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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은 세대간·지역간 차별을 조장한다
[사회혁신]
고리원전 3호기(왼쪽)과 4호기. 연합뉴스 자료 사진 원자력 발전을 둘러싼 논쟁만큼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고, 지리멸렬해질 우려가 큰 이슈는 드물다. 내게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는 이유를 들라고 한다면, 나는 그것이 지역 간, 세대 간 차별을 심화시킨다는 점을 맨 앞에 내세운다. 핵발전의 혜택은 현세대가 누리지만, 잠재적 위험과 경제적 부담의 더 큰 부분은 다음 세대의 몫이다. 거대한 불평등이다. 또한 한반도에서 핵발전소는 경북과 경남 그리고 전남의 해안가에 밀집돼 있다. 이들 지역은 전기가 남아돌기 때문에 생산된 전력 가운데 상당량은 수도권의 대규모 전력 수요처까지 보내져서 그곳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원전 주변 주민과 정부, 지역 내 찬반 의견대립, 비효율적이고 환경파괴적인 고압송전선 건설을 둘러싼 갈등 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원자력 발전은 요컨대 그 혜택을 누리는 측과 환경적 부담을 지는 측이 다른 발전원에 비해 확연하게 다르다. 오염자 부담원칙에 어긋난다. 정의롭지 못하다. 정부가 원자력 발전소 증설 방침을 거의 기정사실화하면서 여론 수렴 및 공론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답을 정해 놓고 하는 방식이 아니다 라고 말했지만, 앞으로의 일정을 감안할 때 국민 동의를 얻는 절차를 사실상 형식적으로 치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수렴된 여론을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2026~2040년)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달 중 토론회 형식과 횟수 등 공론화 방식을 확정한 뒤 오는 9~10월 전기본 초안을 공개하고, 공론화 절차를 거쳐 12월 정기국회 종료 전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국회보고 일정 등을 감안하면 여론 수렴을 위한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따라서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운영된 공론화위원회 방식은 배제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원자력 발전을 증설하면 안 되는 이유를 나는 다음과 같은 6가지로 손꼽겠다. ① 미래 세대에 위험과 부담 전가 ② 지역 간 갈등을 유발 ③ 추진 과정의 비민주성 ④ 태양광과 원전의 구조적 충돌 ⑤ 원전은 현대의 전쟁과 재난상황에 더 취약함 ⑥ 탈원전은 진보정당의 상징적 이념 등이다. 원전의 경제성과 안전성은 찬반 진영이 각기 다른 측면과 다른 계산 방법을 들고 나오니까 어느 한 진영이 납득하거나 승복하는 경우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경제성과 안전성은 간접적으로만 언급하려고 한다. 이 글에서는 먼저 ①~②를 다룬다.  단기적 편익의 뒷전에 밀리는 미래 세대의 장기적 안전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빨간 불을 끄는 기술은 아직 없습니다. 그리고 고준위 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하는 방법은 여전히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못합니다. 결국은 수명이 아주 긴 방사능이 남게 됩니다. 일본의 반핵 시민과학자 다카기 진자부로는 이처럼 원전 폐기물의 방사능을 꺼버릴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원전을 화장실 없는 맨션 이라고 불렀다.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1호기에 있는 사용후 핵연료 저장조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사용후 핵연료와 재활용(재처리)하고 남는 부산물을 일컫는 고준위 폐기물의 관리 기간은 최소 10만 년이다. 그것의 안전하고도 안정적 처리 방법은 인류가 아직 확립하지 못했다. 두꺼운 구리 용기 등 특수 제작된 용기에 담아 지하 400~500m 암반층에 보관함으로써 지상에서 발생하는 지진, 기후변화, 공습 등에 대비한다는 방식으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수십만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런 지질학적 처분의 안전성이 유지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미국 우려과학자연맹(UCS)의 에드윈 라이먼 원자력 안전 책임자는 지질학적 처분은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최악 중 그나마 나은(least bad) 선택 이라며 구리 캡슐의 부식 속도에 대한 과학적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후 핵연료는 핵발전소 부지 내의 임시저장시설, 즉 습식저장조와 일부 건식저장시설에 보관하고 있다. 이들 부지 내 저장용량이 오는 2030년대 초반에 모두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다. 정부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영구처분장 대상지를 아직 선정하지 못했다. 