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불을 켠 대장장이 아들 마이클 패러데이 [사람들] 제본소 견습생, 책을 펴다
1791년 영국 런던 변두리 대장장이 집에서 태어난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는 읽기, 쓰기, 셈을 익힐 만큼만 학교에 다녔다. 열네 살이던 1805년에 제본소 견습생이 되었는데, 주인은 책을 묶기만 하지 않고 읽게 했다. 견습생은 제인 마르셋(Jane Marcet, 1769~1858)이 쓴 『화학 대화』에 홀딱 빠졌다. 여성이 쓴 쉬운 입문서 한 권이 과학사의 방향을 바꾼 셈이다.
1812년 단골손님이 험프리 데이비(Humphry Davy, 1778~1829)의 강연 입장권을 건넸다. 패러데이는 강연을 받아 적어 300쪽짜리 책으로 묶어 보냈다. 이만한 자기소개서는 흔치 않다. 이듬해 그는 왕립연구소 조수가 되었다. 유럽을 함께 도는 동안 데이비의 아내 제인 에이프리스(Jane Apreece, 1780~1855)는 그를 하인처럼 부렸다. 훗날 세상을 밝힐 사람이 남의 짐을 들고 있었던 것이다.
1850년대경의 패러데이(위키피디아)
스승의 그림자, 쇠고리의 빛
1821년 패러데이는 전류로 자석을 돌리는 장치를 만들었다. 전동기의 조상이다. 그러나 앞서 연구한 이들의 공을 밝히지 않았다는 논란이 일어 스승과 틀어졌다. 1824년 1월 8일 왕립학회 회원선거에서 반대표는 딱 한 장이었고, 험프리 데이비의 표였다고 전해진다. 비밀투표라 확인할 길은 없다. 이듬해 데이비가 제자의 실험실 책임자 임명을 도왔다는 기록도 있으니, 미움과 도움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있었던 모양이다.
1831년 8월 29일, 그는 쇠고리 양쪽에 전선을 감고 한쪽을 전지에 이었다 뗐다. 그러자 다른 쪽 전류계 바늘이 순간적으로 움직였다. 전기는 변화하는 순간에 생긴다는 전자기 유도의 발견이다. 변압기와 발전기의 뿌리이니, 지금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전기는 이 쇠고리의 자손이다. 그는 1825년 조명용 가스 찌꺼기에서 벤젠을 분리해 냈고, 전기분해 법칙을 세울 때는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 1794~1866)과 이온, 전극 같은 낱말을 다듬었다.
패러데이는 힘이 허공을 건너뛰는 것이 아니라 자석과 전기 둘레의 공간에 퍼져 있다고 보고, 철가루가 그리는 곡선을 힘의 선 이라 불렀다. 수학이 약했던 그의 이 그림을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이 수식으로 옮겼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그의 초상을 서재에 걸었다고 전해진다.
1857년, 왕립학회 회원 3명이 패러데이(오른쪽)에게 회장직을 제안하는 모습(위키피디아)
사양할 줄 아는 사내
그는 기사 작위도, 1857년 왕립학회 회장 자리도 사양했다. 크림전쟁(1853~1856) 때 군이 독가스 개발을 청하자 이것도 물리쳤다. 그렇다고 입을 닫지는 않았다. 1855년 영국 템스강에 종이를 띄워 물의 탁함을 재고 신문에 알렸다. 3년 뒤 런던은 대악취 에 시달렸으니 경고는 정확했다.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 1819~1901)은 그에게 집을 내주었다.
전기가 무슨 쓸모냐고 묻는 정치인에게 언젠가 세금을 매길 것 이라 답했다는 일화도 있다. 쓸모를 묻는 쪽은 늘 먼저이고 쓸모는 한참 뒤에 온다. 그는 1825년부터 어린이 강연을 열었고, 이 강연은 지금도 이어진다. 1867년 8월 25일에 눈을 감았다.
전기화학의 창시자인 패러데이(오른쪽)와 존 대니얼(위키피디아)
한국이 건져 올릴 것
첫째, 연구비의 널뛰기를 멈춰야 한다. 정부 연구개발 예산은 윤석열 정권기인 2024년에 33년 만에 줄어 26조 5천억 원이 되었다(일부는 항목 재분류 탓이다). 2026년에는 35조 5천억 원으로 확정되어 역대 최대이고, 2027년 정부안은 39조 5천억 원이다. 반길 일이지만 쇠고리도 처음에는 쓸모없어 보였다. 인공지능에만 물을 대고 쓸모를 모르는 기초연구를 말려서는 안 된다. 정권마다 오르내리면 젊은 연구자는 한 우물을 팔 수 없다.
둘째, 인재 쏠림이다. 올해 7월 대학 기초과학 연구소들은 예산삭감에 의대정원 확대까지 겹쳐 과학인재가 줄까 걱정했다. 연구자의 일자리와 처우를 손보지 않으면 똑똑한 아이들이 한 문으로만 몰린다.
셋째, 문턱 낮추기다. 패러데이는 노트 한 권으로 문을 열었다. 출신대학과 인맥이라는 이름표를 걷어내야 하고, 조수와 학생을 값싼 일꾼으로 쓰는 관행도 돌아볼 일이다.
넷째, 과학을 광장으로 내놓는 일이다. 가짜뉴스가 넘치는 시대에 증거를 따지는 시민의 힘은 가장 값싼 안전장치다. 어린이 강연 같은 자리를 늘려야 한다.
다섯째, 권력과의 거리다. 훈장을 마다하고 강물의 오염을 알린 패러데이의 태도는 과학자가 나팔수도 선동가도 아님을 일러 준다. 연구자가 눈치 보지 않고 말하고 일할 울타리가 필요하다.
대장장이 아들이 켠 불은 지금도 우리 집 천장에서 타고 있다. 그를 기리는 길은 다음 패러데이가 책을 펼치고 실험할 자리를 지금 마련하는 일이다. 쓸모는 늘 우리가 모르는 한참 뒤에 오기 때문이다.
런던 북부 하이게이트 묘지에 있는 패러데이의 무덤(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