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는 느리지만 깊게 스며든다 [사회혁신] 제명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만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극우의 확산은 느리지만, 느리지만 깊게 스며든다. 더 이상 이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진숙 의원에 대한 제명 촉구 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오히려 국회를 무대 삼아 극우단체와 인사들을 불러모아 5·18 민주화운동 북한군 개입설과 부정선거 의혹 등을 다시 공론화하고 있다.
이번 모임에는 유튜버 전한길씨도 동참해 부정선거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들 이미 절반 이상이 부정선거 실체를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근거와 사실관계를 따져야 할 주장을 마치 이미 확인된 사실인 것처럼 포장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런 주장이 유튜브 안에 머무르지 않고 국회라는 공적 공간을 통해 다시 확산되고 있다는 데 있다.
더 심각한 것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훼다. 5·18 유공자들은 5·18을 ‘거의 폭동’이라고 표현한 영상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추천한 이진숙 의원을 상대로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까지 제기했다. 민주주의의 역사적 비극을 다루는 정치인의 태도에 법적 책임까지 묻겠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국민의힘에서는 이렇다 할 성명을 찾아보기 어렵다. 국회를 이토록 모욕하고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왜곡하는 논란이 반복되고 있는데도, 장동혁 당대표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당 차원의 책임 있는 해명이나 조치가 없다면, 결국 그 침묵 자체가 묵인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 역시 다르지 않다. 제명 촉구 결의안 통과에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후속 대응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결국 정치적 선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상대가 국회를 활용해 자신의 주장을 끊임없이 확산시키고 있다면, 민주당 역시 사실관계를 밝히고 왜곡된 주장을 반박하며 공론장에서 맞서야 한다.
현재 이진숙 의원에게 국회는 단순한 의정활동의 공간이 아닌 듯하다. 논란이 될수록 자신의 존재감은 커지고, 극우 보수층의 관심과 지지는 결집된다. 국회라는 공적 권위를 이용해 논쟁적인 주장을 확산시키면서 정치적 몸값을 높이고 있다.
부정선거라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 반복되고,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이 공공연하게 유통되는 상황에 정치가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민주주의의 근간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이제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허위인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극우의 위험은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세력이 되어 나타나는 데 있지 않다. 처음에는 황당한 주장 하나로 시작하고, 그다음에는 유튜브의 콘텐츠가 되고, 다시 정치인의 발언이 되고, 마침내 국회에서 공론화된다. 그렇게 익숙해진 주장은 어느 순간 ‘논쟁의 하나’로 포장되고,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사회의 일부로 자리 잡는다.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은 그 과정에서 학생, 청년 세대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런 주장에 노출되는 일이다. 반복해서 들으면 낯선 주장도 익숙해진다. 익숙해지면 의심의 대상이 아니라 토론의 대상이 되고, 토론의 대상이 되면 결국 하나의 ‘의견’으로 인정받는다. 극우가 사회를 잠식하는 방식은 어쩌면 바로 이런 느리고 조용한 과정일 것이다.
민주주의는 광장에서만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국회에서도 지켜져야 하고, 정치인의 언어에서도 지켜져야 한다. 특히 국회가 극단적 주장의 확성기가 되는 순간, 정치권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제명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만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극우의 확산은 느리지만, 깊게 스며든다. 더 이상 이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홍순구 시민기자 dran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