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일 단식 아드난이 세계에 쏘아올린 ‘죽음의 행정구금’ [사회혁신] 행정구금된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 2026년 10월 현재 행정구금 수감자는 3,101명이다. ⒸJaafar Ashtiyeh/AFP
우리는 하늘만 뚫린 감옥에서 살고 있답니다.” 팔레스타인 현지 취재 때 만난 사람들로부터 거듭해서 들은 말이다. 2023년 10월 7일 전쟁이 터지기 전에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밖으로 나가는 길은 매우 제한돼 있었다. 이웃 이집트나 요르단 병원에서 서둘러 치료를 받아야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중환자, 미국을 비롯한 외국인 이중국적을 지닌 사람 등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고는 이스라엘 국경검문소를 벗어나기 어렵다.
‘하늘만 뚫린 야외 감옥’
10.7 전쟁이 터진 지 3년이 흐르는 동안 국경문은 더욱 좁아졌다. 유럽 대학의 장학금을 받기로 된 예비 유학생들이 출국을 못 해 발을 동동 구른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른바 ‘문명의 세기’라는 21세기를 살면서 여행의 자유가 없다니.....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이 그런 상황에 맞닥뜨린다고 상상한다면, 금세 숨이 막혀 올 듯하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겐 자나 깨나 ‘하늘만 뚫린 감옥’에서 지내야 한다는 게 현실이고 일상이다. 국제사회에서도 팔레스타인 전체가 ‘야외 감옥’이라는 비판이 나온 지 오래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기본권을 억압하는 범죄화와 대규모 투옥을 통해 점령된 팔레스타인 영토를 통치해 왔다.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으로 팔레스타인 영토 전체가 야외 감옥으로 바뀌었으며, 그곳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끊임없이 감금, 감시, 그리고 규율을 받고 있다.
(https://www.ohchr.org/sites/default/files/documents/hrbodies/hrcouncil/sessions-regular/session53/advance-versions/A_HRC_53_59_AdvanceUneditedVersion.pdf)
윗글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으로 전쟁이 터지기 딱 3개월 앞서인 7월 10일, 유엔 팔레스타인 특별보고관 프란체스카 알바네세(Francesca Albanese)의 보고서 내용이다. 유엔 인권이사회(HRC)에 제출된 보고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이스라엘 점령 아래서 가장 기본적인 인권을 포함하여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자유 박탈을 겪어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내려진 유죄판결 대부분은 ‘적법 절차 위반을 포함한 국제법 위반’이며, 이는 점령국인 이스라엘의 ‘사법 집행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팔레스타인을 ‘거대한 감옥’으로 바꿔
라시드 칼리디(Rashid Khalidi, 컬럼비아대 현대아랍연구 명예교수)는 한국에도 이름이 알려진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중동역사학자다. 그가 쓴 책 가운데 하나인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열린책들, 2021)은 한국어로 번역돼 널리 읽히는 역저다. 제1차세계대전 뒤엔 영국의 점령 아래,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뒤엔 이스라엘의 점령 아래 놓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난과 저항을 다룬 책이다. 칼리디는 알바네세 유엔 특별보고관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거대한 감옥’으로 바꾸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선주민(원주민) 인구를 말살하거나 소외시킨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를 제외하면, 이스라엘은 여전히 지구상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정착민-식민 국가(settler-colonial state)다. 1967년 점령한 영토에서 이스라엘은 고립, 봉쇄, 통제라는 전통적 접근 방식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인구 밀집 지역을 분리하고 고립시키며 파편화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자라잡은 정착촌, 분리장벽, 거미줄처럼 처진 검문소, (정착민들과 선주민들을 분리시키는) 도로망, 팔레스타인인의 이동을 통제하기 위한 고도로 정교한 시스템,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정보기관(신베트 등)과 이에 순종적이고 하수인 역할을 하는 군 및 사법기구가 감독하는 거대한 감옥 구조를 만들었다.”(Rashid Khalidi, ‘Israel: A Carceral State’, Journal of Palestine Studies, Vol.43, No.4, 2014).
