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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한겨레의 사실 과 의견 2분법에 대한 질문

한겨레의 사실 과 의견 2분법에 대한 질문
[뉴스]
한겨레가 검찰개혁에 대한 보도의 원칙을 밝히는 글을 28일자에 실었다. 라는 제목의, 저널리즘책무실장의 이 칼럼은 (한겨레의 독자들은) 왜 기사와 칼럼, 사설이 서로 다른 말을 하냐고 질타하기도 한다”면서 그 기저에는 한겨레 기자들이 검찰개혁에 미온적인 게 아니냐는 불신이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즉 오피니언 면에서는 한겨레의 입장이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기사는 너무 밋밋하다고 비판하는 한겨레의 독자들이 많은 것에 대해 검찰개혁에 대한 한겨레의 입장은 확고하다”면서 그럼에도 이를 저널리즘의 원칙 중의 하나인 ‘사실과 의견의 구분’으로 설명했다. 뉴스를 전하는 기사에는 취재한 사실만 쓰고, 의견은 별도의 오피니언 영역에서 밝히자는 원칙에 따른 것이며, 그래서 뉴스 지면에서까지 ‘사이다 논평’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라는 것이다. 이같이 칼럼을 통한 한겨레의 ‘설명’은 자사의 보도가 검찰 권력 해체라는 시대적 과제에 대해 지면 내부에서 서로 엇갈리는 모습을 보인다는 적잖은 독자들의 지적과 불만에 대한 응답으로 보인다. 한겨레의 독자들에 대한 이와 같은 설명은 그 자체로 높이 평가할 대목이다. 언론이라는 공공 기관이, 특히 한겨레와 같이 그 탄생에서부터 국민이 주인인 신문을 자부하는 언론이 보여줘야 할 ‘설명 책임’을 다하려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칭찬할 만한 대목이다. 다른 언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한겨레다운’ 모습이랄 수 있다.   한겨레의 28일자 저널리즘책무실 칼럼.  그러나 이 칼럼이 얘기하는 사실과 의견 간의 구분은 이 칼럼이 스스로 얘기하듯 한겨레 지면의 ‘양면성’에 대해 하나를 설명하지만 다른 하나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 같은 설명의 한계는 이 칼럼이 언론계에서 오랫동안 하나의 신화처럼 여겨져 온 저널리즘 원칙을 그대로 따르는 데 그치고 있는 것에서 비롯된다. 바로 ‘사실과 의견의 엄격한 분리’ 및 ‘중립성의 절대화’라는 것이다. 언론은 흔히 기사는 객관적 사실만 전하고, 의견은 오피니언면에 담는 것이 저널리즘 원칙”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과 의견을 과연 그렇게 칼로 두부 자르듯 나눌 수 있다는 믿음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위의 칼럼은 일반 기사가 다루는 ‘사실’은 오피니언의 의견과 철저히 분리되는 영역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그와 같은 의견으로부터 완전 차단된 ‘순수 무균질의, 사실들의 방’이란 있을 수 없다. ‘사실’은 미리 주어지는 것, 절대적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발견과 선택에 의해 비로소 사실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 세계의 사건에는 수백 가지의 단편적 사실(팩트) 가 얽혀 있다. 기자가 취재 현장에서 접하는 수많은 정보 중 무엇을 사실로 선택하여 기사화하고 무엇을 생략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에 의해 그 사실은 사실로 성립하는 것이다. 사실의 탄생에는 이미 주관적 판단이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팩트를 담는 기사는 존재할 수 없거니와, 특정 사실을 발굴하고, 그 사실들을 경중에 따라 배치하는 것은 이미 언론사의 프레임이자 하나의 의견이다. 일반기사는 의견이 아닌 사실 보도에 충실하다는 설명이 갖는 한계는 그러므로 사실 보도에 충실하냐 못하냐가 아닌 그렇다면 ‘사실’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탐색이 충분한가에 있는 것이다. 이는 사실보도가 빠질 수 있는 함정과 연결된다. 사실(팩트)은 신성하다”는 언론계, 나아가 우리 사회에 상식처럼 퍼져 있는 금언은 절반의 진실이다. 사실은 신성하기도 하고 불순하기도 한 것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안에 대해 100가지 팩트가 있을 때, 그중 99개를 나열하더라도 정작 핵심이 되는 1개의 팩트를 놓친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 오히려 비(非)진실, 나아가 오히려 반(反)진실이 될 수 있다. 