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 만에 박정희 암살 미수 사건의 진실 묻는 영화 [뉴스] 오동진 영화평론가
감독 허진호의 신작 은 제목부터 감독의 고뇌가 읽혀진다. 평소대로라면 ‘암살자’가 맞을 것이다. 그러나 허진호는 이 일을 복수나 다수가 계획한 것으로 봤다. 정부의 공식 발표는 여전히 단독 범행이다. 그러나 이게 좀 말이 안 된다는 새로운 주장을 담는 것이 이번 영화의 목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암살자들’이라고 복수를 써야 하는데, 이번엔 이게 아직 위험한 일이다. 그렇다면 ‘(들)’이라고 괄호를 쓸 수밖에 없다. 단독 범행일 수도 다수의 음모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세상은 피해 갈 구석을 늘 마련해 놔야 하는 법이다. 어쨌든 허진호는 세상 사람들에게 라면 먹고 갈래요?”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같은 대사로 유명했던 순수 멜로영화에 능한 감독으로 알려져 왔다. 그의 (2007)이나 (2009)을 보라. 그러던 그가 (2016)와 (2019) 같은 사극을 거치며 진화했다. 이번 은 중견 흥행 감독 허진호가 역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용감하고 도발적임을 입증하는 영화가 됐다. 은 여전히 한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아니 불가능하다는 1974년 문세광의 저격 사건, 이른바 육영수 대통령 부인 저격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케네디 암살사건의 얼개로 들여다 본 문세광의 저격
은 올리버 스톤이 만든 영화 (1992)의 리 하비 오스왈드 프로젝트 구조를 영리하게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는 리 하비 오스왈드가 자생적 사회주의자로서 소련과 쿠바를 다녀온 뒤 존 F. 케네디의 피그만 침공 등 반(反)쿠바 정책에 불만을 품은 것이 범행 동기인 듯 그의 행적을 우회적으로 흘리며(여론이 격앙될 것을 의식해 직접적인 언급은 꺼렸다) 그가 단독으로 텍사스주 댈러스에서의 카퍼레이드 때 대통령을 저격 암살한 것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그러나 영화 는 이 사건을 오스왈드의 개인적 동기를 이용한 군산복합체(군부와 군수산업 자본가, 마피아) 다수가 단독 범행으로 위장해 대통령을 죽인 음모로 봤다. 따라서 JFK 저격이 세 군데에서, 곧 삼각 저격조에 의한 것이었음을 입증하는데 영화의 1/3을 할애한다. 영화 속 짐 개리슨 검사(케빈 코스트너)의 법정 논고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 역사를 넘어 미국 현대사의 정점처럼 인식되어왔다.
감독 허진호의 도 국립극장에서 울린 총성의 횟수, 탄피의 실종, 탄도의 위치 등을 분석하며 문세광의 저격은 위장술일 뿐 사실은 애초부터 이 모든 것이 육영수를 겨냥한 음모였음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정부의 공식 수사 결과는 문세광 역시 조총련을 들락거리는 등 리 하비 오스왈드처럼 행적이 의심스러웠다. 그는 오사카항에 정박해 있던 만경봉호에 승선해 북한의 공작지도원과 접선하던 과정에서 김대중 납치사건에 불만을 품고 한국에 입국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허진호의 영화 은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오스왈드를 이용했듯이, 한국의 정보기관 중앙정보부가 거대한 자작극을 연출해내기 위해 문세광을 이용했고 이후 모든 것을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은폐한 것으로 본다. 리 하비 오스왈드는 호송 도중 마피아(관련 인물)에 의해 암살됐다. 문세광은 대법원에서의 사형 판결 이후 단 사흘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중정 자작극이라는 음모설이 그럴 듯한 70년대 정치 상황
허진호의 은 서사의 빌드업을 위해 세 명의 인물을 가상으로 내세운다. 동성일보(동아일보로 보인다) 사회부장 김재환(박해일)과 극동상사(극동건설을 극화한 것으로 보인다) 막내아들로 아버지 덕에 취직한 ‘낙하산’ 기자 한영일(이민호), 그리고 중부서 경비계장 박철구(유해진) 등이다. 이들 셋은 올리버 스톤의 속 짐 개리슨 검사의 캐릭터를 세 개로 쪼갠 듯 각각 사건을 추적하고 총합해서 진실의 얼개를 짜 맞춰 나간다. 이들 세 가상 인물은 결국 관객들이 영화 속 문태광(곧 문세광, 박정민)의 저격 사건이 당시의 중앙정보부가 벌인 추악한 ‘정치 게임’이었을 수도 있었음을 추론하게 만든다. 적어도 한국 현대사의 진실에 조금이나마 더 가깝게 접근하도록 만든다.
이를 위해 허진호는 한국 현대사에 관한 사회과학적 공부를 열심히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는 1972년의 유신헌법 공포, 1973년의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일본과의 외교관계가 급속하게 냉각됐고(도쿄 한복판에서 정치인 납치극을 벌인 후폭풍) 그로 인해 한일 간 차관(지하철 1호선 건설 자금 등) 도입 논의가 무기한 연기되는 상황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최대의 위기를 맞았고 따라서 극적인 반전이 필요했던 시기이다. 이때 일어난 사건이 문세광의 저격 사건이다. 영화는 바로 그 같은 정치적 경제적 ‘배후설’을 따라간다. 문세광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한일 경제협력과 외교관계는 봉합됐으며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 4호를 해제했다. 언론계에는 자유언론실천선언이 나왔다. 이후 한국의 역사는 서서히 1979년의 박정희 시해 사건으로 모이고 좁혀진다. 그 길목 한가운데를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이다.
