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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노벨상 조급증과 쓸모없음의 쓸모

노벨상 조급증과 쓸모없음의 쓸모
[칼럼]
베트남 대학에서 강의하며 가끔 수업보다 행정 업무에 더 진을 뺀다. 성적을 입력하려고 교원용 인터넷 포털을 열면 메뉴가 온통 베트남어다. 필요한 기능을 찾지 못해 담당 부서에 물으면 영어나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는 동료에게 도움을 청하라는 답이 돌아온다. 결국 동료에게 메신저를 보내고 설명을 들은 뒤에야 일을 마친다. 내용도 모르는 문서에 사인만 하는 경우도 많다. 요즘은 새로운 해결책도 등장했다. AI나 번역기를 쓰라는 것이다.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면 구독료는 교원이 부담한다. 대학의 행정업무를 개인의 지갑과 동료의 호의로 처리하는 셈이다. 더 난감한 것은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학부 회의다. 모든 교원이 참석해야 해서 필자도 매달 자리를 지킨다. 회의는 베트남어로 진행되니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알아듣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돌아오곤 한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영어로 된 요약이나 주요 결정 사항을 전달받은 적이 없다. 무엇이 논의되고 어떤 결정이 내려졌는지 모른 채, 회의에 참석하러 학교를 오간 시간만 허무하게 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베트남에서 일하는 만큼 현지 언어를 익힐 책임은 필자에게도 있다. 하지만 외국인 교원을 채용해 국제화를 추진하는 대학에는 구성원이 모두 함께 일할 수 있는 업무 체계를 마련할 책임도 있지 않을까. 주요 안건과 결정 사항을 영어로 짧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포털의 메뉴를 알아내는 데 동료의 시간을 빌리고, 회의에 의무적으로 참석하고도 업무에 필요한 정보를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국제화의 운영 비용을 교원 개인이 떠안게 된다. 이런 경험을 하며 대학의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쉽게 놓치는 자원을 생각하게 됐다. 교수의 시간이다. 베트남은 2045년까지 고소득 선진국에 진입하겠다는 목표 아래 과학기술 역량을 키우고 있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등 전략기술을 육성하고 연구시설을 확충하는 일도 그 일부다. 연구비와 첨단 장비가 늘어나는 만큼 연구자가 자기 질문에 몰두할 시간도 늘어날까. 새로운 발견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연구실 밖에서도 만들어진다. 필자가 묻고 싶은 것은 연구할 시간을 얼마나 확보해 주느냐와, 그 시간에 시작된 탐구를 얼마나 기다려 주느냐다.   베트남 과학기술부 지도부와 참석자들이 지난달 11일 국가 과학·기술·혁신정보시스템 www.sti.gov.vn 출범을 알리는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자에게 시간을 주겠다는 국가 2024년 12월 베트남 공산당 정치국은 결의 57호를 채택했다. 과학기술과 혁신, 디지털 전환을 국가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삼고, 2030년까지 연구개발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연구개발 재원의 60%를 넘는 몫을 기업 등 사회재원에서 조달하고, 국가예산 총지출에서도 해마다 최소 3%를 과학기술·혁신·디지털 전환에 배정하겠다는 구상이다. 결의문에는 연구비 사용의 자율성을 높이고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겠다는 약속도 담겼다. 