영구처분장을 마련하기까지의 공백기 동안 각 원전 부지 내에 건식저장시설을 추가로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핀란드는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고준위 방폐장(올킬루오토·Olkiluoto) 섬의 해저 온칼로(Onkalo) 처분장 건설을 완료하고 준비 중이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고준위 방폐장(포스마크 영구처분장) 건설에 들어가서 2030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밖에 프랑스, 스위스, 캐나다 정도가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을 마치고,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나머지 대부분의 원전 운영국가들은 여전히 임시저장시설이나 중간저장시설에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고 있다. 이 나라들이 모두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고준위 방폐장을 확보하겠지만, 그 과정과 그 이후 너무도 긴 세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기후위기의 심화에 따른 자연재해와 난민 발생, 전쟁 등은 안 일어난다고 상정하는 것이 더 비현실적이다. 수십만 년이 얼마나 긴 기간인가. 스웨덴은 10만 년 단위의 지층 처분을 준비하면서 설계가 실제로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과정에 철학자와 언어학자까지 참여시켰다고 한다. 문명의 단절을 겪은 후대의 인류가 위험 경고 표지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요컨대 핵발전은 현세대의 단기적 편익을 위해 천문학적 숫자의 미래 세대의 안전에 불확실성을 더하는 일이다. 더군다나 원전 관련 정책결정 과정에 미래 세대의 의견을 직접 반영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즉 원전의 효용과 비용 배분에서 나타나는 공간적 비대칭은 원칙상 정치적으로 해결 가능하지만, 시간적 비대칭은 핵발전 태생의 한계다.   증기발생기 결함으로 7개월간 가동이 중지됐던 한빛원전 3호기(전남 영광·100만㎾급)가 재가동 4일 만인 16일 오후 1시 34분께 핵심 설비 고장으로 다시 멈춰섰다. 사진은 이날 한빛원전 일대 접근이 통제 중인 모습. 2015.4.16 연합뉴스 원전 있는 영호남은 3등 국민, 수도권에도 원전 입지 가능해야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핵발전소는 영남과 호남의 해안가에 밀집해 있다. 게다가 지난 6월 신규 원자로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의 부지도 각각 경북 영덕과 부산 기장으로 결정됐다. 현재 건설 중인 원전 4기를 포함해 이들 원전이 모두 완공되면 특히 영남지방의 원전 밀집도는 더 높아진다. 정부도 신규 부지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 보니 기존 부지에 원전을 추가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 중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새로운 원전 부지를 찾지 않아도 현재 원전 부지 안에 원전을 더 지을 수도 있다 면서 전남 영광 한빛원자력본부와 울산 울주 새울원자력본부에 각각 2기씩 더 지을 땅이 있다 고 밝혔다. 그런데 원자력 발전소가 남해안과 동해안 지역에만 입지해야 할 이유는 없다. 냉각수로 사용할 물이 가까운 곳에 있다면 어디든지 세울 수 있다. 원전이 추가로 더 필요하다면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수도권 한강 변에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게 막대한 송전 손실과 송전탑 갈등과 비용을 줄일 수 있으니 훨씬 더 나은 대안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최근 마음 같아서는 수도권에 원자력발전소를 짓고 싶은 게 내 입장 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지난 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반도체 산업단지의 전력·용수 문제와 관련해 수도권에서는 더 이상 수십 기가와트의 전력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며 용인이 수도권의 마지막 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여기에서 생략된 말은 수도권의 원자력 발전소는 정치권이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암묵적 전제일 것이다. 그렇지만 따져보면 원전이 기피시설이 될 이유는 원전은 위험하다 거나 위험할 수도 있다 는 인식 밖에는 없다. 원전은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거나 소음을 내는 등 일체의 공해를 유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위험하다는 주관적 인식은 원전의 과학적, 객관적 안전성과는 무관하다. 그렇다면 수도권이 위험하다고 기피하는 시설을 영남과 호남지방에만 계속 부담 지우는 것은 온당한 정책인지 원전을 추진하는 정치인과 정부는 공개적으로 밝혀야만 한다. 아니라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 대한민국 어떤 곳의 주민이든 납득시켜야 한다.   