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이 둥글다고 협회까지 둥글어져서야 되겠는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책임이 희미해질수록 신뢰는 사라지고, 신뢰를 잃은 축구는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모든 스포츠는 공정함을 전제로 한다. 승패는 오직 실력으로 결정되어야 하고, 심판은 철저한 중립을 지켜야 하며, 선수와 코칭스태프는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 선임되어야 한다. 그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스포츠는 경쟁이 아닌 쇼 가 된다.
대한축구협회를 둘러싼 논란이 연일 뜨겁다. 월드컵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의 투명성 문제와 협회 운영의 공정성 논란에 이어, 이제는 심판 성접대라는 거론하기조차 민망한 사안까지 불거지며 한국 축구 행정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지난 2011~2012년 국제심판과 경기감독관에 대한 부적절한 접대, 법인카드 사용 문제, 임직원의 예산 부정 집행 등이 드러나며 일부 사안은 수사와 징계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 것은 협회의 내부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논란이 과거에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도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번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공정성 논란 역시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
아무리 좋은 규정도 지키려는 의지가 없으면 종이 한 장일 뿐이다. 법인카드 사용 규정, 감독 선임 절차, 감사기구 모두 존재했다. 그럼에도 논란이 반복된 것은 규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규정을 무력화하는 축구협회의 문화 때문이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지금의 축구협회 위기는 하루아침에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오랜 기간 쌓여온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와 견제받지 않는 조직 문화가 거듭된 사건들을 통해 마침내 표면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제라도 대한축구협회가 거듭나기 위해 바꿔야 할 것은 사람 이 아니라 시스템 이다.
감독 선임은 특정인의 판단이 아닌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위원회가 주도하고, 모든 심의 과정은 가능한 범위에서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법인카드와 예산 집행은 실시간 공개와 외부 회계감사를 확대하고, 감사기구는 집행부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사회 역시 회장을 추인하는 기구가 아니라 집행부를 감시하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조직은 침묵이 아니라 문제 제기를 통해 건강해지는 법이므로 내부고발자 보호 장치도 강화되어야 한다.
세계 축구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데이터와 과학, 투명한 거버넌스,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월드컵 4강 무대를 밟았던 한국 축구가 실력도, 행정도 너무도 초라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공이 둥글다고 책임마저 둥글어져서야 되겠는가. 책임이 희미해질수록 신뢰는 사라지고, 신뢰를 잃은 축구는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이번 축구협회에 내려진 국민의 질책이 단순한 비판으로 끝나지 않고, 한국 축구를 바로 세우는 값진 약이 되기를 바란다.홍순구 시민기자 dran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