의 석방 요구 움직임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이와는 달리 후임자 사피야는 그런 ‘자백’이 없고 마지막까지 병원을 지키려 했던 의로운 모습이 국제사회에 인상적으로 새겨졌다. 사피야는 혹독한 심문 환경 아래서도 억지 자백을 거부함으로써 지금까지는 고문을 이겨낸 모습이다. 아마도 그는 전임 병원장의 ‘자백’ 영상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현명하게 헤아렸을 듯하다. 이스라엘 의사들이 펴낸 고문 증언집 결국은 혹독한 고문이 문제다. 풀려난 의사들은 한결같이 지독한 학대와 폭력을 겪었다고 증언한다. 양심적인 의사들의 모임인 이스라엘 인권의사회(PHRI) 관련 변호사들과 활동가들은 수감시설에 갇혀 있거나 풀려난 팔레스타인 의료인들(대부분 의사)을 만나 생생한 증언을 기록했다. 그 결과물이 2025년 2월 26일에 공개된 두 개의 고서다. 하나는 21명 의사들의 증언모음집인 『가자지구 의료 종사자들의 증언(Gaza’s Medical Workers Testimonials)』, 다른 하나는 전체적으로 분석 정리한 『불법적 구금, 고문, 굶주림(Unlwafully Detained, Tortured, and Satrved)』 보고서다. 두 보고서는 21세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건강권을 노골적으로 침해하는 전범국가임을 고발하는 내용들로 채워졌다. ▲기소 없는 마구잡이 구금, ▲극심한 학대와 고문, ▲물과 비누와 같은 기본 필수품 제공 거부 등 국제인도법을 위반하는 사례를 지적하면서 ▲자의적으로 구금된 의료 전문가들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https://www.phr.org.il/en/torture-of-medical-workers/)   이스라엘 인권의사회(PHRI)가 팔레스타인 의료인들의 고문 증언을 기록해 2025년 2월 26일에 펴낸 두 개의 보고서. ⒸPHRI PHRI가 인터뷰를 한 21명의 의사 가운데 칼레드 알세르(나세르병원 외과의, 32세)는 실명을 밝힌 단 한 사람이다. 2024년 3월에 붙잡혀 7개월간의 구금 끝에 아무런 혐의도 받지 않은 채 풀려났던 그의 증언을 들어보자(인터뷰 시점은 옥중에서 변호사 접견 중이던 2024년 7월). 우리는 이스라엘 군이 사흘 동안 병원을 포위한 상태에서 병원 안에서 체포됐다. 그들은 우리 옷을 벗기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약 30미터를 나체로 걷게 했다. 군인들은 내 손을 등 뒤로 플라스틱 케이블타이 수갑을 채우고 다리를 아주 세게 결박했다. 그들은 우리 세 명을 군용 지프에 태우고 두 시간 넘게 끌고 다녔다. 이동하는 동안 그들은 우리를 모욕하고 때렸다. 몸 위에 올라타거나, 군화로 걷어차거나, 소총 개머리판으로 내려쳤다. 우리는 멈춰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https://www.phr.org.il/wp-content/uploads/2025/02/6265_DetentionReport_Testemonials_Eng.pdf) 알세르는 스데 테이만에서 85일 동안 갇혀 있다가 6월 중순 오페르 군사교도소로 이송되었다. 많은 수감자들이 이송 도중에, 그리고 감옥에 들어갈 때 환영식(타쉬리파)이란 이름의 폭력을 경험했듯이, 알세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송 도중 그들은 내 다리를 때리고, 군화로 내 발가락을 짓밟았다. 그리고 몇 분 동안 나를 질질 끌고 갔다”고 증언했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호송 트럭 위에 서로 겹쳐 쌓아 놓은 민간인 포로들을 곤봉으로 반쯤 죽을 정도로 때리고, 욕설을 퍼붓고, 전기 충격을 가하곤 했다. 구금 시설까지 가는 내내 심한 구타가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갈비뼈가 부러지는 일들이 벌어졌다. 가자지구 최대 의료복합단제인 알시파 병원의 정형외과 전문의 M.K.(46세)도 엄청난 폭행을 당했다. 2024년 3월 위급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밤을 새워 병원에 남아 있었던 M.K는 병원으로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폭행을 당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날의 악몽을 들어보자. 