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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기관원은 부탁하는 약자? 언론의 빗나간 팩트체크

기관원은 부탁하는 약자? 언론의 빗나간 팩트체크
[뉴스]
영화 에 대한 팩트체크를 하겠다고 언론이 나섰다. 특히 영화 속의 1970년대 언론 현실 관련 부분이다. 그런데 이 팩트체크 기사를 읽다 보면 영화에서 묘사된 바와 같은 언론탄압은 과연 있기는 했을까라는 의문까지 들게 된다. 이 기사는 지엽적인 세부사항의 허구성을 과장해 역사 왜곡 으로 몰아가버린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에서 사용한 극적인 활용을 지적하며 사실 왜곡으로 결론 내리는 듯하다. 이 팩트체크는 ‘작은 팩트’에 갇혀 ‘큰 진실’을 놓치고 있다. 연합뉴스는 기획 시리즈 [살아보니]를 통해 1974년 현역 기자로 활동했던 80대 원로들의 증언을 근거로 영화의 일부 묘사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국한문 혼용 시절에 타자기를 쓰지 않았다   중정 기관원이 신문사 안에서 편집국장 뺨을 때리는 일은 날조다   기관원은 오히려 사정을 부탁하는 을 이었다 는 등의 증언을 내세워 영화가 역사 왜곡을 범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영화 암살자(들) 스틸 컷 이 기사는 얼핏 철저한 고증과 사실 검증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사는 당시 국내 신문사가 국한문 혼용 체제였기 때문에 기자가 타자기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원고지에 펜이나 철필로 글을 썼다는 점을 부각하며 김유신이 양복을 입고 전투에 나간 격 이라고 비판조로 지적했다. 실제 1970년대 신문사 기자들은 타자기 대신 원고지에 펜으로 기사를 썼다. 타자기는 타이핑을 맡은 편집부 타자실의 여직원들이 사용했을 뿐이라는 진술도 있다. 영화 속의 타자기 관련 묘사가 실제와는 거리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반면 외신부 등에서 타자기가 사용됐다는 것이 당시 언론인들의 기억이다. 그러므로 타자기 사용 자체가 없었다는 듯이 결론 내리는 것이 전적으로 타당한 것인지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보다도 영화 제작진이 밝힌 것처럼 타자기는 다큐멘터리적 고증 도구가 아니라 권력의 억압적 분위기와 진실을 기록하려는 언론인들의 긴장감을 시청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영화적 은유와 연출상의 선택을 역사적 사실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 온당한지 의문인 것이다. 그럼에도 타자기에 관한 지적은 고증에서의 오류에 대한 검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원로 기자들의 증언을 빌려 묘사된 당시 권력과 언론의 관계이다. 기관원이 신문사 내에서 편집국장을 폭행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날조라는 것인데, 그 이유는 기관원은 편집국을 찾아와 사정을 고려해달라 고 부탁하는 을 이었고, 기자들은 자존심이 셌으며 권력이 오히려 언론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자가 기관원에 대해 ‘갑’의 관계였으니 기관원이 편집국장을, 그것도 신문사 안에서 ‘감히’ 폭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 기사가 전하는 이 같은 ‘팩트’들은 결과적으로 1974년 당시 유신 정권이 휘두른 무자비한 폭력과 보도 통제의 실상을 정반대로 받아들이게 한다. ‘사정을 봐 달라’ ‘부탁했다’ ‘갑을 관계의 을’이라는 표현은 서슬 퍼런 중앙정보부가 청탁을 해야 했던 약자 로 비치게 한다. 언론은 그런 약자 위에 군림하며 부탁을 들어줄지 말지 사정을 살펴 주며 배려하는 관계였던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기관원이 신문사 안에서 편집국장의 뺨을 때린 것이 실제 일어났었는지, 분명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그런 일의 실재 여부와는 별개로 그런 일이 전혀 일어날 수 없었던 일, 과연 ‘말도 안 되는’ 일이었을까. 