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상민·오세훈·윤희근…이태원 참사 책임 물어야 [뉴스] 10.29 이태원 참사 4주기가 다가오는 지금, 우리를 가장 분노하고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은 참사 핵심 책임자들에게서 어떤 의미 있는 사과도 받지 못했고, 누구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4년 전에 참사가 일어났을 때, 처음에 유가족들은 윤석열 정권의 차단과 방해 속에서 모이기조차 어려웠다.
그 모든 엄청난 압력과 방해를 뚫고 유가족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연락을 취할 때까지 한 달이 걸렸다. 그렇게 가까스로 모여서 기자회견을 연 유가족들은 국가가 158명의 죽음을 그냥 지켜보면서 생매장한 간접 살인 , 부작위에 의한 살인 이라고 이 참사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 유가족들에게 참사의 원인과 책임은 이처럼 4년 전부터 이미 분명했다.
실제로 참사 현장에 국가는 없었다 . 그것은 먼저, 윤석열 정권에게 국민의 생명과 안전 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꾸로 윤석열은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고 말하고 있었다. 윤석열의 대통령실 이전 결정은 참사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됐다. 그러면서 경찰력이 윤석열 사저와 대통령실 경호, 출퇴근길 경호 등에 집중 배치됐다.
이태원 참사 핵심 책임자 4인 - 윤석열, 이상민, 오세훈, 윤희근
참사 당일에도 윤석열 사저에는 기동대 2개 부대가 배치돼 있었다. 윤석열에 반대하는 집회와 시위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경찰 6000여 명이 배치돼 있었다. 하지만 이태원에 배치된 경찰력은 고작 137명에 불과했다. 경찰도 당시에 13만여 명이 몰린 할로윈 행사에 경찰 기동대 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윤석열의 눈치를 보며 하지 않았다.
더구나 당시에 윤석열 정권의 주요 관심은 온통 마약과의 전쟁 에 가 있었다. 따라서 그날 밤 이태원에서도 국가의 관심은 오로지 마약 단속과 실적에 있었다. 참사 당일에 이태원에 배치된 소수의 경찰력 중에서도 절반은 마약 단속 사복경찰이었다. 참사 이후에도 희생자 시신에 대한 마약 부검까지 했다.
결국, 윤석열 정권의 이러한 미필적 고의와 방조 속에서 그날 밤 이태원에서는 가로세로 1미터의 공간에 무려 15~16명이 짓눌리는 엄청난 군중 밀집이 벌어졌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조차 사그라들었고, 어느 순간에 158명의 생명은 영원히 꺼져버렸다. 우리 모두는 그날 밤의 그 끔찍한 광경과 공포를 죽는 순간까지 평생 절대 잊을 수가 없게 됐다.
그날 밤 죽어간 사람들의 등을 떠밀고 심장을 옥죄었던 범인들은 이태원 골목에 있지 않았다. 범인은 용산 대통령실, 경찰청, 서울시장실, 장관실에 있었다. 이태원 참사의 핵심 살인공범 4인을 꼽는다면 대통령이었던 윤석열, 행안부 장관이었던 이상민, 경찰청장이었던 윤희근, 그때도 지금도 서울시장인 오세훈이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넓힌다면 당시 국무총리였던 한덕수, 서울경찰청장이던 김광호, 당시 용산구청장이던 박희영 등을 추가할 수 있다. 4년 전 참사 직후에 이들 모두가 모든 힘을 모아서 집중했던 것은 참사의 진실을 덮고 정권에게 향할 비판과 책임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즉, 유가족들이 모이면서 시민들과 연대해 저항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 그들의 최우선 과제였다.
당시 조선일보가 SNS에 올린 포스팅
그래서 윤석열 정권은 참사 바로 다음 날 뜬금없이 희생자에게 위로금 2000만 원, 유가족에게 장례비 최대 1500만 원을 지급하겠다 고 발표했다. 이것은 이태원 유가족들이 돈을 요구하고 있다 는 유언비어들이 퍼지도록 부추겼고, 곧바로 ‘혈세지원 반대’ 국민동의 청원 글이 올라와 일주일 만에 5만 명이 서명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예년보다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더 많은 인원이 몰린 것은 아니고, 미리 경찰을 더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라고 말하며 확실한 선을 그었고 책임을 떠넘겼다. 정부 책임자와 전문가 들은 언론과 방송에 나와서 주최 측이 없는 자율적 행사이기에 누구의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 라면서 거들고 나섰다.