병원에서 군인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눈과 입술에 부상을 입고 의식을 잃었다. 스데 테이만 수용소까지 이동하는 동안 우리는 주먹과 경찰봉, 소총으로 폭행을 당했다. 수용소까지 가는 데 2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내내 족쇄가 채워지고 눈이 가려진 채 엎드린 자세로 구부정하게 앉아 있어야 했다. 스데 테이만에 도착한 뒤에도 우리는 옷이 벗겨진 채 수색과 폭행을 견뎌야 했다” 내 머리에 담배 비벼끄고 커피 부었다” 전쟁 초기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가자지구로 끌고 간 251명 인질들의 행방을 알고 싶어했다. 심문 중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학대나 강압을 사용하는 것은 국제인도법(IHL)상 엄격히 금지돼 있다. 제4차 제네바협약(1949년) 제32조는 정보를 얻기 위해 피억류자에게 신체적·심리적 강압을 가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 조항은 구금 중의 고문 및 기타 잔혹하고 비인도적인 처우로부터 구금자들을 지켜주려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그런 규범이나 국제법은 통하지 않는다. 오페르 교도소에서 심문 받는 동안 나는 손목이 천장에 매달린 채 다리가 뒤로 결박된 상태로 몇 시간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나를 모욕하고 침을 뱉었다. 내 머리에 담배를 비벼 끄고 커피를 붓고 잔인하게 구타했다. (38세 간호사 A.MQ) PHRI가 모은 증언들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여러 의료 종사자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심리적·신체적으로 폭력을 휘둘렀고, 위협적으로 정보를 얻어내려 했음을 뚜렷이 보여준다. 그들은 내가 무장 단체와 연관이 있는지, (유대인) 인질들의 행방에 관해 물었다. 나는 인질을 본 적도, 치료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나프하 교도소에 입소한 첫날, 그곳 간부 하나가 나를 바닥에 앉히고 폭행했다. 누군가 ‘그만해요, 이미 거의 죽었잖아요 라고 말할 때까지 그는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감방으로 끌려가는 동안에도 경비원들은 나를 반복해서 때리고 머리를 벽에 부딪쳤다. 내 왼쪽 눈은 멍이 들어 푸르게 변했고 갈비뼈가 부러졌다. 그뒤 폭행은 주로 감방 수색 중에 벌어졌다. 경비원들의 기분과 특정 감방에 얼마나 반감을 품느냐에 따라 폭행 수준이 달라졌다.”(산부인과 전문의 및 부인암 전문의 O.A, 65세) 개처럼 짖어라 강요, 쿠란 짓밟기도 나세르병원은 가자지구 중남부 도시인 칸유니스에 자리한 대형 의료기관이다. 그곳 외과의사 A.M(42세)은 2024년 2월 병원에 머물다가 붙잡혀 스데 테이만으로 끌려갔다. 그곳에 52일간 갇혀 있던 내내 A.M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눈은 가려져 있었다. 장시간의 결박으로 그의 손목은 염증을 일으켰다. 육체적 고통도 고통이려니와 스데 테이만 경비를 맡은 제100부대 병사들이 가하는 모욕은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2024년 9월 변호사를 만났을 때의 증언. 우리는 언어폭력과 모욕을 당했다. 경비원들은 우리에게 개처럼 짖게 하고 동물 소리를 흉내 내도록 강요했다. 그들은 내게 이름을 말하게 한 뒤 반복적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점호 시간에는 개들이 우리에게 오줌을 누게 하거나, 팔을 든 채로 무기한 서 있게 하는 벌을 주었다. 제100부대 경비원들은 구금자들을 아주 심하게 때렸다. 나는 갈비뼈가 완전히 부러질 때까지 구타당했지만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도 호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수감자는 군인들로부터 계속해서 네가 바로 강간당한 놈이다 라고 조롱을 받았고, 그는 심각한 우울증세를 보였다. 