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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청춘, 강남 한복판 사찰에서 숨을 돌리는 이유[사람들]
MBC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여름방학 과제로 제출한 르포기사를 이봉수 교수(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원장)의 첨삭을 거쳐 에 연재한다. 학생들은 방학 기간에 두셋씩 짝을 지어 친구의 고향 도시를 방문해 익숙하거나 낯선 시선으로 사람들 삶을 들여다보는가 하면 다리가 놓인 뒤 섬마을 생활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관찰한다. 모교 주변 젠트리피케이션의 명암을 살펴보는가 하면 분당·일산 신도시 상가의 영고성쇠를 비교한다. 서울마음편의점에서 고립된 이웃에 시선을 돌리는가 하면 스스로 도심의 사찰에 머물며 청춘의 불안을 다스리기도 한다. (편집자)
서울 강남 시끄러운 도심 한가운데 사람들이 잠시 숨을 고르는 곳, 봉은사다. 지난 8월 12일 코엑스를 등지고 퇴근길로 붐비는 도로를 건너 봉은사 앞에 도착했다. 사찰로 들어서자 등 뒤 도시와는 다른 공기가 느껴진다. 바로 눈에 띈 것은 경내를 메운 연꽃 화분의 행렬이다. 그 꽃길 끝에는 모래색 불상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봉은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연꽃 화분 행렬이 이어진다. © 장민하
이곳에선 ‘가족과 함께하는 봉은사 연꽃축제’가 한창이었다. 화분에는 연꽃 공양에 동참한 이들의 이름과 소망이 적혀 있다. 가족의 건강, 시험 합격, 사업 번창 같은 소원이 빼곡하다. 머리 위로는 백중을 맞아 고인의 극락왕생을 비는 하얀 영가등이 줄지어 걸려 있다.
봉은사를 가득 메운 영가등과 연꽃 화분. © 장현수
행운을 사는 사람들
법당 못지않게 붐비는 곳은 바로 불교용품점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20대로 보이는 청년들과 외국인들이 가득하다. 청년들은 스마트폰으로 염주가 지닌 의미를 하나하나 검색하며 신중하게 물건을 고르고 있다. 재물운을 부른다는 황금색 염주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는가 하면, 마음의 평안을 준다는 자수정 팔찌를 손목에 대보며 이것저것 비교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청년들 사이에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여럿 섞여 있다. 한 외국인은 지인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염주와 장신구를 하나씩 비춰 보이면서 무엇이 좋을지 묻는다. 이처럼 국적과 세대는 다르지만 저마다 방식으로 불안을 달래고 행운을 기원하려는 마음이 느껴진다.
봉은사 방문객들이 불교용품점에서 염주와 팔찌 등을 구경하고 있다. © 장민하
현대인의 쉼, 템플스테이
봉은사는 신라 시대에 창건된 천년 고찰이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영사찰로서 종단 차원의 포교와 지역 거점 구실을 한다. 수많은 빌딩과 상업시설이 둘러싼 지리적 특성상, 일상의 번잡함을 피하려는 도심 생활자들의 발길이 늘 이어지는 곳이다.
템플스테이 체험이 진행되는 봉은사 수월관. © 장현수
취재진 모두 ‘당일형 템플스테이’는 처음이라, 무작정 안내받은 장소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현장에는 취재진을 포함해 9명이 앉아 있었다. 40~50대로 보이는 남녀부터 20대 초중반 여성들, 그리고 갓 퇴근한 듯 사무실 복장을 한 여성까지 연령과 복장은 제각각이다. 겉모습만 보면 접점을 찾기 어려운 조합이지만 저마다 이유로 사찰을 찾았다는 공통점으로 한 공간에 모인 것이다.
젊은 사람이 여기는 어떻게 왔어요?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희영(가명·50대·여) 씨가 말을 걸었다.
저는 그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요.
취재진 중 한 명이 멋쩍게 웃으며 답하자 이씨가 말을 잇는다.