연구에는 위험이 따르며 성과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정책이 받아들인 것이다. 교원에게 연구시간을 확보해 주는 제도에도 변화가 있다. 2023년 3월부터 시행된 정부 시행령 109호에는 이미 우수 연구집단의 책임자와 핵심 구성원인 전임교원의 기준 강의시간을 50% 감면하는 규정이 있었다. 올해 4월 6일 시행된 시행령 125호는 연구집단의 유형과 역할에 따른 감면 범위를 정비했다. 잠재 연구집단은 책임자가 최대 50%, 핵심 구성원이 최대 20%를 감면받을 수 있다. 우수 연구집단은 책임자가 최대 80%, 핵심 구성원인 교원이 최대 50%까지 감면받을 수 있다. 연구시간을 확보해 주는 기존 제도를 확대하고 정비한 것이다. 실제 적용은 연구집단의 자격과 대학의 운영 여건에 달려 있다. 그만큼 대학의 업무 배분과 인력 운영이 제도의 효과를 좌우한다. 5월에는 과학기술부가 우수 기초연구 프로그램(PEBR)을 승인했다. 2026년부터 2035년까지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역량을 키우는 사업으로, 단기 과제를 개별적으로 지원하는 데서 나아가 5~10년의 장기 연구계획에 따라 여러 과제를 연결해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2035년까지 우수 연구집단 약 50개를 육성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그중 최소 10개는 역내 연구를 선도하고 국제적으로 뚜렷한 학문적 영향력을 갖추도록 키운다는 계획이다. 다음 세대 연구자에 대한 투자도 포함했다. 2030년까지 박사학위 소지자와 박사과정생, 박사후연구원, 젊은 과학자 등 최소 500명의 연구활동과 성장을 뒷받침하고, 그중 독립적인 연구집단을 이끌 역량을 갖춘 젊은 과학자 최소 100명을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2035년의 지원 목표는 과학자 최소 1,000명, 독립적인 연구집단을 이끌 젊은 과학자 최소 200명이다. 베트남 정부는 긴 호흡의 연구에 제도적으로 응답하고 있다. 이제 그 약속을 대학의 하루와 연결해 볼 차례다. 대학의 하루는 누가 책임지는가 베트남 고등교육에는 대학이 교육을, 별도의 공공 연구기관이 연구를 주로 담당해 온 역사가 있다. 소련과 동유럽식 교육·연구 분리 모델의 영향을 받은 구조다. 이후 대학의 자율화와 연구역량 강화가 추진됐지만, 대학에 연구인력을 모으고 연구를 뒷받침할 자원을 배분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세계은행이 공개한 2023년 베트남 고등교육재정 보고서는 이 문제를 보여준다. 2019년 베트남의 석사·박사학위 소지 연구개발 인력 가운데 약 절반이 대학에서 일했다. 대학이 접근할 수 있었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은 약 16%였다. 서로 다른 통계의 비율을 단순히 맞출 수는 없어도, 대학이 보유한 연구인력과 공공 연구비의 배분을 함께 검토할 이유는 충분하다. 2021년 조사 대상 공립대학의 수입에서는 등록금 등 가계 부담이 77%, 국가예산 지원이 9%를 차지했다. 최근 개혁 이전의 공립대학 표본에서 얻은 수치다. 당시 대학 재정이 학생과 가계의 부담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운영비를 마련해야 하는 대학이 학생 모집과 취업률, 교육서비스 경쟁을 넘어 성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연구에도 안정적으로 투자하려면 그에 맞는 재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여기에 행정업무가 겹친다. 올해 8월 베트남 신문 《투오이째》는 대학 교원들이 품질인증 증빙서류와 학습성과 평가표, 반복적인 전산 입력에 시간을 쏟는 현실을 보도했다. 일부 교원은 인증 업무 때문에 연구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같은 기사에는 교육과정과 평가 내용을 잘 아는 교원이 직접 작성해야 하는 자료가 있다는 대학 관리자들의 설명도 실렸다. 교원의 전문적 판단과 책임이 필요한 업무는 교원이 맡아야 한다. 