지금 팔레스타인에서는 ‘하늘만 뚫린 감옥’에서 ‘그저 숨 쉬는 자유’만 누리고 있어도 그나마 다행이라 느낄법한 힘든 상황이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다. 2023년 10월 전쟁으로 지난 3년 동안 모두 2만 6000명의 사람들이 이스라엘군에 붙잡혀 폭력과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다행히도 그동안 하마스와의 인질-포로(수감자) 교환 협상 등으로 많은 이들이 풀려났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하모케드(HaMoked)가 이스라엘 교도소청(IPS)으로부터 받은 공식 자료에 따르면, 2026년 10월 현재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 있는 팔레스타인 수감자는 총 9265명이다. 세목별로 나눈다면, ▲유죄 판결을 받은 수감자 1509명, ▲미결 구금자 3236명, ▲기소나 재판 없이 무작정 갇혀 있는 행정구금자 3101명(대부분 서안지구 출신), ▲‘불법 전투원’ 1419명(대부분 가자지구 출신)이다.(https://hamoked.org/prisoners-charts.php)
야외 감옥이 아니라 하늘조차 뚫리지 않은, 사방이 막힌 공간에 갇혀 인간 이하의 수모를 받으며 굴욕을 견뎌내야 한다면 차원이 다른 얘기다. 오늘 글의 주제인, 재판이나 기소 없이 답답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3000여 명의 행정구금자들은 이스라엘의 반인권적 감옥정책으로 말미암아 온몸으로 고통을 받아내는 희생 집단이다(2023년 10월 7일 전쟁이 터지기 전 행정구금 수감자 숫자는 1300명 수준이었다. 인권단체들의 집계에 따르면, 10.7 전쟁 뒤 새로 발령되거나 갱신·연장된 행정구금 명령은 2만 4000건에 이른다).
이스라엘군은 방위군 아니라 점령군”
이스라엘이 아주 쉽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감옥으로 잡아들이는 방식 가운데 하나가 ‘행정 구금(administrative detention)’이다. 너는 언젠가는 이스라엘 안보를 흐트릴 위험인물이야”라고 낙인을 찍으면 그걸로 끝이다. 기소나 재판 따위의 성가신 절차도 필요 없이 그냥 감옥행이다. 이스라엘은 행정구금이란 법기술을 이용해 점령지인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악명을 얻은 지 오래다. 어느 날 갑자기 정식 재판이나 기소도 없이 감옥에 갇혀 자유를 잃는다면, 당사자는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이런 일들이 21세기 중동 땅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공식명칭은 이스라엘 방위군(Israeli Defence Forces, IDF)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의 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군을 ‘방위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라 부른다. IDF보다는 IOF(Israeli Occupation Forces)다. 실제로 중동지역의 여러 아랍계 언론들은 이스라엘군을 IOF로 표기한다. 유엔에서도 보고서 같은 데서 팔레스타인을 일컬을 때 쓰는 공식 명칭은 ‘점령된 팔레스타인 지역(Occupied Palestinian Territory, OPT)’이다.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 단식투쟁 중인 수감자. 2026년 10월 현재 수감자는 9265명이다. Ⓒ알자지라 화면 캡쳐
군 사령관이 내리는 행정구금 명령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옥죄는 것은 이스라엘이란 국가이지만, 현장에서 마주치는 이스라엘의 ‘얼굴’은 점령군인 이스라엘 군인들이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최근 3년 사이에 서안지구에서 선주민들을 물론 인권 활동가들, 기자들, 심지어 유럽 외교관들에게도 마구잡이 폭력을 휘두르는 유대인 정착민들이다.