즉, 할로윈 축제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에게,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들에게 책임 이 있다는 기막힌 이야기였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일주일간의 기만적이고 해괴한 국가애도기간 을 선포했다. 동시에 공무원들에게 참사 가 아니라 사고 , 피해자 가 아니라 사망자 라는 용어를 통일해 쓰라는 지침을 내렸다. 영정도, 위패도, 이름도 없는 분향소 도 만들어졌다.
이에 반발해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과 시민언론 민들레 가 희생자들의 이름을 공개하자, 윤석열 정권과 대부분의 언론은 유족 동의 없이 이름을 공개한 것은 2차 가해이며 패륜 이라고 그것을 맹비난했다. 그러자 친윤석열 극우 시민단체들이 시민언론 민들레 를 경찰에 고발했고, 나중에 경찰은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하지만 유족 동의 없이 희생자들의 시신을 전국 40여 개 병원에 뿔뿔이 흩어버린 것도, 유족 동의 없이 국가애도기간을 결정하고 선포했던 것도, 유족 동의 없이 영정과 위패도 없는 분향소를 만든 것도, 유가족들이 서로 연락하지도 모이지도 못하게 만든 것도 바로 윤석열 정권이었다. 이런 방해와 탄압을 뚫고 한 달 만에 유가족들이 모인 것이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한달만에 가까스로 모인 유가족들의 기자회견 장면 - 방송 화면 갈무리
그렇게 모인 유가족들은 분노하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유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가 2차 가해라고 공부를 많이 한 전문가들이 나와서 말하는 기사를 봤다. 그 전에 유족 동의 없이 만들어진 영정과 위패도 없는 분향소가 2차 가해였다. 그것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 분향소를 본 적이 있냐. 나는 없다.
윤석열 정권이 희생자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못하게 막은 것도, 유가족들이 모이지 못하게 막은 것도 목적은 같았다. 단지 숫자가 아니라 이름과 얼굴을 통해서 희생자가 구체화될수록, 유가족이 모여서 희생자를 기억하고 목소리를 낼수록 더 많은 감정이입과 연대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사코 그것을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유가족들이 모이자마자, 윤석열 정권의 탄압과 2차 가해는 더욱 극악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먼저 정부와 여당의 책임자들이 앞장서서 2차 가해 발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전 대표는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의 횡령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고 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비극이 영업이 되는 것은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나 국민의힘 창원시의원은 자식 팔아 한몫 챙기자는 수작 이라고 했다.
이것은 끔찍한 연쇄작용들로 이어졌다. 극우 유튜버들을 중심으로 유가족들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콘텐츠들이 대대적으로 올라왔다. 유가족들이 참사 현장 옆에 분향소를 차린 그 시점부터 바로 옆에서 극우 유튜버들은 생중계를 하면서 2차 가해 집회를 열었다. 그들은 방송차에 확성기를 틀어놓고 유가족들을 따라다니며 욕설, 저주, 막말을 퍼부었다.
이 모든 살인적 2차 가해는 결국 이태원 참사 생존자였던 한 고등학생이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 이태원 참사 49재 시민추모제가 진행되었는데, 그 시간에 윤석열은 마치 유가족들을 조롱하듯이 시장에 가서 농담을 하며 술잔을 사고, 아크로비스타 이웃들에게 떡을 돌리고, 웃으면서 성탄절 트리에 점등을 했다.
극단적이고 악랄한 2차가헤는 결국 한달만에 또 한 명을 죽였다 - 방송 화면 갈무리
오세훈 서울시장도 윤석열과의 잔인함 경쟁에서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 서울시는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이 광화문광장에서 희생자 추모제를 하거나 분향소를 차리지 못하게 온갖 핑계를 대며 막더니 월드컵 거리응원 신청은 곧바로 승인했다. 유가족들은 쓰디쓴 마음으로 눈물을 삼키며 광화문광장을 뒤덮는 응원가와 환호성을 지켜봐야 했다.
유가족들이 시민단체들과 함께 죽을 각오로 투쟁해서 겨우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나서도 오세훈과 서울시의 괴롭힘은 계속됐다. 서울시는 억대의 변상금과 재산 압류까지 협박하며 분향소를 철거하라고 압박했고 몇 번이나 철거 시도를 했다. 그리고 분향소 바로 옆의 광장에서 툭하면 온갖 축제와 공연을 열 수 있도록 승인해서 유가족들의 가슴을 헤집었다.