어느 날, 그들은 개를 데리고 들어와 그를 폭행하면서 머리를 가격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숨졌다.”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나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이슬람 종교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한 신성 모독은 늘 문제가 됐다. 종교적 편견이란 측면에서 이스라엘도 마찬가지 문제점을 보였다. 의사 M.T는 오페르 교도소에서 쿠란(이슬람경전)을 욕보이는 여자 교도관을 만났다. ”구금 86일째 되던 날, 한 급습 작전 중 군인들이 우리에게 쿠란을 나눠주고 그것을 들고 있는 사진을 찍었다. 그 뒤 한 여성 군인이 들어와 쿠란을 밟았다. 내가 이 사건을 베두인계 장교에게 신고하자, 군인들은 나를 데려가 심하게 구타하고 다른 시설로 보냈다. 이송 중에는 전기 충격을 받았다. 의도적인 의료 방치로 고통 더해 의사로서 이스라엘 수감시설의 의료 방치를 지적하는 증언들도 눈길을 끈다. 실명을 밝힌 단 한 사람인 칼레드 알세르(냐세르병원 외과의, 32세)가 끌려간 곳은 군 수감시설로 악명 높은 스데 테이만 수용소였다. 체포되기 전 그는 오른쪽 허벅지에 통증이 심한 종기가 생겨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고, 매일 관리가 필요했다. 심문을 받는 내내 진통제를 요청했지만 전혀 받지 못했다. 그가 변호사 접견 때 했던 말이다. 스데 테이만에서의 의료 처치는 그저 형식적이었으며, 진지한 치료는 전혀 없었다. 알시파 병원에서 체포된 19세 수감자 A는 왼쪽 팔다리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다리가 손상되어 결국 잘라냈다. 나는 위장 질환과 식도 역류를 앓고 있어 치료가 필요하지만, 그냥 방치된 상태다.” 정형외과 전문의 M.K는 수감 중 의사나 간호사를 만나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수감자들 사이에 피부병, 세균 감염, 천식 증상, 피부염이 퍼지고 있다. 의사가 있긴 하지만 우리는 그를 결코 보지 못한다. 병에 걸린 수감자들이 있지만 어떤 의사도 그들을 진찰하지 않았다. 의무실이 있지만 수감자들은 그곳에서 진료를 받지 못한다. 나는 12년 동안 당뇨병과 고혈압을 앓고 있었는데, 체포 이후 단 한 번도 의사나 간호사를 만나지 못했다. 아무도 내 건강 상태에 대해 묻지 않았다.”   이스라엘 국내 첩보기관 신베트(ISA, 샤바크)의 수감자 심문 방식은 잔혹하기로 악명이 높다. ⒸB Tselem 의사라고 하면 더 때렸다” 알시파 병원 외과의 K.S(29세)는 이스라엘군에 두 번 붙잡힌 이력을 지녔다. 첫 번째는 2023년 12월로, 12일간 구금됐다가 풀려났고, 두 번째는 2024년 3월로, 그 뒤 지금까지 계속 갇혀 지낸다. 그가 변호사에게 했던 증언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의사라는 사실을 경비원들이 알면 다른 수감자들보다 더 심한 폭행을 가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체포 때는 알시파 병원에서 곧바로 구금 시설로 끌려갔다. 그 과정에서 군인들은 우리를 한 명씩 곤봉으로 구타했는데, 특히 의사들을 더 심하게 때렸다. 그들은 각 구금자에게 의사인지 여부를 물었다. 심문 중에는 구타를 당했지만 특히 심문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의 구타가 심했다. 그 결과로 나는 지금도 등 부상으로 고생하고 있다.” 2023년 12월에 체포된 무함마드 알두라 어린이병원 소아과 전문의 R.M(51세)도 직업이 의사라는 이유로 다른 수감자들보다 더 학대를 받고 있다고 했다. 2024년 11월 크치오트 감옥으로 찾아온 변호사에게 털어놓은 증언. 나는 하마스 소속이라는 혐의를 받았다. 재판 중에는 변호인이 참석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히브리어로 된 문서에 서명하도록 했다. 나는 단지 소아과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가혹한 대접을 받고 있다. 그들은 누군가가 의사나 학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처우가 더 가혹해진다.” 