여러 양식에 같은 정보를 거듭 입력하고 자료를 취합하는 일은 행정 지원과 업무 체계의 개선을 통해 줄일 수 있다. 교육의 질을 확인하려는 평가라면, 그 평가가 교육과 연구에 쓸 시간을 얼마나 차지하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포털에서 영어 메뉴를 찾지 못하는 외국인 교원의 경험과 품질인증에 매달리는 교원들의 경험은 서로 다르다. 두 경우 모두 업무를 설계하는 대학이 교원의 시간까지 자원으로 계산하고 있는지 묻게 한다. 서류 한 장을 요구하는 부서에서는 작은 일이지만, 그 서류를 작성하는 사람에게는 강의 준비나 연구에 쓸 시간이 빠져나간다. 강의시간을 줄인 자리를 다른 업무가 채운다면 연구자는 여전히 바쁠 것이다. 장기 연구비를 승인받아도 복잡한 신청과 정산 절차에 매달려야 한다면 연구에 몰두할 여유는 줄어든다. 강의시간 감면 규정과 대학의 실제 업무 배분을 함께 살펴야 하는 이유다. 결국 연구자의 시간은 연구비 심사위원회만으로 지킬 수 없다. 대학의 행정실에서부터 그 시간이 보호되어야 한다. 어떤 질문에 시간을 줄 것인가 연구할 시간을 확보하면 다음 질문이 남는다. 그 시간을 누가, 어떤 질문에 쓸 수 있는가. PEBR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장기간 지원하고 연구의 위험도 감수하겠다고 밝힌다. 양자기술, 인공지능, 반도체, 첨단소재 등 국가가 전략적으로 육성하려는 분야를 우대하고, 연구집단의 성과와 국제적인 학문적 영향력을 평가한다. 한정된 재원으로 연구역량을 키우려는 선택이다. 가능성을 인정받은 연구를 더 크게 키우는 지원과 아직 학문적 기반을 마련하는 연구자에게 탐색의 기회를 주는 지원에는 각기 다른 역할이 있다. 유력한 연구집단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이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하는 경로와, 기존 집단의 관심 밖에서 새 질문을 시작하는 경로도 함께 살펴야 한다. 베트남에는 PEBR 외의 기초연구 지원 창구도 있다. 국가과학기술개발기금(NAFOSTED)이 올해 7월 발표한 공모는 자연과학과 공학뿐 아니라 사회과학과 인문학도 지원 대상으로 삼았다. 일반적인 연구기간은 24~36개월이다. 자연과학에서는 수학·물리·화학·생물학 등 베트남의 강점 분야와 전략기술의 기반이 될 연구를 우대한다. 사회과학과 인문학에서는 주요 정책과 법률의 수립·개선에 기여할 연구에 우선순위를 둔다. 연구자는 예상 성과와 필요한 예산을 제시해야 한다. 공모의 예산 참고표에는 국제학술지 논문과 특허, 학술서, 연구인력 양성 등이 들어 있다. 이 표는 예산의 적정성을 검토하는 참고 기준이며 논문 편당 지급단가와 구별된다. 지침도 연구비를 검토할 때 논문 수에만 의존하지 말고 질과 학문적 영향력을 함께 보도록 했다. 연구의 위험 역시 예산을 산정할 때 고려하는 요소다. 전략 분야에 재원을 집중하고 연구의 학문적 영향력을 살피는 데에는 각각 이유가 있다. 그와 별개로 물어야 할 것은 성과와 효용을 입증할 시점이다. 아직 발견이 이루어지지 않은 연구에 언제부터 얼마나 구체적인 성과와 활용처를 요구할 것인가. 연구계획을 통해 연구자가 무엇을 묻고 어떤 방법으로 탐구할지 설명할 수 있다. 탐색적 연구에서는 질문을 좇는 과정에서 예상과 다른 결과를 만나고 연구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발견 뒤에야 드러날 효용까지 처음부터 확정하도록 요구하면, 연구자는 답을 찾기에 앞서 그 답의 쓰임을 입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필자는 발견이 무르익는 시간보다 효용을 입증할 시한을 앞세우는 압력을 ‘쓸모의 조급증’이라고 부르고 싶다. 기초연구에서 새로운 기술이 자라나고, 산업의 문제를 풀다가 뜻밖의 과학적 발견을 만나기도 한다. 연구마다 목적과 위험, 성과가 나타나는 시점이 다르다. 그 차이를 평가 기준에 반영해야 한다. 베트남의 새 제도를 살필 때도 이 구별이 필요하다. 장기 연구와 위험 수용을 밝힌 원칙이 과제 선정과 중간 평가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따져야 한다. 