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경의 ESG 딥다이브】지속가능성 공시 로드맵, 제도화보다 중요한 것은 작동 가능한 생태계 [칼럼] 정부가 지난 7월 8일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 최종안을 발표했다. 2028년 연결자산총액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시작으로 2029년에는 5조원 이상 기업까지 확대하고, 운영 결과를 평가해 2030년에는 2조원 이상 기업으로 넓히는 방안을 검토한다. 지난 2월 초안과 비교하면 최초 적용 기준이 30조원에서 10조원으로 낮아져 대상이 크게 확대됐고, 거래소 공시 단계를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자본시장법상 사업보고서에 포함하는 법정공시로 도입된다.
이번 발표로 의무화되는 것은 지속가능성 전반의 공시가 아닌 기후 관련 공시다. 기업은 기후위험과 기회가 기업의 전망과 재무에 미치는 영향을 투자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거버넌스와 전략, 위험관리, 재무적 영향, 온실가스 배출량과 기후 관련 지표·목표 등을 공시하게 된다. 일반 환경·산업안전·인권 정보는 초기 의무 범위에 포함되지 않지만, 다른 법률에 따른 기존 보고·공개 의무는 그대로 유지된다.
실제 시행까지는 자본시장법 개정과 인증제도 등 하위 기준 마련도 남아 있지만, 로드맵 확정으로 국내 기후공시의 일정과 방향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 그러나 적용 대상과 시기를 정했다고 준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생산하고, 시장이 이를 실제 의사결정에 활용하며, 오류와 왜곡에는 합리적인 책임을 부과하는 생태계가 함께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고서 작성에서 기업 경영체계의 변화로
지금까지 지속가능성 정보는 ESG 부서가 유관 부서의 자료를 취합하고 외부 전문기관의 지원을 받아 보고서로 작성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생산·환경·구매 등의 유관 부서도 관련 데이터를 관리하고 있었지만, 주로 보고서를 총괄하는 ESG 부서에 자료를 제공하는 역할에 가까웠다.
기후정보가 사업보고서에 포함되는 법정공시로 전환되면 이러한 업무의 성격과 무게가 달라진다. 연결재무제표 범위에 맞춰 국내외 종속회사와 사업장 정보를 관리해야 하며, 무엇보다 배출량과 기후위험 정보의 산정근거와 증빙, 승인과 변경 이력을 일관되게 남겨야 한다. 유관 부서는 기존보다 높은 수준의 데이터 정확성과 관리 책임을 요구받고, 재무·전략 부서는 기후위험이 매출과 비용, 자산가치, 투자계획에 미칠 영향을 실질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경영진과 이사회의 역할도 보다 실질적인 책임으로 강화된다. 기후위험을 보고받거나 탄소중립 목표를 승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환계획이 사업전략과 자본배분에 반영되고 있는지, 공시한 목표를 뒷받침할 투자와 재원이 마련돼 있는지를 감독해야 한다. 법정공시 의무화가 가져올 가장 큰 변화는 기후정보가 경영 판단과 내부통제의 대상이 되고, 그 판단에 대한 책임이 조직 전반과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확장된다는 데 있다.
공시를 뒷받침할 데이터와 방법론 인프라
기업에 신뢰할 수 있는 기후정보를 요구하려면 이를 산출할 공통 데이터와 분석 기반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물리적·전환 기후위험의 재무적 영향은 온실가스 배출량만으로 측정하기 어렵다. 산업별 생산구조와 사업 특성, 기후위험에 노출된 자산과 공급망의 특성 등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 배출량이 비슷하거나 동일한 재해에 노출되더라도 자산구성과 사업구조에 따라 기업이 받는 영향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8년까지 기업의 기후위험 분석을 지원하는 한국형 기후리스크 통합플랫폼을 공개하고, 주요 업종의 스코프3 산정 가이드라인과 전과정목록 데이터도 구축할 계획이다. 필자는 이와 관련해 기후시나리오별 물리적·전환 위험을 산업과 기업의 재무정보에 연결하는 ‘기후변화 통합리스크 평가 기술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이 사업은 국내 산업과 사업장의 특성을 반영한 데이터와 분석모형을 구축해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기후위험 측정·평가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만 기후·기술 데이터와 분석모형만으로는 업종과 기업별 위험의 전달경로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분석의 현실성과 적정성을 높이려면 산업계의 참여와 기업 현장에 기반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민감한 원가정보나 영업비밀을 요구하기보다, 공개 가능한 범위에서 위험에 노출된 자산과 사업의 특성, 주요 위험요인과 데이터의 가용성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업종별 협의체와 실증기업을 통한 이러한 검토는 공시 대응을 넘어 취약 자산과 공급망을 식별하고 투자 우선순위를 정하는 등 기업과 금융기관의 실질적인 기후위험 관리에도 활용될 수 있다.
