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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데이비드 린, 사막과 얼음밭 위에 새긴 침묵의 서사

데이비드 린, 사막과 얼음밭 위에 새긴 침묵의 서사
[사람들]
퀘이커 집안의 반항아, 카메라를 훔치다 데이비드 린(David Lean, 1908~1991)은 영국 크로이던의 독실한 퀘이커 집안에서 태어났다. 집안 어른들은 극장 출입을 죄악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금지 때문에 소년은 스크린에 더 목이 말랐다. 열 살 때 손에 쥔 브라우니(Brownie) 카메라 한 대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브라우니 카메라는 1900년 미국의 이스트먼 코닥(Eastman Kodak) 사가 출시하여 전 세계적으로 사진의 대중화를 이끈 역사적인 보급형 박스 카메라다. 당시 고가였던 카메라 시장에 단돈 1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출시되어, 성인은 물론 어린이와 일반대중도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기술의 발달과 대중화는 소년의 반골 기질에 불을 지핀 셈이다. 금지된 사과가 제일 달다는 말, 여기에서도 통한다. 아버지 회계사무소에 잠깐 몸담았지만 숫자와는 도무지 궁합이 안 맞았던 그는 1927년 고몽-브리티시(Gaumont-British) 촬영소에 차 나르는 잡부로 들어간다. 차 심부름을 하던 청년이 말단 촬영 보조직인 슬레이트 담당을 거쳐 편집기사로 올라서기까지 걸린 세월은 10년 남짓. 1930년대 말에는 영국에서 몸값 제일 비싼 편집기사가 되어 있었다. 슬레이트 담당 은 영화 촬영현장에서 클래퍼보드 (장면과 테이크 번호를 적어 촬영 시작 전에 탁 치는 그 판)를 다루는 역할을 가리킨다. 촬영이 시작될 때 슬레이트를 카메라 앞에 대고 쳐서 영상과 소리를 나중에 편집할 때 맞추기 쉽게 표시해 주는, 말하자면 현장 막내가 주로 맡는 잡일이다. 린은 차 심부름꾼에서 슬레이트 담당을 거쳐 편집기사로 올라섰는데, 이는 당시 영국 촬영소의 전형적인 승진 코스였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손으로 필름을 만지는 일을 익히며 올라간 셈이라, 훗날 그가 편집의 귀재로 불리는 밑거름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가위와 필름 통을 붙들고 씨름하던 시절이 훗날 그의 연출을 다른 감독과 구별 짓는 무기가 된다. 남들은 찍는 것만 고민할 때 그는 찍기 전부터 이미 어떻게 잘라낼지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데이비드 린(David Lean - IMDb) 가위질의 달인, 사막의 신기루를 편집하다 1942년 극작가 노엘 카워드(Noël Coward, 1899~1973)와 공동 연출한 토린호의 운명 (In which We Serve)으로 감독 데뷔한 그는 곧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 원작의 위대한 유산 (1946), 올리버 트위스트 (1948)를 잇따라 내놓으며 문예영화의 교과서를 새로 썼다. 진짜 이름을 알린 건 역시 대작들이다. 콰이강의 다리 (1957)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처음 거머쥐더니, 1962년 아라비아의 로렌스 로 두 번째 감독상을 챙긴다. 전쟁 영웅이자 정체성의 미로에 갇힌 인물 T. E. 로렌스(T. E. Lawrence, 1888~1935)의 삶을 사막의 신기루처럼 펼쳐놓은 이 영화는 지금도 영화사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촬영에만 스무 달이 걸렸고, 배우 피터 오툴(Peter O Toole, 1932~2013)은 이 한 편으로 하루아침에 세계적 스타가 됐다. 이어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 1890~1960) 원작의 닥터 지바고 (1965)로 흥행 신화를 다시 썼다. 사막 다음엔 얼음밭, 태양 다음엔 눈보라. 이 남자는 극한의 풍경 없이는 카메라를 못 세우는 사람 같았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1946~ )는 훗날 린과 함께 아라비아의 로렌스 를 다시 감상하며 그에게  실시간 해설을 들었던 일을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꼽았을 정도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1962)에 출연한 앤서니 퀸과 오마 샤리프(위키피디아)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에서 로렌스를 연기한 피터 오툴 실패, 침묵, 그리고 14년의 유배 그러나 잘나가던 거장에게도 나락은 있었다. 1970년 라이언의 딸 이 평단의 몰매를 맞자 그는 무려 14년 동안 메가폰을 놓았다. 흥행과 무관하게 자존심에 금이 가면 붓을 꺾는 예술가 특유의 고집이다. 그 침묵을 깨고 돌아온 작품이 E. M. 포스터 원작의 인도로 가는 길 (1984). 오랜 공백 뒤의 복귀작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 들며 건재를 증명했다. 이후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을 영화로 옮기려던 마지막 기획 노스트로모 를 준비하다 1991년 4월 16일, 여든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65년 북부 핀란드에서 영화 닥터 지바고 를 촬영하던 데이비드 린(위키피디아) 한국에 던지는 질문, 편집자는 누가 정하는가? 린의 이력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그가 원래 가위질하는 사람 , 즉 편집기사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필름을 어디서 끊고 어디를 살릴지 정하는 사람이 결국 이야기의 주인이 된다는 걸 그는 일찍이 몸으로 배웠다. 그런데 그가 가위를 든 목적은 진실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였지, 불편한 장면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되짚어 보면 어느 사회든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잘라낼지 를 결정하는 자리가 권력의 핵심이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계엄의 밤,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도 결국 그 편집권을 둘러싼 사달이었다. 헌정질서를 짓밟은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장면만 남기고 나머지는 필름 통에서 지워버리려 했다. 린이 편집대 앞에서 수십 번 되감아 보며 진실에 가까운 컷을 골라냈다면, 윤석열 일당들은 애초에 되감아 볼 생각조차 없었다. 차이는 여기서 갈린다. 한국사회가 지금 씨름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누가 역사의 편집권을 쥐는가, 어떤 장면을 후대의 스크린에 남길 것인가. 린의 필름은 다시 돌려봐도 그때 그 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권력이 서둘러 잘라낸 필름은 아무리 되감아도 이미 사라진 장면을 되살릴 수 없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말은, 결국 누군가는 끝까지 그 잘려나간 필름 조각을 찾아내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1965년 3월, 영화 촬영을 위해 핀란드 요엔수(Joensuu)에 도착한 린과 오마르 샤리프(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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