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 문화 투쟁 ① [사람들] 이스라엘의 지배가 곧 팔레스타인 민족의 눈물이라 호소하는 벽화. 그림은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의 문화 투쟁에서 큰 역할을 한다. (이길주 시민기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10월은 잔인한 달로 자리매김했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약 1천200명이 숨지고 251명이 인질로 끌려갔다. 이튿날인 8일, 이스라엘은 1973년 욤키푸르 전쟁 이후 처음으로 공식 전시 상태를 선포하고, 사상 최대 규모인 30만 명의 예비군을 소집했다.
하마스의 영향력과 통치를 완전히 뿌리 뽑겠다며 시작된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으로 팔레스타인 사람 7만4천여 명이 숨졌다(가자지구 보건부 집계). 무너진 건물 잔해에 묻히거나 실종된 주민까지 더하면 실제 희생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측 사망자는 10월 7일 하마스 공격 당시 희생자를 포함해 2천300여 명이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군인과 경찰 등 보안 인력이다. 팔레스타인의 인명 피해는 이스라엘의 적어도 30배에 이른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2025년 10월 휴전에 합의했지만,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은 계속되고 있다. 전체 팔레스타인 사망자 가운데 약 1천500명이 휴전 이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가자지구 건물의 80% 이상이 파괴되거나 손상됐으며, 주택은 4분의 3 이상이 같은 처지다. 전체 가구의 약 3분의 2가 텐트나 임시 거처에서 지낸다. 국제 구호기구들에 따르면 가자 인구의 약 3분의 2가 심각한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병원 36곳 가운데 부분적으로나마 운영되는 곳은 19곳뿐이고, 온전히 제 기능을 하는 곳은 전혀 없다.
고통받는 가자 주민을 돕기 위한 모금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 생명력과 풍요를 상징하는 석류 한가운데에 팔레스타인 지도가 그려져 있어, 지금의 참상과 대비되며 더욱 특은하게 느껴진다. (이길주 시민기자)
유엔 조사위원회와 국제 인권단체들이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을 제노사이드(집단학살) 로 규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압도적인 군사력과 비대칭적인 파괴가 막대한 민간인 피해를 낳았다. 적을 잡겠다며 적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대거 희생시킨 모양새다. 가자 주민들은 앞으로도 전시에 버금가는, 극도로 제한된 삶을 이어가야 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과 이에 대한 보복으로 단행된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이 3년, 2025년 10월 휴전이 1년을 맞은 지금, 필자는 리틀 팔레스타인(Little Palestine) 으로 불리는 뉴욕시 브루클린의 베이리지(Bay Ridge)를 찾았다. 이 지역 주민의 약 10%가 아랍계다. 팔레스타인계는 공식 통계상 전체 주민의 0.6~1%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자 사태, 나아가 팔레스타인 민족 문제를 바라보는 팔레스타인계 주민들의 감정을 압축하는 단어는 비대칭 이다.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군사력과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는 성서 속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구도를 뒤집어 놓았다. 한때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인 다윗 으로 비유되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골리앗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반면 거인을 상대해야 하는 소년 다윗의 자리에 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골리앗 이스라엘을 향한 분노와 좌절을 비대칭의 방식으로 표출하고 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물맷돌, 그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문화다. 팔레스타인 공동체는 지금 문화 투쟁을 벌이고 있다.
문화 투쟁은 일상의 투쟁이어야 한다. 삶의 자리가 곧 전장이다. 리틀 팔레스타인 의 이슬람 사원과 센터, 식당, 커피숍, 옷가게, 이발소, 식품점 등 모든 곳에서 팔레스타인의 아픔과 희망을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외침은 종교 의식과 국기, 벽보와 구호, 그림과 음식으로 표현된다.
길가의 상점을 개조한 리틀 팔레스타인 의 한 이슬람 사원. (이길주 시민기자)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는 물론, 아랍계 지역 사회의 중심에는 이슬람 사원과 커뮤니티 센터가 있다. 이 둘은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다. 리틀 팔레스타인 의 이슬람 사원은 대부분 길가의 상업 공간을 개조해 만들었다. 대형 예배당을 짓기 위한 건축 헌금 같은 것은 이곳에서는 필요 없어 보였다.