그때의 기자나 경찰이라고 달랐을까만은…
기본적으로 은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사건이 왜 일어났는가, 어떻게 일어났는가, 또 어떻게 해결되지 않고 진실이 덮여졌는가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이 가운데 당시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에 대해서도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다. 김재환 부장과 한영일 같은 열혈 기자의 노력은 지금의 젊은 관객들이라면 의아해할 모습들이다. 이는 현재의 언론 현실과 매우 비교되는 모습이기 때문이며 언론의 사명감을 지나치게 키워 준 것이 아니냐는 ‘비웃음’까지 살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적으로 조금 줄일 필요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특히 이 점은 허진호식 역사관의 한계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보다 민중주의에 기초한 캐릭터가 한 명쯤 개입됐으면 좋았을 것이다. 당시 사건의 한 가운에 있던 사람은 기자와 경찰 간부 같은 사람만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영화는 철저하게 상업⸱장르영화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업영화는 스타가 필요하고 스타에 걸맞은 역할(정의로운 기자나 수사관)을 부여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장르영화는 장르적 대원칙, 곧 재미와 흥미를 유발해야 한다. 한국의 정치스릴러 영화가 대중의 관심을 끄는 방법은 TV 사극 마냥, 궁중 암투극 혹은 권력 내부의 문제를 들추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은 대중영화로서의 자기 역할에 충실한 면이 크다. 무엇보다 은 잘 짜인 이야기의 재미를 마음껏 선사한다. 2시간 10분의 러닝타임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흘러간다. 이런 재미를 통해서 이제는 다 잊어버린, 아니면 다 잊어버리게끔 만든 문세광 사건을 다시 기억하게 했다는 점, 이 사건을 전혀 모르는 20, 30대 젊은 관객들에게 지난 시대의 야만성을 올바르게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한 작품이다. 감독 허진호의 연출력과 제작사인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 김원국의 기획력, 촬영감독 이모개의 박진감 넘치는 카메라워킹이 합을 이룬 작품이다. 정치 스릴러를 표방한 상업영화는 이런 합으로 결과돼야 한다.
찾지 못한 탄피들, 예상 못한 피해자들… 끝까지 남는 의문부호
영화는 문세광 외에 다른 누군가가 암살 현장인 국립극장에 또 있었다고 보고 있다. 총탄은 6발이었다. 영화 속 감식계장 이현도(실제 인물 이건우, 박지환 역)는 탄피를 전혀 수거하지 못했다고 증언한다. 실제 역사는 ‘살짝’ 다르다. 문세광은 자기 허벅지에 오발로 쏜 한 발 포함, 네 발 혹은 다섯 발을 쐈으며 경호원(경호실장 박종규 포함)이 두 발 아니면 세 발을 쏴 현장에서는 총 6~8발이 발사됐다. 이중 탄피는 4발만 수거돼, 육영수 씨의 머리를 관통했다는 탄환이 어디서 발사됐는지가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다. 당시에 들끓었던 논란은 육영수를 죽인 탄환이 문세광이 아닌 경호원의 총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것에 모여 있었다.
허진호의 영화 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 간다. 현장에 또 다른 저격수가 있었다는 것이고 애초부터 박정희가 아닌 육영수가 타겟이었다는 것(박정희의 연단이 방탄으로 급히 바뀐 점을 보여준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KCIA의 총체적인 기획과 음모, 자작극이었다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수세에 몰린 정권이 국면전환용 대반전 카드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영화가 제기하는 그 같은 음모론이 다 허구에 불과한 것이라 해도, 영화를 보는 순간 다음의 생각을 지울 수가 없게 된다. 당시의 중앙정보부가 시국 전환을 위한 역공작의 요량으로(사건 이후 반김일성 시위와 정권 옹호 시위가 불붙었다) 어수룩하고 치기 어린 문세광의 영웅심리를 자극하고, 암살극을 벌이되, 실제로는 아무런 피해가 없게 하려던 작전이 오발과 잘못된 조준으로 대형 사건이 된 것일 수도 있다는 식이다. 그 점이야말로 이 던지는 의문부호 중 하나로 보인다.
역사와 정치가 답할 때까지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어쨌든 의문투성이의 사건이었다. 그래서 52년이 지난 지금, 영화가 다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역사와 정치가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할 때이다. 물론 답이 주어질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영화는 역사 앞에 늘 인내해 왔다. 그건 늘 그래 왔던 일이다. 은 9월 23일 개봉해 9월 26일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전산망 집계로 관객 수 87만 3309명을 기록하고 있다. 추석 연휴가 지나면 100만을 넘길 것이다. 흥행 각이다. 역사를 위해 좋은 일이다.
(사진 출처 : 제작사 (주)하이브미디어코프)오동진 ohdjin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