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염전 때문에 한국 관세 12.5%?...팩트체크 해보니 [사회혁신] 미국이 한국산 제품에 12.5%의 이른바 ‘강제노동 관세’를 부과하면서 신안 염전 노동착취 문제가 관세율을 끌어올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이 지난해 전남 신안군 태평염전에서 생산된 천일염에 강제노동을 이유로 수입보류명령을 내린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대만에 낮은 10% 관세율이 적용된 점도 이런 해석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공식 조사보고서와 관세 결정문을 살펴보면, 태평염전 사건이 한국의 12.5% 관세율을 결정한 직접적인 근거로 제시되지는 않았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문제 삼은 핵심은 한국에서 발생한 특정 강제노동 사건이 아니라, 한국이 외국에서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의 수입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집행하는 제도를 갖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강제노동 관세 를 둘러싼 정책을 Q&A로 살펴봤다.
미국이 한국산 제품에 12.5%의 이른바 ‘강제노동 관세’를 부과하면서 신안 염전 노동착취 문제가 관세율을 끌어올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픽사베이
관세율 10%와 12.5%를 가른 기준
Q. 미국이 한국에 부과한 ‘강제노동 관세’는 무엇인가.
A. 미국은 지난 24일부터 한국을 포함한 60개 경제권의 수입품에 10~12.5%의 관세를 적용했다. 미국 정부는 각국이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지 않거나, 관련 제도를 제대로 집행하지 않아 미국 기업과 노동자에게 불공정한 부담을 주고 있다고 판단했다.
강제노동을 통해 생산비를 낮춘 상품이 국제시장에 유통되면,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는 미국 기업이 경쟁에서 불리해진다는 논리다.
Q. 한국이 12.5%를 적용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A. USTR는 수입금지법과 집행 여부, 미국과의 통상협정상 약속, 조사 이후 개선 조치 등을 고려해 일부 국가에 10%를 적용했다. 대표적으로 강제노동 생산품 수입금지법을 이미 도입한 국가, 미국과의 상호무역협정(ART)을 통해 이를 도입하기로 약속한 국가, 일부 강제노동 상품의 수입을 막는 부분적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다. 그 외 국가는 원칙적으로 12.5%를 적용받았다.
즉, 관세율은 국내에서 강제노동이 얼마나 심각한가 보다 외국에서 강제노동으로 만든 상품을 자국 시장에서 차단하는 법률이 있는가 에 더 크게 좌우됐다. 이 때문에 실제 노동권 보호수준이 높은 호주와 노르웨이, 스위스도 12.5% 대상에 포함됐다. AP통신은 강제노동 상황이 크게 다른 국가들에 동일한 세율을 적용하면서 미국이 평가 기준과 근거를 충분히 공개하지 않았다 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12.5% 관세율을 적용받은 공식 기준은 한국 내 강제노동 사건의 숫자나 심각성보다 강제노동 상품을 국경에서 차단하는 제도가 있는지에 가까웠다.
Q. 신안 태평염전 사건은 이번 관세와 관련이 없는가.
A. 완전히 무관하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직접적인 관세율 결정 사유로 확인되지는 않는다.
미국 CBP는 지난해 태평염전에서 생산된 천일염에 수입보류명령을 내렸다. 취약성 악용과 이동 제한, 신분증 압류, 임금 체불, 채무노동, 과도한 초과근무 등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노동 지표가 발견됐다는 이유였다.
이에 따라 미국 세관은 태평염전 소금의 통관을 보류할 수 있다. 수입업자가 강제노동으로 생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제품을 반송하거나 폐기해야 한다.
태평염전 사건은 한국 내 강제노동 문제가 미국 통상당국의 공식 집행 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례다. 미국 정부가 한국의 노동인권 문제를 주시하고 있었다는 근거도 된다.
다만 USTR가 한국에 12.5% 관세를 적용한 공식 조사보고서에는 태평염전이나 신안 천일염이 관세율 결정의 직접적인 사유로 제시되지 않았다.
대만은 왜 한국보다 낮았나
Q. 대만은 왜 한국보다 낮은 10% 관세를 적용받았나.
A. USTR는 조사 당시 대만도 강제노동 상품의 수입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제도를 충분히 갖추지 않은 국가로 분류했다. 그러나 대만은 미국과의 상호무역협정에서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의 수입금지 제도를 마련하기로 약속했다. 미국은 이 협정상 약속을 고려해 대만에 10%를 적용했다.
Q. 대만이 ‘최혜국 대우’를 받은 것인가.
A. 일반적인 의미의 최혜국 대우로 설명하면 정확하지 않다.
모든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에 적용되는 최혜국대우 관세와 이번 무역법 301조 추가 관세는 별개의 개념이다. 대만이 10%를 적용받은 핵심은 미국과의 통상협정에서 강제노동 상품 수입금지 관련 조치를 약속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미국의 동맹이거나 반도체 협력국이기 때문에 낮은 세율을 받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Q. 기존 강제노동 규제와 이번 관세는 무엇이 다른가.
A. 기존 제도는 강제노동과 관련된 특정 기업이나 제품을 겨냥했다.
미국은 1930년 관세법 제307조에 따라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수입을 금지해왔다. CBP는 강제노동 정황이 확인된 기업이나 지역, 제품에 수입보류명령을 내린다. 태평염전 소금과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산 면화·태양광 원료, 말레이시아산 고무장갑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이번 관세는 한 국가가 강제노동 상품을 차단할 제도를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당 국가의 광범위한 수출품에 적용된다. 강제노동과 직접 관련이 없는 광범위한 공산품도 품목별 예외를 제외하면 관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Q. 강제노동 문제가 왜 국가 전체의 관세 문제로 확대됐나.
A. 미국은 강제노동 생산품을 자국 시장에서 차단하지 않는 국가가 결과적으로 불공정 상품의 유통을 돕고 있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제3국에서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원료나 부품이 한국으로 수입된 뒤 한국산 제품에 들어가 미국으로 수출될 수 있다. 한국이 수입 단계에서 이를 차단하지 않으면 미국 기업과 노동자에게 부담을 준다는 논리다. 강제노동 규제가 개별 공급망의 통관 리스크에서 국가의 제도와 관세율을 평가하는 통상정책으로 확장된 셈이다.
Q. 이번 관세가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A. 기업이 자체 공급망을 잘 관리하는 것만으로는 관세 위험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한국 기업이 자사 공급망에서 강제노동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외국의 강제노동 상품을 국내 시장에서 차단할 제도를 마련하지 않으면 국가 단위 관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공급망 인권이 기업의 ESG 평가나 평판 문제를 넘어 수출 가격과 시장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가 된 것이다. 대만이나 EU 제품보다 한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가 적용되면 미국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 특히 관세 차이를 가격에 전가하기 어려운 중소·중견 수출기업의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Q. 한국에는 강제노동 상품 수입금지 제도가 없나.
A. 강제노동과 관련된 일부 국제 제재나 개별 통관조치는 가능하지만, 미국이나 EU처럼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 전체를 포괄적으로 조사하고 수입·판매를 금지하는 체계는 부족하다.
미국은 관세법 제307조와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UFLPA)을 통해 강제노동 위험 제품을 통관 단계에서 차단한다. EU도 강제노동으로 만든 제품의 EU 시장 내 판매와 수출을 금지하는 강제노동제품금지규정을 마련했다.
한국은 기업의 공급망 인권실사와 노동권 보호 논의는 진행하고 있지만, 해외에서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국내 수입을 세관 단계에서 차단하는 제도는 상대적으로 미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