강의 감면을 정한 시행령 125호도 연구계획에서 승인된 목표·과제·산출물의 달성 정도를 바탕으로 우대정책의 적용을 해마다 검토해 조정하도록 했다. 장기 연구를 뒷받침하면서 연례 평가를 시행하는 구조인 만큼 무엇을 연구의 진전으로 인정할지가 중요하다. 한 해 동안 논문을 내지 못했더라도 가설을 더 정밀하게 세우거나 방법을 개선했을 수 있다. 예상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도 다음 탐구의 토대가 될 수 있다. 평가에서는 이런 진전과 연구 수행의 부실을 가려내야 한다. 이 구별을 얼마나 충실하게 하느냐에 따라 같은 장기 지원제도 아래에서도 연구자가 시도할 수 있는 질문의 폭은 달라질 것이다. 평가가 이 구별을 놓칠 때 생길 수 있는 일을 베트남 교육계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성과를 실제보다 부풀려 보이게 만드는 실적병(bệnh thành tích) 이다. 정부는 2006년 총리 지시 33호를 내려 교육계의 실적병을 바로잡겠다고 선언했다. 연례 평가가 해마다 셀 수 있는 산출물만 진전으로 인정한다면, 장기 연구를 뒷받침하려던 제도 아래에서 실적병이 연구 현장으로 옮겨 올 수도 있다. 지원 대상의 범위도 따로 점검해야 한다. 전략기술을 육성하는 사업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과, 그 우선순위 밖의 탐색적 연구에도 진입로를 마련하는 것은 함께 추진할 수 있다. PEBR과 다른 기초연구 사업들을 두루 살펴야 아직 효용을 설명하기 어려운 질문에 어떤 기회가 열려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사회과학과 인문학에도 이 질문이 이어진다. 베트남은 2025년 12월 인공지능법을 제정했고, 올해 3월에는 국가 AI 윤리 프레임워크를 마련했다. 기술의 안전성과 책임을 다룰 제도적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AI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되는지, 그 판단에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편익과 위험을 사회에 어떻게 나눌 것인지는 법학과 철학, 사회과학의 연구 문제다. 기술의 성능을 높이는 연구와 그 기술의 목적·한계를 따지는 연구가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정책을 잘 실행하도록 돕는 연구와 정책이 전제한 가치부터 되묻는 연구에는 서로 다른 역할이 있다. 무엇이 정책에 기여하는 연구인지 판단할 때 두 역할을 함께 인정해야 한다. 현재의 정책 목표에 곧바로 맞아떨어지지 않는 질문에서도 사회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드러날 수 있다. 융합연구에도 이런 여유가 필요하다. 각 분야가 이미 정해진 과제에 참여하는 데서 나아가 무엇을 함께 물어야 할지 논의하는 데에도 시간이 든다. 연구자가 자기 질문을 발전시키고 다른 학문의 질문을 만날 수 있을 때, 확보된 시간은 융합연구의 토대가 된다.   2023년 1월 17일 베트남 하노이 호아락 하이테크 파크에서 개최된 ‘한국-베트남 과학기술연구원(VKIST) 준공식’에서 이윤영 코이카 이사(가운데 왼쪽)와 부이 테 듀이 VKIST 원장이 이양 합의문에 서명하고 들어 보이고 있다.. 한국이라는 거울 대학의 연구역량과 장기 탐구를 함께 키우려면 기관 사이의 연결도 중요하다. 이 대목에서는 베트남이 참고해 온 한국의 경험을 돌아볼 수 있다. 한국은 산업화 과정에서 정부 연구기관과 기업의 협력을 통해 기술개발 역량을 키웠다. 산업현장의 문제를 연구하고 생산에 적용하는 방식은 경제 성장의 중요한 기반이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모델로 하노이 화락 첨단기술단지에 설립된 베트남·한국과학기술연구원(V-KIST)도 기업의 기술 수요에 대응하는 응용연구와 기술사업화를 주요 임무로 맡았다. 산업기술을 발전시키는 연구기관의 임무는 그 목적에 맞게 평가해야 한다. 이와 함께 살필 것은 연구소에 축적되는 인력과 시설, 경험이 대학의 연구역량과 어떻게 연결되느냐다. 교육과 연구가 분리돼 성장한 베트남에서는 그 연결이 다음 세대 연구자를 키우는 통로가 될 수 있다. 