또 이슬람에는 한국 종교계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내 교회 나 개교회 같은 전통이 없다. 특정 사원에 출석 하거나 등록 된 신자라는 개념도 약하다. 무슬림들은 어느 사원이든 찾아가 하루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를 올리고, 그 밖의 종교 의식에도 함께한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혼자 기도해도 되지만, 함께 드리는 기도를 더 귀하게 여기는 전통에 따라 많은 무슬림이 사원을 찾는다. 이들은 함께 기도하며 신앙 공동체의 유대를 확인한다. 내 모스크 라는 개념이 약한 것은 오히려 이슬람 공동체가 일체감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 이슬람 사원은 신도를 두고 경쟁하는 곳이 아니다.
하루 다섯 번 드리는 기도는 금요일 정오의 합동 예배를 제외하면 대개 10분을 넘지 않는다. 설교 없이 메카를 향해 엎드려 절하는 짧은 기도가 끝나면, 신도들이 밖으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대화 속에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중동 문제가 빠지지 않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팔레스타인 상황을 묻는 필자의 질문에, 기도를 마친 한 팔레스타인계 이민자는 이스라엘 정부를 강하게 규탄하면서 동시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를 강도들의 소굴 이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그는 하마스 같은 강경 세력이 힘을 키운 원인도 무능한 자치정부에서 찾았다.
리틀 팔레스타인 의 한 이슬람 사원 내부. 신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이슬람 전통에 따라 사원 안에는 성상이나 그림이 없고 소박하다. (이길주 시민기자)
사원에서 행하는 하루 다섯번의 기도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세대가 한자리에 모인다. 어른예배 와 어린이 예배 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여성과 남성은 따로 떨어져 종교 예식을 행한다. 또 연령에 따라 기도할 때 각각 위치가 다르다.) 이슬람 신앙은 이런 전통을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팔레스타인 무슬림의 경우 신앙과 민족주의가 하나가 되어 세대가 역사의 아픔과 희망을 간직함을 볼 수 있었다.
이슬람 사원의 카펫은 기도할 때 한 줄로 서기 편하도록 줄무늬가 주를 이루어, 마치 한 장으로 이어진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일체감과 평등을 상징한다.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적 지위에 따라 정해진 상석은 없다. 밝은 무늬는 신앙적 희망을 느끼게 한다.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온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의 젊은이들이 힙합식 손동작으로 포즈를 취했다. (이길주 시민기자)
리틀 팔레스타인 에서 만난 이슬람 포교 활동가. (이길주 시민기자)
이슬람 신앙과 민족주의가 맞물린 현실에서, 종교적 무관심과 신앙의 후퇴는 팔레스타인, 나아가 아랍 민족주의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리틀 팔레스타인 의 거리에서 만난 포교 활동가가 젊은 아랍계를 불러 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또한 그는 비아랍 사회에 퍼진 이슬람은 폭력적 이라는 편견에도 대화로 맞선다.
이 포교 활동가는 젊은 디아스포라 세대와 비아랍계에 더 쉽게 다가가기 위해 무슬림의 전통 기도 모자인 타키야(Taqiyah) 대신 야구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는 당신에게는 이슬람을 알 권리가 있다 는 구호를 내걸고 이슬람 경전 코란 을 무료로 나눠 주고 있었다. 어린이들을 위한 사탕도 준비해 두었다.
리틀 팔레스타인 의 문화 투쟁에도 과제는 있다. 젊은 세대에게는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추억도,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뒤이은 전쟁으로 약 70만 명이 고향에서 쫓겨난 나크바(Nakba·대재앙) 에 대한 기억도 없다. 이들에게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아픔과 희망을 어떻게 간직하게 할 것인가, 그것이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마주한 도전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문제의 해답은 이스라엘이 내놓고 있다. 가자지구에서 드러난 이스라엘의 가공할 군사 행동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한 고압적인 태도가, 젊은 세대로 하여금 팔레스타인을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게 만든다. 그 어떤 교육 프로그램도 이 아이러니만큼 디아스포라의 청년들에게 민족의 비극을 깊이 새겨 주지는 못할 것이다.
