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재산조사위 16년 만에 재출범 최소 325억원 환수 [뉴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3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열린 제81주년 광복절 기념 독립유공자 후손 대한민국 국적증서 수여식 에 참석해 기념사하고 있다. 2026.8.13 연합뉴스
지난 6월 2일 친일재산귀속법 이 공포된 만큼,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이 부당 축적한 재산을 조사·환수하여 역사에 대한 확실한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 국가에 귀속된 친일 재산을 더욱 책임 있게 관리해, 그 재원이 독립유공자와 유가족에 대한 예우와 지원에 온전히 쓰일 수 있도록 만들겠다.
이재명 대통령의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사 가운데 한 대목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같은 날 친일재산 환수를 통해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소셜미디어에 밝혔다. 정 장관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2기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다시 출범하면 최소 325억원 이상의 친일재산을 환수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봐 눈길을 끌었다.
때마침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의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행적과 그가 후대에 물려준 막대한 재산 논란이 불거진 데 이어 민족문제연구소도 안상호가 친일 활동을 한 것이 맞다고 인정하며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자산이 제대로 된 청산 작업 없이 후손들에게 승계돼 기득권으로 유지되는 것을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친일재산 환수를 위한 법적 기반도 마련됐다. 친일재산귀속법은 제3자에게 매각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미 처분된 친일재산에 대해서도 그 대가를 환수해 독립유공자와 유족을 위해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 6월 2일 공포된 법은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12월 3일 시행된다.
법이 시행되면 2010년 해산됐던 친일반민족재산조사위원회가 다시 구성된다. 새 위원회는 최장 5년 동안 친일재산 환수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정 장관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친일재산 환수를 주요 국정 과제로 추진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법무부는 독립지사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며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부터 친일 재산 환수를 주요 과제로 추진했고, 그 결실로 지난 5월 친일재산귀속법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중단됐던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들을 대상으로 한 재산 환수 소송도 재개됐다. 정 장관은 이해승·신우선·임선준·박희양 등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들을 상대로 한 재산 환수 소송을 다시 시작했다”며 정미칠적 임선준의 후손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는 1심에서 국가의 전부 승소가 확정됐다”고 전했다.
1기 조사위 활동 종료 이후 법무부가 기존에 확인된 친일재산을 대상으로 소송 등을 통해 환수 업무를 이어왔다. 지난해 10월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된 조선 귀족 이해승의 후손이 경기 의정부시 호원동 토지 31필지를 매각해 얻은 78억원을 돌려달라며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1일 오후 서울 충무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회의실에서 김창국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마지막 전원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위원회는 이날 친일재산 관련 내용을 정리한 백서를 오는 7일 발간한다고 밝혔다. 2010.7.1 연합뉴스 자료사진
법무부와 관련 백서 등에 따르면 1기 친일재산조사위(김창국 위원장)는 2006년 7월부터 2010년 7월까지 4년간 활동하며 친일반민족행위자 168명이 보유한 토지 2359필지에 대해 국가귀속 결정을 내렸다. 친일재산을 제3자에게 이미 처분한 후손 24명에 대해서는 별도로 친일재산 확인 결정을 했다. 당시 국가가 환수한 재산은 시가 기준 2373억원에 이르렀다. 2010년 10월 12일 해산된 뒤 관련 활동은 법무부로 이관됐다.
1기 위원회의 친일 재산 국가 귀속 현황 자료 에 따르면, 경기도는 494만 4435㎡(397필지)로 전체(812만 4381㎡·1199필지)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두 번째인 충청남도(193만 6582㎡·252필지)의 2.5배를 웃도는 규모로 여의도 면적(290만㎡)의 약 1.7배에 이른다. 경기도 시·군별로는 포천시 내 재산 면적이 160만 9105㎡(89필지)로 가장 넓었고, 이어 의왕시 77만 3752㎡(1필지), 남양주시 45만 6778㎡(9필지) 순이었다.