2024년 3월 알시파 병원에서 붙잡혀 간 치과의사 K.J도 심문 시설로 이송되는 동안 그들은 내가 치과의사라는 이유로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고 위협했다 고 폭로했다. 2024년 3월 이스라엘군에 붙잡힌 나는 다른 수감자 4명과 함께 트럭형 버스로 이송되었다. 우리는 눈이 가려지고 손이 뒤로 묶인 채 차량 바닥에 내던져졌다. 그곳에서 2시간쯤 대기하는 동안 군인들은 우리에게 찬물을 끼얹고 곤봉으로 마구 때렸다. 스데 테이만으로 가는 동안 우리는 주먹으로 맞고, 발로 차이고, 고환을 포함해 온몸을 맞았다. 심문은 사흘 동안 오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이어졌고, 얼굴과 머리를 때리는 등의 폭행이 따랐다. 군인들은 내가 치과의사라는 이유로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고 위협했다.”(치과의사 K.J) 의사에게 얻어맞은 의사 이스라엘 감옥의 경비원들이 의사에게 더 폭력적이라는 대목에서 나치 독일의 강제노동수용소 경비원들이 겹쳐 떠오른다. 나치 수용소로 끌려온 지식인들은 대부분 자신의 직업을 숨겼다고 한다. 한국에도 번역 소개된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토르 프랑클(Viktor Frankl, 오스트리아 신경정신과 의사)도 아우슈비츠에서 몇 년 동안 토목공사장 인부로 일했다. 왜 그랬을까. 자신이 수용소에 오기 전에 전문직업인(변호사나 교수, 의사, 기자 등)이었다고 밝히면, 성격이 포악한 경비대원이나 카포(작업반장)의 시기와 분노를 일으켜 흠씬 두들겨 맞는 일이 흔했기 때문이었다. 필자가 최근에 펴낸 책에서 관련 내용을 일부 옮겨본다. [(벨기에 레지스탕스 대원이었다가 수용소로 끌려온 오스트리아 유대계 지식인) 장 아메리에 따르면, 대학 강단에 섰던 사람에게 직업이 뭐였느냐 물으면, 창피하다는 듯이 작은 소리로 ‘교사’라 답하는 것이 더 안전했다. 변호사는 자신을 ‘서기’라고 말하고, 기자는 ‘영업사원’이라 속였다. 이들 지식인들은 육체노동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기 때문에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 얻어맞기 일쑤였다. 끝내는 ‘노동 부적격’으로 판정받아 가스실로 끌려갔다.] (김재명,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 진실의 힘, 2026, 245쪽) 유대인 의사에게 얻어맞은 의사도 있다. 2024년 3월에 체포된 나세르 병원의 정형외과 전문의 H.SB(30세)는 7개월 뒤인 2024년 10월 변호사를 만나 한 유대인 의사로부터 당한 수모를 이렇게 전했다. 가자지구 북쪽으로 13km 떨어진 지중해변 항구도시 아쉬켈론 교도소에서 겪을 일이다. 아쉬켈론 감옥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유대인 의사가 내 눈가리개를 벗겨주길 거부하더니, 나를 손바닥으로 때리며 치료를 거부했다. 그들은 그 뒤 내게서 참을 수 없는 악취가 난다면서 내 머리와 수염을 밀고 샤워를 시켰다. 나는 그 의사에게 ‘우리는 같은 전문직 동료다, 당신은 나를 인도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의사는 여전히 눈이 가려진 상태인 나를 손바닥으로 때리며 ‘너는 테러리스트야!’라고 말했다.”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정치학 박사) 이렇듯 이스라엘 감옥에서 사람의 목숨이 지닌 무게는 휴지처럼 가벼이 다뤄졌다. 이스라엘이 수감자를 학대 고문하는 전쟁범죄를 저질러 왔고, 국제사회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21세기 전범국가로 이스라엘이 비난받지만, 아직껏 처벌이 없다. 지구촌의 정의가 뒷걸음질 치는 가운데 지금도 이스라엘 감옥에선 수감자들이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다음 주 글에선 고문 후유증 또는 의료 방치로 옥중에서 숨진 이들을 살펴보고, 이스라엘이 그들을 유가족 품에 돌려주길 거부하는 ‘시신 인질’ 문제를 다루려 한다. (계속)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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