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대신 문명화 이재명의 친구 룰라가 던진 화두 [칼럼] 극적인 역전승으로 4선에 성공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 상파울루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면서 ‘국가적 통합’ ‘국민 통합’이라는 말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그는 ‘문명화’라는 말을 제시했다. 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룰라는 국민에게 대통령을 지지하거나 좋아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 헌법과 제도적 절차를 통해 국가가 ‘문명화된 틀’을 유지하는 것이 실질적 통합이라고 했다.
룰라의 연설은 국민 통합 이라는 말이 자칫 (브라질) 현실의 극심한 계급·이념적 균열을 눈가림하거나 당위적인 화합을 강요하는 공허한 구호로 작용할 수 있음을 경계한 것으로 보인다. 대신 그는 ‘문명화된 나라’를 얘기했고 문명화의 한 조건으로 헌법을 제시했다.
누구도 대통령 당선자를 좋아할 의무는 없지만, 헌법을 존중하고 의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모든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기 위해 선출되었다.”
그는 구호로서의 통합을 말하지 않겠다면서 대신 모든 브라질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 공공 의료·교육·종교의 자유·기후 정책을 추진하겠다 며 모든 국민에게 돌아가는 공공 정책의 보편성으로 ‘실질적 통합’을 구현하겠다고 했다. 룰라가 1차 투표 열세의 위기 속에서도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결집할 수 있었던 강력한 공약들인 주말 대중교통 무료화, 자영업자 채무 감면 등이 그 같은 선언의 실제적 방안들이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캐나다 앨버타주 캐내내스키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장에서 G7 및 초청국 기념촬영 후 룰라 브라질 대통령 어깨를 감싸며 퇴장하고 있다. 2025.6.18. 연합뉴스
룰라 대통령의 이 같은 말은 이재명 대통령의 모두의 대통령 발언과 대비된다.
선거에서의 지지 여부를 떠나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 이 되겠습니다... 가치와 지향이 달라도 대통령이 된 이상 모든 국민을 대표해야 합니다.
이 대통령의 이 발언은 전통적이며 전형적인 정치적 메시지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런 점에서 룰라의 연설이 던진 메시지는 이 대통령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에서 흔히 쓰여온 통합 이라는 지향의 실상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국가적 통합 이나 국민 통합 이라는 말을 쓰지 않겠다고 한 말은 얼핏 통합에 대한 거부처럼 읽히지만, 이를 단순히 통합의 포기로 볼 수는 없다. 룰라는 대신 ‘문명화’라는 말로써 통합이 성립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이자, 민주주의 국가가 지향해야 할 통합의 진정한 목표 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정치 현실에서 가식적인 말에 그칠 수 있는 통합 을 말하는 대신,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되니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규칙을 지키며 살자 는 현실주의적 민주주의 모델을 얘기한 것이다. 나를 지지하지 않는 자 라 할지라도 공공 의료와 교육의 혜택에서 소외되지 않게 만드는 것, 즉 사회적 안전망을 통한 삶의 질 향상과 같은 것이 문명화이자 통합의 실체라는 것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통합이란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닌 시민들이 상대방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헌법 이라는 공통의 규범 안에서 타인을 승인하는 규칙의 정치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허상이 될 수도 있는 조건 없는 화해 대신 헌법적 질서에 대한 합의라는 통합의 전제와 조건을 얘기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통합은 유능의 지표 라고 거듭 강조한 바 있다. 이 말에는 반대 진영을 달래고 양측의 입장을 조율할 줄 아는 정치적 타협이 유능함 의 증거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타협과 절충이 정치적 유능함의 일부인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룰라의 연설은 이 둘 간의 인과관계를 뒤집어 보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진정한 통합은 갈등하는 세력들을 달래는 정치적 묘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국가가 제 역할을 해내는 유능함 그 자체로부터 역설적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즉, 통합하는 것이 유능의 지표이기 보다 유능함이 통합을 만든다는 것이 룰라 대통령의 연설인 것이다.
국민은 대통령을 좋아해서 가 아니라, 국가가 공정하고 유능하게 작동해 자신의 삶을 지탱해 준다는 만족과 효능감을 느낄 때 분열에서 국민적, 국가적 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다. ’모두의 대통령‘이 되는 길은 모든 이의 마음에 드는 ‘좋은 사람’이 되려는 섣부른 타협에 있지 않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통합이 유능의 지표 라는 명제는, 거꾸로 읽힐 때 비로소 더욱 온전해질 수 있을 듯하다. 정치적 구호로서의 통합을 좇다 길을 잃을 것이 아니라, 국가의 유능한 개혁과 ‘진보’의 증명으로 국민을 승복시키는 것, 그 유능함의 증명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모두의 대통령 을 완성하는 길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모두의 대통령 발언은 분명 분열된 사회를 아우르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았든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선언은 성숙한 민주주의적 포용처럼 들리는 한편으로 자칫 현실 정치에서 빈약한 수사로 전락하기 쉽다.
‘이재명 대통령의 민주주주의자 동지이자 친구’이며 매우 흡사한 정치적, 역사적 노정을 보여온 브라질의 대통령 룰라의 연설은 그 선언이 현실에서 어떻게 표류하는지를 경고하고 대안을 제시하려는 것이랄 수 있다. 한국 정치에서 많은 경우 관성적으로 소비돼 온 ‘국민 통합’이 빈 껍데기에 그치는 함정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경계를 넘어 ‘통합 의 실질을 무얼로 채워야 할 것인지에 대한, 멀지만 가까운 나라 브라질의 친구이자 선배가 건네온 ’우정어린 충고‘로 받아들일 만하다.이명재 에디터 promes6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