서안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행정구금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판사가 아닌, 서안지구를 관할하는 이스라엘군 중부군 사령관이다. 법적 근거는 이스라엘 군사법(Military Order)이다. 중부군 사령관은 신베트(Shin Bet)를 비롯한 정보기관이 만든 ‘기밀 정보 보고’를 바탕으로, 특정 인물이 ‘이스라엘 안보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최대 6개월 단위의 구금 명령을 내린다. 그 6개월은 횟수 제한이 없이 무한 연장이 가능하다. 따라서 산술적으론 감옥에 무기한 가둬 둘 수가 있다.
이스라엘 시민권자는 팔레스타인 주민과 서로 다른 법률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구금 명령권자와 법적 절차가 다르다. 이스라엘 시민권을 지닌 아랍인이나 (이스라엘이 자국의 영토에 편입됐다고 여기는)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계 주민에게 행정구금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이스라엘 국방장관이다. 근거는 이스라엘 국내법인 비상사태법(Emergency Powers Law, 1979)이다. 군사령관이든 국방장관이든, 다른 국가들 같으면 계엄령이 선포된 상황에서나 일어날 듯한 일이다.
흔히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우린 중동 유일의 민주국가에 살고 있어요”라고 주장한다. 야당이 있고 언론자유가 그런대로 보장돼 있으니 그런 말을 할 만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유대인들 사이의 얘기다. 이스라엘 시민권을 지닌 팔레스타인계 아랍인은 2등시민으로 차별 대우를 받고, 더구나 점령지역(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선주민들은 피지배집단일 뿐이다. 그러니 ‘무늬만 민주주의’다.
그런 한계 속에서도 행정구금 명령이 적절한 것인지는 8일 안에(이스라엘 시민권자는 48시간 안에) 법원의 심사를 거치도록 돼 있다. 서안지구의 경우는 군사법원 판사 앞에서, 시민권을 지녔거나 동예루살렘에 사는 주민은 이스라엘 지방법원 판사 앞에서, 각기 행정명령이 적절한지 심사를 받게 돼 있다. 판사들은 구금 명령을 승인하거나 취소할 권한을 지녔지만, 당연히 승인 쪽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피의자 또는 그의 변호사조차 왜 행정구금으로 감옥에 갇혀야 하는지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행정구금의 근거가 되는 ‘개인 혐의 정보’가 ‘기밀 증거(classified evidence)’로 분류되어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판사는 신베트(정보기관)의 ‘비밀 파일’을 대충 읽어보고 행정구금 명령을 그대로 승인할 뿐이다. 구속되는 당사자가 왜 감옥에 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깜깜이 구조는 이스라엘이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아 온 요인들 중 하나다.
한 달 이상 변호사 얼굴도 못 본다”
위에서 8일 안에 법원의 심사를 거치도록 돼 있다고 했다. 적어도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전쟁의 터지기 전까진 그랬다. 그 뒤 이스라엘 정부 및 의회(크네세트)는 관련 법을 고쳐 여러 독소 조항들을 넣었다. 이에 따라 판사 앞에 서야 하는 기한이 뒤로 미뤄졌고, 변호사 접견 금지 기간도 늘어났다.
10.7 전쟁 전에는 최대 10일까지 변호사 접견을 못하도록 막았지만 그 뒤 28일까지로 늘어났다. 판사의 승인을 거칠 경우 변호사 접견 금지 기간은 45일(경우에 따라 그 이상)까지 늘렸다. 행정구금 명령을 받은 뒤 8일 이내에 판사 앞에 출석해 적법한지를 따진다는 조항도 30일로 늘어났다. 따라서 피의자는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 적어도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변호인조차 만나지 못한다. 가족 면회도 금지됐다.