원래 절을 좋아해서 여기저기 다니는데, 2023년쯤부터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더라고요. 난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절에 오는 걸 보면 참 신기하고도 예뻐요. 어린 나이에 벌써 삶의 철학을 찾아온 것 같잖아.
봉은사 수월관 내 선명상 안내 장소 © 장현수
소소한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템플스테이 담당자는 유인물을 나눠주며 선명상 수업을 시작했다. 그는 선명상의 다양한 자세와 방법을 설명하며, 명상이 특정한 형태에 갇혀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밥을 먹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도 명상이 가능하다고 했다. 또한 명상의 끝에는 결국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되며, 이 과정을 통해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찰을 찾는 2030과 우울의 관계
명상 안내가 끝난 뒤 이곳에 왜 왔는가 를 묻는 질문이 순서대로 돌아갔다. 참가자들 답은 구체적이었다. 불안해서 ,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싶어서 , 업무와 일상의 스트레스 때문에 라는 답변이 주를 이뤘다. 참가자 중에는 종교가 기독교라고 밝힌 이도 있었다. 템플스테이 담당자는 기존 참가자 중에는 천주교 신부도 있었다 며 춘천이나 안산 등 멀리서 정기적으로 봉은사를 찾아오는 청년도 많다 고 말했다.
신앙 유무와 관계없이 2030세대가 사찰을 찾는 현상은 객관적 지표로도 나타난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통계에 따르면 템플스테이 참가자 중 2030세대 비중은 2019년 32.1%에서 2023년 40.7%로 급증하며, 50대를 제치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대론 올라섰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청년층의 정신건강 악화라는 사회적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진료 통계에 따르면, 전체 우울증 환자 중 2030세대의 비중은 몇 년 새 30%를 크게 넘어서며 연령대별 증가율 상위권을 기록했다. 타지 생활의 외로움이나 취업난, 경쟁 압박 속에서 우울감과 불안장애를 호소하는 청년들이 급증한 결과다.
이날 처음 만난 참가자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고민과 심리적 부담을 차례로 이야기했다. 이어 ‘나를 들여다보라’는 질문에 따라 자신의 감정과 고민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돌아보고, 이를 다른 참가자들 앞에서 설명했다.
오히려 모르는 분들 앞이어서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직장 내 스트레스를 고백한 김민지(가명·30대) 씨가 수줍게 덧붙였다.
명상 체험 안내가 끝나고 사람들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문을 나섰다. 20대 초반 참가자 이유연(가명·23·여) 씨와 박연수(가명·23·여) 씨는 거제 출신으로, 서울에서 대학에 다닌다.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 고향과 달리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서울 생활에 지쳐 이곳 봉은사를 찾았다고 한다. 명상을 하면 진로 고민과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떨쳐낼 수 있을 것 같아 템플스테이를 알아봤고, 마침 당일형 체험이 있어 신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최근 20대 사이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던 2026 서울국제불교박람회 도 다녀왔다고 한다.
이처럼 젊은 세대에게 불교는 지친 마음을 돌보고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 자체가 위안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불교에서 지친 일상 속 자신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작은 쉼을 찾는다.
쉼표를 찍고, 다시 일상으로
해가 지고 봉은사에는 여름밤이 내려앉는다. 낮 동안 뜨겁게 달궈진 열기가 한풀 꺾이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종에서는 맑은 소리가 흘러나오고, 대웅전에는 늦은 시간까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저마다 바라는 것은 다르겠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모습만은 닮았다. 명상 체험에서 배운 호흡과 참선을 떠올리며 사찰을 나서는 길. 도심의 불빛은 여전히 환하게 빛나고 있다. 도심 속 기원과 안식의 공간에서 힘을 얻어 다시 치열한 삶의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
봉은사에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사람들이 연등길을 지나 도심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장현수
장민하·장현수·이단비 기자 hibongs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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