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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일본의 양심’을 묻는 자이니치 3세 이야기 ‘호루몽’

‘일본의 양심’을 묻는 자이니치 3세 이야기 ‘호루몽’
[사람들]
다큐멘터리가 격렬할 수 있다면 이일하의 영화 은 그 강도가 최고치이다. 이건 순전히 이 다큐가 다루는 대상인 신숙옥 때문이다. 그녀는 한 마디로 영화 내내 몰아친다. 너무 밀어붙이는 바람에 숨 쉴 틈이 없다시피 하다가 자신에 대한 1심 판결이 승소로 결정된 후 그토록 강인했던 그녀가 기자회견장에서 약간 울먹일 때, 그제야 보는 사람들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 영화는, 이후 두 번 더 울컥하게 만드는데 신숙옥의 고등학교 담임이자 체육 교사인 오쿠다 선생이 어린 신숙옥이 모든 걸 포기하고 자신 역시 북송선을 타려 했을 때 어떻게든 살아남으라며, 어쨌든 일본에서 살아서 이겨야 한다며 한 말 때문이다. 여기 남아!” 그리고 세 번째로는 3심에서 판결이 확정되어 신숙옥이 일본 사회를 상대로 소송에서 완전히 이기고(엄밀하게는 한 방송사와의 법정 분쟁이지만 결국은 차별사회 일본을 상대로 한 것이다) 펑펑 우는 장면이다. 막혔던 눈물이 다 터져 나오는 모습을 카메라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 잡아낸다.   평생을 삼중 차별과 싸워 끝내 이긴 ‘조센징’ 여성 신숙옥을 지킨 건 어쩌면 단순한 진심이다. 간단명료한 정의이다. 요즘처럼 정의와 진실이란 단어에 덕지덕지 분칠이 된 시대에 신숙옥처럼 일본이라는 차별사회를 뚫고 나와 오로지 생존의 논리로 자신의 명분과 실리를 모두 되찾는 여성의 실화는 늘 감동의 무엇을 남긴다. 다큐멘터리계에서 꽤 명성을 얻고 있는 감독 이일하는 이번 작품을 위해 다큐에세이와 다큐픽션의 기법을 중간중간 섞었다. 그것으로 혹시 만든 이의 주관이 너무 개입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있지만 이 작품이 갖는 진실의 힘은 제작의 변용을 모두 수용하게 만든다. 다큐멘터리는 어차피 만든 이의 작품이다. 감독의 표현기법이 지닌 다양성은 모더니즘의 문제이지 지나친 주관화의 이슈는 아니다. 보편적 설득력을 어느 정도 갖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거기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있다. 은 진심으로 설득되는, 심지어 일본의 극우조차도, 한국의 극 친일주의자들도 설득될 영화이다. 재일교포 3세, 곧 자이니치(在日)인 신숙옥은 1959년생으로 평생을 세 가지의 모순과 차별 속에서 살아왔다.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 곧 조센징이라는 민족적 차별, 가진 것 없고 가난하며 못 배웠다는 계급차별, 그리고 여성이라는 성차별의 중층모순이 그녀의 평생을 억눌러 왔다. 그녀 역시 그 같은 사회적 차별에 대한 정치적 각성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10대 후반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한 프로듀서의 눈에 들었고 모델로 일하다가 인재육성사업에 뛰어들어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다. 그렇게 된 데에는 1986년 일본에서 통과된 남녀고용기회균등법 이 주효한 계기가 됐다. 그전까지 여성들에게는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일본 고용사회가 여성을 일정 비율이나마 의무적으로 채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투쟁 계기로 본격화된 극우 세력의 공격 그렇게 돈을 벌고 일본 주류사회에 편입(됐다고 생각)한 신숙옥을 각성시킨 것은 2000년대, 도쿄도 도지사였던 이시하라 신타로의 차별적 발언을 접하면서다. 일본 내 삼국 세력이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라는 취지로 발언하고 신숙옥은 이에 항의해 이시하라 퇴진 운동을 벌인다. 삼국은 중국과 한국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타로의 삼국론은 윤석열이 떠들던 반국가세력의 이데올로기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우경화는 2012년 아베 신조가 재집권하자 가속화된다. 신숙옥은 이 같은 움직임이 과거 1923년 9월 1일의 관동대지진 때 벌어진 조선인 학살 사건과 같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신숙옥에 대한 일본 극우들의 공격이 본격화 된 것은 그녀가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투쟁에 앞장서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신숙옥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일본 사회 내 자이니치와 오키나와 주민들 그리고 아이누족이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오키나와 문제는 자이니치 문제의 약한 고리라고까지 인식했다기보다는 생래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이미 어릴 적부터 칸코쿠진(한국인)이라는 용어보다 조센징(조선인이라는 한자 독음이지만 한국인에 대한 멸시의 단어로 사용)이라는 수식어를 자신 이름 앞에 붙여 왔다. 