그렇다면 그 한 달 동안 이스라엘 수감시설에서 모진 고문을 받더라도 어느 누구로부터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 어쩌다 변호사를 만났다 하더라도, 그다지 도움이 못 된다. 앞서 살펴봤듯이 행정구금의 이유가 적힌 기밀 문서‘를 변호사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방어권을 행사하기가 어렵다. 이런 형식만 갖춘 구금은 ‘적법 절차’와는 거리가 멀기에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이 쏟아지지만, 이스라엘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대영제국이 남긴 못된 유산
행정구금은 1967년 점령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스라엘이 펴 온 억압적 점령 정책이자 가학적 법안이다. 알고 보면 이 악법은 지난날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리던 대영제국이 남긴 식민지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국은 비상령(Emergency Regulations)이란 악법으로 현지인들(영국을 몰아내고 독립국가를 세우려는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의 저항을 눌렀다. 팔레스타인뿐만이 아니다. 대영제국은 전세계에 걸친 식민지(인도, 아일랜드, 이집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등)에서 원주민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행정구금을 남발했었다.
특히 영국은 1970년대 북아일랜드 분쟁 당시 IRA(북아일랜드 공화국군) 등 무장 단체 요원들을 정식 재판 없이 가두는 인턴먼트(Internment) 제도를 꾸려갔었다. 하지만 이 악랄한 제도는 오히려 주민들의 반발을 사서 분쟁을 격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많은 논란과 희생자를 낳은 끝에 1975년에 폐지되었다.
지난날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국가들도 행정구금의 제도를 잘 활용하고 있다. 이집트 독재자들은 장기간 이어진 비상사태법을 통해 정부나 군이 국가안보를 해칠 위험인물을 정식 기소 없이 행정구금하는 권한을 휘둘러 왔다. 파키스탄과 카슈미르 영토를 두고 분쟁을 거듭해 온 인도는 자국 안의 분리주의자들을 억누르기 위해 ‘안보 위협 인물’에 대해 최대 2년까지 재판 없는 행정 구금을 허용하고 있다.
행정구금에 항의하는 카데르 아드난의 단식이 길어지면서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포스터. Ⓒ김재명
한 제빵사의 행정구금 투쟁사
이스라엘 행정구금의 문제점을 국제사회에 알린 인물이 카데르 아드난(Khader Adnan, 1978-2023)이다. 그는 무려 10회에 이르는 투옥으로 8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 가운데 6년 동안을 행정구금(모두 8회)으로 갇혔다. 그는 감옥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장기간의 단식으로 맞섰고, 그 소식이 전세계로 알려지면서 이스라엘의 억압 실상을 드러냈다.
아드난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북부도시인 제닌 근처 마을인 아라바 출신이다. 라말라 교외에 있는 비르제이트대 수학과를 나온 학사 출신 투사다. 학생이던 1996년부터 하마스와 이념적 성향이 거의 같은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PIJ) 운동에 뛰어들었고, 나중에 대변인에 올랐다. 제빵사 자격증을 지닌 아드난은 빵집과 농산물 가게를 열어 생계를 이어갔다.
아드난의 투옥 기록은 참으로 길다. 1999년 처음 체포되어 4개월 동안 행정구금 상태로 이스라엘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났다. 다음해인 2000년 레바논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라고 비난했던 리오넬 조스팽 프랑스 총리가 비르제이트 대학에 왔을 때 벌인 학생 시위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보안군에게 붙잡혔다. 그는 PA 감옥에서 10일 동안 첫 번째 단식투쟁을 벌였다. 2002년 이스라엘군에 붙잡혀 1년 동안 행정구금 상태로 지냈다. 2003년 풀려난 지 6개월 만에 다시 감옥 독방에 갇히자 28일 동안 단식했다. 두 번째 단식투쟁이었다.
2005년 란다 아드난과 결혼할 무렵 이미 그는 5회에 걸쳐 이스라엘 감옥을 다녀왔다. 결혼 직후인 2005년 8월, 아드난은 다시 이스라엘군의 행정구금으로 15개월 동안 감옥에서 지냈다. 그때 12일 동안 단식 투쟁을 벌였다. 2008년 다시 6개월 동안 행정 구금됐다. 세 쌍둥이를 포함해 모두 9명의 자녀를 둔 그들 부부는 둘 다 웃는 얼굴에 남에게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지만, 투쟁 의지만큼은 강했다. 아드난의 아내는 결혼할 무렵 그와 나눴던 대화를 이렇게 전한다.