전체 맥락에서 비켜난 사실은 거꾸로 진실을 가리는 포르노적 확대경에 지나지 않는다. 부분적 사실에 집착하며 전체 구조와 본질을 외면하는 보도는 독자에게 객관적 보도 라는 착시를 주면서 사안의 본질을 왜곡한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와 기계적 중립의 문제가 한겨레의 일련의 검찰개혁 및 보완수사권 관련 보도에서 적잖게 드러났다. 검찰개혁의 본질은 수십 년간 누적된 검찰 권력의 오남용을 막고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에 있었다. 그러나 한겨레의 관련 보도는 상당한 정도로 단편적 사실들을 사실 보도 라는 이름으로 나열하는 데 치중했다. 절차적 세부사항이나 일부 학자 정치인들의 우려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로 전달하는 것에 머물렀다. 검찰 측의 논리와 보완수사권의 부작용이라는 일부 사실 을 비중 있게 보도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을 넘어서 이미 하나의 입장을 대변하는 셈이다. 이를 중립적 사실 보도 라고 주장하는 것은 중간일 수는 있지만 중립인 것은 아니며 사실을 전하는 것일 수 있지만 사실들의 총체로서의 큰 사실이긴 힘들다.   서영교 위원장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안건조정위원회 회부를 의결한 뒤 의사봉을 두드리며 정회를 선포하고 있다. 2026.7.29 연합뉴스 위 칼럼은 독자들이 사이다 논평 이 부족해서 불만인 듯 얘기하고 있지만 문제는 ‘사이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이전에 한겨레라는 사이다 의 맛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기 탐색이 충분치 못한 것에 있어 보인다. 위의 저널리즘책무실 칼럼이 말한 대로 뉴스 지면에서는 객관적 사실만 전해야 한다 는 원칙의 문제는 객관적 사실에 충실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객관’과 ‘사실’에 대한 정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 것에 있어 보인다. 위의 저널리즘책무실 칼럼이 뭔가 중요한 것을 설명하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적잖은 독자들이 느낀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한겨레가 검찰 개혁 문제에 대해 특히 비판받는 중요한 원인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어느 영역보다 주류 언론들이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한 곳이 법조기자단이라는 것, 한겨레가 과연 그 카르텔의 관행과 구조를 벗어나려 했는지에 대해 독자와 지지자들이 보내는 실망과 비판에 대해 이 칼럼은 얘기하지 않는다. 카르텔 안에서 검찰 등 권력기관이 흘려주는 단편적 사실과 정보에 지나치게 의존해 온 관행에서 한겨레가 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에 대해 이렇다할 설명이 없다. 진보 언론으로서 언론의 ‘진보’를 보여주고, 대안 언론으로서 기존 주류 언론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에서의 핵심적인 영역 중 하나가 법조, 특히 검찰 영역이라고 할 때 한겨레는 그 같은 기대와 요구를 보내는 이들이 보기에는 그리 만족할 만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기존의 법조 출입처 문화와 시스템에 안주한 것이 아닌지, 권력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보다 다른 매체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이 검찰발 정보의 단순 전달자에 머무른 것이 아닌가에 대한 설명과 자기 점검이 보이지 않는다. 저널리즘 책무실 칼럼이 실린 다음날인 29일 이 신문의 같은 오피니언 면에는 이라는 논설위원 칼럼이 실렸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 폐지가 사실상 확정된 것이 오랜 ‘오디세이’ 끝에 검찰개혁이 드디어 제 궤도로 돌아온 셈이라는 논지다. 이 칼럼에 대한 동의 여부와는 별개로, 일반 기사에서도 이 칼럼과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게 마땅한지에 대한 논의와는 별개로, ‘사실’과 ‘의견’ 간의 구분에 대해 좀 더 깊이 모색하는 한겨레의 오디세이 를 기대한다.이명재 에디터 promes6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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