리틀 팔레스타인 에 자리한 뉴욕 아랍계미국인협회 건물. 유리창에 팔레스타인 국기 색으로 채운 지도가 그려져 있다. (이길주 시민기자))
이슬람 사원이 종교 문화를 이어 가는 곳이라면, 커뮤니티 센터는 공동체의 내적 힘을 다지는 곳이다. 영어 교육, 법률 상담, 정치 참여, 문화 행사를 알리는 전단이 입구를 가득 메운 모습은, 공동체가 굳건히 서야 외부의 편견과 차별을 견딜 수 있다는 생각을 보여 준다.
리틀 팔레스타인 에 자리한 뉴욕 아랍계미국인협회 건물 유리창에 그려진, 국기 색으로 채운 팔레스타인 지도는 팔레스타인의 회복을 바라는 아랍계 공동체의 마음을 대변한다. 이 협회는 세계무역센터 테러가 일어난 2001년에 문을 열었다. 협회 측은 이 사건으로 거세진 반이슬람 정서에 맞서기 위해 설립됐다고 설명한다.
미국 내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에는 칼 마르크스가 종교를 두고 말한 인민의 아편 과 같은 것이 있다. 때로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아메리칸 드림 이다. 중동의 팔레스타인과 미국에서의 삶의 질은 크게 다르다. 미국에서 누리는 비교적 안정된 삶을 꿈의 성취로 여기다 보면, 뉴욕에서 약 5천700마일 떨어진 고향 팔레스타인을 잊고 민족의 고통에 무감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공동체 안에 있다. 아편 이라는 비유는 그래서 나온다
리틀 팔레스타인 에서 필자와 이야기를 나눈 한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은 이스라엘을 자주 오간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혹시 모를 보복을 우려해 이름을 밝히는 것도, 사진을 찍는 것도 사양했다. 그는 가자지구를 비롯해 이스라엘의 영향 아래 놓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스라엘은 삶의 기본인 주거, 교육, 의료 시설을 파괴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부정하고 있다.
그는 가자의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난민 텐트촌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매일, 매 순간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압도적인 힘이 있다는 사실을 내면화한다. 교육 수준이 떨어지니 지도자를 길러 낼 수 없고, 의료 체계가 무너져 목숨조차 지키기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서안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있고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다스려 왔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현실은 미국의 젊은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뉴욕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팔레스타인계 2세들에게 중동 팔레스타인의 현실은 추상적이고, 이들이 사원이나 가정에서 접하는 민족주의 메시지는 의식 속에서 울리는 불편한 이명(耳鳴) 과도 같을 수 있다고 했다.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고난은 투쟁 의식을 불러일으키기보다 동정의 대상에 머물기 쉽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절망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문화적 유산이 살아 있기 때문에 문화 투쟁이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팔레스타인의 상징과도 같은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 을 배경으로 자신의 문신을 자랑스레 내보이는 제이 모하메드 (Jay Mohamed)씨. (이길주 시민기자)
팔레스타인이 잊히고 저항 정신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속에서, 그런 흐름에 말 그대로 몸으로 맞서는 젊은이들을 만났다. 제이 모하메드 씨는 미국에서 태어난 디아스포라 2로 랩 음악에 푹 빠져 있는 청년이다. 사진을 찍게 해 줬으니 한국계 여자 친구를 소개해 달라고 너스레를 떨 만큼 장난기도 많다. 하지만 그는 이내 농담을 거두고 왼쪽 팔뚝의 문신을 보여 주었다. 국기 앞에 선 초라한 팔레스타인 소년의 뒷모습이다. 돈주머니는 텅 비었고, 찢어진 옷은 기워져 있다.
이 만화 캐릭터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상징인 한달라(Handala) 다. 이 소년은 맨발에 누더기를 입고 뒷짐을 진 채 등을 돌리고 서있다. 고향으로 돌아갈 때까지 자라지도, 얼굴을 보이지도 않겠다는 뜻을 담고 있는 모습으로 팔레스타인 저항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희망이 있다. 팔레스타인이 해방되면 오른쪽 팔뚝에도 문신을 새길 계획인데, 그때는 한달라가 등을 돌리지 않고 당당하게 앞을 바라보게 하겠다며 인샤알라(신의 뜻이라면) 라고 했다. 필자는 그에게 앗살람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 이라고 화답했다. 와 알라이쿠뭇 살람(당신에게도 평화가 있기를) 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 인상과 달리 그는 민족의식이 투철했다.