남편 아드난은 자신의 삶이 평범하지 않다고, 15일 정도 있다가 다시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제게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언제나 강인한 사람,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과 결혼하는 꿈을 꿔 왔어요.
(https://www.aljazeera.com/features/2012/2/19/randa-adnan-i-still-have-hope)
이런 법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
아드난의 단식투쟁이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던 것은 2012년의 일이다. 2011년 12월 17일 팔레스타인 북부도시 제닌에서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이스라엘 병사들이 아드난의 집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아내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아드난을 수갑을 채워 잡아갔다.
이스라엘 중부의 람라 교도소(지금의 아얄론 교도소)는 이스라엘 감옥 가운데 최고 수준의 보안을 자랑(?)한다. 심문실에서 아드난은 모진 고문과 굴욕을 겪었다. 한참 뒤 어렵사리 만난 변호사에게 아드난은 이렇게 털어놓았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나의 아내에 대해 성적인 비하를 하는 말들을 했어요. 나의 이슬람 신앙을 조롱하고, 때리고, 고통스러운 자세로 의자에 묶고, 수염을 뽑고, 얼굴에 흙을 묻혔어요.”
늘 그래왔듯이, 이스라엘은 왜 그가 체포됐는지 혐의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채 무작정 가두어 놓으려 했다. 아드난은 이런 법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이스라엘의 못된 관행에 정면 도전하고 나섰다. 체포된 다음 날부터 즉각 석방과 수감자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무려 66일 동안 단식이 이어졌다. 막판에 몸무게가 30킬로그램 가까이 줄었다.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간수들은 그에게 수갑을 채우고 발을 침대에 묶었다.
언론의 수감자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드난의 이야기는 변호사에게 건넨 편지를 통해서 바깥세상으로 알려졌다. 단식 61일째 되던 날, 서안지구 라말라에 본사를 둔 마안(Maan) 통신은 아드난이 변호사에게 건넨 편지의 일부를 영어로 번역하여 공개했다.
이스라엘 점령군은 우리 팔레스타인 민족, 특히 수감자들에게 극단적인 탄압을 가해 왔다.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심문관들에게 모욕과 구타, 괴롭힘을 겪었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수백 명의 동료 수감자들이 희생양이 된 행정구금 정책에 맞서 싸우겠다고 신께 맹세했다. 나는 정의가 결국 폭정과 억압을 이겨낼 것이라고 믿는다.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인권을 박탈당한 수천 명의 수감자들을 위해 점령군에 맞서 싸우고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 이제 국제사회와 유엔은 수감자들을 지원하고, 이스라엘 정부가 수감자들을 마치 인간이 아닌 것처럼 대하는 것을 중단하도록 강제해야 할 때다.”
(https://web.archive.org/web/20120226023923/http://maannews.net/eng/ViewDetails.aspx?ID=459445)
아드난의 단식이 길어질수록 국제사회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덩달아 이스라엘에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졌다. 바티칸의 프란치스코 교황도 의사들이 심장마비나 다른 장기 부전으로 아드난이 언제든 사망할 수 있다고 내게 말해 주었다”며 관심을 보였다. 단식 61일째 되던 날, 유엔 인권위원회의 팔레스타인 인권특사 리처드 포크(Richard Falk, 프린스턴 대학 명예교수, 변호사)는 ‘카데르 아드난을 살리는 것은 우리 자신의 영혼을 살리는 것’이라는 제목의 글을 알 자지라에 실었다.
