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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사회가 인간 내면의 우주를 파악할 수 있다는 오만

사회가 인간 내면의 우주를 파악할 수 있다는 오만
[칼럼]
오동진 영화평론가 영화는 제목이 모든 것일 수 있다는 말은 일본 다큐멘터리 가 증명해 준다. 영화를 보는 100여 분 내내 보는 사람들은 같은 말을 되뇌게 된다. ‘정말 어떻게 해야 했을까?’ 영화 속 여인 마사코와 그녀의 동생 토모아키, 그리고 이 둘의 인텔리 부모의 삶은 과연 지옥이었을까, 아니면 ‘삶이란 그저 묵묵히 견디어 내는 무엇’이라는 철학을 가족 모두 수행한 것이었을까. 무엇이 옳은 것인가. 무엇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더 효율적이고 행복한 것일까. 동생 토모아키의 얘기대로, 조현병에 시달리는 누나 마사코를 병원이나 시설에 두는 게 가족 전부를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었을까. 그녀의 부모 생각대로 그건 별로 소용없는 일일뿐더러, 오히려 마사코를 위하는 길이 아니었던 것일까. 정말 어떻게 해야 했을까.   지식인 부모라면 자식의 정신병을 더 잘 다룰 수 있을까 동생 토모아키가 2001년부터 2021년까지(누나의 첫 발작은 1983년이었고 1992년에 토모아키는 첫 녹음을 해 두었다) 가족의 삶을 카메라로 기록한 자전적 다큐멘터리 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정신적 병세의 징후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마사코는 조현병 환자이다. 정신착란 증세와 순간의 광기에 시달린다. 1926년생인 아버지는 의대에서 세포학을 전공했고 임상의 대신 연구자의 길을 택했다. 한 살 차이인 어머니 역시 약리학 전공자이다. 둘은 하이델베르크에 유학했는데 이때 어린 마사코를 데리고 가기도 했다. 마사코는 1958년생이다. 그녀에게 조현병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의대 본과에 들어가서다. 영화는, 부모가 지식인이면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처리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는 것, 오히려 더 잘못된 결정을 할 수도 있음을 보여 준다. 지식인 부모는 자식의 병을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자식은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보다는 정신병에 걸린 자식이 창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병원에 들어간다고 해서 병이 낫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이 다큐를 만든 동생 후지노 토모아키는 계속해서 의문을 제시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대들기도 하고 크게 싸우기도 한다. 오히려 부모의 잘못된 판단이 누나의 삶을 영혼의 감옥 속에 가두는 것이라 여긴다. 토모아키는 마사코를 병원에 넣고 적절한 치료를 받게 해야 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마사코의 삶이 결국 충만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삶과, 그녀와 함께했던 아내와 자기 삶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정상과 비정상, 이성과 감성, 평온과 혼란… 정답이 없는 대비 마사코가 광기 어린 방언을 해대고(그녀는 대체로 점성술과 관련된 예언 같은 것을 떠든다) 발작을 일으키는 모습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내면이 지닌 우주의 깊은 심연을 느끼게 한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정말 많은 것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어쩌면 마사코의 부모는 미셸 푸코가 『광기의 역사』를 통해 얘기한 것처럼 광인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갖는 위험성을 잘 알고 있고 그 ‘사회적 덫’을 자기 딸에게만큼은 덧씌우지 않겠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수사학이다. 정신병의 원인이 개인적이든 사회구조적이든 그것이 일상의 삶이 됐을 때 가족과 친지,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지옥의 고통일 수 있는지를 동생이자 아들인 후지노 토모아키는 말하려 한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나에 대해 조기에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주장한다. 다큐 의 주된 콘셉트는 대비 혹은 대조이다. 정상과 비정상, 비정상을 대할 때의 이성과 감성, 평온과 혼란, 부모의 무조건적 사랑과 그 무조건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문제를 비교한다. 여기엔 정답이 없다. 그때그때의 방법론이 제기될 뿐이다. 마사코가 조금이나마 좋아지기 시작한 것은 2011년 어머니가 치매를 앓다가 83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나서이다. 엄마의 치매 증상도 정도의 차이일 뿐, 때로는 마사코의 정신착란만큼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사코의 조현병은 오히려 타인의 병을 마주하면서 조금씩 가라앉는다. 여기에는 그 즈음부터 시작된 적절한 약물 투여가 효과를 발휘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나아지기 시작한 직후인 2014년 마사코에게 폐암 4기 진단이 내려진다. 그 과정을 기록하던 동생 후지노 토모아키는 줄곧 가져왔던 분노와 한탄의 마음을 2021년 마사코가 63세의 나이에 죽은 후 95세의 노인이 된 아버지와의 인터뷰에서 질문자로서 다시 꺼내 든다. 그는 아버지가 누나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 것이 아니냐며 조심스러우나 힐난의 마음을 담아 묻는다.   나라고 아버지의 ‘방식’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토모아키 역시 자신의 질문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다큐의 시작점에는 토모아키의 육성으로 다음과 같은 대사가 전달된다. 이 영화는 누나가 조현병이 된 이유를 밝히려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조현병이 어떤 병인지를 설명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영화는 내내 조현병이 주는 극한의 증상들을 나열한다. 그래서 영화는 실로 마음을 어둡게 만든다. 현재 국내 극장가에 걸려 있는 나홍진의 가 아무리 파격적인 상상력과 비주얼의 충격을 주는 영화라 한들 이 다큐 가 주는 심리적 충격은 따라가지 못한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가 부조리의 충격이다. 감독이자 조현병을 앓는 누나 때문에 평생 고통스러워했던 후지노 토모아키는 결국 삶이 지닌 비정형성, 기이한 불합리의 합리성에 관해 얘기하려 한다. 그 누구도 인간의 삶을 단정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영화가 말하려는 궁극의 주제이다. 그건 마치 토모아키가 깨달은 아버지의 ‘방식’ 같은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나 마사코의 정신병을 방치한 것이고 그래서 그녀의 삶을 망쳐 버렸다고, 자신 역시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생 역시 우주의 심연처럼 불가지(不可知)임을 인정하는 용기 이것이 맞고 저것은 틀리다, 는 논법은 법과 시스템에서 가르마를 타기 위해서나 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내면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양단의 구분이 불가능하다. 인생은 끝없는 불가지(不可知)의 영역이며 그 우주의 심연을 파악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용기가 어쩌면 가장 이성적인 행위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를 두고 단순하게 조현병 환자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들 모두의 인생철학을 갈파하는 지점에 다가서고 있는 영화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마사코의 삶은, 그래도 충만했을까. 마사코의 가족은, 그럼에도 행복했을까. 이건 질문을 거꾸로 해야 답의 방향이 좀 더 명료해질 것이다. (마사코가 조현병이었다 해서) 모두의 삶이 다 불행했을까. 과연 불행하기만 했을까. 마르크스 이론에 입각해 인간 사회의 구조적 체계를 분석하며 삶의 진실을 추적하려 했던 루이 알튀세르도 결국 극도의 정신착란 속에 아내를 살해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인간의 정신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인간의 내면을 다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군다. 는 바야흐로 그 오만함을 버려야 할 때라는 오싹한 충고를 준다. 이 영화는 다음 주 7월 29일에 개봉한다. 가 전국 극장가를 점령한 만큼 이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은 극히 드물 것이다. 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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