한국의 KU-KIST융합대학원은 이런 협력 구조의 한 예다. 2012년 설립 인가를 받고 2013년 학생을 맞은 이 대학원에서는 고려대학교와 KIST의 연구인력이 학연교수제를 바탕으로 교육과 연구를 함께 수행한다. 여기서 참고할 것은 대학과 연구소의 자원을 함께 쓰도록 만든 제도적 연결이다. 베트남에서도 자국의 대학과 연구인력 운영 방식에 맞는 연결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 V-KIST의 후속 계획에도 공동연구와 인력양성이 들어 있다. 9월 말 베트남 과학기술부 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알려진 2단계 구상은 한국의 무상원조 3000만 달러를 활용해 2033년까지 전략기술 공동연구 38개 과제를 추진하고, 한국에서 박사인력 20명을 양성하며, 공동 연구시설을 마련하는 내용을 담았다. 10월 8일 베트남 과학기술부 발표에서도 양국이 2단계 사업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협력의 효과는 개발한 기술과 사업 종료 시점의 실적에 더해, 베트남에 남는 연구역량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대학의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공동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과제를 스스로 발전시키고 대학과 연구소의 협력이 후속 연구로 이어진다면, 사업이 끝난 뒤에도 그 성과는 남는다. 한국의 경험에는 연구지원의 지속성이라는 과제도 비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4년 정부 연구개발 예산이 비R&D로 분류가 바뀐 약 1조 8000억원을 고려해도 전년보다 약 2조 4000억원 줄었다고 설명했다. 2025년에는 총 연구개발 예산이 29조 6000억원으로 다시 늘었다. 개별 연구과제의 지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사업별로 따질 일이지만, 나라 전체의 투자 확대를 말하는 일과 연구자가 장기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지원을 이어 가는 일은 함께 평가해야 한다. 베트남은 한국에서 산업기술 발전과 학연 협력의 제도적 경험을 배울 수 있다. 한국이 겪은 예산 변동의 경험에서도 지원의 예측 가능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물을 수 있다. 연구시설을 세우고 새로운 사업을 승인하는 성취와 함께, 한 연구자가 자신의 질문을 오래 이어가도록 뒷받침하는 조건을 살펴야 한다.   2025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기타가와 스스무 교수 [교도 연합뉴스 자료사진] 쓸모없음의 쓸모 지난해 노벨화학상을 받은 교토대의 기타가와 스스무 교수는 이달 한국을 찾았다. 그는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한국이 노벨 과학상을 언제 받을 수 있는지 알려면 20년 전의 연구환경을 돌아보라고 권했다. 정부가 기초연구에 얼마나 투자했고 연구자의 독창성을 얼마나 지켜 주었는지를 묻는 말이었다. 기타가와 교수는 금속 이온과 유기 분자로 내부에 미세한 공간을 만드는 금속유기골격체(MOF)를 연구했다. 1997년 그의 연구팀은 이런 물질이 기체를 흡착했다가 방출할 수 있음을 보였다. 오늘날 이 분야에서는 이산화탄소 포집과 기체 저장 등 여러 활용 가능성이 연구되고 있다. 그 과정에는 연구의 쓰임을 설명하기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다. 그는 방한 인터뷰에서 대규모 연구과제에 지원했다가 쓸모를 인정받지 못해 거절당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의 연구를 계속 떠받친 지원도 함께 봐야 한다. 일본학술진흥회(JSPS) 인터뷰에서 그는 1980년대부터 이어진 과학연구비 지원을 회고했다. 초기에는 비교적 적은 연구비로 자유롭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시험할 수 있었다. 