완벽한 숫자보다 합리적이고 책임 있는 공시
기후정보는 미래 시나리오와 추정에 크게 의존한다. 스코프3 역시 협력사 정보와 산업 평균을 활용할 수밖에 없으며, 성실하게 산출한 수치도 데이터와 방법론이 발전하면 달라질 수 있다. 제도 초기부터 완벽한 측정을 요구하면 기업이 불확실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거나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 형식적 수치 생산에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
최근 유럽이 지속가능성 보고기준 개정 과정에서 합리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추정치와 프록시 데이터의 사용을 인정하고, 정량화가 어려운 재무영향에는 정성적 설명을 허용한 것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조정이다. 국내 기준 역시 숫자의 외형적 정밀성보다 산정 근거와 가정, 한계가 얼마나 투명하게 설명되는지를 중시하고, 업종별 사례와 지침을 지속적으로 축적할 필요가 있다.
추정과 불확실성이 불가피한 만큼 그린워싱에 대한 책임 기준도 명확해야 한다. 최종 로드맵은 도입 초기 3년간 공시정보에 대한 책임을 폭넓게 면제하되 고의적인 그린워싱에는 책임을 묻고, 이후에는 미래예측·추정정보와 기업이 통제하기 어려운 제3자 정보에 세이프하버를 적용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나 무엇이 고의적인 그린워싱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고의적인 허위와 중요한 정보의 누락에는 엄격한 책임이 필요하다. 다만 기준이 불명확하면 기업이 과도한 자문과 검증에 의존하거나, 최소한의 정보만을 제공하는 방어적 공시에 머물러 오히려 투자자에게 필요한 정보가 줄어들 수 있다. 판단의 중심은 목표 달성 여부가 아니라 공시 당시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는지, 주요 가정과 불확실성을 설명했는지, 중요한 부정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겼는지에 두어야 한다. 규제기관은 추상적인 경고보다 허용되는 공시와 보완이 필요한 공시, 명백한 왜곡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 성실한 기업이 예측 가능한 기준 아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시의 가치는 시장에서 사용될 때 완성된다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생산된 정보도 시장에서 사용되지 않는다면 기후공시는 새로운 규제 준수 비용에 머물 수 있다. 은행이 기후위험을 여신심사와 위험관리에 반영하는 것은 물론, 국민연금 등 연기금과 자산운용사도 기업의 기후위험과 전환계획을 투자 분석과 자산배분에 보다 실질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금융기관이 기후정보를 실제로 얼마나 활용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공시도 함께 정비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ESG를 고려한다는 원칙이나 관련 상품 수를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체 운용·금융자산 가운데 기후위험 대응과 저탄소 전환을 고려한 투자·금융의 범위와 비중, 적용 기준과 주요 변화를 보다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기관마다 분류기준이 다르면 비교 가능성이 떨어지는 만큼 기후·전환금융의 인정 범위와 산정기준도 함께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기후정보가 투자와 여신에 반영되고, 금융기관이 그 활용 수준을 다시 시장에 설명하는 구조가 형성될 때 공시는 자본배분과 기업의 의사결정을 변화시키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기후공시는 새로운 보고 의무를 더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더 나은 경영 판단과 금융시장의 자본배분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 그것이 2028년 제도 시행을 앞두고 함께 준비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이선경 상무는
켐토피아 ESG전략실 이선경 상무는 신한증권과 대신증권에서 채권 크레딧 애널리스트와 주식 애널리스트를 거쳐 CJ경영연구원과 CJENM, CJ제일제당 등에서 전략기획, 재무전략/IR 팀장, 대신경제연구소에서 ESG센터장을 역임했다. 2024년 설립한 ESG공시 및 공급망 컨설팅 기관인 그린에토스랩이 켐토피아에 흡수되어 ESG-EHS를 연계한 플랫폼 개발 및 ESG정책 및 규제 대응 컨설팅을 담당하고 있다. 이선경 상무는 국민연금과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대형금융기관의 ESG모델 및 ESG적용 프로세스 구축, ESG 평가 등을 장기간 수행했고, 정부 기관의 공급망 ESG플랫폼 구축, 환경DB분석 및 산업별 환경성 평가체계 수립하는 등 국내외 ESG 정책 규제 연구 및 ESG 체계 구축 실무 경험을 보유한 ESG 전문가이다. 다수의 정부 기관 및 에너지 유관기관에서 ESG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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