프랑스와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 배치현황. 2026.8.21. 김성진 기자 센강변의 원전, 파리 시민의 식수원이 냉각수로 원자력 발전의 비중(60%)이 이례적으로 높은 프랑스의 경우 핵발전소가 전국에 걸쳐 골고루 자리 잡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원자로정보시스템(PRIS)에 따르면 프랑스 내 56기의 발전용 원자로가 5대 하천변과 대서양 및 지중해 해변을 따라 골고루 분포돼 있다. 특히 수도 파리 근교의 센강 변에도 예외 없이 원자력발전소가 있다(지도 참고). 노장쉬르센(Nogent-sur-Seine) 원자력발전소는 수도 파리에서 동남쪽으로 약 95㎞ 떨어진 오브(Aube)주 센강 유역에 위치해 있으며, 파리 전력 소비량의 약 3분의 1을 공급하는 핵심 시설이다. 파리에서 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가압경수로 2기의 이 원자력발전소는 센강의 물을 냉각수로 활용하여 파리와 수도권 일대의 전력망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일보와 중앙일보의 현장취재 기사에 따르면 1988년 건립된 이 원전은 가동된 지 40년이 다 돼 가지만, 2022년 지역 주민들은 별 반대 없이 원전 수명 연장에 동의했다고 한다( 안보에 필수 프랑스 전원도시에 풍경처럼 녹아든 원전, 중앙일보 2022년 12월 9일자).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에서 약 87㎞(각 시청 기준) 떨어진 원주시의 섬강변쯤에 원전이 들어서 있는 셈이다. 게다가 뜨거워진 핵연료를 식히는 데 사용된 물은 파리시민의 식수원으로 사용되지만 불만을 표출하는 이들은 없다고 한다(原電 우리에게 무엇인가-르포, 국민일보, 2015년 3월 9일자). 이 원전에 대해 해당 지역은 물론 파리 시민들도 별 저항이 없는 데는 원전이 전국에 차별 없이 고루 분포한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열병합 원전단지라면 서울의 한강 하류 지역에도 가능 우리나라에서도 수도권에 원전단지를 조성하자는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권효재 시오알 에너지 인사이트(COR Energy Insight) 페이스북 지식그룹 대표는 이투뉴스 칼럼을 통해 프랑스의 사례를 들어 기존 화력발전소와 송전망이 위치한 서해안 지역에 건설해도 될 것이며, 반도체 클러스터 인근 남한강 변에 원전단지를 건설해도 될 것 이라고 말했다(수도권 원전단지 건설 서둘러야, 2023년 1월 16일).   프랑스 에너지 기업 EDF(프랑스 전력공사)가 운영하는 노장쉬르센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탑 전경. 수도 파리에서 동남쪽으로 약 95㎞ 떨어진 오브(Aube)주 센강 유역에 위치해 있다. EPA 연합뉴스 한강 본류도 잠실수중보를 지나면 취수원이 없기 때문에 그곳에서부터 서해바다까지 한강 하류의 물은 주민들의 큰 저항 없이 원전 냉각수로 사용할 수 있다. 권 대표는 위의 칼럼에서 말했다. 수심이 얕은 서해안과 한강에 대규모 온배수가 유입될 경우 생태계를 교란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폐열을 열공급 수단으로 활용하거나 수소 생산으로 전용하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열병합 원전단지라면 서울의 한강 하류 지역도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독립언론인인 최병성 목사도 페이스북 7월 6일 게시물을 통해 용인 반도체 산단의 전기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여의도의 국회 자리에 원전을 짓자고 제안했다. 국회는 어차피 세종으로 이전하기로 돼 있으므로 그 자리에 원전을 짓고 지하로 송전선을 깔면 용인 반도체 산단까지 45㎞에 불과하다고 그는 말했다. 현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무조건 공급을 늘리기 위해 지산지소(地産地消)를 외면한 채 지금의 기조를 이어간다면 지속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지방 차별을 더 부추길 것이다. 전기를 생산하기보다 더 많이 쓰는 수도권은 1등 국민, 화력발전소와 고압송전탑을 감당하는 충청도와 강원도는 2등 국민, 핵발전소와 재생에너지가 밀집한 영호남은 3등 국민이라고 해도 반박하기 어렵다. 원전과 고압송전선 주변 주민들에게 불안과 손실에 대한 대가로 정부가 주는 지원금이 급증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오히려 수도권과 지방의 불평등을 더 심화시킬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도 정부는 답해야 한다. 원전이 설령 더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수도권에 들어설 수 없다면 원전 증설은 포기해야 한다. 또한 원전 증설에 대한 대국민 여론조사는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이 모두 원전 입지가 될 수 있다는 분명한 전제하에서 실시돼야 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곧 제시할 공론화 방안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임항 편집위원 hnglim8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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