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혜안 더 필요할 때 홀연히 떠나셨네요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가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이토록 갑작스러운 이별이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비보를 접하는 순간, 그분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는 험난했던 민주화 투쟁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민주개혁 진영이 낳은 최고의 전략가였습니다.
대학 시절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온몸을 던졌던 그에게, 두 차례의 옥고는 피할 수 없는 시련이었습니다. 1980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의 5.18 내란 당시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 투옥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탄압에 결코 굴하지 않았습니다. 재야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뒤, 1987년 시민항쟁 때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상임집행위원을 맡아 항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격동의 과정에서 다양한 논의가 분출하고 충돌하는 국면에서도, 그는 냉철한 시선으로 해법을 찾아내곤 했습니다.
한겨레신문 정치부 기자 시절, 저는 옛 민주당을 출입하며 그를 거의 매일 당사에서 뵈었습니다. 김대중 총재가 이끌던 민주당에서 이해찬 전 총리는 당내에서 단연코 능력을 인정받은 유망한 정치인이었습니다. 당내에서 김대중 총재와 각종 정국 현안을 놓고 맞장 토론을 펼칠 수 있는 단 한 사람. 비판적 직언도 서슴지 않던 그에게 김대중 총재는 때로 언짢아했지만 그의 높은 식견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김대중 총재의 2선 후퇴를 주장하는 정풍운동에 앞장섰을 때, 김 총재는 이해찬 전 총리의 공천 배제를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뛰어난 능력을 지닌 그를 배제하는 것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김 총재는 결국 그 결정을 철회했습니다.
2016년, 김종인 씨가 민주당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의 총괄선대본부장으로 추대된 후, 이해찬 전 총리는 총선 공천에서 컷오프되어 탈락했습니다. 현재 민주당 당대표인 정청래 의원도 함께 컷오프됐습니다. 김종인 씨는 뚜렷한 근거도 없이 정무적 판단 이라는 말로 이해찬을 공천에서 배제했습니다. 아마도 이는 1988년 13대 총선 당시의 악연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러나 그는 세종시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낙승을 거둔 뒤 민주당에 복당해서 대표에 당선돼 민주당의 현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노태우 정권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의 거물 정치인이었던 김종인은, 운동권 출신 정치 초년생에 불과했던 평민당 후보 이해찬에게 관악구에서 패배했습니다. 언론이 김종인의 낙승을 예상했던 그 선거에서 이해찬은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이는 당시 크게 회자되었습니다.
훗날 이해찬 전 총리가 들려준 일화가 있습니다. 개표 도중 민정당 후보였던 김종인의 무더기 표가 쏟아져 나와 개표가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평민당 선거운동원들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개표장이 아수라장이 되었을 때, 그는 운동원들을 차분히 설득한 뒤 선관위에 개표 속개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당시 김종인을 5% 이상 앞서고 있었기에, 문제의 표를 인정하더라도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만약 부정선거 의혹 제기로 개표가 장시간 중단된다면, 오히려 민정당 측에서 진짜 개표 부정을 자행해 당락을 뒤집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민주화는 이루어졌지만 군사독재의 잔재가 여전히 강고했고, 안기부와 경찰 같은 권력기관들이 부정선거를 서슴지 않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이 에피소드는 이해찬 전 총리의 재빠른 상황 판단력과 전략적 사고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또한 그는 민주운동권 출신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노무현 대통령의 진가를 일찌감치 알아본 정치인이었습니다. 재야 출신 인사들 대부분이 민주화투쟁 경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노무현을 정치 지도자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 그는 이미 노무현을 진정한 지도자로 인정하고 그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당시 노무현을 지도자로 인정한 이는 이해찬과 유시민,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다소 괴퍅할 정도로 까칠했던 성정의 소유자였던 그였지만, 사람을 보는 눈만큼은 누구보다 예리했습니다.
그의 혜안은 이재명 대표를 대통령감으로 일찍이 주목했고, 정치권에서 뚜렷한 기반이 없었던 이재명 대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자 방패가 되어주었습니다. 민주당 내 일각에서 이재명 대표를 제거하려 온갖 패악질을 자행할 때도, 이해찬 전 총리는 흔들림 없는 멘토이자 후원자였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는 민주당을 인터넷 기반의 플랫폼 정당으로 변모시킨 장본인이었습니다. 당 대표 시절이었던 2018년, 그는 웹 기반의 당원 플랫폼을 구축하여 당원 전용 온라인 시스템 및 투표 기능을 도입했습니다. 그 결과 민주당의 당원 가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명실상부한 당원정당으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시스템 공천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총선 1년 전까지 공천 룰을 확정하여 공개하고, 그 룰에 따라 전 지구당을 동일한 기준으로 심사한 뒤 경선을 거쳐 공천자를 확정하는 제도였습니다.
이처럼 이해찬 전 총리는 민주당을 초현대식 민주정당으로 변모시킴으로써, 180석의 거대정당으로 비약할 수 있는 굳건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내란 척결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시점에 이해찬 전 총리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깝고 가슴이 먹먹합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 민주 진영의 20년 장기 집권 플랜을 주창했던 그의 전략적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지금, 그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빈자리가 얼마나 클지는 가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님, 이제 그 무거운 짐 내려놓으시고 부디 편히 쉬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