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해진의 아름다운 얼굴 을 바라본다 [사람들] 배우 유해진. 나무위키
배우 유해진을 생각하면 먼저 웃음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의 웃음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크게 웃고 나면 어느 순간 마음 한구석이 짠해진다. 아마 그 웃음 속에 사람의 허술함과 외로움, 살아가는 일의 고단함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해진은 처음부터 주인공의 얼굴을 가진 배우가 아니었다. 잘생긴 얼굴과 젊음을 앞세워 스타가 된 사람도 아니다. 오랫동안 조연으로 무대와 스크린을 지켰다. 하지만 그는 작은 배역도 결코 작게 연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인공 옆에 있는 인물을 자기만의 색깔로 살아 있게 만들었다.
의 육갑, 의 고광렬, 의 초랭이가 그랬다. 특히 의 고광렬은 주인공 고니를 돕는 조연이지만 관객에게는 주인공 못지않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능글맞고 허술하면서도 정이 많다. 웃음을 만들어내면서도 어딘가 쓸쓸하다. 유해진은 이처럼 한쪽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인간의 모습을 잘 표현한다.
의 초랭이도 마찬가지다. 유해진 특유의 몸짓과 말투가 캐릭터와 만나면서 독특한 웃음을 만들어냈다. 에서도 거창한 영웅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만날 법한 평범한 사람을 연기했다. 그의 코미디가 오래가는 이유는 억지로 웃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다 보니 관객이 웃게 된다.
는 그런 유해진의 대중적인 매력을 한껏 보여준 작품이다. 냉혹한 킬러와 무명배우의 삶이 뒤바뀐다는 설정에서 그는 몸을 사리지 않는 코미디를 선보였다. 그러나 그 영화가 기억에 남는 것은 웃음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발견하는 과정이 있다. 유해진은 우스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따뜻함을 놓치지 않았다.
영화 공조 스틸 컷
와 에서는 생활형 형사 강진태를 맡았다. 현빈이 강인하고 냉정한 북한 형사의 이미지를 보여준다면 유해진은 가족과 생계를 걱정하는 평범한 형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액션 영화에서조차 그의 강점은 액션 자체보다 사람 냄새였다. 그러니 유해진을 코미디 배우라고만 부르면 그의 연기 세계를 너무 좁게 보는 것이다. 에서는 사회적 부조리에 맞서는 인물의 무게를 보여주었고, 에서는 짧은 등장 속에서도 현실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에서는 광주의 비극을 마주한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역사적 사건을 관객에게 전달했다. 에서는 민주주의를 위해 거대한 권력에 맞선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를 보여주었다. 특히 그가 연기한 한병용은 거대한 영웅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양심을 외면하지 않은 사람이다. 유해진은 그런 사람을 과장하지 않는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작은 표정과 행동으로 한 인간의 두려움과 결심을 보여준다.
의 판수도 그렇다. 처음부터 대의를 품은 사람이 아니다. 먹고살기 바쁜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말과 글을 지키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유해진은 그 변화의 과정을 아주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변해가는지를 보여주는 연기였다.
에서는 독립군 황해철을 맡아 거칠고 강한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에서는 더욱 절제된 연기를 선보였다. 맹인 침술사 경수라는 인물을 맡아 눈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미세한 표정과 몸짓으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배우가 무엇을 보여주느냐보다 무엇을 보여주지 않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연기였다.
영화 암살자(들) 스틸 컷
그리고 최근작 에 이르면 유해진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게 된다. 허진호 감독의 이 영화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벌어진 영부인 피격 사건을 소재로 삼아, 당시 사건의 의혹과 배후를 추적하는 미스터리 영화다. 유해진은 현장에서 경호를 담당했던 형사 철구 역을 맡았다. 자신이 직접 목격한 상황과 이후 발표된 수사 결과 사이에 의문을 품고 사건의 진실을 좇는 인물이다.
이 작품에서 유해진은 예전처럼 관객을 웃기는 배우가 아니다. 국가와 권력, 진실과 거짓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믿었던 국가로부터 배신당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 대한 평가와 역사적 해석에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철구라는 인물을 연기한 유해진의 존재감은 분명하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그가 또다시 ‘거대한 역사 앞에 선 평범한 사람’을 연기한다는 점이다.
은 개봉 이후 역사적 해석과 표현을 둘러싼 논쟁을 불러왔다. 영화가 실제 사건을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했는지를 놓고 비판과 반론이 이어지고 있다. 제작진은 특정한 역사적 결론을 확정하거나 기존 사실을 부정하려는 영화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역사적 해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부분을 비판하면 된다. 영화가 사실을 어떻게 다뤘는지 따지고, 감독의 연출과 각본을 논쟁하면 된다. 그러나 그 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배우 개인의 외모나 인격을 공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영화 암살자(들) 스틸 컷
최근 유해진을 향해 외모를 정치적 의미와 연결한 표현까지 등장한 것은 지나친 일이다. 실제로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이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유해진을 겨냥해 외모를 빗댄 표현을 사용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영화에 대한 정치적 비판과 배우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은 같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이런 논란을 보면서 유해진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여러 얼굴을 연기해왔는지를 생각한다. 그는 북한 사람도, 독립운동가도, 형사도, 기자도, 킬러도 아니다. 그저 배우다. 배우는 다양한 인물의 삶을 살아본다. 악인을 연기했다고 악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독립군을 연기했다고 독립운동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영화 속 인물과 배우 자신을 구분하는 것은 관객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다.
유해진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그 경계를 잘 알고 있는 배우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인물을 드러낸다. 그래서 어느 순간 우리는 유해진을 잊는다. 에서는 고광렬이 되고, 에서는 초랭이가 되고, 에서는 킬러가 되고, 에서는 한병용이 된다. 그리고 에서는 철구라는 한 시대의 인간이 된다. 좋은 배우는 자신의 얼굴을 관객에게 각인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을 지우고 다른 사람의 삶을 보여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유해진의 얼굴에는 세월이 있다. 젊었을 때의 날카로운 표정도, 코미디에서 보여준 익살도, 중년을 지나며 깊어진 주름도 모두 그의 연기 자산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 그의 얼굴을 보면 잘생겼다거나 못생겼다는 말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 얼굴에 수많은 인물의 삶이 겹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유해진을 보면서 배우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람의 약함을 비웃지 않고, 허술함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평범한 사람의 작은 용기를 발견하는 것. 유해진은 오랫동안 그것을 해왔다. 화려한 스타는 많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 배우는 많지 않다.
유해진은 조연에서 출발해 주연이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주연이 된 뒤에도 여전히 우리 곁의 사람처럼 느껴진다. 아마 그것이 그의 가장 큰 힘일 것이다. 그는 특별한 사람을 연기해서 특별해진 배우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 속에 숨어 있는 특별함을 발견해온 배우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유해진이라는 배우보다 그가 연기했던 사람들이 오래 기억난다. 웃음 뒤에 사람이 있고, 사람 뒤에 삶이 있다. 나는 그것이 배우 유해진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한다.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