이 팩트체크 기사는 1970년대 중앙정보부가 초법적 권력으로 언론을 옥죄던 암흑기였다는 배경을 얼마나 전제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 송건호 선생의 회고에 따르면, 기관원들은 무상 출입하며 일상적으로 신문 제작에 압력을 가했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임의동행 이라는 명목으로 연행해 공포에 떨게 했다. 1974년 10월 23일, 수원 농대생들의 시위 기사를 내보냈다는 이유로 송건호 국장과 사회부장이 중앙정보부로 연행되어 15시간 넘게 강압적인 조사를 받기도 했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린 굽히지 않는 펜 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공개된 조형물을 살펴보고 있다. 언론자유를 상징하는 굽히지 않는 펜에는 언론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청암 송건호 선생의 지론인 역사 앞에서 거짓된 글을 쓸 수 없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2019.7.16. 연합뉴스 사실을 추적한 이 팩트체크 기사가 놓친 진실은 기관원은 굳이 언론사 사내에서 편집국장의 뺨을 때릴 필요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독재권력이 언론의 목덜미를 완전히 틀어쥔 상황에서 언론인들은 매 순간 숨이 막히는 보도 통제 속에서 일을 해야 했다. 물리적인 폭력 행사가 없었더라도 사실상 늘 뺨을 맞는 것과 다름없는 모멸감과 공포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고 봐야 맞다. 폭력은 굳이 쓸 일이 없었으나 필요할 때면 노골적으로 행해졌다. 1975년 3월 17일 언론자유를 요구하며 농성 중이던 동아일보사로 괴한 200여 명이 용접기와 해머, 각목을 들고 난입해 기자들을 무차별 구타했을 때와 같은 경우다. 기관원들은 기자들에게 사정이나 하는 을 이라고 했지만 기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기자들을 불법 연행하며 폭력을 가하던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팩트체크 기사는 그럼에도 기관원이 저자세에서 부탁을 하고, 중앙정보부 요원이 편집국에 상주하는 것이 사이 좋은 동거이며 공조 관계였던 듯 얘기한다. 그럼으로써 독재 권력의 언론 탄압 실상을 축소하는 것을 넘어 강자와 약자,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바꾸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 기사는 다른 언론이 아닌 국가기간뉴스통신사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온당했는지 더욱 의문을 낳는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뉴스통신사이며 언론의 언론 으로서 특별한 공적 책무를 부여받은 언론사로서 타자기 문제와 같은 것이 우선 체크해야 할 중요한 팩트로 선정할 만한 것이었는지 의문이다. 더욱 주목해야 했을 팩트는 영화가 수면 위로 끌어올린 국가 권력에 의한 언론 유린의 역사 가 아니었을까, 라고 적잖은 독자들은 지적할 것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2008년, 중앙정보부가 언론인 해직과 탄압에 깊숙이 개입했다고 공식 규명한 바 있다. 영화 암살자(들) 가 담아내고자 한 것은 그같은 독재권력 폭력의 실상과 언론인들의 저항이다. 언론이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영화가 해내 줬다면 언론은 더욱 진실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하는 게 마땅해 보인다.  저널리즘의 본령은 사실 추구에 있다. 그러나 팩트라는 이름 아래 지엽적인 세부만 부각하고 거대한 구조적 진실을 가린다면 그것은 사실 검증이 아니라 본질 흐리기 가 돼버릴 수 있다. 그러나 연합뉴스는 지엽적인 소품과 에피소드의 ‘미세한 사실’ 여부를 문제 삼느라 ‘큰 진실’의 숲을 보지 못한 듯하다. 게다가 몇몇 파편적인 증언을 토대로 독재 정권의 폭압성을 흐리는 결과가 됐다. 결국 연합뉴스의 이 팩트체크 기사는 또 하나의 팩트체크를 요청하는 듯하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는 과연 국가기간이라는 위상과 무게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이 기사는 그같은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이명재 에디터 promes6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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