1기 활동 종료 이후 별도의 조사 기구가 사라지면서 새롭게 발견되는 친일재산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번 특별법은 이런 제도적 공백을 메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친일재산을 후손 등이 이미 처분한 경우에도 처분 대가를 환수할 수 있도록 근거를 명확히 했다. 재산을 매각하거나 다른 형태로 바꿔 은닉하는 방식으로 국가 귀속을 피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친일재산을 찾아내 신고한 사람 등에 대한 포상금 지급 근거도 새로 마련됐다. 민간 신고를 활성화해 오랜 기간 숨겨진 재산을 추가로 발굴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조사위 재출범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법무부는 지난 6월 22일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설립준비단을 발족했다. 준비단은 법무부를 비롯해 행정안전부와 국가보훈부, 산림청 등 관계 부처에서 파견된 인력 11명으로 구성됐다. 단장은 이영창 검사(사법연수원 33기)가 맡았다.
준비단은 조사위가 공식 출범하기 전까지 하위 법규를 정비하고 조사 대상과 방식, 세부 조사 계획 등을 마련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부처별로 흩어진 토지·등기·보훈 관련 자료를 연계해 추가 환수 대상 재산을 찾아내는 작업도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사위가 출범하면 1기 조사 당시 확인하지 못했거나 이후 새롭게 드러난 친일재산을 중심으로 조사 범위가 확대될 전망이다. 이미 처분된 재산의 매각대금 등도 환수 대상에 포함되면서 실제 국가 귀속 규모가 얼마나 늘어날지도 주목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추후 환수된 친일재산은 순국선열·애국지사 사업기금에 우선적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과 김용만(왼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3일 이재명 대통령 주최로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 및 보훈 가족 초청 오찬에서 인사하고 있다. 2026.8.13 연합뉴스
백범 김구의 증손자로 이 법안을 대표발의한 김용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2일 이데일리 인터뷰를 통해 나라를 배신하고 개인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 썼던 것을 이번에는 반드시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하는 게 역사 정의라고 생각한다”며 2010년 이후 친일재산 환수를 위한 사실상의 국가행위는 없었다. 이번 특별법은 실질적인 매각 대금, 그 이익금 자체를 환수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든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법원도 친일반민족행위자 등이 재산을 처분해 얻은 이득은 별도의 입법을 통해 환수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며 그 취지를 반영해 처분대가까지 환수하는 조항을 신설했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확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1006명 가운데 실제 재산 환수로 이어진 사례는 5%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는 과거 파악한 친일재산도 대부분 환수하지 못한 채 위원회 활동이 끝났다”며 환수 대상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미환수 재산에 대한 전수조사를 신속히 진행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갖고 계신 분들께 국가 차원에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번만큼은 대형 친일재산 환수라는 실질적 성과를 통해 역사 정의가 세워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앞으로도 이런 조사와 환수가 상시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국민들이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위치한 스위스그랜드호텔.(전 그랜드힐튼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 홈페이지 갈무리]
한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이슈와 관련해 몇년이나 개발이 지지부진했던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스위스그랜드호텔 부지에도 눈길이 갈 것으로 보인다. 최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스위스그랜드호텔 건물과 부지 소유권은 지난달 이우영 동원아이엔씨 회장과 관계 법인 등에서 홍제353PFV 로 이전됐다.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는 특정 부동산 개발사업을 위해 설립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이다.
부동산 개발업체(디벨로퍼) 연합와이앤제이가 추진하는 이번 사업은 호텔과 주변 필지 등 약 1만 2000평 규모 부지의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약 1300가구 규모의 아파트와 부대시설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키움증권은 부지 매입 잔금과 초기 사업비 등에 쓰일 약 4500억원 규모의 브릿지론을 단독으로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부지 매입대금과 초기 사업비는 5000억~6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해당 부지는 2020년대 초반부터 여러 차례 개발이 추진됐지만 자금 조달에 난항을장기간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번 소유권 이전과 대규모 자금 조달로 사업이 다시 출발선에 섰지만 고층 아파트 개발을 위해서는 종상향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고, 친일재산 관련 논란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실제 개발 완료까지는 변수가 남아 있다는 평가다.
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