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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올림픽 은메달 따고 군축 캠페인 앞장서 노벨평화상

올림픽 은메달 따고 군축 캠페인 앞장서 노벨평화상
[사회혁신]
세상에는 별별 기록이 다 있다. 가장 큰 호박, 가장 긴 수염, 가장 많이 먹은 햄버거…. 그런데 어떤 이는 올림픽 은메달과 노벨평화상을 함께 받았다. 운동장에서 뛰던 사람이 국제정치의 한복판에서 군축을 외쳤으니, 달리기의 결승선 보다 전쟁의 종착역 을 먼저 고민한 셈이다. 그 주인공이 바로 필립 노엘베이커(Philip Noel-Baker, 1889~1982)다. 지금까지 올림픽 메달과 노벨상을 함께 받은 유일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기록이 아니라 신념이었다. 그는 전쟁을 없애려면 영웅보다 제도가 필요하고, 무기보다 신뢰가 중요하다고 믿었다. 오늘날에도 너무 낭만적인 생각이라고 비웃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낭만은 두 차례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직접 본 사람이 품었던 현실론이었다.   1942년의 필립 노엘베이커(위키피디아) 전쟁터에서 얻은 평화의 철학 노엘베이커는 역사와 경제, 국제법을 공부한 학자였고, 중거리 육상선수였다.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 출전했고, 1920년 안트베르펜 올림픽에서는 1500m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그의 삶을 바꾼 것은 경기장이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었다. 그는 총을 드는 대신 부상병을 구하는 구급활동에 뛰어들었다. 피 흘리는 병사를 들것에 실어 나르면서 그는 전쟁에서 승자는 없다 는 평범하지만 가장 어려운 진실을 배웠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국제연맹 창설에 참여했고, 이어 국제연합 창설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로버트 세실(Lord Robert Cecil, 1864~1958), 프리드쇼프 난센(Fridtjof Nansen, 1861~1930), 노먼 에인절(Norman Angell, 1872~1967) 등과 협력하며 국제협력의 틀을 다듬었다. 훗날 클레멘트 애틀리(1883~1967) 정부에서는 외무업무를 맡았고, 윈스턴 처칠(1874~1965)의 연립정부에서도 장관으로 일했다. 정치적 진영이 달라도 국가적 과제에는 힘을 모을 수 있다는 점 역시 그의 이력은 보여준다.   올림픽 육상 선수 시절의 노엘베이커(Gde-Bretagne | DICOLYMPIQUE) 무기가 평화를 지킨다 는 말에 던진 질문 노엘베이커가 평생 붙잡은 화두는 군축이었다. 그는 전쟁은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는 번개가 아니라, 오랫동안 쌓인 군비경쟁이 만들어낸 폭풍이라고 보았다. 특히 무기생산과 판매가 이윤을 좇는 구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의 저서들은 군수산업이 국제분쟁을 키울 위험성을 끈질기게 분석했다. 이런 활동으로 그는 195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수상 이유도 단순했다. 군축과 평화를 위한 오랜 공헌. 화려한 미사여구가 없어서 오히려 묵직하다. 물론 그의 이상이 모두 현실이 된 것은 아니다. 핵무기는 사라지지 않았고, 전쟁도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실패했다고 해서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소방관이 화재를 모두 없애지 못했다고 소방서를 폐쇄하자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필립 노엘베이커(Philip Noel-Baker : London Remembers, Aiming to capture all memorials in London) 웃기는 세상, 진지한 사람 세상은 종종 진지한 사람을 순진하다고 놀린다. 평화를 말해서 세상이 바뀌면 누가 군대를 유지하겠느냐. 군축은 상대가 먼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말들은 백 년 전에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쟁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다시 평화를 외친다. 마치 비가 쏟아진 뒤에야 우산의 필요성을 깨닫는 것과 비슷하다. 인간은 참으로 학습능력이 뛰어난 존재인데, 이상하게 전쟁 앞에서는 시험범위를 매번 잊어버린다. 노엘베이커는 그런 인간의 습관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감정이 아니라 제도를 만들려고 했다. 사람을 믿기보다 약속을 믿었고, 약속을 믿기보다 검증을 중시했다. 군축 역시 착하게 살자 가 아니라 서로 확인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자는 이야기였다.   노엘베이커(Anefo.jpg - Wikimedia Commons) 한국이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오늘의 한국사회는 놀라울 정도로 갈등에 익숙하다. 정치는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제거하려 하고, 사회는 타협보다 편 가르기에 익숙하다. 인터넷에서는 상대를 논박하기 전에 조롱부터 한다. 마치 의견이 다른 사람은 모두 국가의 적인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노엘베이커가 이런 모습을 보았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지 모른다. 먼저 혀끝의 방아쇠부터 잠그라. 실제로 민주주의는 상대를 침묵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끝까지 대화하는 기술이다. 국제연맹과 국제연합 역시 모든 나라가 착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만든 장치였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서로 완벽하게 신뢰해서가 아니라 신뢰가 부족하므로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 역시 남북관계와 동북아 안보를 생각하면 군사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군사력만으로 평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대화의 통로, 국제협력, 군비통제, 신뢰구축을 함께 고민하지 않는다면 평화는 언제나 다음 선거 이후 로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의 시사점은 정치문화다. 노엘베이커는 학자였고 운동선수였으며 외교관이자 정치인이었다. 전문성과 공공성을 함께 갖춘 인재가 정치에 들어오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한국에서도 정치가 직업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라는 인식이 넓어진다면, 극단적 대결 대신 문제해결 능력을 겨루는 정치가 가능하지 않을까.   필립 노엘베이커 평전(김성수 시민기자 소장) 평화는 느리지만 가장 빠른 길 노엘베이커는 생전에 이런 역설을 몸소 보여주었다. 가장 빠르게 달리던 선수가 결국 가장 느린 가치인 평화를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전쟁은 단숨에 시작되지만 평화는 오래 걸린다. 증오는 한마디면 충분하지만 신뢰는 수십 년이 걸린다. 그래서 평화는 답답하다. 그러나 역사는 자주 증명했다. 가장 느려 보이는 길이 결국 가장 멀리 가는 길이었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는 군비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는 새로운 미사일이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새로운 적을 만드는 일이 정치의 인기상품이 된다. 그럴수록 노엘베이커의 질문은 더욱 선명해진다. 무기를 더 만들 것인가, 아니면 전쟁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 인류는 아직 그 질문에 완벽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질문자체를 잊지 않도록 만든 사람, 그것이 필립 노엘베이커가 역사와 사회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일 것이다.   노엘베이커가 생전에 살던 집앞에 붙은 영국 문화유산청의 푸른 명판(위키미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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