옷의 앞가슴도 문화 투쟁의 현장이 된다.(이길주 시민기자)
문화 투쟁의 현장에는 티셔츠나 스웨트셔츠도 등장한다. 옷에 새겨진 자유 팔레스타인(Palestina Libre) 같은 구호 때문에 충돌이 빚어지는 일도 적지 않다. 자칫 반유대주의자로 몰리기도 쉽다. 용기 있어 보인다 는 필자의 말에 다르단(Dardan) 씨는 옷 한 벌 입은 걸 두고 용기를 냈다는 말을 들으면 불쾌할 법도 한데, 전혀 불쾌하지 않은 현실이 안타깝다 고 했다. 그는 히스패닉 이민자가 많은 뉴욕의 특성을 고려해, 팔레스타인 해방의 메시지가 더 널리 퍼지도록 스페인어 구호가 적힌 스웨트셔츠를 골랐다고 했다. 문화 투쟁에서는 옷도 무기가 된다.
지하에 자리한 한 사원 앞에 선, 쿠피야 무늬의 정장을 차려입은 디아스포라 젊은이. 가능한 한 얼굴이 나오지 않게 해 달라는 부탁에서 팔레스타인의 비애를 느낀다. (이길주 시민기자)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아픔을 기억하고 희망의 불씨를 지켜 가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팔레스타인과 아랍권을 넘어 서방에서도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쿠피야(Keffiyeh) 스카프의 흑백 그물 무늬다. 사원 앞에서 만난 젊은이는 아직 끝나지 않은 가자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보여 준 행태에 항의하는 뜻으로 쿠피야 무늬 옷을 차려입었다고 말했다.
벽면을 쿠피야 무늬로 꾸민 리틀 팔레스타인 의 한 식당. (이길주 시민기자)
리틀 팔레스타인 에서는 팔레스타인 지도, 바위의 돔, 쿠피야, 올리브 나무를 주제로 한 벽화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쿠피야 무늬를 마주하는 순간, 팔레스타인의 아픔은 눈앞의 형상이 된다. 벽화의 붉은 테두리는 흔히 이스라엘에 맞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희생과 투쟁을 뜻하는 것으로 읽힌다.
리틀 팔레스타인 의 한 이발소 입구. 반이스라엘 메시지가 입구에서부터 눈에 들어온다. (이길주 시민기자)
팔레스타인 민족주의가 물씬 풍기는 리틀 팔레스타인 의 한 이발소 내부. (이길주 시민기자)
리틀 팔레스타인 에서는 머리를 깎거나 면도를 하는 동안에도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잊기가 쉽지 않다. 한 이발소에서는 들어서는 순간부터 반이스라엘 메시지와 마주한다. 이스라엘 지원을 멈춰라, 집단학살 지원을 멈춰라(Stop Funding Israel, Stop Funding Genocide). 이 구호를 접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팔레스타인 국기와 예멘 국기 아래에서 머리를 맡기게 된다. 예멘 국기는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뜻한다.
뉴욕타임스의 지면 디자인을 그대로 본뜬 ‘The New York War Times’. 팔레스타인의 시각에서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을 규탄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이길주 시민기자)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의 문화 투쟁 방식 가운데에는 뉴욕타임스를 패러디한 The New York War Times 도 있다. 실제 뉴욕타임스의 지면 디자인과 똑같아 눈길을 끈다. 비교적 진보적인 논조의 뉴욕타임스마저 이스라엘 편에 서 있다는 비판이 담겨 있다. 동시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전하는 전쟁의 현실도 뉴욕타임스 기사만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 읽힌다. 물론 기사들은 이스라엘에 맞선 팔레스타인의 투쟁을 소개하고 지지하는 내용이다. 1면을 장식한 하나의 투쟁, 모든 전선에서(ONE STRUGGLE ON ALL FRONTS) 라는 제목 속 전선 에는 문화 투쟁도 들어 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의 문화 투쟁은 이렇듯 일상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굳이 가장 큰 전장을 꼽으라면 카페와 식당을 들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밥 먹다 체할 만큼, 역사의 메시지가 무겁게 손님을 맞는다. (계속)이길주 뉴욕통신원 kiljy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