팔레스타인 죄수 아드난의 단식은 오랫동안 이어진 점령상태 아래서 견디기 어려운 이스라엘의 잔혹성을 드러내 주는 하나의 축소판이다. 이 사건은 서방 사회에서 이스라엘 수감자의 존엄성과, 법원 판결이나 행정명령을 통해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 고통받는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학대를 외면하는 현실 사이의 극명한 대조를 드러낸다.”
(https://www.aljazeera.com/opinions/2012/2/19/saving-khader-adnans-life-is-saving-our-own-soul)
리처드 포크는 이스라엘 행정구금을 가리켜 ‘사법제도의 테두리를 벗어난 구금(extra-legal form of imprisonment)’이며 전시하에서 민간인 보호를 규정한 1949년 제네바협약을 어기는 것이라 비판했다(이스라엘의 점령정책에 비판적인 포크는 이스라엘 입국을 거부당한 적도 있다. 2008년 UN 인권이사회의 공식 조사관 자격으로 팔레스타인의 인권 실태를 조사하려고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내렸을 때였다. 포크는 공항 안 이민자 구금 시설에 20시간 동안 억류된 뒤 강제 추방됐다. 그 과정에서 그의 UN 휴대전화가 압수되고 정밀 신체 수색을 받아 논란을 불렀다).
2012년 서안지구 라말라 중심가에서 카데르 아드난의 석방을 촉구하는 팔레스타인 인권 활동가들 Ⓒ김재명
동조 단식 취재기
아드난의 단식 소식이 알려지면서 당시 이스라엘 감옥에 있던 1000명 넘는 팔레스타인 재소자들이 동조 단식을 벌였다. 감옥 밖에서도 인권 활동가들이 단식에 들어갔고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그 무렵 필자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중심도시이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청사가 자리잡은 라말라(예루살렘 북부)에 있었다. 당시 취재기를 옮겨 본다.
[라말라 시내에 자리한 국제적십자사 건물로 갔더니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천막 아래서 6일째 단식투쟁 중이었다. 그들 가운데 60대 초반의 한 여인이 눈길을 끌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타프 엘레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티파다(intifada, 저항, 1987-1993)가 터지던 첫해인 1987년, 당시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샤미르를 죽이려다 실패해 6년 동안 옥고를 치렀던 투사다. 그녀는 이스라엘 감옥을 떠올리며 땅 위의 지옥이 따로 없다”고 했다. 그들(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정치범들을 살아 숨을 쉬고, 생각을 하는 인간으로 보질 않는다. 마치 동물을 다루듯 한다”며 치를 떨었다.](김재명,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미지북스, 2021, 173쪽).
엘레얀 말고도 텐트 안에서 함께 단식을 하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이스라엘 감옥의 악몽을 기억하는 이들이었다. 팔레스타인 진보정당인 팔레스타인 인민당(PPP) 간부인 이삼 바케르도 그러했다. 40대 중반 나이인 그는 20대부터 이스라엘 감옥을 여러 차례 드나들었기에 이젠 이력이 났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굳건한 투쟁의지와 더불어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봄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그들 나름의 희망 섞인 낙관론이 묻어났다.
아드난의 단식이 길어지자, 아드난이 소속된 이슬람 지하드는 그가 죽을 경우 이스라엘에 대한 엄청난 보복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같은 정치이념을 지닌 하마스도 투쟁을 예고했다. 처음엔 테러 분자와의 타협이란 없다”던 이스라엘 정부도 난감해졌다. 만약 그가 단식투쟁 끝에 죽는다면, 국제사회의 비난도 비난이려니와 국내적 혼란은 피하기 어려웠다. 단식 66일째인 2012년 2월 21일, 이스라엘이 손을 들었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의 대변인은 넉 달 동안의 유치 명령이 만료되는 4월 17일 그를 석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로써 아드난은 단식을 그쳤다.