이후 특별추진연구와 장기 연구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으며 연구영역을 넓혔다. 큰 도약을 가능하게 한 연구비와 작은 시도를 이어 가게 한 연구비가 그의 경력 안에 함께 있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연구 단계에 맞는 지원과 그 지속성이다. 새로운 질문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탐색의 기회가, 가능성을 확인한 연구에는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하나의 질문이 자라나는 동안 지원의 형태도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 이미 큰 성과를 낸 연구자에게 집중하는 정책만으로는 그가 처음 질문을 품던 시절의 조건까지 마련하기 어렵다. 기타가와는 2025년 노벨 강연의 제목에도 ‘쓸모없음의 쓸모(The Usefulness of the Useless)’라는 표현을 넣었다.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과 이어지는 생각이다. 베트남에서도 장자는 짱뜨(Trang Tử)라는 이름으로 읽혀 왔다. 이 오래된 생각을 오늘의 연구정책에 비춰 보면, 무엇을 유용하다고 판단하는지부터 되묻게 된다. 쓸모없는 연구도 언젠가는 돈이 될 수 있다는 말은 기초연구를 옹호할 때 자주 쓰인다. 그 말만으로 연구의 가치를 설명한다면, 끝내 산업적으로 활용되지 않는 발견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어떤 지식은 예상하지 못한 기술로 이어지고, 어떤 지식은 경제적 효용과 관계없이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바꾼다. 미래의 경제적 보상에 대한 기대와 지식 자체의 가치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연구를 지원할 때는 질문의 독창성, 방법의 엄밀함, 그 연구가 새로 더할 지식을 평가해야 한다. 탐구가 끝나기도 전에 구체적인 활용처를 확정하는 요구가 그 평가를 대신해서는 곤란하다. 아직 가치를 다 알 수 없기에 탐구할 기회를 준다는 판단도 공공 연구지원의 일부여야 한다. 2045년의 노벨상을 기다리며 베트남이 마련한 새 제도의 성과는 지원 집단과 연구인력의 숫자에 더해 연구자의 하루에서도 드러나야 한다. 강의 감면이 실제 연구시간으로 이어지는지, 새 연구자가 독립적인 질문을 시작할 수 있는지, 전략기술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탐색적 연구에도 기회가 있는지 살펴야 한다. 대학과 연구소의 협력이 사업 종료 후에도 이어지는 역량으로 남는지도 중요한 기준이다. 교원용 포털에서 메뉴 하나를 찾느라 동료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 매달 회의에 참석하고도 무엇이 결정됐는지 모른 채 돌아오는 일은 대학 전체에서 보면 작은 불편으로 취급될 수 있다. 그 작은 불편을 해결하는 책임이 개인에게 쌓이면 교원의 하루는 거기에서 소모된다. 국가가 연구시간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대학이 업무를 배분하고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까지 이어져야 한다. 노벨상은 뛰어난 발견에 주어지는 영예다. 그 수상자 수를 국가 연구정책의 성적표로 삼으면 기초연구에서도 또 하나의 실적병이 자랄 수 있다. 상을 기다리는 동안 지켜야 할 것은 연구자가 자신의 질문을 발전시킬 수 있는 환경이다. 2045년의 노벨상 수상자를 지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아직 무엇을 발견할지 알 수 없는 연구자에게도 탐구의 시간을 허락하는 나라는 한국이건 베트남이건 지금부터 만들 수 있다.  정승호 시민기자 jeong.seungho@hoasen.edu.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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