물론 오세훈의 서울시는 이태원 참사 추모 행사는 서울광장에서 할 수 없도록 계속 방해하고 가로막았다. 이런 괴롭힘과 막대한 변상금을 견디지 못한 유가족들은 1년 4개월 만에 다시 분향소를 이전해야 했다. 조선일보 등 친윤석열 족벌 언론들의 괴롭힘도 만만치 않았다. 의문 제기는 음모론 , 정부 비판은 정략 , 연대 호소는 선동 이라는 딱지를 붙여 프레임을 설정했다.
조선일보는 세월호 때도 9번이나 진상 조사하면서 세금만 낭비하고 쓸데없는 곳에 예산이 쓰였다 는 기획 기사들을 계속 내보냈다. 추모제 때 나왔던 구호가 북한의 지령 이라면서 재난의 정치화 뒤에 북한도 있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국가기관과 권력기구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유가족들을 괴롭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태원 사태 등으로 지표가 나쁘고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졌다 고 말해서 유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 윤석열이 임명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인 이충상은 피해자들이 부주의해서 스스로 너무 많이 모였다가 참사가 난 것 이라는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스스로 축제를 즐기기 위해 인파 몰렸다가 밀려 넘어져 발생한 사고 라는 논리였다.
신자유연대의 극단적 괴롭힘에 시달리던 유가족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서울서부지방법원의 판결문도 냉혹하고 잔인하기만 했다. (유가족의) 행복권이나 인격권이 신자유연대의 집회의 자유보다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 신자유연대 측을 배제하고 [유가족들이] 이 사건 광장을 배타적으로 사용할 권리를 가진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당시 신자유연대는 참사 현장의 분향소 옆에 천막을 차리고 온갖 막말로 가득찬 현수막들을 달았다. - 당시에 필자가 찍은 사진
이처럼 윤석열 정권은 집권 내내 이태원 참사의 진실을 덮었고, 유가족들은 정권과 하수인들의 끝없는 2차 가해와 괴롭힘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들은 시민들과 연대하며 포기하지 않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서 투쟁했다. 민주당이나 진보정당들과 손잡고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 특별법은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들어질 수 있는 바탕이 됐다. 무엇보다도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들은 윤석열 정권의 12.3 쿠데타 시도를 막아내고, 윤석열을 탄핵하고 구속하기 위한 투쟁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12.3 밤에 국회 앞으로 달려갔던 이태원 참사 희생자 최민석 님의 어머니는 나중에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종교인은 자기 목숨을 함부로 할 수 없어 죽지 못해 살고 있었는데, 그날 내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죽는 것은 민석이에게도 떳떳할 것이라고 생각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갔어요. 이태원 참사의 살인공범들이 더 어마어마한 만행을 저지르기 위해 일으킨 쿠데타를 그 참사 희생자의 어머니가 막아나선 게 역사적인 빛의 혁명 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더 나아가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이들과 연대하고 있다. 얼마 전 이스라엘의 가자 집단학살 3년을 규탄하는 집회에서도 이태원 참사 유가족 애진 아빠 신정섭 님은 저는 이제 유가족의 사명을 느낍니다. 그건 바로 내가 받은 고통을 절대로 대물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홀로코스트의 후손들이 인종학살을 자행하는 오늘의 모순을, 유가족의 이름으로 배격합니다 라고 연설했다.
그런데, 고통받는 이들이 치유받는 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사명 은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이태원 참사의 진실을 남김없이 밝혀내고 책임자들을 처벌하는 것은 거기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현재, 가장 핵심적인 공범 4인 중에서 윤석열, 이상민, 오세훈, 윤희근은 아직도 처벌받지 않았다. 물론 윤석열, 이상민은 현재 감옥에 있다.
윤희근 전 경찰청장이 올해 발간한 책의 표지 중에서
하지만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것이 반드시 중요하게 추가되어야 한다. 아직도 뻔뻔스럽게 시장 자리에 그대로 버티고 있는 오세훈도 마찬가지다. 현재 국민의힘 지역위원장으로 있다는 윤희근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특히 윤희근은 선거 출마 등을 준비하며 올해 초에 윤희근의 숨 이라는 회고록까지 냈다.
이 책에서 윤희근은 자신이 이태원 참사의 엄청난 무게를 견디며 끝까지 책임을 지고 사태를 수습했다 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160여 명이 숨도 쉬지 못하고 죽어간 것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 숨 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다니 너무나 기가 막힐 일이다. 다시 10월 29일이 다가오는 지금, 우리는 끝까지 기억하고 유가족들과 손잡고 언제나 함께 행동해야 한다.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