2023년까지 거듭된 단식 끝에 숨져
아드난의 고난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3년 뒤인 2015년 또 다시 행정구금으로 잡아들였다. 아드난은 곧 투쟁에 들어갔고 55일 단식 뒤 풀려날 수 있었다. 아드난이 단식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수감자들도 동조 단식투쟁에 나서서 이스라엘을 압박했다. 2017년 아드난은 또 행정구금으로 감옥에 갇혔고, 58일 동안 단식투쟁 끝에 풀려났다. 아드난은 원래 건강한 체질이었으나 거듭된 단식으로 몸 상태가 매우 나빠졌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각료 가운데는 ‘수감자 업무부 장관’이 있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돕기 위해서다. 흔히 ‘죄수부 장관’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죄수(prisoner)’라는 표현보다는 ‘구금자(detainee)’라는 용어를 쓴다. 100명을 약간 웃도는 이 부서의 공무원들은 대부분 지난날 옥고를 치렀던 이들이다. 라말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청사에서 이사 카라케(Issa Qaraqe) 장관을 만났다. 이스라엘 감옥에서 10년을 보냈다는 그는 이스라엘이 아드난을 죽이려 한다”고 분개했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이스라엘 강경파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에 대한 우리 팔레스타인의 어떤 저항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양보나 타협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아드난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김재명,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미지북스, 2021, 175쪽).
그 뒤로도 아드난은 이스라엘 감옥을 드나들어야 했다. 2014년 7월에 체포되어 행정구금돼 있다가 2015년 5월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그 단식은 이스라엘이 7월에 그를 석방하기로 합의할 때까지 56일 동안 이어졌다. 그는 2017년에 다시 체포되었고 58일 동안 이어진 단식투쟁을 또 시작했다. 2021년 체포된 뒤의 옥중 단식투쟁은 25일 동안 이어졌다.
2023년 2월 5일 아드난은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감옥에 갇혔다. 이번엔 행정구금이 아닌, ‘폭력 선동’ 혐의로 정식 기소됐다. 그로부터 무려 87일 동안 단식투쟁을 벌였다. 아드난의 건강 상태가 극도로 나빠졌다. 이스라엘 인권의사협회(PHRI) 소속 의사가 감옥 안으로 그를 진찰한 뒤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에 있으니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 법무관(판사)은 의학적 상태에 긴급성이 있다는 증거가 없다”면서 그 제안을 거부했다. 그 바로 직후 아드난은 감방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곧장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끝내 사망 판정을 받았다. 45세의 젊은 나이였다.
단식투쟁이 지닌 의미
아드난을 풀어주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주지 않은 것 때문에 이스라엘은 ‘고의적인 암살’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스라엘이 골치 아픈 아드난이 하루 빨리 죽기를 바랐다는 얘기들도 나돌았다. 국제 인권 규범에 따르면, 단식투쟁은 표현의 자유이자 시민적·정치적 권리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진다. 단식은 피억압자들이 겪는 인권 상황을 자신의 온몸으로 보여줌으로써 국제적인 관심을 끌고 억압자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투쟁이다. 그렇기에 팔레스타인뿐 아니라 전세계 약소민족이 비폭력 저항의 한 방법으로 써 왔다. 20세기 전반기의 마하트마 간디가 대표적인 보기다.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정치학 박사)
팔레스타인 공동체에서는 단식투쟁을 반(反)이스라엘 투쟁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여긴다. 군사력에서 이스라엘과 균형을 이룰 수 없는 절대 열세이기에, 단식을 비롯해 감옥 안에서의 정치투쟁은 큰 의미를 지닌다. 이스라엘은 튜브를 사용하는 강제급식 등을 통해 폭력적으로 대응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이 숨졌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이들을 ‘순교자’로 섬긴다. 다음 주에는 팔레스타인 정치범들이 이스라엘 감옥에서 벌인 투쟁의 기록과 그 의미를 살펴보려 한다. 본 연재에서 ‘성고문 생지옥-감옥’을 다루는 마지막 글이다. (계속)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kimsphot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