조센징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차별의 언어로 들리지 않을 때, 비로소 차별이 없어진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단한 정치적 실천이다   극우 TV의 혐한과 차별, 증오와의 지난한 법정 싸움 어찌 보면 단순한 정의 의식과 생존 본능으로 살아가던 신숙옥을 정치(精緻)한 투쟁가로 만든 것은 일본 사회 자체이며 일본인 자신들이다. 일단 DHC TV라는 화장품 회사의 자회사 TV가 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신숙옥을 북한의 지령을 받아 오키나와 시위대에 자금을 대고 선동하는 여자라는 가짜 뉴스를 내보낸 것이다. DHC TV는 극우 파시즘 방송으로 대체로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곳이다. 산케이신문은 이 DHC TV에 비하면 합리적인 우파 급이다. 미국의 폭스TV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다. DHC TV는 신숙옥이 북한 첩자라는 근거로 그녀가 조선학교 출신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한 패널은 트럼프를 지지한다며 빨간 넥타이를 맸고 또 다른 남자 패널은 신숙옥이, 남한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반대하는 세력, 곧 좌파 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까지 한다. DHC TV 논란은 2014년경부터 일본 사회에 들끓기 시작한 혐한 시위와 인종차별, 증오범죄에 기름을 붓는다. 신숙옥은 일본 극우들의 표적이 된다. 이때가 2017년이다. 신숙옥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피해 있고자 독일로 가 2년을 머문다. 다큐멘터리 은 엄밀한 의미에서 신숙옥 대 DHC TV 간에 벌어진 명예훼손 법정 투쟁을 그린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5년에 걸쳐 그 과정을 추적⸱기록했다. 감독 이일하가 신숙옥 사건을 인지하기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든 것은 2심 재판 때부터인 걸로 보인다. 그 이전의 신숙옥의 모습은 푸티지를 찾아 구성했고 자이니치의 한스러운 차별적 삶은 한국 무용극으로 구성했다. 신숙옥의 어머니로 동포 2세인 케이코(김계선) 여사와의 인터뷰도 넣었고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이 북송선을 타고 북한에 가 사망했다는 비극적 가족사도 담았다. 이 북송선 만경봉호의 얘기는 최양일 감독의 (2004), 양영희의 (2012), (2021)를 통해 영화팬들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신숙옥 같은 반응은 유일무이하다. 신숙옥은 (조카인 숙옥에게 총련 활동을 하도록 해 북에서 자신의 출신 성분을 올리려 했던) 외삼촌이 북한에서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오히려 ‘행복했다’라고 말한다. 비극과 차별의 아이러니가 수십 년간 퇴적돼 온 감정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신숙옥이 지닌 역설의 진심을 느끼게 해 준다.   세상의 차별과 싸우는 모든 이들에게 주는 뜨거운 울림 이 지닌 뛰어난 미학은 두 가지이다. 신숙옥의 싸움이 결코 신숙옥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 자이니치의 문제가 결코 자이니치만의 것이 아니라는 보편적 자각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수한 차별 이슈, 미국과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우 준동의 문제들이 다 연결돼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한다는 점이다. 신숙옥처럼 우리 역시,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견디면 결국 이겨낼 수 있다는 신념을 준다는 것이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과 신념을 잃은 지 오래인 사람들, 관객들에게도 이 영화는 기이한 에너지를 다시 불어넣어 줄 것이다. 이 경고하고 경계하는 또 하나는 가짜 뉴스, 혐오 시위가 갖는 병적 증후군이다. 부당하고 부조리한 가짜 뉴스 프레임으로 사람을 조리돌리는 사회는 결국 병들어 쓰러진다. 신숙옥은 법정 투쟁 과정에서 ‘일본의 양심’을 되찾아야 한다고 외친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이며 트럼프의 미국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영화 첫머리에 신숙옥은 지진 피해를 당한 자이니치 집들을 방문하며 구호 활동을 벌인다. 거기서 그녀는 말한다. 죽지 말아요. 살아야 해요. 우리 삽시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산다는 것, 살아낸다는 것이 제1의 가치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호루몽은 ‘버리는 것’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말로 소나 돼지의 내장을 가리킨다. 일본인이 먹지 않고 버리던 내장 부위를 자이니치 부모들은 자식을 먹이려고 주워다 구이요리를 만들었다. 자이니치 신숙옥의 삶은 뜨거운 울림을 준다. 포기하지 말고 살아내며, 그리하여 이겨낼 일이다. 또 한편의 흥행 다큐를 예감하게 된다. 11일에 전국 개봉한다. (사진 제공: 엣나인)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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